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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6월7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수도회] 밥이 되고, 밥을 나누는 사랑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프란치스코회 신부 -
† 제1독서 탈출 24,3-8
† 제2독서 히브 0,11-15
† 복음 마르 14,12-16.22-26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이다. 이날 교회는 예수님께서 성목요일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과, 사제가 거행하는 성체성사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기념하고
묵상한다. 전통적으로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목요일을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로 지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목적 배려로 주일로 옮겼다.
그리스도의 성체 축일과 성혈 축일이 따로 있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함께 기념해 오고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완전히
드러내셨고,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새로운 계약을 맺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주님과 하나 되는 이 미사에서, 그
지극한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립시다.
★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다.
이스라엘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며 약속한 다음, 모세는
제단과 백성에게 제물의 피를 뿌려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다(제1독서).
★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를 구약의 제사들과 비교한다.
예수님께서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의 피로 단 한 번 제사를
바치심으로써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셨다. 이로써 우리는 영원한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다(제2독서).
★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 몸과 피를 주셨다. 그 피는 십자가에서 많은 이를 위한
계약의 피로 흘려졌다(복음).
◈ 오늘의 묵상
사랑하여 부부가 된 사람들도 서로 다툽니다. 작건 크건 다툼이 한 번
일어나면 두 사람을 다시 결합시켜 주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나 입장을 조정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물며
적대적인 사람들이 화해하는 일은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결단을 내려 크게
양보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서로의 관계를 건강하고
충실하게 유지하려면 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살펴보면 계약을
맺을 때 피를 뿌린 모양입니다. 계약을 깨뜨리면 피라도 흘리겠다 또는
반드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면서 피를 흘려서라도 서로의
관계를 지키고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다짐합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이때
소를 잡아 그 피의 절반을 제단에 뿌렸습니다. 백성에게 피를 뿌린다는
것도, 상상하면 섬뜩할 만큼 장엄한 광경입니다. 이스라엘은 비장한
각오로 하느님과의 관계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약속에 충실하지 못하여 하느님을 거슬러 죄를 짓게 되면,
그들은 다시 하느님께 속죄의 제물을 바침으로써 손상된 관계를
회복해야만 했는데, 히브리서가 고백하듯이, 이 제사는 늘 되풀이되어야만
했습니다.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우리 인간이 끊임없이 하느님과 맺은
관계를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계약의 피를 쏟으십니다. 동물을 잡아 그 피를 뿌리시며
계약에 충실할 것을 촉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계약의 피”를
부으십니다. 이제 더 이상 이 계약은 깨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피로 새로운 계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희생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미 다 치르셨습니다.
성체성사는 사랑의 성사, 사랑의 신비입니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시어 사람이 되셨고 우리 죄를 대신 대속하시는
하느님의 속죄의 어린양이 되셨으며 당신 몸과 피를 몽땅 내어 주시는
생명의 빵, 사랑의 성체성사가 되셨습니다. 이 세 가지 신비가 우리에게
명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으로 압축됩니다. 곧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도 생각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 서로 참고
인내하면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려면 어쩌면 날마다 죽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거의 늘 아픔을 동반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먹히는 빵, 자신을 떼어 주는 삶, 그래서 하나의 성체성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수도회]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밥이 되고, 밥을 나누는 사랑
2015년 나해 6월7일 주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마르 14,12-16, 22-26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2.24)
밥이 되고, 밥을 나누는 사랑
사람이 숨을 쉰다 하여 사람이 아니요, 단지 먹고 살아간다 하여 다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답게’ 살아야 하며, ‘잘’ 살아야 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알고
믿으며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여야 한다. 생활환경이 향상되어감에도 전
세계에 빈부 격차는 점점 심화되어가고 굶주리는 이들이 되려 늘어가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인도에서는 해마다 밀, 쌀, 쇠고기를 수출하면서도 3억 명이 굶주리고
있다. 방글라데시에는 태풍과 홍수가 거의 해마다 일어나고 있는데 그
나라에서 재배된 쌀과 콩, 채소, 과일로 전 국민이 넉넉히 먹을 수
있는데도 국민의 3분의 1은 건강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분
(1500 칼로리)도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기아 문제가 심각한 에티오피아,
수단, 나이지리아 등은 수입보다 더 많은 식량을 수출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해마다 5만 명의 흑인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간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곳 흑인들의 주식인 옥수수를 계속 수출하고 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생명이신 하느님’,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 ‘생명의
공동체’ 등등의 생명을 외치는 구호를 흔히 들을 수 있다. 교회는 과연
생명을 불어넣는 ‘밥’이 되고 있는가? 우리의 삶에 생명을 주는 것은 밥과
말씀이다. 이 밥과 말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 6,54-55)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복음에서 ‘이는 내 몸’은 송두리째 내어주는 예수님 자신을 뜻하며,
‘이는 내 계약의 피’라는 말은 피를 쏟아 죽을 나라는 뜻이다. 결국
예수님의 인격 전체를 말한다.
