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狼狽)”는 본디 전설 속에 나오는 동물의 이름입니다.
낭(狼)은 뒷다리 두 개가 아주 없거나 아주 짧은 동물이고,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아예 없거나 짧습니다. 이 둘은 항상 같이 다녀야 제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꾀가 부족한 대신 용맹한 낭과, 꾀가 있는 대신 겁쟁이인 패가 호흡이 잘 맞을 때는 괜찮다가도 서로 다투기라도 하는 날에는 이만저만 문제가 큰 것이 아닙니다. 이같이 낭과 패가 서로 떨어져서 아무 일도 못하게 되는 경우를 ‘낭패’라 한하는데 지금 정부와 의료계가 바로 낭패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의료대란’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못한 이유는 제가 그들의 세계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판이야 돌아가는 것이 워낙 개판이고 늘 ‘그 밥에 그 나물’이라 깊게 성찰할 필요도 없지만 의료계와 정부의 마찰에 대해서는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를 제가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는 15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현 사태의 주동자. 현 사태에서 그들의 편에 서서 전공의들을 굳건히 지지한다”며 “전공의가 불이익을 받으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대통령과 정부, 국민에 대한 위협입니다. ‘좌시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더 늘려서 최단 시일 내에 의사 부족 문제를 완화하겠다는 정부안이 나왔다.
연구 기관들의 전망에 의하면 2035년에 의사 수가 1만 명 이상 부족하고 의사 양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할 때 10년 후에라도 의사 부족을 해소하려면 내년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소아과에 다닐 연령의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은 10년을 기다리라는 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현재의 3058명에서 한꺼번에 2000명을 늘리는 것은 일견 파격적인 만큼 좀 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듯하다.
사실 정부의 수요 전망은 임상이 중심이고 의과학 발전과 해외 환자 유치 등 의료 산업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의사 수요는 고려되지 않은 점에서 과소 추정의 가능성이 더 크다.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의 붕괴는 2000년 이후 의대 정원 조정에 실패하고 의사들의 보상 체계 왜곡을 방치하여 의사들이 수도권의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개업으로 몰리게 한 보건복지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정부가 지역 의료와 생명 의료를 되살리는 방안과 의사들의 보상 체계를 바로잡는 일 등을 의대 증원보다 먼저 발표했지만 그 구체성이 부족하여 과거의 경험상 복지부의 약속을 믿기 어려운 의료계로서는 어음을 받고 현금을 주는 느낌일 수 있다. 정부는 의료계와 이 부분에 대한 협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공의들은 사직으로, 의과대학 학생들은 동맹 휴학으로 대응하는 것은 의사 부족을 더 심화시키는 행위로 언필칭 국민과 환자를 걱정한다는 의사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공급을 얼마나 늘릴까를 결정할 때 공급자인 의사의 양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택시 증차에 기존 택시 업계의 동의를 받으라는 것과 사고의 궤를 같이하는 원천적으로 잘못된 생각이고, 2000년 감축된 350명만 늘리라는 것은 사실상 정부와의 협의를 거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은 물론 보건의료노조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정부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우리는 2.6명으로 OECD 평균 3.7명에 비해 적다는 통계를 공급 부족의 근거로 내세우면, 의사들은 우리나라 의사는 3배나 많은 진료를 하기 때문에 (수입은 OECD 평균의 1.5배밖에 안 되는데도) 공급이 부족하지는 않다고 반박한다.
그런데 수련의, 전공의를 중심으로 의사들이 국제 평균의 3배나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정부나 국민의 뜻이 아니라 의대 증원을 집요하게 반대해온 의사들이 초래한 것이다. 의사를 세 배 늘려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는 통계를 늘릴 필요가 없다는 근거로 드는 사고 구조가 참 불가해하다.
의사를 증원해도 지역 의료, 필수 의료에 의사들이 가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도 필수 의료, 지역 의료에 적절한 보상 체계를 만들어 주는 데에 실패한 정부와 더 나은 수익을 좇아 수도권 피안성 개업의가 되기를 선택한 의사들의 공동 책임이라는 말로만 들린다. 별도의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할 이유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의사의 권고를 환자가 거부하기 어려운 만큼 의사 수가 늘면 의료비 지출과 건강보험의 부담이 크게 늘 것이다, 의대 교육과 의사의 질이 떨어질 것이다, 심지어는 공대 진학생들의 자질이 떨어져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들이 반대 이유로 제시되기도 한다. 국민도 정부도 의사들이 그런 걱정까지 해 주기를 기대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국민을 겁박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해서 설득력 있는 반대 사유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모든 것은 변한다. 현재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현재의 필수 의료, 지역 의료의 위기는 수도권 피안성 개업으로 의사 인력이 과도하게 유출된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고, 이는 다시 정부의 수가 규제가 적고 실손보험의 대상이 되는 진료가 피안성에 많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인데, 정부와 보험 회사들이 이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피안성이 언제까지 의사들의 안이한 탈출구가 되어 줄지 모르겠다.
의대 정원 확대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는 없고 다른 많은 보완책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대 정원 확대 없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의사들이 의료 시장 개혁과 국제화로 의료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때다.
호칭에 반드시 선생님(군사부 일체의 한국에서 최상의 극존칭이다)이 따라붙는 의사들이 더 이상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조선일보. 박병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한국고간찰연구회 이사장
출처 : 조선일보. 오피니언 [朝鮮칼럼] 의대 증원을 둘러싼 논쟁의 허와 실
윤석열 대통령이 의사 정원 2000명 증원을 밝혔을 때, 이준석이가 얘기한 ‘약속 대련’이라는 말이 거슬렸지만 증원 숫자가 파격적인 만큼 어느 정도 조정이 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통령과 정부는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정부가 의사협회와 협의를 해서 증원숫자를 정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의사협회의 주장은 협의가 아니라 합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단체가 정부와 합의를 해서 자기들 일을 정리하는지는 처음 듣는 소리였습니다.
게다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자신감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오만방자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많은 시간 지났고 국민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해 더 이상 이 문제로 국민을 걱정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할 것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