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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로마서 6장과 7장은 하나의 괄호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6장과 7장은 파울이 독자들의 마음속의 난제들을 확실히 해주기 위해 잠깐 길을 바꾸어 말한 괄호와 같은 장입니다. 이 난제들은 5장 마지막 두 절의 진술로부터 야기됩니다.1)
그는 율법은 범죄가 증가하기 위해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롬 6:20). 율법을 믿고 받드는 유대인들은 이 구절에 대하여 반박할지도 모릅니다. 사도 파울은 이런 반론을 예상하고 7장에서 자세하게 해명합니다.
로마서 7장은 율법의 기능과 목적을 보여주고자 목적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성화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성화에 방해가 됩니다.2)
1. 그 법은 그 사람의 사는 때 동안에 그의 주인이 됩니다.
로마서 7장 1~6절에 “이는 율법을 아는 너희에게 내가 이야기함이니, 사람이 때를 사는 동안만 그 율법이 그의 주권을 가지는 것을 모르느냐? 이유는 결혼한 여자가 살아 있는 남편에게 법으로 묶음을 받게 되었으나 만일 그 남편이 죽었다면 그녀가 남편의 법에서 풀어놓음을 받았음이니. 만일 그가 살아 있는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되면 ‘간음한 여자’로 불리나 만일 그 남편이 죽었다면 그녀는 그 법에서부터 자유로운 여자가 되나니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되었다 할지라도 간음한 여자가 되지 아니하노라. 너희도 그 크리스트의 몸을 통해 그 율법에 죽임을 받게 되었으니 너희가 다른 자에게 되었기 위한 것이라(might), 죽은 자들에서 일으킴을 받은 분께니, 우리가 하나님께 열매를 맺었기 위한 것이니(might). 이는 우리가 그 육체 안에 있을 때 그 율법을 통하는 그 죄들의 정욕들이 우리의 지체들 안에 활동하였음이니 그 죽음에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라. 그러나 지금 붙들린 것 안에 죽은 우리가 율법에서 풀어놓음을 받았으니 영(Spirit)의 새로움 안에 예속되고 문서의 낡은 것에 아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7장 1~6절은 결혼 비유를 통해 율법에서 해방되었음을 말합니다.3) 여기 성도들인 우리와 율법과의 관계를 말하는 진술들이 있습니다.4)
파울은 7장의 첫 대목에 혼인의 예화를 끌어들입니다(롬 7:1~6). 로마서 7장은 ‘율법을 하찮은 것으로 전락시키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한 것입니다. 파울의 교리는 율법을 무가치하거나 해롭게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5)
파울은 이 문제에 답변하여야 했고 그래서 로마서 7장을 쓴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은 율법에 관한 내용입니다.
유대인은 물론이고 이방인도 ‘율법 아래’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우리는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이기 주저합니다. 유대인은 율법 아래, 이방인은 자연법 아래 있습니다.6)
7장 1~6절은 율법에 대한 크리스천의 관계입니다. 성화를 안전케 하기 위해서는 율법에서의 자유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로마서 7장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파울은 그의 관례대로 첫 번째 대목에서 전체 주제를 진술합니다. 파울은 나머지의 두 대목에서는 자신의 주장에 이유를 제시합니다.7)
파울은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형제들아,”라고 질문하였는데(롬 7:1), 법은 그 사람이 사는 동안은(as long as) 그의 주권을 가집니다.
여기 “형제들”은 이방인들을 포함한 ‘모든 크리스천’을 가리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은 법이 그의 위에 군림합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 그 나라의 법은 그 사람을 상관할 수 없습니다.8) 법은 그 사람이 사는 동안에만 주권을 가진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이는 결혼한 여자가 살아 있는 남편에게 법으로 묶음을 받게 되었으나 그 남편이 죽은 때면 그녀가 그 남편의 법에서 풀어 놓임입니다(롬 7:2).
여기서 “결혼한”이라고 번역한 헬라어(휘판드로스)는 원어에 의할 때 “남자에 종속되는”, “남자 아래 있는”이라는 의미입니다. “~ 아래”(휘포)와 “남자”라는 뜻의 단어(아네르)가 연결되었습니다. “남자 아래”를 뜻합니다. 여자가 결혼한 것은 남자 아래 있는 것입니다. 여자가 결혼한 것은 그녀의 남편에게 종속되었고 묶여 있음을 뜻합니다.
