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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중작가라는 편견을 넘어
최인호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63년 만 18세의 나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여 소설가로 데뷔한 후에
현재(2006년)에 이르는 43년간의 오랜 세월 동안
소설 창작에 매진해 온 우리 문단의 중견 소설가이다.
소설가 최인호에게는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혹은 대표적인 대중작가라는 닉네임이
마치 낙인(烙印)처럼 붙어 있다.
또한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깊고 푸른 밤」 등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동시에 영화로도 높은 인기를 구가함에 따라,
아울러 한때 영화감독을 하기도 했던 최인호의 이력에 따라
그를 영화와 문학의 접점을 추구했던 작가로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세평(世評)이 그른 것은 아니다.
다만 최인호 문학의 온전한 가치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그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사실은
그의 문학성을 온전히 규명하는 데 일종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필요한 일은
최인호 소설의 미학성을 작품 그 자체에 대한 합리적 분석을 통해
정치(精緻)하게 해명하는 작업일 터이다.
70~80년대 초반에 발표한 최인호의 중·단편소설은
당대의 다른 작가의 작품이 제대로 담보하지 못한 고유한 현대성의 미학과
소설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타인의 방」, 「처세술 개론」, 「깊고 푸른 밤」 등이
바로 그러한 예에 해당되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최인호는
산업화 시대의 고독한 개인의 초상을 정교하게 해부함과 더불어
물신주의의 폐해를 절묘하게 풍자하고 한국 사회의 폭력성에 대해
미학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물론 최인호는 최근에도 『상도』, 『유림』 등의 장편소설을 발간하는 등
여전히 창작에 몰두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문제작을 출간하고 있지만,
문학사적 평가나 평단의 호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최인호 문학의 진정한 전성기는 초기 평판작인 「타인의 방」(『문학과지성』 1971년 봄호)에서
이상(李箱)문학상 수상작인 「깊고 푸른 밤」(『문예중앙』 1982년 봄호)에
이르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2. 산업화 시대의 고독 : 「타인의 방」의 문제의식
1971년 봄에 발표된 최인호의 「타인의 방」은
당시 산업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던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고독한 도시인의 초상을 인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타인의 방」의 공간적 배경이 아파트라는 사실은
이 작품의 이해에 소중한 정보와 맥락을 제공한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의 탄생은 일제시대로 소급된다.
1932년 일본에 의해 세워진 서울 충정로의 5층짜리 유림아파트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1961년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마포 지구에 도화아파트를 건설,
근대식 아파트를 처음으로 도입했는데
이때부터 한국에서 아파트 시대가 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던 1971년은
제2차 경제개발계획과 맞물리면서
서울에 아파트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이다.
당시 존재하던 아파트는
마포아파트, 1970년에 붕괴된 와우아파트, 힐탑아파트, 홍제동, 문화촌 등의 소규모 아파트,
한강맨션아파트 등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당시 아파트에 거주하는 인구는 극소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울의 아파트 건립사를 감안하면
1971년 봄 당시 아파트 생활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풍속사적 감각을 선취(先取)하는 상당히 신선한 소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새로운 생활 감각에 대해 순발력 있게 접근한
최인호의 문학적 재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공간의 변화가 소설적 상상력의 새로운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최인호의 「타인의 방」이 보여 준 새로움은
기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당시 비로소 등장하고 있던 아파트라는
공간의 새로움에서 발원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소설의 제목이 「타인의 방」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왜 '우리의 방'이나 '나의 방'이 아니라 '타인의 방'인가?
이러한 제목은 이제 전통적인 공동체적 주거 공간이
아파트라는 사적인 주거 공간으로 대체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새로운 인간관계의 윤리학을 상징한다.
전통적인 주택에 비할 때,
아파트는 바로 옆에 누가 사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철저한 익명의 사적 공간이다.
가령 오랜만에 출장에서 돌아온 「타인의 방」의 주인공이
잠긴 아파트 문을 열기 위해서 계속 현관문을 두드리자,
"그 집엔 아무도 안 계신 모양인데 혹 무슨 수금 관계로 오셨나요?",
"벌써부터 두드린 모양인데 아무도 없는 것 같소,
그러니 그냥 가시오.
