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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시쯤 동작역에 도착하여 국립현충원 정문을
향해 걷는다. 무려 41년 전인 '78년 고3 시절로 타임
머신을 타고서 잠시 거슬러 오르는 느낌을 들게 한다
그 시절 친구들과 왜 이곳에 왔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 당시의 사진이라도 몇 장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문 바로 앞까지 확장된 차도
와 진출입 차량과 사람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이 흘렀
음을 실감하며 옛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서성거린다
이 넓은 공간을 두루두루 돌아보리란 생각은 여건상
접었기에 정문 우측의 가장 바깥의 길을 따라 산책
하듯이 걷기로 하고선 가까이에 있는 민원실로 들어가
비치된 책자와 현충원 안내도를 구하여 들여다본다.
약간의 오르막길에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은 묘비 옆에
희거나 붉은 인조화가 놓여져 있다.
마치 그리운 누군가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쓸쓸한 풍경으로 와 닿는다. 겨울 볕은 나뭇잎 모두
떨군 산수유 가지 사이로 파고들어 열매를 핏빛으로
물들인 듯하다.
하얀색 리무진버스 3대와 승용차 몇 대가 봉안식장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보게 된다. 누군가에겐 분명
슬픈 날이지만 내 마음은 무덤덤하다.
대한독립군 무명용사위령탑을 지나서 철제 울타리
밖의 아람길 약수터 근처의 벤치에 앉았을 때 검은
고양이 한 마리 조심스럽게 나타나 쪼그려 앉는다
빵조각을 옆으로 던져 주니 놀란듯 몇 걸음 물러선
채 나를 슬쩍 살피더니 다시 다가와 냄새와 맛을
확인 후 입에 물고 낙엽 쌓인 숲으로 사라진다.
묘소위치안내도의 위쪽에 있는 장군제1묘역의
계단을 오른다. 장성들의 묘역이라 그런지 북쪽이
확 트인 곳에 자리하여 아주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다
비석에 새겨진 이름과 계급을 무심한 눈길로 보고
있을 때 가까이로 다가온 인기척을 느끼고선 계단을
내려와 근처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묘소로 향한다.
입구에 이희호 여사 묘소라고 표기되어 있어서 약간
혼동이 오지만 곧 잘 다듬어진 잔디 덮힌 묘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엔 침묵이 흐를 뿐이다.
방명록에 흔적을 남길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민족통일의 초석 편히 쉬십시요 라는 몇 자를 남긴다
걸음을 왔던 곳으로 되돌려 동쪽의 솔내길 사당통문
앞을 지나고 있다. 이 길은 차량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간편복장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함인지 목소리마저 나즈막
하다. 지난 태풍 때문인지 수명을 다한 나무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길가엔 토막 낸 나무들이 곳곳에 널렸다.
고개 든 채 바라본 파란하늘에 흰구름이 머물고 있다
우리의 삶도 한 조각 구름처럼 왔다가 홀연히 흩어짐
이라지만 가끔 가슴 한켠에 슬픔이 맺히어 쓰린 건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 현충원 이곳에 안장 되어 이미
진토 되어 육신을 떠난 넋들은 과연 우주 어느 곳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편히
머무시기 바랍니다의 인삿말이라도 전하고 싶다
어느새 3시 20분이고 솔내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유격
부대전적비를 보게 된다. 계단으로 올라 고개 숙여
추모한 후 현충원을 둘러싼 서달산 길을 걷기 위해
동작통문으로 향한다.
2중의 철제울타리를 지난 후 오른쪽으로 접어들자
현충원길이라 쓰여 있는 팻말 앞에서 이정표를 보며
방향과 거리를 가늠하게 된다. 상도통문으로 가는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좁은 오르막이다.
개를 끌고 산책 나선 사람들은 통행에 불편을 줄
여지가 많음에도 여러 명을 마주치게 된다.
비교적 조심하는 자세를 보이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는 없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외투의 지퍼를
열고 걸으며 땀을 식힌다. 주변 경치는 그저 그런
편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써 우측(북쪽)은
시야가 가리고 좌측 아래로는 평범한 주택들만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당출입문 근처에서 관악산
정상이 조금 가까이로 다가와 있는 듯하다.
