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4장 3-9절 허비인가 좋은 일인가?
인생을 살다보면 경계가 애매한 일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이것이 악한 것인지 아닌지, 가치있는 일인지 아닌지, 미래의 전망을 좋게 하는 지 아닌지 하는 등의 많은 일들이 그것을 선택할 당시에는 매우 어렵게 느껴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로인해 잘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하고 성공했다는 칭송을 듣기도 하고 패가 망신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인생에 변수는 쉴세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변수에 따라 사람들이 잘되기도 하고 궁지에 몰리기도 합니다. 경계가 애매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학생들은 어떤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합니다. 결혼 생활이 오래된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잘 살고 있는지 애매할 때도 있습니다. 밭이나 논에 씨를 뿌리는 농부는 자신이 뿌린 씨앗으로 인해 그것이 잘될는지 잘못될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씨를 뿌립니다. 때로는 잘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어 잘못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잘되는 변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역시 그런 경험들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한 여인이 예수님께 한 행동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잘했다고 하시는 칭찬하시는 주님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은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은 바리새인입니다. 그런데 나병이 걸려서 죽어가다가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고쳐주신 답례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불러 식사 한 끼 대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한끼 식사로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과 더 이상의 관계를 갖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경우 최소한의 예의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시몬이 이렇게 식사를 대접했을 때 식사를 하시던 예수님 앞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로인해 예수님에게서 나는 향유내음이 온 방안을 넘어 온 집안에 가득찼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말했습니다.“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하면서 그 여자를 책망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젊은 남자가 하룻 동안 받는 품삯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 여인이 드린 향유는 그 당시에 쉽게 살 수 없을 정도의 최고급 향유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가지 덧붙여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하지만 내면에 흐르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미래를 미리 예측하여 보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여기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 역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았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런 노동자들이 일년 내내 하나도 안쓰고 모아야하는 액수에 해당하는 최고급 향유 한 병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그녀의 모든 마음을 담았으며 앞으로의 일생을 담아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헌신이 아닙니다. 그녀는 곧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실 예수님을 자신의 영원한 영적인 신랑으로 모시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녀에게 있어 예수님이 설사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다 할지라도 자신의 영원한 남편이 되실 것이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자신 전부를 예수님께 헌신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허비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가치로 이 여자가 가지고 있는 향유의 가치와 이 여자의 행동의 가치를 평가했습니다. 향유의 가치는 인정했지만 향유를 부은 여자의 가치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가치 평가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진정한 헌신을 보신 것입니다. 그것은 허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드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진정으로 좋은 일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맞이한 장례 절차 과정에서 이 여인이 부은 향유는 참으로 귀하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드리는 여러 가지 헌금을 허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에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드리는 헌금을 아까워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었다는 것을 알고 감사합니다.
한 여선교사님으로부터 들은 간증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처녀 시절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지 얼마 안되어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나 강해서 통장에 있는 돈을 십원 하나 남기지 않고 다 찾아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로인해 교회에 가고 오는 교통비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드린 날 집에를 어떻게 가야하나 걱정을 하면서 교회를 나선 그 선교사님 뒤에 앉았던 청년 하나가 쫓아오면서 불렀습니다. 뒤에서 예배를 드리는 자매의 모습을 보니 너무나 힘이 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어보였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이 받은 월급 전부를 그 선교사님에게 드릴 마음을 주셨다고 하면서 뜯어보지도 않은 월급봉투를 선교사님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첫 번째 표적이 되었고 그 후로 선교하는 내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일을 체험했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보시는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받아 참과 거짓의 경계,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경계, 그리고 참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경계를 알고 거기에 헌신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