덕분에 우리 집 애가 깨었소"라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반문하는 대목,
이에 대해 그가 "전 이 집의 주인입니다"라고 항변하자,
사람들이 "우리는 이 아파트에 거의 삼 년 동안 살아왔지만
당신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소"라고
냉랭하게 응수하는 대목은
아파트 생활이 초래하기 마련인 '인간관계의 단절 현상'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주위의 이웃 누구도 그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 심지어는 같은 집안에 살아가는 사람까지도
'타인'이라는 호칭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의 변화는
바로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이 가져온 현대 도시 사회의 새로운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관계의 단절은
궁극적으로 주인공에게 원초적인 고독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타인의 방」 곳곳에는
고독한 자신을 투명하게 응시하는 주인공의 형상이 부조되어 있다.
예컨대
"그는 심한 고독을 느꼈다.
그는 벌거벗은 채, 스팀 기운이 새어 나갈 틈이 없어 후텁지근한 거실을,
잠시 철책에 갇힌 짐승처럼 거닐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주의를 둘러본다.
그는 엄청난 고독감을 느낀다",
"그는 한층 더 깊은 피로를 느끼면서 거실로 돌아와
술병의 술을 잔에 가득히 부어 단숨에 들이마셨다.
그러자 그는 아주 쓸쓸하고 허무맹랑한 고독감을 느꼈다"
등등의 예문에서
이러한 고독감이 인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고독감은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한 성찰과 실존적 응시를 동반한다.
그 모습은 아래와 같다.
그는 우울하게 서서 엄청난 무력감이 발끝에서부터 자기를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으며
욕실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우송되는 소포처럼 우표가 붙여진 채 부옇게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고독과 무력감, 우울함은
공동체적 사회에서는 전면화되지 못했던 산업화된 도시 사회의 증상일 것이다.
물론 여기에 덧붙여 대도시의 아파트라는 폐쇄된 공간적 조건이
이러한 주인공의 고독과 무력감을 초래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겠다.
인간과의 단절로 인한 고독감은 주인공에게 사물과의 교감을 추구하게 만든다.
그것은 고독이 극한도로 엄습했을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력한 태도일 것이다.
「타인의 방」에서 주인공은 아파트 내의 온갖 사물이나 곤충과 대화를 시작한다.
"방 모퉁이 직각의 앵글 속에서 한 놈이 용감하게 말을 걸어온다.
벽면을 기는 다족류 벌레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옷장의 거울과 화장대의 거울이 투명한 교미를 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잘 들어요. 소켓이 속삭인다. 마치 트랜지스터 이어폰을 꽂은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만 사근거린다.
오늘 밤 중대한 쿠데타가 있을 거예요. 겁나지 않으세요?"
등의 예문이 그러한 주인공과 사물의 대화를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장면은 "인간과 사물의 가치가 전도된 상황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또한 고독의 극한에 다다른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생각된다.
인간과의 단절로 인한 고독은
필연적으로 사물과의 대화를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의 아내는 아파트에 돌아온 연후에 다음과 같이 행동한다.
그러나 그녀는 곧 잃어버린 것이 없는 대신 새로운 물건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물건은 그녀가 매우 좋아했던 것이었으므로
며칠 동안은 먼지도 털고 좀 뭣하긴 하지만 키스도 하긴 했다.
하지만 나중엔 별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임을 알아차렸고 싫증이 났으므로
그 물건을 다락 잡동사니 속에 처넣어 버렸다.
그 물건은 물론 '남편'일 것이다.
자신의 남편을 일종의 '물건'으로 간주하는 아내의 행동을 묘사한
위의 문단은
인간적인 교류가 단절되어 모든 관계가 사물화된
현대 산업사회의 징후를 섬뜩하게 포착하고 있다.
「타인의 방」은
지금까지 언급한 공간적 상상력과 함께
당시 만 25세였던 유망주 소설가 최인호의 젊고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설의 곳곳에 박혀 있는
"접속이 나쁜 형광등이 서너 번 채집병 속의 곤충처럼 껌벅거리다가는 켜졌다",
"그는 키 큰 맨드라미처럼 우울하게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는 샤워기 쪽으로 다가갔다"
등의 신선한 비유와 감각적인 문장은
「타인의 방」을 당대의 문제작으로 만든 또 하나의 문학적 매력일 것이다.