밥과 말씀은 입을 통과하며, 입은 생명의 통로인 셈이다. 입을 통해서
밥이 들어가고 입을 통해서 말씀이 나간다. 그런데 이 시대의 비극은 이
입이 죽음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밥이 아니라 독이 섞인,
중금속으로 오염된 밥을 먹고, 소수의 부자들이 밥을 독점하기 때문에
“밥을 나누어 먹을 수 없는” 현실이다. 골목 상권까지 장악해가는 거대
기업들의 끝을 모르는 탐욕은 자본으로 인간을 죽이는 살인행위이다.
또한 생명의 말씀이 아니라 더러운 말 거짓말이 판을 치고 있고,
‘언론통제와 조종’, ‘정보망의 독점’ 등에서처럼 소수가 말을 독차지하므로
말씀을 나눌 수 없는 현실이다. 생명의 말씀으로 오시어 생명의 밥이 되신
예수님과는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밥을 제대로 먹고 말씀을 제대로 하는
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요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사는 길이 아니고
무엇인가?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짐승(적대자들)의 밥이 되시고
사랑하는 인간의 밥이 되시고자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밥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성체를 영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사랑을 잊고 있다. 그리고 이 성체가 어미의 산고와 피흘림, 그리고
아비의 땀과 죽음으로 이루어졌음을 망각하곤 한다. 밥이란 타인의 피와
땀이 밴 생명의 결정체이다. 밥이 바로 부모의 땀과 피, 아니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의 땀방울과 피로써 얻어진 것임을 깨닫는 자만이 참된 자녀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체와 성혈 안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보는
자만이 매일의 밥그릇에서 부모의 살과 피를 볼 수 있으리라.
우리 모두 서로의 밥이 되어 주자. 희생 없는 사랑은 허구다. 쓴 도라지도
여러 번 꼭꼭 씹을 때 단맛이 나는 법이다. 우리 서로 밥(=생명)을 먹고,
밥을 ‘나눠 먹고’ 삶을 나눠야 한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곧 생명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재물을 위해 재물을 모으고, 사용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죄악의 표지들이다. 모두가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들이지 않은가!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이들과 최소한의 인간다움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가는 이들의 배고픔 안에서
굶주리고 계신 예수님을 기억하자. 우리의 빵으로 오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빈곤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다가가 밥이 되어주자.
죽음의 문화가 번져가는 삶 한복판에서 밥으로 먹히는 희생과 생명의
교류를 통해 생명을 되살리는 빵이 되도록 하자!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프란치스코회 신부 -
◈ [수도회] 2015.06.07.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마르 14,22)
미사 때 성체를 경건하게 받아모시지만
사실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표시로
식사 때 먹던 빵을 떼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 식으로 다시 해석한다면 밥을 함께 나누어 먹은 것이지요.
여러분은 잊지 못하는 식사에 대한 기억이 있나요?
언제였나요? 누구와 함께한 자리였나요? 어디에서 무엇을 드셨나요?
우리는 가족을 식구라 부릅니다. 같이 밥먹는 사람이란 뜻이지요.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한가족이라함은
같이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식구라는 뜻이겠지요.
오늘날 사랑하는 식구들이 함께 모여 밥을 먹기가 참으로 힘들지요?
오늘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 어떨까요?
성체성혈대축일을 경축함은 예수님이 우리의 빵이 되어주셨듯이
우리도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밥이 되어주겠다는 다짐입니다.
오늘 밥을 먹으면서 우리의 밥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국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사실 우리 어머니들은 항상 우리의 밥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밥 난 어머니 먹고 살았네~~"
어느 시인의 노랫말을 흥얼거려보는 오늘입니다.
[출처] 2015.06.07.|작성자 알타반
- 오상선 바오로 작은 형제회 신부 -
◈ [수도회] 미사 예찬禮讚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6월7일 주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탈출24,3-8 히브9,11-15 마르16.12-16.22-26
제1독서
<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4,3-8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1-15
복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6.22-26
미사 예찬禮讚
오늘은 성체성사 대축일입니다.
