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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리 한반도 길 나의 길 7000리 북간도 열차 길
30년 전 88 서울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위해 당시 스포츠 분위기 조성에 열정 넘치던 시절; 패러글라이드와 스키와 산악 레포츠 등
저변 확대에 힘을 보태며 팔공산과 대관령 용평 등지에서 분기별 레저 스쿨을 열었다
한강 이남 최초로 노곡동 및 앞산 등지에서 무동력으로 대구 하늘을 새처럼 비행하던 시절..
서울 올림픽 개최 전 마지막 겨울, 진부령 알프스 리조트 내 난이도가 가장 높은 챔피언 코스,
스키를 타고 30여 m를 활강해 패러글라이더를 활짝 펼치며 눈보라 속 진부령 알프스 스키장 하늘을 수놓았다.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해. 열정 하나로 한 번에 성공했다.
88 서울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위해 스포츠 분위기 조성에 스포츠인들과 레포츠인 등이 함께 힘을 모으며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88 서울올림픽은 국격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키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바람 같은 세월이. 어느새 30년이 지난 지금, 지구인들의 겨울 축제 '23회 동계 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된다..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합의되고, 분단 이후 가장 많은 북녘 선수단과 응원단이 휴전선을 넘어온다.
남북이 함께하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보수 정치 세력들이 빨갱이 팔이에 단절시켜 놓은 남북문제...
새로운 통일의 불씨를 살려내고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과 함께 반민 특위 해체 이후 70여 년 만에 찾아온 기회로
친일잔재 보수 적폐세력들을 대청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적폐 청산의 선두에 선 문재인 정권의 대성공을 기원하며 민주세력의 정당인으로 또 깨시민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해 또다시 한 알의 밀알이 되자
연길에서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이제 용정으로 간다. 용정까지 택시로 10여 분의 거리나 택시는 별 의미가 없다.
버스를 타고 떠나기로 한다. 7.000리 북간도 열차길 유일하게 연길에서 용정까지 19km가 연결돼 있지 않다.
용정까지 미니버스 요금은 5원이며 버스는 10시에 출발한다. 시가지를 빠져나오는데 5회 이상 정차하고
손님을 태우는데 반 이상 시간을 허비한다. 모아산 근처에서 또 2회 정차하고 택배 물량까지 싣는다. 잠시 후 용정 시가지에
접어들자 곳곳에서 사람들과 택배를 내려주고 버스에 혼자 남는다.
용정역 간다고 하자 역 광장까지 차가 들어가 대합실 문 앞에서 내려준다. 참 친절한 기사다. 대합실 문을 밀치자 문이 잠겨 있고. 우측 매표소가 열려 있다. 12시 18분발 송강하 열차 티켓을 요구하자
지금 열차는 없어지고 15시 50분발 하루 한 편 있다고 안내한다.
중국 주요 도시 간 대부분 연결된 고속철의 영향으로 보인다.
90년대 우리나라 완행열차 비둘기호 및 통일호등이 하나씩 사라지듯 그렇게 이해가 된다.
아직 열차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용정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순대 국밥집을 찾아갔는데 식당 내부에서는 식사를 할 수 없고.
비닐봉지에
포장해 집에 가져가 먹어야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싸들고 가고 있다. 참 재미있는 맛집이다.
집이 없는 사람은 어디 가서 먹느냐?? 주인장에게 묻자 식당 우측으로 잠시 내려가면 전주비빔밥 집이 있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며 친절히 안내해 준다. 식당을 나서 우측 인도를 따라 잠시 걷자 전주비빔밥 집이 나온다.
돌솥비빔밥을 하나 시켜 천천히 먹어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아까운 시간들, 허비할 수 없다.
주인장에게 윤동주 생가 명동촌을 현지어로 적어달라고 부탁하자 자신은 모른다며 앞쪽 식탁에 식사 중인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테이블에 다가가 부탁을 하자 윤동주 생가 '명동촌을 현지어로 적어 준다.
식당을 나와 도로변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식당에서 글을 적어준 젊은 친구가 다가오더니 잠시 기다릴 수 있느냐?? 고 묻는다.
식사를 마치면 자신들도
그쪽 방향으로 간다며 자신의 차로 명동촌까지 태워주겠다며 친절을 베푼다.
잠시 후 젊은 커플이 나와 차 뒤쪽 소파를 정리한 뒤 타라고 한다. 4륜 구동 밴 형으로
좋은 차다. 뒤 칸을 혼자 차지한다.