3. 미문(美文)의 매력과 사회적 상처의 소설화 : 「깊고 푸른 밤」
1982년에 발표된 중편소설 「깊고 푸른 밤」은 최인호에게 제5회 이상 문학상을 안겨 준
문제적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최인호는 단지 베스트셀러를 양산하는 대중 작가가 아니라,
흡인력 있는 감각적 문장을 구사하며 인간과 사회, 문명에 대한 세련된 성찰을 수행하는
본격 작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깊고 푸른 밤」은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하여 한때 한국에서 노래를 부르던 가수 준호와
그의 고등학교 2년 선배인 주인공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차를 몰고 돌아가는 여정(旅程)을 다룬 소설이다.
준호는 한국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가수였지만
대마초를 피운 죄로 무대에서 물러난 뒤 곡절 끝에 미국에 오게 된다.
뉴욕과 시카고를 거쳐 로스앤젤레스에 오게 된 그는
가족을 한국에 남겨 두고 아예 그곳에 불법 정착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 최인호의 분신으로 생각되는 소설을 쓰는 주인공은
인간과 세상을 향한 분노와 일상생활에서 탈출하여 미국으로 온다.
그는 자신이 도망쳐 왔다기보다는 망명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미국에서 만난 준호와 주인공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왔다가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여정 속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겪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미국의 지극히 아름다운 자연을 향유하는 동시에
좌절된 그들의 욕망을 응시하고,
더 나아가 한국 사회와 미국에 대한 서늘한 성찰을 보여 준다.
이들의 미국 생활과 여행을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는 단연 자유다.
준호가 자주 피우는 마리화나,
정처 없는 여행, 새벽까지 진행되는 광란의 파티,
『펜트하우스』에서 잘라 낸 여인들의 벌거벗은 사진들,
야자수 나무, 이국땅이라는 배경 등은
이 소설을 지배하는 자유의 정서를 역연히 보여 준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주목할 점은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누리는 그 자유는
진공 속의 자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자유에는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자의 곡진한 상처가 배어 있다.
예를 들어 준호가 왜 돌아가지 않느냐는 주인공의 질문에
준호는 "무서운 나라야. 난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아.
씨팔 난 미국에서 살거야."라고 응수하고 있는데,
이러한 대목은 준호가 한국에서 받은 엄청난 상처를 인상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준호의 상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통해 한층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준호를 위시해서 많은 젊은 가수들이
마약중독자로 몰려 두들겨 맞았으며,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으며,
끝내는 사회의 도덕적 패륜아로 지탄받고 격리되었던 쓰라린 과거를.
그들을 만약 단순한 범법자로 다루었다면 길어야 일 년,
집행유예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적 여론으로 두들겨 맞았으며,
그리고 언제까지라고 정해지지 않은 이상한 압력으로 재갈을 물리고, 격리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우연히 해외로 나온 여행에서
그를 밀입국자 신세로 전락시키게 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장을 통해
우리는 1970~80년대를 지배했던 한국 사회의 폭력과 야만성,
국가주의가 조장하는 문화적 획일성을 씁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에 분노한 끝에 미국으로 온 주인공이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망명을 한 것일까.
보다 큰 자유를 위해서 망명을 떠나온 것일까,
분노로부터의 망명인가, 숨 막힌 일상으로부터의 망명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1980년을 전후로 벌어진 한국 사회의 야만적 폭력이
한 사람의 지식인이자 작가에게 커다란 상처로 다가왔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주인공의 분노는 미국의 풍요로움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4. 초기 중, 단편 소설의 재평가
이 땅의 독서 대중에게 최인호
지금 이 시점에서 볼 때 최인호의 소설이 지닌 문학사적 가치와 매력은 우리 현대 소설의 다양성이라는 맥락에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타인의 방」, 「깊고 푸른 밤」을 위시한 최인호의 초기 중·단편소설들은 소설에 있어서 문체와 미적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최인호의 소설은 정치, 사회적 소재를 다룰 때조차 감각적이며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그것은 한국 소설이 도달한 드문 문체 미학의 세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금 이 시대에 최인호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오랫동안 문학사의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한국 현대소설사의 숨겨진 보고(寶庫)를 다시 발견하는 작업에 다름 아닐 것이다.
1. 「타인의 방」을 비롯한 최인호의 소설에서 공간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말해 보자.
최인호의 주요 소설에서 공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타인의 방」에서 아파트, 「깊고 푸른 밤」에서 미국이라는 공간은
각각 해당 소설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2. 「타인의 방」이 발표된 지 어언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이후 아파트 생활을 비롯한 대도시 서울의 일상과 인간관계는 얼마나 변화했는가?