지난 주 삼위일체 대축일에 이은 오늘의 성체성사 대축일에
하느님의 사랑은 더욱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성체성사 대축일은 바로 미사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인류에게 주신, 저는 감히 인류라고 합니다만,
최고의 선물이 사랑의 성체성사, 미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아름다움은 미사를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작년 산티아고 순례시 두 가지 기억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하나는 순례 2일차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산장에서 새벽 동터오는 태양을
보며 몇몇 형제들과 미사를 드릴 때의 감격입니다.
흡사 피레네 산맥이 제대처럼 느껴졌고
이 제대위에서 유럽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미사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지평선만 보이는, 포도 열매들 주렁주렁 달린 포도밭과 밀밭
사이 끝없이 난 길을 걸을 때 대지가 제대처럼 느껴졌던 일입니다.
흡사 길 가 한쪽의 밀밭은 제대위의 밀떡의 '성체'를,
한 쪽 포도밭은 제대위의 포도주의 '성혈'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바로
이 대지를 제대로 삼아 미사를 봉헌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사가 얼마나 우주적인 축제인지 깨달았습니다.
성체성사의 미사 은총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무궁무진하여 다 표현해 낼 수가 없습니다.
오늘 2독서 후 함께 부른 24절까지의 성체송가가 미사의 무한한 은총을
증거합니다. 또 오늘 우리는 아침기도 시 초대송 후렴과 즈카리아 후렴을
통해서도 성체성사의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 그리스도께 어서 와 조배드리세“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 온 살아있는 빵이로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리라.“
이어 미사 때 화답송 후렴에 이은 시편 내용 역시 얼마나 우리를 흥겹게
했는지요.
"구원의 잔, 받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
이런 감격을 진정하고 성체성사의 의미를 다섯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계약契約의 성체성사입니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계약의 관계입니다.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쌍방적인 관계요 계약에 충실할 때 깊어지는 서로의 관계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우선 한 일도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계약의 책'을 백성에게 들려 준후 피를 뿌리며
말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오늘 복음에서 수난을 앞둔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 역시 당신 성혈을 나누신 후 계약을 새로이 하십니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히브리서 저자 역시 이런 예수님을 새 계약의 중재자로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재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새 계약의 중재자이신 주님의 미사은총을 통해서
그대로 실현되는 진리입니다.
둘째, 기억記憶의 성체성사입니다.
망각이 병입니다.
무지에 이은 망각이, 하느님의 은혜를 잊어버림이 마음의 병입니다.
우리가 매일 미사를 봉헌함은 늘 새롭게 주님을 기억하여 주님의 파스카의
삶을 살기위함입니다. 말 그대로 잊지 않기 위해, 살기위해 매일 봉헌하는
미사입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미사중 성찬예식 중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여 늘 매일 '한 번뿐'인 미사처럼,
평생 죽을 때까지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새롭게 반복反復하여 봉헌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셋째, 연대連帶의 성체성사입니다.
애당초 공동체적 인간입니다. 함께 살아야 사람입니다.
공동체를 떠나 사람이 되는 길은, 하느님을 만나는 길은 없습니다.
끊어지면 죽습니다.
하나로 이어져 연대하면 살고 끊어져 고립단절되면 죽습니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면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서로 손을 잡아 하나의 공동체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이어져 한 몸, 한 마음으로 만들어 주는 미사의 은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성체성사를 통한 연대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제자들에게 나눠
주어 먹게합니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님 모두
받아마십니다. 성찬전례중 일치를 기원하는 기도문도 외울 때마다 늘
새롭습니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마음을 이루게 하소서.“
찬미의 성체요, 감사의 성혈을 받아 모시니 비로소 한 몸의 연대가
이루어집니다.
넷째, 식사食事의 성체성사입니다.
음식 나눔이 없는 잔치는 없습니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반쪽 잔치입니다.
모였다 하면 거의 음식 나눔이 뒤따릅니다. '먹고자 하는 일인데' 라는
말도 있듯이 먹는 일, 먹는 재미 빼면 무엇이 남겠는지요.
생생농업유통의 김가영(29세) 대표의 인터뷰(한겨레 2015.6.6일 21면)중
한 대목에서 성체성사의 진리가 잘 드러납니다.
"사실 의식주 중에서도 사람한테 꼭 필요한 건 밥이잖아요. 좋은 밥은
부자가 먹고 안 좋은 밥은 가난한 사람이 먹어야 된다고 하면 슬프죠.
