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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반도는 7세기 초반 두 거대한 제국인 비잔틴과 페르시아와 접해 있었다. 당시에 반도 서부 메카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중요한 종교가 탄생했다. 바로 이슬람이다.
서유럽이 아직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이슬람의 탄생은 광활한 제국을 형성하며 인류의 지식과 기술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아랍인의 역사》 앨버트 후라니 심산, 3만 8천 원, 896쪽
인류 역사에서 큰 기여를 한 문명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모진 수난을 겪고 있다. 옛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한 후 세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마치 ‘이슬람과 서방’의 충돌 ― 이른바 ‘문명의 충돌’ ― 처럼 얘기되고 있다. 이슬람이 모든 악의 근원이며 테러리스트 양성도 이슬람에서 기원한 듯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앨버트 후라니의 《아랍인의 역사》를 보면 이것은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슬람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이슬람이라는 공통의 이해로 묶이지 않음도 알 수 있다.
이미 타계한 앨버트 후라니는 아랍계 영국인이면서 기독교인이자 저명한 이슬람 역사학자였다. 《아랍의 역사》는 이슬람 이전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아랍의 방대한 역사를 다룬다.
이슬람 제국이 형성되던 시기에 다양한 집단들로 구성된 신흥지배세력은 정복사업을 통해 얻은 부로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방대한
그러나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격차는 점차 심화됐다. 부를 소유한 지배층과 빈곤한 피지배층 간의 알력은 이슬람 초기부터 그 조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세기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에 아랍 세계도 그들의 수탈 대상이 됐다. 민족주의가 등장하며 유럽에 저항하기도 했지만 부는 유럽 제국들과 지배 엘리트들에게 집중돼 갔다.
1940년대와 1950년대 국가 권력은 급속한 산업화를 위해 국유화를 추진한다. 유럽을 따라가기 위한 산업화를 개인 기업들에게 맡기면 어렵거나 더딜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지배세력이 유지되려면 잉여생산물에서 그 비용을 충당해야 하고 그것은 세금으로 징수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수탈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아랍의 역사 속에서 지배세력의 교체는 이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이 밖에도 이 책은 이스라엘의 탄생 과정, 석유, 미국의 중동 개입, 아랍의 분열 등도 풍부하게 다룬다.
석유에서 뽑을 수 있는 이윤 때문에 지금 세계 곳곳의 평범한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돼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받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기독교인이면서도 이슬람의 광범한 역사를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서술한 저자 앨버트 후라니는 같은 이슬람 속에서도 부를 소유한 자들의 이해관계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고난을 분명히 구분해 서술한다.
긴 역사만큼 분량도 만만치 않지만 아랍과 이슬람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데 꼭 필요한 내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