명동촌
용정에서 두만강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다. 용정시를 중심으로 북쪽에 난 길이'개산툰' 가는 길이며,
남쪽 아래로 난 길이 두만강변 도시 삼합 가는 길이다. 삼합 길 중간쯤 우측 도로변에 윤동주 생가마을 '명동촌이
자리하고 있고 이곳에서 20여 분이면 두만강변 도시 삼합이다. 삼합진은 두만강 건너 함경도 회령시와 마주하고 있고
심합에서 두만강 상류를 따라 거슬러 오르면 남평(강 건너 무산)을 지나 두만강 발원지와 백두산이 나온다.
일제 강점기 당시 함경도 회령과 용정을 잇는 두만강 철교가 이곳에 가장 먼저 건설되고 철길은 용정까지 어어진다.
이때부터 회령은 북간도 이주 전진 도시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후 접근성이 용이해진 용정은 많은 함경도 사람들의 유입으로
당시 북간도에서 가장 발전된 최초의 도시로 변모한다.. 지금도 연변 조선족 사회 구성원 90% 이상이
함경도 출신들의 후예다.
두 길 다 산세가 험하지 않으며 대부분 나지막한 구릉지로 청나라 봉금제 해제 이후 1881년 무렵 이주한 사람들로 인해
자연적 오솔길이 생기고 다시 달구지 길로 발전되고 길 양측의 구릉지는 더 넓은 논밭으로 개간되고.
길을 따라 좌, 우에는 수십 호씩 집단 촌락이 군데군데 들어서고 두 길 다 용정까지 이어진다.
현재 도로는 왕복 2차선으로 말끔히 포장돼 있고 마을 앞 냇가는 하얗게 꽁꽁 얼어 있다..
언제 한번 이곳에 들러 앞마당에 방사된 토탉을 잡고
며칠을 두고 묵고 싶은 마을들이다
명동촌 우측 도로변에 자리한 윤동주 생가다. 생가 대문은 굵은
자물쇠로 굳게 채워져 있고 마을에 인적이 없다.
나오는 길은 간간이 지나는 차량을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젊은 커플이 다시 용정까지 태워주겠다며 나선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1992년 한중국교 정상화 이후 당시 연변 조선족 사회는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것이 열악했고 어수선했다
당시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을 왕래하며 불법 입국맟 체류 등으로 헝클어진 한국 바닥 문화와 충돌이 일어난다.
2004년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반도 선구자들의 후예들을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다며 특단의 조치를 내리고
재중동포 모국 방문법을 새롭게 개정했다. 이후 이 들은 급속히 발전된 선조들의 고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어느새 이들은 자본사회 순기능에 동화되고 현재 연길시는 서울을 그대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억센 함경도
사투리가 사라져 가고 말씨도 대 다수가 서울 말을 구사한다 지금 연길시는 북간도의 작은 서울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국 등 외부에서 유입된 많은 자본이 이들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했고 발전에 속도가 붙고 있디
오늘 친절한 조선족 친구들을 만나 긴 여정 길 노객의 피로를 확 달아나게 하고 있다.
지구인들의 평화 축제. 23회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지폐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달한다.
북간도 조선족 동포 사회에 평창동계올림픽을. 많이 알려달라..
커플이 함께 평창 파이팅을 크게 외친다.
이들은 다시 용정으로 가 역 광장까지 태워주면서 즐거운 여행되라며 훈훈한 인사를 건네고 떠난다.
좋은 친구들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북간도 중심도시 연길시
7.000리가 넘는 북간도 열차 길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대련(여순)에서 18시 50분 발 밤 열차를 타고
대 장정의 첫발을 딛는다. 안산(안시성) 선양(봉천), 장춘, 길림, 돈화, 안도현을 거쳐 북간도 중심 도시 연길시까지다.
용정서 다시 열차를 타고 화룡, 이도백하, 송강하, 백산, 퉁화, 선양, 단동에서 다시 대련으로
돌아오는 7.000리 북간도 열차길.. 북간도를 한 바퀴 돌며 평창동계올림픽 민간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당일 백두산 천문봉에 올라가 천지 건너 장군봉을 향해 평창동계 올림픽 성공과 함께 현 정부의 대성공을 기원하며
백두대간의 모든 에너지를 평창으로 모아달라며 크게 요들을 칠 것이다.
긴 시간 달린 밤 열차는 안산(안시성) 선양(봉천)을 거쳐 다음 날 새벽 장춘에 도착되고, 오전 내내 더 달려 오후 1시경
북간도 중심 도시 연길에 도착한다.