최소한 밥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체성사의 밥앞에서 실현되는 만인의 평등입니다.
성체성사의 맛은 주님의 맛입니다. 누구나 똑같이 모시는 참된 양식이자
참된 음료인 그리스도의 성체성혈입니다.
미사에서 '말씀의 전례'만 있고 성체성혈을 나눠 먹고 마시는
'성찬의 전례'가 빠지면 얼마나 허전하겠는지요.
먹어야 삽니다.
살기위하여 밥 먹듯이 영혼이 살기위하여 생명의 빵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주님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 주님은 물론 믿는 이들과의 일치의
관계도 이루어 지고 주님의 피인 성혈을 받아 모심으로 주님의 생명을
지니고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성체성혈 대축일 저녁기도 마니피캇 후렴도
성체성사 식사의 풍부한 은혜를 감격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 거룩한 잔치여, 예수의 몸은 음식이 되었도다.
수난의 기념, 은총의 충만, 장차 영광의 보증이로다. 알렐루야.“
다섯째, 변화變化의 성체성사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 평생과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성혈이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하고 신화神化합니다.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진정 내적성장과 성숙도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점차 사랑의 주님을
닮아감으로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소명도 실현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
제가 미사중 성체성혈을 형제자매들에게 나눠드릴 때의 이 말마디는
얼마나 은혜로운지요.
'몸과 피'대신 사랑, 희망, 믿음, 평화, 기쁨, 생명, 빛 모든 긍정적 용어를
넣어도 통합니다. 어제 '하느님이 치유하신다'라는 강론을 할 때 끝부분에
다시 첨가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그리스도의 치유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성혈을 모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리스도의 사랑 등 그리스도의 모두가 됩니다.
그러니 성체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와 일치보다 더 중요한 평생과제는
없음을 깨닫습니다.
결국은 성체성사 예찬이, 미사예찬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사예찬은 그리스도 예찬이요 하느님 예찬입니다.
참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성체성사입니다.
성체성사는 사제는 물론 믿는 모두의 존재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시어
착하고 충실한 주님의 자녀로 잘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예전에 아침 산책중 아침 일출을 보며 써놓았던 '태양 성체 되어'
라는 시를 나눕니다.
임께서도 아침마다 미사를 드리신다.
산(山) 가슴 활짝 열고 온 세상 제대(祭臺)로 삼아
모든 피조물 품에 안고 미사를 드리신다.
하늘 높이 들어 올리신 찬란한 태양 성체(聖體)!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 받은 이는 복되도다.”
가슴마다 태양 성체 모시고 태양 성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주님, 저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의 보배로운 몸과 피를 받아 모셨으니,
주님의 태양 성체 되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 -
◈ [수도회]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한상우 바오로 바오로 신부.-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6월7일 주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1독서
<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4,3-8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1-15
복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6.22-26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름다운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을 성체성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함께하는 따뜻하고 신선한 식사로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미움과 집착이라는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이
함께하니 자연스레 우리를 닦아주는 정화의 선물이 됩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성체성사 안에 있는 우리를 만납니다.
지나친 집착과 욕심을 벗어놓게 하니 새로운 기쁨이 밀려옵니다.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서로를 행복하게 합니다.
행복은 주님의 사랑이 간절히 필요한 사랑의 식탁입니다.
사랑의 식탁위엔 우리를 깨우고 살게하는 말씀과 성찬이 있습니다.
사랑에 허기진 우리들을 소중히 불러 모아
다 함께 벌이는 잔치가 되게합니다.
화해와 용서
찬미와 봉헌
기쁨과 감사
기도와 회개
현존과 나눔이라는 뜨거운 잔치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통해 우리가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께서는 오늘도
뜨거운 당신의 살과 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기쁘게 받아들이고 기쁘게 나누고 기쁘게 다시 살아가는
사랑의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은 뜨거운 그리스도의 현존이며
뜨거운 그분 사랑의 실체입니다.
모든 것은 다시사랑으로 돌아갈 것이며 사랑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주님을 찬미합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쪼개고 나누어...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6월7일 주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1독서
<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4,3-8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1-15
복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6.22-26
쪼개고 나누어...
기도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이
타성에 빠져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정성스런 미사 봉헌을 통한 은혜로운 기도 체험에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미사야말로 기도의 진수이자 기도 중의 기도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기적으로 봉헌하는 미사를 통해 매일, 혹은 매주간 살아갈 양식을
챙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사에 대한 정성이요,
몰입이요, 진지한 접근입니다.