여자는 그 남편이 사는 동안 그 남편의 권위와 통제 아래 있습니다. 여권주의(페미니즘)의 가르침은 성경의 기본적인 원리 중 하나를 부정합니다. 결혼 관계는 율법에 대한 죄의 관계를 알게 되는 데 도움을 줍니다.9)
“풀어놓는다”라는 단어(카타르게오)는 “폐하다”를 뜻하며, “면제하다”(discharge), “풀어놓는다”(release), “풀다”로 번역됩니다.
그 결혼한 여자는 살아 있는 남편에게 법으로 묶음을 받았습니다. 만일 그 남편이 죽었다면 그녀가 남편의 법에서 풀어놓음을 받았습니다.
그가 살아 있는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되는 때 ‘간음한 여자’로 불리나 만일 그 남편이 죽었다면 그녀는 그 법에서부터 자유로운 여자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될지라도 간음한 여자가 되지 아니합니다(롬 7:3).
첫 남편과 결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한 여자가 아닌데 그 이유는 첫 번째 남편의 죽음이 첫 번째 묶임을 끝냈기 때문입니다.10)
그러므로 우리도 크리스트의 몸을 통하여 그 율법에 죽임을 받았으니, 우리가 다른 자에게 되었기(be joined) 위한 것이니, 죽은 자들에서 일으킴을 받은 분께니, 우리가 하나님께 열매를 맺었기(bear fruit) 위한 것입니다(롬 7:4).
우리가 율법과 결혼한 이상 하나님께 열매를 맺기는 불가능합니다.11) 우리가 하나님께 열매를 맺으려면, 율법과의 관계가 해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열매를 맺으려 한다면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12)
로마서 7장 3절의 남편과 아내의 결혼에서는 남편이 죽었다고 하였고 7장 4절에서는 아내인 우리가 남편인 율법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죽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아니합니다.13)
부부 둘 중에서 한쪽만 죽는다면 그 결혼 관계가 청산될 수 있습니다. 율법은 여전히 살아 있으나 우리가 죽으면 율법과의 관계는 청산됩니다.
율법의 의미는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도덕적 요구를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앞에 의롭게 되려고 아니합니다.14)
율법에 죽임을 받았다는 것은 반율법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15) 저에게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못된 목사가 있었습니다. 의롭다 칭함을 받기 위해서는 아니나 율법의 도덕법을 지켜야만 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방법으로서의 율법 아래 이제 있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율법을 지켜야 하고 그 삶 속에 실천하여야 합니다.16) 은혜 아래 있으므로 율법과 무관하다고 말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17)
우리가 죽임을 받은 목적은 우리가 다른 자에게 되었기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가 크리스트께 결합하였기 위해서입니다.
첫 번째 결혼 생활은 한쪽이 죽음을 맞이하여 종지부를 찍게 되었으며 “죽은 자들에서 일으킴을 받으신” 예수 크리스트와 재혼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열매를 맺었기 위해서 그 율법에 죽임을 받았습니다. 결혼(結婚)하여야 결실(結實)할 수 있습니다.
율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나 우리가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기에, 율법 아래 계속 머무르면 하나님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율법 아래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 방법은 ‘율법이 죽거나 율법과 결혼한 우리가 죽거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율법 아래에서 벗어난 방법은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율법은 선한 것이며 폐지될 수 없어 율법이 죽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에 죽임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과는 무관한 자가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18)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죽음과 부활을 수반합니다.