시장기가 몰려온다. 연길에서 자주 찾는 맛집을 찾아가 도가니탕으로 시장기를 해결하고 주변에 자리한 유경호텔에
들어선다. 프런트 평양딸들이 인사를 건네온다 프런트 뒤쪽이 커피숍이다.
넓은 홀 전체가 텅 비어 었고 바텐더에서 평양 미인들이 반긴다. 설렁한 분위기 속 평양 미인들의 위축된 모습이
UN 대북 제재가 이곳까지 미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연변대 김 교수에게 전화를 넣는다. 주변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약속하고
내일 도문에서 두만강 상류를 따라 함께할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넣는다.
자신은 지금 사업상 급한 일로 상해에 와 있다며 대신 여행사 사장에게 부탁해 두었다며
전화번호를 하나 불러준다. 전화를 넣자 여자가 받는다. 사전에 연락을 받았다며 내일 아침 10시 이곳 커피숍에서 만나
자신의 승용차로 함께 가기로 약속을 잡는다.. 지금껏 꾸준히 이용한 택시기사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연변 조선족 사회도 이제 정신적 성장을 보는 같아 기분이 괜찮다.
김교수와 약속시간이 아직 두 시간여 남았다. 커피숍을 나서는데 지금까지 홀 내부에 손님 한 사람 없다.
택시를 타고 장백로 등 동북아터미널을 다니며 버스 시간표 등을 영상에 담는다, 그사이 시간이 지난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1층 식당으로 들어서자 식당 한켠에 김 교수와 동료 교수 한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선약이 잡혀 있어 함께 자리를 만들었다며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동료 교수가 명함을 건네온다. 명함에는 '
연변대학 조선반도연구원 동북아물류 연구원 원장 경제학박사 B 모 교수'라고 적혀있다.
조선반도는 북한식 용어며 동북아물류 역시 북한과 조선족 사회에서 통용되는 단어로 경제학으로
이해 된다
한국에서 건너온 연변대학 한국인교수라 더 반갑다.
현지 독주를 주고받는다. 금세 취기가 오른다. 김교수 그새 더 젊어진 것 같다며 덕담을 건넨다
김교수와 필자는 20여 년 지기로 갑장이며 같은 애주가다.
식사와 함께 술자리가 무륵익는다. 김 교수에게 더 취하기 전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해 '평창 파이팅'을 한 번 외치자
평창동계올림픽 기념주화를 선물로 전달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대 성공을 기원하며'함께 파이팅'을 외친다.
술잔이 오가는데 B교수가 난데없이 현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비아냥 거리는
어투가 전형적 수꼴 부류다
술이 번쩍 깬다. 현재 국민들로부터 70% 넘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고국의 대통령을 술상에 올린 것이다.
'어떤 정책들이 그렇게 보이느냐?'별 답이 없다. 더 이상 논하면 내 입이 거칠어질 것 같다.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하고 김교수와 함께 유경호텔로 자리를 옮긴다. 1층 공연장과 2층 식당
문이 다 잠겨 있다 술이나 식사는 커피숍에서 주문하면 된다며 평양 미녀들이 달려와 안내한다
들쭉술과 과일 한 접시를 주문한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선조들의 수많은 피와 땀의 대가로 일궈 낸 북간도는 한반도 독립운동의 성지다. 이곳에도 보수 수꼴들이
기생하고, 조선반도(한반도) 연구원이라는 국적 없는 말장난에 역사관이 결여된 이들과 어우러지는 조선족 동포 사회??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
다음 날 아침 유경호텔 조식 메뉴는 된장국이다 토속적 된장국 맛에 끌려. 20여 년 넘게 즐겨 찾는
곳으로 맛이 변함없다. 조식을 마치고 10시에 예약된 차를 기다리는데 연락이 없다, 10여분 기다리다 전화를 넣자
유경호텔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커피숍에 지금 나밖에 없다고 하자 자신도 유경호텔 커피숍에 혼자 있다고 한다. 얼른 스치는 게 있다,
유경호텔이 맞는지 주변을 한 번 둘러보라고 하자 그때야 호텔이 아니라 유경 식당이라고 한다 한바탕 개그를 벌이고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다. 1년 전 일송정에서 한번 대면한 구면이다. 커피 한 잔씩 식을 들고 11시가 다 돼 출발한다.
화이트 색상의 깔끔한 승용차는 자신의 승용차라고 한다.