현재 시간은 4시에 가깝고 지금껏 걸은 거리는 7내지
8km쯤이다. 서달산 정상에 있는 동작대를 오른
후엔 중앙대후문 쪽으로 내려가서 노들역 방면으로
가리라고 맘속으로 결정한다
낮은 산이지만 계속 이어진 오르막길이라 들숨과
날숨으로 코와 입이 조금 바빠진다
폐활량 부족의 원흉인 담배를 끊을까를 순간적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아직은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다란
걸 잘 알고 있기에 그저 발걸음을 재촉하며
내친김에 한강대교까지 가리란 생각을 굳힌다.
동작대에 올랐지만 한강 조망은 잘 안 되기에
금세 내려와서 쉼터 정자에 둘러앉아 장기와 바둑
두는 사람들을 보며 신선놀음을 떠올리게 된다
이제부터 줄곧 내리막길을 걷게 되겠지만 어두워
지기 전에 목적지까지 가려면 잰걸음 이어야 한다.
거북바위가 있는 곳에서 시야가 트이며 여의도와
동작대교가 한 눈에 들어온다. 최대한 멀리까지
보기 위해 목을 빼들었지만 자라목이라고 거북바위
가 놀릴까를 염려함은 외려 사오정같다란 소리
듣기를 자청하는 것이리라
서달로 위에 놓여진 조그마한 생태다리를 건너서
ㅇㅇ아파트 있는 곳까지 왔지만 이정표는 혼동을
일으키게 한다. 반대편으로 걷다가 아닌 듯싶어
다시 방향을 바꾸어 걷지만 초행자로서 갖게 되는
의구심은 중앙대후문에서 상도터널로 이어지는
길에서도 떨쳐내지 못한다. 이정표가 아예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상도터널의 폭 좁고 어두컴컴한
보도를 걸으며 내가 길을 잘 못 들었을까 하여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고 싶은 생각을 누르고 나의
감각에 맡기기로 한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다행히
노들역이 보인다. 낯선 길을 꽤 멀리 걸었다
걷던 도중에 한강대교까지 가보고자 맘 먹었기에
조금 더 걸어 대교 아래쪽 보행자길로 들어선다
만약 저 강물에 빠지면 어떻게 할 건지를 장난스레
내게 묻던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머물다가
노들역으로 되돌아가서 5시 10분쯤 귀갓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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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현충로, 동작동 위치. 묘역안장현황, 현충선양활동, 주요시설물, 현충일 참배 안내.
「국립묘지령」은 그 첫 조항에서 ‘군인·군무원으로서 사망한 사람과 국가에 유공한 사람의 유골 또는 시체를 안장하고, 그 충의(忠義)와 위훈(偉勳)을 영구히 추앙하기 위하여 국방부 장관 소속하에 둔 묘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립묘지는 1955년 7월 15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관악산 줄기로 약 44만 평(144만㎡)의 대지에 설립되었다. 2018년 현재 무명용사 11만여 위를 비롯하여 모두 17만 9천여 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민족적 수난인 6·25 전쟁으로 전몰한 국군 장병들이 이름없는 넋이 되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던 것을 한 곳에 안장하기 위하여 국군묘지가 설치되었다.
1954년 육군 공병단에 의하여 착공되어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가 설치되었으나, 그 준공은 1957년에 있었다. 처음 이 국군묘지의 안치 대상은 전몰한 군인에 한하였으나, 1965년 3월 30일 대통령령 제2092호 「국립묘지령」에 의하여 국립묘지로 그 격을 높이고, 안장 대상자 범위도 국가에 유공한 민간인에까지 확대하였다.
안장 대상자의 범위는 ① 현역군인, 소집중의 군인 및 군무원으로서 사망한 자, ② 군복무중 전투에 참가하여 무공(군사상의 공적)이 뚜렷한 자, 장관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한 자 중 전역·퇴역 또는 면역된 뒤 사망한 자로서 국방부 장관이 지정한 자, ③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장례)된 자, ④ 국가 또는 사회에 공헌하여 공로가 뚜렷한 자 중 사망한 자로서 국방부 장관의 제청에 의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한 자, ⑤ 전투에 참가하여 전사한 향토예비군 대원과 임무수행 중 전사 또는 순직한 경찰관, ⑥ 대한민국에 공로가 뚜렷한 외국인 사망자 중 국방부 장관의 제청에 따라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한 자 등이다.