크리스천이 된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된 사람은 전적으로 새로운 힘과 권세를 공급받습니다.19)
진리를 더 알고 싶을 때, 여러분은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말씀의 순전한 젖을 사모하고 영적인 일을 기뻐합니다.20)
하나님께 대하여 가지는 관계에 근본적으로 변화가 있었음을 압니까? 사람이 자신의 삶에 새로운 목적을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러한 표지들이 있다면, 갓난아이와 같을지라도 생명이 있습니다.21)
예수 크리스트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율법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죄에 대한 벌책이 죽음이어야 함을 요구합니다. 그는 율법이 선고하는 형벌을 감당하는 결과로 돌아가셨습니다.22)
그리고 그는 죽은 자들에서 일으킴을 받으셨습니다. 그가 부활하신 것은 죽음이라는 원수를 정복하였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사망의 굴레를 부서뜨리고 승리의 부활을 하셨습니다.23)
우리는 그의 죽음과 부활을 언제나 놀랍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에게 있어야 했던 일들이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합니다.24)
여기 사용된 시제는 최종적이고 단번에 끝나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크리스천은 주 예수 크리스트와 함께 단번에 영원토록 죽었습니다. 그의 부활은 율법이 완벽하게 성취되고 만족한 사실을 선포합니다.25)
그가 율법에 대해서 돌아가셨듯이, 우리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제 우리를 유죄판결할 수 없습니다. 신자들은 크리스트와 함께 죽은 까닭에 율법과 관계가 끝났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죽게 된 결과 율법에 대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크리스트께 대하여 결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을 율법에서부터 합법적으로 해방하셨습니다. 만일 율법을 두려워한다면 새로운 남편에 충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죽음과 심판을 두려워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26)
예수 크리스트와의 연합은 실제적인 연합이요, 완벽한 연합입니다. 사람이 크리스트와 결혼한 때 크리스트와 관계는 하나의 몸입니다. 두 번째 남편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 첫 번째 남편을 잊어야 합니다. 크리스트와 연합한 자는 크리스트와 영원히 결혼 관계에 있습니다. 이런 묘사만큼 성화를 고무시키는 진리의 국면은 분명히 없습니다.27)
크리스천은 이제 율법의 아내가 아닌 주 예수 크리스트의 아내입니다. 새 남편에게 불충하였을 때도 옛 남편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남편이신 크리스트께 복종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한 번 죽었으므로 예수 크리스트와의 결혼은 영원합니다. 이제 율법은 우리를 죽어야 한다고 고소할 수 없습니다.
믿는 자는 다 크리스트께 결혼한 사람이며 특권들이 속하여 있습니다. 크리스트의 이름이 ‘크리스천’의 이름이 된다는 특권입니다. 크리스천은 크리스트의 서 있는 위치에도 동참합니다.28)
그와 결혼하였기에 그 안에 있는 것이 다 우리의 것이 된 것입니다. 그와 결혼하였기에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특권을 누립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인 까닭에 하늘의 천사들이 우리를 섬기게 됩니다. 크리스천이 크리스트와 함께 지배할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크리스트와 결혼한 까닭에 우주 만물이 그의 것입니다. 크리스트의 사랑이 어떠한지는 그의 사랑을 받는 자들만이 압니다.29)
2. 죄들의 정욕들이 우리의 지체들 안에 활동하였습니다.
로마서 7장 5~6절에 “이유는 율법을 통하는 그 죄들의 정욕들이 우리의 지체들 안에 활동하였음이니 그 죽음에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라. 그러나 지금 붙들린 것 안에 죽은 우리가 율법에서 풀어놓음을 받았으니 영(Spirit)의 새로움 안에 예속되고 문서의 낡은 것에 아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파울과 로마서의 수신자들이 그 육체 안에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여기 “그 육체 안에”는 “영(Spirit) 안에” 생명의 반대입니다(롬 7:5). “육체 안에” 있다는 것은 다시 낳음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30)
우리가 그 육체 안에 있었던(were) 때가 있었습니다. 그 율법을 통하여 있은(were aroused) 그 죄들의 정욕들이 우리의 지체들 안에 죽음에 열매를 맺기 위해(to) 활동하였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육체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육체 안에” 있다는 말은 “율법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육체 안에” 있다는 말과 “성령 안에” 있다는 말은 서로 반대입니다.31)
“정욕”은 정욕과 탐욕과 죄에 대한 애정을 의미합니다. “정욕”은 그 자체로는 선한 것이지만 타락으로 인한 죄의 결과 때문에 악의 통로가 되는 자연적인 욕구들을 의미합니다. “정욕”은 우리에게 죄짓게 충동하는 감정들입니다.32)
율법을 통하는 “그 죄들의 정욕들”이 죽음에 열매를 맺도록 만듭니다. 율법이 죄를 범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죄는 이처럼 강력합니다.