시가지를 벗어나 연길 훈춘 간의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운전경력이 3년 차라는데
아직은 미숙한 듯 시속 60km 이상 속력을 내지 못한다, 12시경 두만강 국경 전망대에 도착한다. 국경 전망대 입구는
폐쇄돼 있고 출입이 금지돼 있다. UN 대북제재가 이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곳에서 두만강 상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상류 강변길에는 식당이나 먹을 곳이 없다.
도문에서 중식을 해결해야 한다, 먼저 역으로 가 열차 시간표를 영상에 담고 역 광장을 빠져나오는데
역 광장 주변에 그 많던 식당 하나 없고 사람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20여 년 전 도문을 찾았을 때 역 광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택시, 자전거인력거 등이 뒤엉켜 역동적이던 당시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을씨년스럽다. 다 어디 갔을까?? 이곳에도 대북제재의 영향일까??
한국으로 다 돈 벌로 갔을까?
자그마한 도시 중심지와 외곽지를 한 바퀴 돌아도 먹을 만한 식당이나 호텔이 보이지 않는다. 도로변 한켠 빌딩에 한국관'이라는
큰 간판이 보이고 1층에 민들레 식당이라는 한글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글이 정겹다.. 식당으로 들어가 돌솥비빔밥 두 그릇 시켜 간단히
중식을 마친다.
국경 전망대 입구에서 남쪽으로 난 길이 두만강 상류길이다 잠시 후 도문 시민들의 휴식 공간인 일광산을 지나자
두만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얗게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중심으로 강 건너 북녘 땅은 험준한 산비탈이다. 이곳의 중국은
더 넓은 평야를 중심으로 많은 촌락들이 형성돼 있으나 강 건너 북녘에는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압록강과 정반대의 현상이다.
상류로 갈수록 중국 측 들녘이 좁아지고 도로와 두만강이 더 가까워진다.
도문에서 30여 분 후 첫 삼거리 교차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 길이 용정 가는 길이며 좌회전 길이 개산툰 초입이다.
좌회전 길에 접어들자 바로 중국 국경수비대 인민군들이 차를 세우고 검문을 시작한다.
신분증을 요구한다.
여권을 내밀자 초소로 갖고 들어간다. 차에서 내리자 인민군 병사는 카메라 영상물 확인을 요구한다. 조금 전
두만강을 따라오며 촬영한 북녘 땅의 영상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카메라 메모리 뒤쪽에서부터 작동해 보여주었다
뒤편에서부터 몇백 장을 보여주자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강바람이 차갑다.
차에 들어가 기다리는데 지휘관으로 보이는 장교가 여권을 갖고 나온다 기자냐고 묻는다. 여행객이다.
이곳에서부터 도로가 강 하나 사이에 두고 북녘과 맞닿아 있다. 한국인은 위험한 지역이다.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항의하고 싶으나 소통이 될 것 같지 않다. 몇 해 전 장백현에서 한 번 경험했다
이들은 여행객들을 잡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차를 돌린다.
아쉽지만 방법이 없다.
다시 삼거리 교차로다 이곳에서 용정까지는 30km 남짓 거리다.
19세기 후반경 함경도 지방에서 긴 흉년이 들고 기근에 허덕이던 민초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이곳 주인 없는 강변에
둑을 쌓고 작은 평야를 일구었다. 점차 내륙 깊숙이 길을 내고 길 양측 구릉지 등을 개간해 논밭이 생겨났고
촌락이 들어서고 길은 용정까지 이어진다. 이후 용정 용두레 우물터를 중심으로 북간도 최초의 도시가 형성된다.
이 길은 한반도 선구자들의 피와 땀.. 한이 묻어있는 북간도 최초의 이주길이다..
도로변 좌우에는 조선족 작은 촌락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고 도로에 통행 차량은 거의 없다.
잠시 차를 세우게 하고 한 집을 들러보기로 한다.. 팔작지붕으로 된 한 집에 들어서자 토닭이 마당에 흩어져 모이를 찾는다,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두드리자 주인은 아무런 경계 없이 문을 열어준다.
냉수 한 잔을 부탁하자 깔끔한 유리컵에 가득 부어준다. 우리 농촌의 촌락들은 대부분 팔작지붕에 위채 아래채가 있고 큰방,
작은방, 사랑채 등 외양간으로 나눠져 상대적으로 복잡한 구조인데 이곳의 집 외형은 우리 농촌의 팔짝 지붕과 같으나
주택은 단출한 한 채다,
내부에 들어서면 원룸 형태의 주방과 아궁이 등이 내부에 다 들어 있고. 원룸식 방 하나에 온 가족이
함께 부대끼며 북간도의 긴 겨울을 나기 위한 변형된 형태로 한족 가옥과 혼합된 주택 문화로 보인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느냐?? '언제든 오라 고 한다. 감사합니다. 용정 오는 길 내내 도로변 좌우에는 영화 서편제에
등장하는 남도 길 한이 묻어있고. 우리가 산업화 과정에서 다 잃어버린 내 고향산천 풍경 그대로다.
