이렇게 죽음을 맞은 이는 다만 수월뿐만이 아니었다.
이것은 참으로 깨닳음을 이룬 수많은 옛 스님들이 죽음을 맞이하던 모습이기도하다.
지금도 중국 남화선사에 가면 육조 혜능스님의 열반상을 볼 수 있다.
그 열반상은 나중에 만든것이 아니라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의 몸을 그대로 모셔놓은 것이라고 한다.
설명을 미리 듣지 않은 이는 누구도 그 열반상을 보고 그 상이 천삼백 년 전에 열반에 든 혜능의,
그때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것이다.
혜능의 열반상 옆에는 명나라 때 스님인 감산과 단전의 열반상이 함께 모셔져 있다.
믿기 힘든 것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빈틈없는 혜능의 열반상, 파안대소하는 감산의 열반상,
그리고 졸음을 즐기는 나한처럼 머리를 떨구고 있는 단전의 열반상, 이것은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영원한 피안이 되어, 우리 가슴속에 일어나는 묵은 생각의 먼지를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보면 볼수록 그들의 삶과 죽음에는 티끌만큼의 틈이 없없음을 사무치게 느끼게 된다.
참으로 그렇다. 그들은 새삼스레 열반에 든 것이 아니었다. 열반은 그들의 삶, 바로 그것이었다.
수월이 열반에 든 뒤에야 대중들은 수월이 왜 여름 내내 그렇게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나무를 해모았는지를 깨닳았다.
그것은 자신의 덧없는 몸뚱이를 태워 없애버리기 위한 땔감이었던 것이다.
한평생 남을 위해 숨을 쉰 수월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비록 숨이 끊어진 몸일망정
그 몸을 태우기 위한 땔감을 마련해야 하는 다른 사람의 수고를 차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그의 자비는 그의 마지막 숨 끝까지 이어졌다.
수월이 열반한 뒤에 밤마다 호랑이들이 떼지어 울었고, 까치는 하늘을 가리고 슬피 울었다고 한다.
수월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북간도의 동포들에게 더없는 슬픔이었다.
그들은 또 하나의 고향을 잃었으며 또 다른 어머니를 여읜 것이다.
조선 사람들이 간도의 파도 같은 길을 타고 하얗게 몰려왔다.
그래서 수월의 다비식은 이틀 더 늦추어 닷새 만에 치러야 했다.
`다비`란 인도말로 태워 없앤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화욕` 곧 `불 목욕`이라고 한다.
수월이 여름내 쌓아둔 나무는 수월을 태우고 또 태웠다.
물이 물에 씻기는 모든 때를 다 씻겨내듯이 불은 불에 태워지는 온갖 때를 남김없이 태워버린다.
맑은 불길은 수월의 몸을 씻고 또 씻어 영롱하고 빛나는 사리를 수도 없이 건져냈다.
수월이 열반에 든 날로부터 다비식을 마친 이틀 뒤까지 송림산에는 밤마다 큰 빛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빛기둥은 하룻밤에도 몇 번씩이나 일어나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간도땅 사람들의 가슴속을 대낮처럼 밝혀주었다.
그들은 그 빛기둥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슴속까지 벅차오르는 환희심을 느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천상 천하에 홀로 우뚝 선 기분이 된 것이다.
그 꺼지지 않는 빛살을 향해 간도 땅 백성들은 소리 높여 외쳤다.
나무 수월 보살 마하살
나무 수월 보살 마하살
나무 수월 보살 마하살
수월 음관, 그는 중생의 일꾼으로 태어나 중생의 일꾼으로 죽은, 보살의 화신이었다.
그는 삼매의 열매였고 자비의 빛이었으며, 보현의 메아리였고 문수의 꽃이었다.
수월이야말로 참으로 죽음을 온전하게 이룬 성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죽음을 두고 바로 `달이 되신 달`이라고 끝없이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묻기에 앞서 벌거벗은 수월이 짚신을 머리에 이고 서쪽(열반)으로
간 뜻을 먼저 물어야 옳으리라.
그때 만해 한용운이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있던 [불교]는 1929년 1월호에 이런 사고를 실었다.
대선지식 수월 대선사께서 무진(1928)년 음력 7월 16일 미시에 중화민국 다전자 나재구간 화엄사에서 열반 하셨습니다.
전수월 대선사께서는 수년 전인 기유(1909)년 음력 9월 17일부터 중화민국 청구간 관음사에 주석 하시다가
경신(1920)년 7월 16일(음력)에 다시 삼백여 리를 돌아와 전기 주소에서 청풍납자를 모아 수선 안거하다가
전기 일자에 하안거를 해제하고 오후 미시에 안연히 열반에 들어 선중은 슬픔을 극하여 오 일 뒤에 다비식을
봉행함에 칠 일 동안 대방광하였다는 보도가 함경북도 경원군 월명사 주지 김취담 선사로부터
본사에 도작하였기에 널리 알려 드립니다
1929년 1월 1일 [불교] 제55호
출처 - 물 속을 걸어가는 달 - 김진태지음 - 학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