미사는 우리 영혼의 성장을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건네시는
‘종합선물세트’입니다. 미사 시작 부분의 참회 예절은 우리의 발걸음을
한없이 자비하시고 따뜻하신 아버지 품으로 인도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의
전례에서는 하느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오시며, 세파에 지친
우리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건네심으로 충만한 위로와 격려를 베푸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구원의 파스카 신비가 재현되는 성찬의 전례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로 초대하십니다. 한 부분 한
부분 그 무엇 하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토록 소중한 미사이기에,
우리가 조금만 더 미사를 잘 준비한다면, 조금만 더 정성을 기울인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도는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는 주님 현존의 장(場)이 어디 있을까요?
의외로, 또 은혜롭게도 그 장은 우리와 너무나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매일의 성체성사 안에 예수님께서는 파스카의 신비를
되풀이하십니다. 매 미사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수난당하시고, 죽으시는가
하면 영광스럽게 부활하십니다.
성체성사에 참석하는 우리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파스카의 신비에 깊이
침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옛날 홍해를 통해 죽음의 땅을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처럼, 매일의 미사를 통해서 우리도 지금까지의 삶을
일단락 지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사 안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어제의
나와 결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사를 통해서 우리는 죄와 악습으로
물든 지난 삶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사 때 마다 우리는 낡은 옷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절차를 반복해야 합니다.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순간 우리는 과감하게
아래쪽을 포기하고 위쪽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죄와 암흑이 지배하는
죽음의 나라를 통과해서 은총과 빛이 흘러넘치는 생명의 나라로 부단히
넘어와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대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미사를
봉헌하십시오. 미사만큼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선물은 다시 또
없습니다.”(구엔 반 투안 추기경)
“매일 그대가 봉헌하는 미사를 하루의 태양처럼 여기십시오. 그대가 매일
미사 경본을 덮을 때마다 미사는 다시 한 번 그대의 생활 안에서 새롭게
시작됨을 기억하십시오.”(요셉 과드리오 신부)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일이
성체성혈대축일입니다. 나눔의 성찬례를 매일 봉헌하는 우리는 매일
쪼개져야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시간과 재능, 재물과 삶을 쪼개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과 나누어야겠습니다.
자신의 삶을 쪼개고 또 쪼개어 이웃들과 공유하신 분들, 자신의 삶을
나누고 또 나누어 이웃과 한 마음 한 몸이 되신 분들이 바로 성인(聖人)
들이었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탈탈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게 만든 나눔의 성인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였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빵 한 조각조차 가난한 청소년들과 나누어먹던 성인이
바로 돈보스코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조차도 가난한 민중들과 아낌없이
나누었던 분이 순교자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였습니다. 얼마나 자신을
쪼개고 나누었으면 만년에는 그 몸이 흙 부스러기처럼 허물어졌던 분이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가난한 이웃과 나눌 것이 무엇인가 고민해보는 우리의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서울]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15년 나해 6월7일 주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1독서
<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4,3-8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1-15
복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6.22-26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체성사의 가장 큰 의미는 ‘내어줌’입니다. 사제는
미사 때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재현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것을 받아먹으십시오. 이는 여러분을 위해서 내어 줄
나의 몸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것을 받아 마시십시오.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입니다. 죄를 사하여 주려고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 흘릴 피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십시오.’
내어주고 나누는 것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요즘 너무나 빨리 자신의 것을
내어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메르스입니다. 분명 몸에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독한 감기입니다. 잘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는 병입니다. 하지만 이 메르스는 또 다른 것들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걱정, 근심, 불안, 두려움, 공포’입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면서 너무나 쉽게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험담입니다. 험담은 돌고 돌아서 결국은 험담을 한 사람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험담의 대상이 됩니다. 인터넷은 ‘험담’을 생산하는 공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불평입니다. 돌 틈에 핀 꽃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바닷가 절벽 위에 핀 꽃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어렵게 꽃을 피운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 불평과 불만이 퍼지면 우리 사회는 깊은 병에 걸리게 됩니다.
