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 程子曰 爲仁由己 欲之則至 何遠之有 정자가 말하길, “仁을 행하는 것은 자신을 말미암을 뿐이니, 그것을 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르는 것이다. 무슨 멀리 있는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朱子曰 欲有好底 如我欲仁 可欲之謂善 不是情欲之欲 주자가 말하길, “欲에는 좋은 것이 있는데, 예컨대 내가 仁하고자 하는 것과 같고, 바랄만한 것을 일컬어 善이라 말하니, 정욕의 욕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仁本固有 欲之則至 志之所至 氣亦至焉 仁은 본래 진실로 갖고 있어서, 하고자 하면 곧바로 이르는 것이니, 뜻이 이르는 곳에 氣 또한 이르는 것이다.
問斯仁之矣 至若來至之意 曰 昔者亡之 今忽在此 如自外而至耳 如易言來復實非自外而來也 누군가 묻기를, “斯仁至矣에서 至는 와서 이른다는 뜻과 같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옛날에는 없었는데, 지금 갑자기 여기에 있으니, 마치 밖으로부터 이른 것과 같다는 것일 따름이다. 예컨대 주역에서 말하듯이, ‘來復’은 밖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孔門許多弟子 聖人竟不曾以仁許之 雖以顔子之賢而尙或違於三月之後 而聖人乃曰 我欲斯至 盍亦於日月體驗 我若欲仁 其心如何 仁之至 其意又如何 又如非禮勿視聽言動 蓋欲每事省察何者爲禮 何者爲非禮 而吾求何以能勿視勿聽 若每日如此 讀書庶幾看得道理 自我心而得 不爲徒言也 공자님 문하의 수많은 제자들에 대하여, 성인께서는 뜻밖에도 일찍이 仁으로 인정해준 적이 없었다. 비록 안자의 현명함으로도 여전히 간혹 3개월 이후에는 仁에서 어긋났다고 하였으면서도, 성인께서는 도리어 내가 하고자 한다면 여기에 곧바로 이른다고 말씀하셨으니, 또한 어찌 날마다 달마다 내가 만약 仁하고자 하면 그 마음이 어떠한지, 仁에 이르면 그 뜻은 또 어떠한지를 체험하지 않겠는가? 또한 만약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고자고 한다면, 대체로 매사에 어떤 것이 禮가 되고 어떤 것은 禮가 아닌지 성찰하고자 해야 하고, 또한 내가 어떻게 하여 능히 보지 않고 듣지 않을 수 있는지를 구해야 한다. 만약 매일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책을 읽어도 거의 이치를 알아볼 수 있으되, 내 마음으로부터 터득할 것이니, 헛된 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南軒張氏曰 仁豈遠於人乎 患人不欲之耳 欲之斯至 不曰至仁而曰斯仁至矣 蓋人非有方所而可往至之也 欲仁而仁至 我固有之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仁이 어찌 사람에게서 멀리 있겠는가? 그저 사람들이 그것을 하고자 하지 않음을 걱정할 따름이다. 그것을 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르는 것이다. 仁에 이른다고 말하지 않고 이 仁이 이른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사람이 그 방향과 장소를 가지고 있어서 가서 그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仁하고자 하면 곧 仁이 이르니, 내가 본래부터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覺軒蔡氏曰 時人皆以仁道遠而難爲 故夫子以工夫之切近者勉而進之 謂仁豈遠乎哉 我欲仁斯仁至矣 蓋仁者心之德 纔一收斂則此心便在 所以甚言近且易 不待他求也 각헌채씨가 말하길, “당시 사람들은 모두 仁道가 멀리 있고 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공자께서는 간절하고 가까운 공부로써 그들을 권면하여 정진하게 하신 것이다. ‘仁이 어찌 멀리 있는 것이겠는가? 내가 仁하고자 하면 곧바로 이 仁이 이르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대체로 仁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일단 마음을 다 잡기만 하면 이러한 마음이 곧바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깝고 쉬워서 달리 구하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심하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仁者心之德 我固有之 非在外也 如手之執足之履目之視耳之聽 不假外求 欲之則至 何遠之有 而人不知反求而病其遠 此夫子所以發此論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仁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니, 내가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으로서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손이 물건을 붙잡고 발이 땅을 디디고 눈이 보고 귀가 듣는 것과 같이, 밖에서 구함을 빌리지 않고서, 하고자 하면 곧바로 이르는 것이니, 무슨 멀리 떨어짐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람들이 돌이켜 구할 줄을 모르고서 그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병통으로 여기니, 이것이 바로 공자께서 이 논의를 드러내신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欲仁仁至 其至也固易 其去也亦易 須於旣至之後常加操存之功 方能不違仁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仁하고자 하면 仁이 이른다고 하나, 그 이름은 본래 쉽지만 그 가버림도 또한 역시 쉬운 것이니, 반드시 이미 이른 후에 항상 붙잡고 보존하는 공력을 더해야만, 비로소 능히 仁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斯字甚緊 如時人斯其惟皇之極之斯 卽此二字貼斯字 신안진씨가 말하길, “斯자가 매우 긴요한 것이니, 마치 時人斯其惟皇之極의 斯와 같아서, ‘卽此’ 두 글자를 斯자에 붙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