1970년 1월 이 영의 개정에 의하여 이 일대를 성역으로 지정하여 한층 미화단장하였고,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에서 국립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지역은 조선시대 단종에게 충절을 바쳤던 사육신(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의 제사를 모시던 육신사(六臣祠)가 있던 곳으로 전하여지며 보훈충의(報勳忠義)가 깃들인 곳이다.
지형적으로는, 관(冠)을 쓴 듯 봉우리가 솟았다 하여 관악산이며, 붓끝과 같이 뾰족한 형세라 하여 문필봉(文筆峰)이라 일컬어지는 산세로 감싸여 있다. 이들 산세 속의 펑퍼짐한 지형을 ‘동작포란형(銅雀抱卵形)’이라 하여 동작이 알을 품고 있듯 상서로운 기맥(氣脈)이 흐른다 하였다. 또한, 전면을 흐르는 한강수가 용트림하듯 흐르고 있어 한층 미관을 더하고 있다.
국립묘지의 정면에 들어서면 충성 분수탑이 우뚝 서 있고, 금잔디가 깔린 광장을 지나면 현충문(顯忠門)과 현충탑(顯忠塔)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이 현충탑 안에는 11만여 무명용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위패실과 납골당이 있으며, 이를 가호하고 있는 애국 투사상이 좌측에, 호국 영웅상이 우측에 있다.
이 탑을 중심으로 동서묘역에 국가유공자 묘역, 애국지사 묘역, 장군 묘역, 장교사병 묘역, 경찰관 묘역 등 신분별로 약 5만 위가 정연하게 잠들어 있다. 동작동 묘지 시설로는 안장식을 거행하는 현충관(顯忠館), 유품과 전리품을 전시하는 유품 전시관이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초대·2대·3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승만(李承晩)과 제5·6·7·8·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朴正熙) 및 영부인 육영수(陸英修)가 안장된 것을 비롯하여, 전 국무총리 이범석(李範奭), 전 민의원의장 곽상훈(郭尙勳) 등 각계 저명인사들이 묻혀 있다. 해마다 영령들의 충절을 기리는 참배객들이 늘고 있다. 2009년 8월 23일 제15대 대통령 김대중(金大中)이 안장되었다. 2015년 11월 26일 제16대 대통령 김영삼(金泳三)이 안장되었다.
한편, 정부는 묘역 확대의 일환책으로 1985년 11월 13일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에 국립묘지 대전분소를 설치하였고, 1996년 6월 1일 국립묘지 대전분소에서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006년 1월 국립현충원에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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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참배도 하고 산책도 할겸 계절 바뀔 때마다
한 번씩 현충원 들르는 것도 좋을 듯.
나도 겨우 두 번째 들렀지만 왠지 맘이 차분
해지면서 이곳에 오길 잘했다란 생각이
들었음.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공간이라
비록 대화는 나눌 수 없지만 나에게도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분명 죽음이 있을 거고 어디에
묻히든 뿌려지건 누군가는 나의 죽음 앞에서
조금은 슬퍼서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려
줬음 좋겠당 ㅎㅎ 죽은 자가 볼 수는 없겠
지만. 눈물이 안 나올 땐 고춧가루 쌓던
보자기로 눈과 코를 비비면 즉효라는 말도
있던데. 어쨌건 죽음 앞에 비겁치 맙시당^
글과 사진속에
많은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며
지나가는구나
마음 짠하게 하는
풍경속에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새겨지기도 한다
친구야
반가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모윤숙
물론 시의 내용을 일부러 찾아 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꽃 피우지 못하고 숨져 간
젊은 넋들의 묘비를 보자니 시대유감
이어라. 죽긴 죽었으되 아무도 찾지 않는
무명용사들의 넋은 죽어서도 외로워라
겨울이라 더욱 썰렁한 느낌의 수많은 묘비
들을 보노라니 저절로 숙연해지는 마음은
이곳을 찾는 남녀노소 나이불문이리라.