원망과 분노입니다. 원망과 분노로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원망과 분노는 오히려 내면에 깊은 상처를 주기 마련입니다. 이웃에서
보내는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공평하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께서는
공평하시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은 키가
작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잘 생긴 얼굴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평범한 얼굴로 태어납니다. 부자의 자녀로 태어나는 아이도 있고,
아프리카의 아주 가난한 집의 아이로 태어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세상은 이렇게 공평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흐름’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공평하지 않게 만드신 것도 세상은 ‘흐름’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강약, 고저, 장단’이 있습니다. 물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공기도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구름도 비가 되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립니다. 사람의
피도 끊임없이 흘러야 생명이 유지됩니다. 세상은 이렇게 흘러야 하고,
그렇게 흐르는 세상은 공평해 지는 것입니다. 돈도 흘러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사람이 사는 이 세상도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약한
곳에서 강한 곳으로 흐르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강대국에서 약한 나라로
흘러가야 하는데 약한 나라의 것들이 강한 나라로 흡수됩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것들이 부유한 사람들에게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잘 아는 ‘IMF’ 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20%의 이자를 내면서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가난해 졌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20%의 이자를 받았기
때문에 더욱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흐름을
바로 잡기 위해서 였습니다. 세상의 흐름이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긴 곳에서 짧은 곳으로 흘러간다면 세상은
공평해지고 아름다워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은 예수님이
꿈꾸던 ‘하느님 나라’입니다. 사자와 어린아이가 함께 있는 나라,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있는 나라, 사막에도 샘이 흘러 꽃이 피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공부해서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출세해서 자기만 잘 살고, 잘 먹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출세해서
세상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혼자서 5000명의 것을 빼앗아 먹을
수도 있지만, 혼자서 5000명을 먹여 살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혼자서 500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드리시면서
어떻게 해야 공평한 세상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교회가 없어서 대학교의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이
늘어나서 대학교의 강당에서는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공동체는 교회를 신축하기 위해서 200억을 모금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눈에 보이는 성전을 짓기 위해서 200억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늘어난
신자들은 4곳의 교회로 나누었고, 다른 강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기 위해서 마련한 200억 원을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고, 베트남,
러시아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장을 세웠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의 공동체는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를 알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그대로
이웃들의 발을 씻겨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체 성혈 대축일의 진정한 의미는
남을 잘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도, 예수님께서
성체와 성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도 모두 우리가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또한 우리도 이웃을 잘 살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 서울 대 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성소국장 -
◈ [서울] 내 몸은 예수님의 몸이기도
2015년 나해 6월7일 주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1독서
<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4,3-8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1-15
복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6.22-26
내 몸은 예수님의 몸이기도
하루 세 번이나 매일 식사를 합니다. 먹어야 사니까요. 목숨부지입니다.
어떤 재료로 누가 한 음식을 먹느냐는 것은 인간의 연관성 문제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 주며, 음식점 주인이 손님에게 돈 받으며 그렇죠.
예수님은 목숨부지 건강 성장 생활의 원동력인 음식으로 오십니다.
삶을 함께 하자는 사랑의 표현이기에 인생 근본을 같이 하자는 겁니다.
예수님을 먹으며 사는 한 내 몸은 예수님의 몸이기도 합니다. 아멘.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마르코 14,22)”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서울] 예수님의 마음 - 신희준 신부(서울대교구 공릉동성당)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6월7일 주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1독서
<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4,3-8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1-15
복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6.22-26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는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수난의 시기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예지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원히
남을 마음의 표시를 하고자 합니다.
바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매번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신 예수님의 간절한 마음을 만납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바치신 그 사랑과 헌신의 마음이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전해집니다.
그 큰 사랑이 빵을 성체로, 또 포도주를 성혈로 변화시켜 줍니다.
그리고 그 큰 사랑이 우리가 성체와 성혈을 영할 때 우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하나를 이룹니다. 부족하고 죄가 많은
우리들과 일치하십니다.
음식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줍니다. 하루 종일 피곤해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다시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도 생깁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면 더 기운이 납니다. 무엇보다
음식은 함께 나누어 먹을 때 더더욱 모두가 하나 되는 느낌을 줍니다.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화해하겠다는 마음으로 그 사람과 음식을
함께 나누는 일은 큰 결단과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음식은 소화가 잘 되지 않습니다. 기분 좋게 먹어야 그
음식은 나에게 살과 피가 됩니다. 온전히 화해한 상태에서 음식을 먹어야
온전히 소화가 됩니다.
이렇게 용서와 화해는 위대합니다.
좋은 음식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위대한 것처럼 말입니다.