개산툰 삼거리에서 30여 분 지나 용정 시가지 우회 길을 빠져나오자 해란강에 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자 바로 모아산 아래로 연결되고
연길시에 금세 도착한다.
어느덧 해가 기웃 거린다.
오늘 하루 수고를 많이 했다 작은 선물이다. 한국 평창동계올림픽을 연변 조선족 동포 사회에 많이 알려달라
올림픽 기념지폐를 선물로 전하고 평창동계올림픽 파이팅을 외친다.
저녁식사는 며칠 전 친구가 한국식 식당을 오픈했다며 그곳으로 안내하겠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호텔 주변에 자리한 서시장은 신축 공사로 인해 이전되고, 연길에서 특별히 가볼 만한 곳이 없다.
호텔 프런트 맨이 동시장을 추천한다. 안내할 아르바이트생까지 연결해 준다.
북경 모 공과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이며 졸업 후 엔지니어로 북경 현대자동차 입사가 목표라고 한다. 곧 방학이 끝나고 다시
북경으로 간다고 한다. 함께 택시를 타고 동시장으로 이동한다. 동시장도 생각 이상으로 범위가 꽤나 크다
많은 노점이 열려 있고 사람들로 붐비며 싱싱한 야채부터 없는 게 없다. 활기가 넘차고 볼거리도 많다
한국이나 이곳 사람 사는 세상 별반 다를 게 없다. 먹거리로 순이 냉면 집을 추천한다.
동시장을 벗어나 잠시 걷는다.
전신주에 붙은 현수막에 부국 강성 민주 등의 글귀가 시야에 들어온다.
학생에게 묻는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재에서 민주란? 어떤 것이냐??. 인민이 주인이며 인민을 잘살게 하고
공산당은 인민의 뜻을 따르는 것 이라며 서슴없이 답을 내놓는다. 정답이다. 그러나 다당 체재에서도 쉽지 않은 민주가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 체재에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되묻자 머뭇거리며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 북경 대학생의
지적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중국 인민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느새 순이 냉면 집이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었는데 내부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냉면 맛은 괜찮은데 위생 상태는
아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방학이 끝나고 북경으로 돌아가면 대한민국 평창에서 열린 23회
평창 동계올림픽을 학생들에게 많이 알려달라. 올림픽 기념 지폐를 선물로 건네고 평창 파이팅을 외친다.
차기 24회 동계올림픽은 베이징이다.
백두산 열차길
젊은 커플 덕분에 기분 좋은 용정 일정을 마치고 15 : 50분발 백두산 열차에 몸을 싣는다.
열차 좌석이 반 이상 텅 비어 있다
용정서 한 시간 이면 화룡시에 도착한다, 화룡시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도시다
홍범도 장군과 공적이 뒤바뀌거나 김좌진 한 사람에 대한 미화 내지 과대포장된
근대사 대표적 역사 왜곡의 현장이다는 것을 알고 별 관심이 없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을동은 김두한의 딸이다. 아버지 김두한은 일제 강점기 당시 협객으로
건달 두목이다. 김두한은 개성출신으로 일곱 살 때 서울로 와 수표교 다리 밑에 거지가 된다
후일 건달 두목이 되고 자신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며 소문을 낸다
당시 김두한은 자칭 김좌진의 아들임을 내세워 국회원원에 당선된다.
이때 삼성그룹에서 저지른 사카린 밀수사건을 접한 김두한은 분개한다.
그는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시국선언을 했던 파고다 공원의 재래식 화장실 인분을 수십 개 비닐봉지에
퍼 담아 국회로 가져간다.
자신의 발언 차례가 오자 인분이 가득 찬 비닐봉지 수십 개를 들고 단상으로 나간다 단상에 선 김두한은
의원님들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대표 33인이 배설한 파고다 공원 재래식 변소 똥물이다. 삼성 사카린 밀수 사건은 권력의
비호 없이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애국지사들의 똥물 맛을 한 번식 보라며
국회의원들의 얼굴에다 마구 뿌려 됐다. 악취가 진동하는 똥물을 뒤집어쓴 국회의원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난다. 자칭 장군의 아들다운 행동이었다.
