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
1982년 3월 30일 오후 2시 35분, 가슴에 총상을 입은 남자 환자가 숨을 헐떡거리며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총기사고가 드물지 않은 미국에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데 특별했던 점은 그 환자가 당시 미국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었다는 점이다.
인근에 있던 존 힝클리어에게 피격된 레이건 대통령과 부상을 입은 공보비서관 제임스 브래디, 경호원 티머시 매카시, 경찰관 토머스 델라헌티가 사건발생 10분만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은 지구 최고의 VIP 환자를 맞은 셈인데 응급실 도착 직후 잠시 의식을 잃기도 한 레이건 대통령의 상태는 총상 부위 출혈 때문에 수축기 혈압이 80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위중했다.
극도로 긴장한 의료진과는 달리 레이건 대통령은 생사를 오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주변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간호사에게 "혹시 낸시가 우리 사이를 눈치챈 건 아니겠지요?"라고 농담을 건넸고, 황급히 도착한 낸시 여사에게 "여보, 내가 인사하는 걸 깜빡했군..."이라며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총알이 박힌 왼쪽 가슴에서 2리터 이상의 출혈이 계속되자 의료진은 가슴을 열고 박혀있는 총알을 빼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레이건 대통령을 수술실로 옮겼다. 현직 대통령의 몸에 박힌 총알을 꺼내고 출혈부위를 찾아 지혈해야 하는 위중한 수술이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고난도의 수술을 시작하기 위해 마취과 의사가 레이건 대통령의 오른쪽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모든 것이 잘 될 겁니다!"라고 대통령을 안심시켰다. 그러자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의 코와 입을 덮고 있던 산소 마스크를 손으로 힘겹게 끌어내려 의료진을 긴장시켰는데,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의외의 농담을 던진다.
"당신들이 공화당원이라고 얘기해 주시구려..."
공화당 출신 현직 대통령의 수술을 맡아 집도하기로 한 조셉 조르다노 박사는 하필 민주당원이어서 일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때 조르다노 박사는 이렇게 응수하여 레이건 대통령과 초긴장 상태의 의료진을 파안대소케 했다.
"레이건 대통령님, 오늘 만큼은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회복 과정에서 가래가 기관지를 막아 폐의 일부분이 위축되는 합병증이 생기고 말았다. 폐를 부풀리기 위해 수술 부위가 아프더라도 열심히 가래를 뱉어 내라는 의료진의 지시를 너무나 충실히 따르던 대통령이 의사로부터 모범 환자라는 칭찬을 받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제 장인 어른도 의사 선생님이셨거든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레이건 대통령이 얼마전 사망한 소련의 고르바쵸프 서기장을 상대로 소련 연방의 해체를 통해 냉전을 종식시킨 것은 그의 최대의 업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의 뛰어난 유모어 감각과 두둑한 배짱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