- 서울대교구 공릉동성당 신희준 루도비꼬 신부 -
◈ [인천]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2015년 나해 6월7일 주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1독서
<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4,3-8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1-15
복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6.22-26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자신이 회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을 맡고
있어서 글쎄 5년째 휴가를 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좋을 수도 있지만, 본인의 삶은 황폐해지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되더군요. 사실 휴가를 가본 직장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휴가를 가기 전에는 내 자신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지만 막상 휴가를
다녀오고 난 뒤에 보면 회사가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긴 저 역시도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있는
자리를 비우면 큰 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항상 엄습했거든요. 그러나
걱정을 하면서 다녀왔는데 그 동안 별 다른 문제없었음에 오히려 서운한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면서 쉼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휴가를 다녀오고 나면 그만큼 삶의 충전을 할 수 있게 되어, 더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쉼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발 더 힘차게
도약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시간인 것이지요. 할 일이 많다고 잠을
자지 않고 한다면 어떨까요? 집중력도 생기지 않아서 실수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집니다. 또한 몸과 마음 모두 지쳐버려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기쁨도 없습니다.
세상 삶에 지쳐서 기쁨과 행복을 얻기 힘들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직접 제정하신 미사의
성찬례를 통해 주님의 몸과 피를 모신 뒤에 얻게 되는 힘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미사의 힘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미사 역시 하나의 해치워야 할 일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쁘다는 이유로, 힘이 든다는 이유로, 쉬어야 한다는 이유 등등으로 미사
빠지는 것을 당연히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들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세상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미사도
하나의 일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길이면서, 동시에 힘든 이 세상 안에서의 삶을 벗어나 주님께 진정한
위로를 받는 시간임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인다면 과연 미사 전례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이해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진정한 위로와
사랑을 주시는 주님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면, 미사는 내 삶의 진정한
활력소를 가져다주는 진정한 명약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종이자 미천한 도구일 따름인 것입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미사를 소홀히 하지 마세요.
선택 가능한 행복.
행복해지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만약 이 행복을 팔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금방 부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행복은 절대로
살 수가 없기에 부자나 권력자들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불행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데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을 보며
행복은 스스로 동의하는 사람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네.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수긍하고 인정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이죠.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사소한 기쁨을 아는 사람, 안 가진 것에 대한
욕심보다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들만이 행복을
수긍하고 인정합니다.
행복은 무엇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선택
가능합니다.
길에 핀 들꽃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청주] 우리의 보약|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6월7일 주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마르 14,12-16.22-26)
제1독서
<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24,3-8
제2독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9,11-15
복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2-16.22-26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사랑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이러한 사랑의 보증으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으며 성체성사를 통하여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영적양식으로 주십니다. “성체로 그분께서 오시는 이유는 또 하나의 천국,
우리의 영혼을 기쁨으로 채우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를
위한 사랑의 양식인 성체로 몸과 마음이 풍요로워지길 희망합니다.
주님께서는“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28,20)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이행되고 있는 최상의 방식이
성체성사입니다. 성체는 사랑자체이며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말로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결코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성체를 통하여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 가까이에 있기로 결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 가까이에 아무것도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성 베드로 알칸다라)
따라서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사실 성체성사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시며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 가운데 머무십니다. 그리고 “성체는 우리의 보약입니다”(성필립보
네리). “영성체는 우리가 매일 겪게 되는 우리의 나약함을 치료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매일의 빵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우리의 육신에 영양을
주기 위하여 빵을 먹어야 하듯이 우리는 영혼을 위하여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가롤로 보르메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빵과 포도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빵과
포도주가 그분의 몸과 피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으시고 우리는 이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지체입니다 (1코린12,27). 그러므로
우리에게는‘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에 ‘아멘’(예, 그렇습니다)이라고
대답하고 그 동의가 진실한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단순한 빵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분명히 그분의 살이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으로 확신이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맛에 의해
판단하지 말고 그분의‘사랑의 신비’를 의심 없이 믿으십시오”(성 치릴로).
그리고 “성체를 모시기 전에 잠시 동안 당신이 받아 모시는 성체가
하느님이라는 진리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하느님의 양식을 받아 모셔도
효과가 없는 것은 하느님을 직접 모신다는 중대한 사실에 별로 주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파시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따라서 준비된 마음
없이 습관적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러 깊은 믿음을
가지고 모셔야 하겠습니다.