많은 사연 있겠지만 가슴에 붉은 피 쏟으며
죽어갈 때 못 다한 사랑과 우정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60쥐띠들은 6.25전쟁 겪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다한 행운아들이지 ㅎ
그리미 님도 열심히 살아왔음에 60살 되는
해부턴 아등바등치 말고 수시로 어영부영
하며 살면서 삶을 즐기시라^ㅋ
현충원에서부터시작해
걷는길좋다고들었는데
회자가 걸었구나
거기자주가는 내친구는 늘
혼자만가던데 회자도글쿠나
봄벛꽃도 아주멋잇다고들한던데
현충원 ~~
어~~입카동기 목단꽃 님 매우 반가워라 ㅎ
잘 지내시는 검까. 누군가가 동작역 웨밍웨이
길 앞에서 불쑥 나타나서 이쪽으로 가면 어떤
길인가요 라고 묻기에. 아마도 반포천 따라
길이 쭉 이어져 있을 거라고 대충 답한 적
있었거든요. 그리고 나서 문득 아주 오래전
기억이 조금 되살아났지요. 동작동 국립묘지
를 고3때 친구들과 왔었다란 바로 그 기억.
그래서 한번 들러야 겠단 생각에서 지난
일욜 이곳을 찾게 되었답니다. 4월 초순
현충원 벚꽃축제 있으니 목단꽃 님 오셔서
구경하시길요^ 내가 안내하고 싶어라 ㅋㅋ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현충원~
그 길을따라
이렇게
걷기 좋은곳이 곳이 있어서
사색을 즐기며
운동하기 딱 좋겠네요
나도 겨우 두 번째 찾아간 곳입니다.
40여 년 전에 친구들과 왔던 현충원이
문득 궁금해서. 내 기억 속에 남았던 것과
조금 일치하는 곳은 그 당시에도 있었던
커다란 건물과 탑 그리고 묘비. ㅎㅎ 조금 무식하게 표현이 되었지요. 굳이 정문으로
향했던 이유는 정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되살아났고 그 당시엔 국립
묘지라 불렀는데 지금의 정문은 어떤 모습
으로 변해 있을까의 단순한 궁금증이 발동
했기 때문입니당~현충원은 상당히 넓기도
하거니와 잘 관리 되어 있기에 호국영령들
께 감사의 표현도 할겸 산책 삼아 거닐기에도
그 어느 공원 못지 않답니다. 서림 님과 피차
일반인 듯한 바로 아래쪽 봄비 님 위쪽의
목단꽃 님
@회자정리 그리고 그리미 님 모두 손 꼭 잡으시고
벚꽃 만발 했을 때 꽃 구경하러 현충원
으로 함께 오시기 바람당^ ㅋㅋ 4명 모두
현충원 찾아온 적 없었지용.
서림 님 좋은 하루로 마무리 하시고 숙면
취하시기 바랍니다요. 내가 왜 이렇게
친절해졌느냐고 묻진 마셔라. 케케~~
한번도 못 가본 곳~
다음에 사당동에서 정모 있을때
우리도 현충원 안내 부탁한다
참배도 하고
궁금중도 풀고
회자정리야 부탁한다
한번도 못 가본 곳! ㅎㅎ 이실직고 안
하셔도 되는데 왜들다들 이렇게 솔직
하다냐~ 그럼 사당동에서부터 걸을까요.
동작역이 가까우니 현충원 올라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치만 되도록임 날씨
좋고 꽃 핀 봄날이 좋겠지요. 기회는 만들면 될 것이고 장담호언치 못할지라도 60쥐방
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딘들 못 가리오의
맘만이라도 기약하지요. 어서 와라 꽃 피는
봄날이여 하기엔 한 살 더 먹는 게 싫을
래라~ ㅋㅋ 봄비 대장요 이제부터 본격적
겨울 시작이니까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면역력 강화에 만전을 기하시기 바람당^
많이 변했구나 ..
내 친구놈
저기서 방위생활했는데 ..
회자정리 친구,
조근조근 사진도 참 잘 찍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