이제 「타인의 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관계의 단절은
서울에서 너무나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이 시대 아파트는
서울 시민의 보편적인 생활공간이며
거대도시화에 따른 익명성과 인간관계의 단절 현상도 폭넓게 관찰되고 있다.
3. 「깊고 푸른 밤」은
최인호의 빛나는 문체 미학과
정치·사회적인 문제의식이 결합된 소설이다.
그렇다면 「깊고 푸른 밤」을 통해 소설의 문체와 내용의 관계에 대해 탐구해 보자.
「깊고 푸른 밤」의 문체는 대단히 감각적이다.
그래서 「깊고 푸른 밤」에 등장하는 사회적 문제의식은
그의 문체의 매력에 감싸여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 점은 최인호가 본질적으로 미문 취향의 예술지상주의 계열의 소설가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설적 취향은 작품에서 정치·사회적인 문제가
전면화하는 것을 제어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소설가 최인호의 매력이자 한계일 것이다.
모든 예술적 매력은 한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래의 문장을 보자.
미국의 풍요가 내게 무엇이란 말인가.
미국의 자유가 내게 무엇이란 말인가.
미국의 병정 인형과 아름다운 정원이,
웅장한 저택과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이,
사막과 설원이 내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가슴 속에는 터질 듯한 분노 이상의 아무런 감정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미국의 풍요와 아름다움은 역설적인 맥락에서
주인공 자신의 패배한 욕망과 상처를 덧나게 한다.
더 나아가 주인공이 접했던 미국사회의 무한정 주어진 자유는
당시 한국 사회의 암울함과 폭력을 되비추게 하는 것이다.
미국에 와서도 주인공의 온 신경과 욕망은
자신을 분노하게 만든 한국 사회의 불합리와 폭력을 향해 있는 것이다.
물론 「깊고 푸른 밤」에는
정치·사회적인 문맥에서 해석할 수 있는 주인공들의 상처가 등장하지만,
이 작품을 그러한 문맥에서만 읽는 것은
이 뛰어난 소설의 문학적 스펙트럼을 빈곤하게 만들 수도 있다.
「깊고 푸른 밤」을 관류하는 커다란 매력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인호의 빛나는 문장과 감각적인 수사학이라고 생각된다.
가령 아래의 문단을 보자.
시속 칠십 마일의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차창에
잠시 머물다 스러지는 저 풍경은
또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한 번의 만남이 영원한 과거로 소멸되고 말 것이다.
저 끝 간 데를 모르는 벌판,
초록의 융단 위에 구름에 가리어진 빛의 그늘이
대지 위에 이따금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었다.
「깊고 푸른 밤」의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감각적인 문장들은
최인호 소설의 남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최인호에게 샌프란시스코의 태양은
"무지막지한 햇빛의 광채가 수천 개의 플래시를 일제히 터뜨리듯
그들의 얼굴을 공격했다"는 식으로
신선한 감각적 비유를 통해 전달되며,
구름과 태양이 겹쳐지는 장면은
"구름의 검은 띠가 태양을 납치해 가며 어디로 끌려가는가 상상할 수 없게
태양의 눈을 가리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고 절묘한 의인법을 통해 묘사되고 있다.
또한 저녁놀이 지는 장면은
"빛을 모반하는 저녁노을이 혁명을 일으켜
피와 같은 붉은 노을을 깃발처럼 드리운다.
(중략)
하늘은 저문 태양의 마지막 각혈로 붉게 물들어 있다"고 형상화되고 있다.
소설의 매력 중의 하나가
문장과 수사학의 매력이라면
최인호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바로 그 감각적 문장과 비유에서 연유한다.
소설의 말미에서
준호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끝에 다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하며,
주인공은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서
거대한 파도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분노를 잠재운다.
또한 "우리가 왜 이곳에 앉아 있지.
이곳은 남의 땅이야.
왜 우리가 이곳에 있는지 난 그 이유를 모르겠어.
난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구할 수도 없어"
라는 준호의 절규는
그가 미국에서의 자신의 처절한 패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제 그는 원한도, 증오도, 적의도, 미움도, 아무것도 가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비로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는 여정은
자신들의 욕망의 심연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해탈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첫댓글 고독과 소외 끝에 오는 것
마땅히 유대감을 가져야 할 외부와 단절된 때
인간은 극도의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는 비인간화된다는 점에서
카프카의 '변신'과 공통점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