성 안토니오 클라라렛은 “우리가 영성체에 임할 때 모두 같은 주 예수님을
모십니다. 그러나 다 같은 은총을 받고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차이는 준비된 마음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영성체에 임하는 사람과 예수님 사이에 더 많은 유사성이 있을수록
영성체의 결실도 더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먹기 위해서는 먼저 속을 비워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성체를 통하여 그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이번기회에 미사참례회수를 늘리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선행을 한데 모아도 미사 한 번의 가치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선행은 사람의 행위지만, 미사는 하느님의 役事이기
때문입니다”(아르스의 비안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합니다. “미사성제에 참례하러가기 위하여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천사가 세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영원에서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그러므로 너무 바쁘다는 말은 하지
말고 하루일과 중에 미사참례를 첫 자리에 놓으시기 바랍니다.“미사는
지상의 천국입니다”(성녀 막달레나 소피아바라). “미사는
종합영양제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영세한지 얼마 되지 않으신 분이었는데 반모임
미사참례를 하셨는데 영성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정중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혹 잘못한 것이 있으시면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하십시오. 잔칫집에 오셨으면 기쁘게 음식을 나눠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양식을 나누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신부님,
실은 저희 부부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담당 선생님께서 ‘밀가루
음식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말이
없었습니다.
성체를 단순히 밀가루 음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하느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겠습니까? 설사 큰 은총으로 역사하신다 해도 어찌 하느님의
손길로 느낄 수가 있겠습니까? 성체송가를 보면 “선인 악인 모시지만,
운명만은 서로 달라, 삶과 죽음 갈라진다. 악인 죽고 선인 사니 함께 먹은
사람운명, 다르고도 다르도다.”고 했습니다. 준비된 마음 안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제대로 모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위대한 총리 토마스 모어는 매일 미사참례를 하였고 영성체를
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수많은 국정의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과 함께할 때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습니다. 하느님을 거스르게 될 기회도 많지만 나는
매일 예수님께로부터 힘을 얻어서 그 악의 기회들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매우 어려운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빛과 지혜가 필요한데 매일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과 그것을 상의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난의 위대한
스승이십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모심으로써 그 안에
빛과 지혜를 얻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성 요한크리소스토모는 생명의 빵을 먹는 영성체의 기쁨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여인을 부러워하겠지요? 그리고
눈물로써 그분의 발을 씻겨드렸던 죄 많은 여인과, 그분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시중을 들었던 갈릴래아 여인들, 그분과 친밀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사도들과 제자들, 그분의 입술로부터 솟아나오는 은총과
구원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었던 그 당시의 사람들을 부러워하겠지요?
제대 가까이 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그분을 볼 수 없습니다.
영성체로써 그분을 느낄 수 있으며,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 하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분을 여러분 안에 모시고 다닐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사랑의 성사입니다.“성체성사는 사랑을 의미하며, 사랑을
생산한다.”고 토마스 데 아퀴노는 말합니다. 사랑에로 이끄는 구체적
성체의 기적은 이탈리아 란치아노에서 일어난 기적을 많이 얘기합니다.
약 1,200년 전 성 바실리오회 소속의 한 수사신부가 미사를 드리면서
성체성사에 예수님께서 실제로 현존하시는가 의심을 품게 되었는데 그
신부가 막 빵과 포도주의 성 변화를 위한 축성을 마친 순간 빵이 살아있는
살로, 포도주가 살아있는 피로 변하게 된 사건입니다. 12세기가 지난
지금도 살 모양으로 변한 성체는 불그스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래된 수정 성작 안에 담겨 있는 성혈은 다섯 개의 핏덩이로 되어
있습니다. 1970년과 71년에 기적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는데 그 결론은 이 기적의 피는 ‘진짜 피와 진짜 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살은 심장 근육이며 그 살과 피를 보존하기 위하여 화학적인 방부처리를
한 흔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1973년에 세계보건 기구에
검사결과를 제출하여 다시금 핵 의학등 최첨단 기술이 동원되어
연구했지만 결국은 성체의 기적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적의 성체와 대면할 때 믿는 이뿐
아니라 깊은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도 경외심과 존경을 갖게 되는 것은
그분이 살아계심을 말해 준다고 할 것입니다. 성체기적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신비의 보이는 표징입니다. 우리 믿음의 상태를 돌아보라는
권고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보고라도 믿으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체께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지길 소망합니다.
란치아노 성지 방명록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추기경 시절에
기록한 기도가 있다고 합니다.“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더욱 더 당신을
믿고, 당신 안에서 희망하고,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 그 기도를
함께 올립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보건복지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가 14명 추가돼 전체
환자 수가 64명으로 늘었다고 7일 밝혔습니다. 메르스로 인한 국내
사망자 수는 5명으로 늘었다. 치사율은 7.8%(64명 중 5명 사망)이랍니다.
더 확산 되지 않고 빨리 안정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치료받고 있는 이들에게 쾌유를, 불안해 하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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