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즈 질로(Françoise Gilot·1921~2023)가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삶을 영화로 만들면 길기는 해도 지루할 틈은 없을 것이다. 질로는 변호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과 대학에 다니면서 몰래 그림을 그리다 21세에 파리 유명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즈음 마흔 살 연상의 피카소를 만났다. 당시 피카소에게는 아내와 여러 애인이 있었지만, 함께 두 아이를 낳고 평범한 가족처럼 산 사람은 질로였다. 그러나 질로는 10년 동안 한결같이 다른 여자를 탐하던 피카소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피카소의 여자 중 그에게 이별 통보를 한 건 질로가 유일했다. 피카소는 그녀의 앞길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굴하지 않았던 질로는 화가이자 교육자로 성공했다.
‘파란 프랑스식 창’은 질로가 18세에 그렸다. 구도가 단순하고 형태가 투박하지만 유리창 뒤에서 하늘거리는 커튼의 질감을 표현한 데서는 예리한 관찰력이, 발코니 난간 너머 펼쳐진 알록달록한 언덕에서는 세상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10대 소녀의 활달한 기질이 엿보인다.
질로의 첫 미술 선생님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연필 대신 수채 물감을 쓰게 했는데, 실수해도 지우개로 쉽게 지울 수 있는 연필보다 지우기 어려운 물감이 초보자를 정직하고 엄격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감으로 잘못 그리면 형태와 구도 전체를 바꿔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그리려고 했던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 피카소가 질로 인생의 실수였다면, 그녀는 피카소를 지우는 대신, 대범하게 덧칠을 하고 그 위에 누구보다도 다채롭고 영광스러운 삶을 그렸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