파울은 정욕과 죄의 탐욕을 가진 중생하지 못한 자를 묘사합니다.33) 그 죄들의 그 정욕들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에너지가 다시 태어나지 아니한 자들의 지체들 가운데에 활동합니다.
죄의 권능은 강력하여서 도덕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성에 대해 가르침으로써 성적 문제를 소개하게 됩니다.34) 성교육이 오히려 성적 문제를 소개하여 호기심을 더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기 성교육 같은 것은 옳지 않습니다.
로마서 7장 6절은 “그러나 지금”(But now)이라는 문구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지금 붙들린 것 안에 죽은 우리가 율법에서 풀어놓음을 받았으니 영(Spirit)의 새로움 안에 예속되고 문서의 낡은 것에 아닙니다(롬 7:6).
전에 율법이 우리를 붙들고(hold)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율법에서 풀어놓음을 받고 면제되었습니다.
결혼한 여자는 첫 번째 남자의 죽음을 통해서 그 남자로부터 분리되고 그의 통제와 지배와 권세와 권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35)
우리는 문제를 악화시키는 율법의 무능함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는 법에 따라 지배받고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36)
사람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되지 못하며 어떤 대상에게 예속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속된 대상이 바뀌었습니다.
구원은 죄로부터 성별에로의 옮김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신성하게 구별되게 하시는 것입니다.37)
우리는 영(Spirit)의 새로움 안에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롬 7:6).38) 관사의 유무로 성령(Spirit)과 사람의 영(spirit)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6절에 관사 없이 사용된 “영”은 “성령”(Spirit)을 뜻합니다.
“문서”라고 번역한 단어(그람마)는 “쓴 것”, “문서”(writing)를 의미하는데 기록된 문서인 율법을 뜻합니다.
파울은 “문서”를 “오래된 것”, “낡은 것”, “옛것”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율법은 낡고 오래된 것에 불과합니다.
로마서 8장 전체는 로마서 7장 6절에 대한 해설에 불과합니다. 크리스천은 새로운 마음을 가지며 새로운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크리스천의 예배는 이제 달라지고 크리스트의 기도도 달라집니다.39) 크리스천은 영(Spirit)으로 예배하고 성령 안에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러나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율법과의 관계를 끝냈기 때문에 경건한 삶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40)
옛사람과 새사람의 차이는 크고, 옛 언약과 새 언약은 대조됩니다. 우리는 두 언약, 두 삶의 방식 간의 근본적 대조를 볼 수 있습니다.41)
새 생명이 뜻하는 바는 가지지 못했던 이해를 이제 가진 것입니다. 율법의 문자가 아니라 그 정신이 중요한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42)
사람이 율법의 영적인 성격과 율법의 적극적인 성격을 인식하게 되면, 외적인 의(義)가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무가치함을 깨닫게 됩니다.43)
성령 안에 사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기에 구원을 받으려고 살지 않고 감사와 찬양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성별된 삶을 살고자 합니다.44)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율법의 아래에 사는 자는 늘 절망과 부담의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45)
크리스천들은 율법에 죽고, 죄에 죽고, 죄의 값인 죽음에 죽었습니다. 크리스트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돌아가신 때 함께 죽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을 죽음이 다시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롬 6:9~10). 크리스천들은 이제 율법과 죽음의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1)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2), 14.
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7.
3) 홍인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나타난 율법의 완성과 마지막 심판” 『개혁신학』2 (1995): 48. 홍인규, 『바울 신학 사색』 (용인: 킹덤북스, 2010), 114.
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8.
5) James Boice, 『로마서 Ⅱ』, 김덕천 역 (서울: 줄과추, 1997), 308-310.
6) Boice, 『로마서 Ⅱ』, 311-313.
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28.
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29-31.
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33-35.
1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37.
1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38.
1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39.
1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0-41.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2.
1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3.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4.
1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5.
1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7.
1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8-49.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50-51.
2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52-53.
2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57-60.
2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61-63.
2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64-65.
2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66-68.
2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69-76.
2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77-81.
2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82-83.
2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84-90.
3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01-102.
3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03-105.
3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06-108.
3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10.
3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13-114.
3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19.
3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20-121.
3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22-123.
3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24.
3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28-130.
4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31-132.
4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33-134.
4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35-136.
4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37.
4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39.
4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40-141.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잠 9:18).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