김두한은 당시 조선 최고의 주먹으로 광복 후 혼란기와 6.25 당시에는 반공주먹으로
명성을 떨치나 국회 인분사건 이후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후일 숨을 거둔다..
이후 그의 딸 김을동은 친일 부역자 박정희 정치적 자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된다. 더 없는 역사의 코미디며
가족사의 비극이다.
필자는 중학교 2학년 당시 김두환의 반공 강연을 학교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2시간여 직접 들었다
열차는 6시 45분 북백두 전진도시 이도백하에 도착되고. 백두산 밀림 속을 두 시간 여 더 달려 20시 40분에
서백두 전진도시 송강하에 도착한다. 출구를 빠져나오자 눈으로 둘러싸인 송강하 역광장 가로등이 정겹다.
출구를 빠져나오면 좌측에 3층 건물이 하나 있고 아래층은 열차 손님을 상대로 영업하는 식당이 나란히
여섯 집이 있다.
열차 나그네들의 많은 낙서 속 한반도길 시그널을 걸어둔 네 번째 집을 찾아들자 문이 닫혀 있다.
많이 아쉽다.
택시를 타고 사전에 예약된 호텔에 투숙해. 백두산 산골의 추위를 녹인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일
오늘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일이다
호텔에서 호출한 택시를 타고 북백두 전진도시 백하를 거쳐 산문에 도착한다 산문 입구에 많은 중국 여행객들로 붐빈다.
문표 구입 후 산문으로 들어가 서틀버스에 오른다.
30년 전 88 서울올림픽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88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었고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잠시 후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다. 감회가 새롭다. 어느새 지프차는 천문봉에 도착한다, 천지다. 한반도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축복하듯
티끌 한 점 없는 하늘과 천지가 맑게 열려 있다..
한반도 길 3차 당시 서백두와 북백두에서 양일 간 비바람과 운무에 가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던 때를 제외하고는
20년 넘게 천지는 매번 내게 열어주었다. 다시 한번 감동으로 다가오며 내 마음까지 더 맑아지고 있다.
천지 건너 장군봉이 다가온다.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크게 요들을 친다. 23회 평창동계올림픽과 현 정권의
대성공을 기원한다. 한반도 백두대간의 모든 에너지를 평창으로 모아 달라는 소망을 담았다.
크게 요들을 친다. 이어진다. 또 한 번 친다. 현 정권의 대성공과 대한민국 평창 파이팅이다.
백두대간이란?? 천지 건너 장군봉은 백두대간의 어미산으로 장군봉에서 발원된 하나의 큰 산줄기가 뻗어 내려 함경도 두류산을
거쳐 금강산에서 휴전선을 넘고 향로봉에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구룡령, 선자령을 넘고 대관령 인근 산자락에서
오늘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다. 백두대간은 대관령을 넘어 두타산, 매봉산, 소백산, 덕유산. 육십령을 거쳐
한반도 최남단 지리산 천왕봉까지 길게 뻗어 내린 하나의 큰 산줄기를 말한다.
기분 좋은 천지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하산길에 온천장에 들러 몸을 녹이며 휴식을 취한다.
온천장 앞에 근래 가설된 육교를 건너 잠시 오르면 소천지다. 이곳에도 평창 동계 올림픽을 축복하듯 맑게 열려 있다.
북백두 일정을 모두 마치고 소천지 환승 구간에서 서틀버스를 타고 잠시 후 산문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서백두를 거쳐 송강하까지 300리다. 송강하 숙소에 도착하자. 백두산 산골의 해도 어느덧 기웃거린다.
배낭을 챙겨 간단히 석식을 마치고 송강하 역으로 간다. 송강하 발 20시 53분발 밤 열차를 타야 한다.
택시가 역 광장으로 접어들자 어젯밤 문이 닫혀 있던 식당 간판이 불을 밝히고 있다.
무척 반갑다.
택시에서 내려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주방에서 주방장인 듯 사람이 나온다 우측 벽면에 열차나그네들의 낙서란에는 한반도길
시그널이 주인을 반긴다. 1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어 더 반갑다.
주인장을 찾자 소통이 되지 않는다.
작년 해맞이 당시 카메라에 담아 간 수십 장의 사진을 내놓자 식당 내 한쪽 공간에서 여 주인이 나오며 환한 미소로 반긴다.
반갑다 인사를 나누고 튀김류를 하나 시켜 배낭에 남은 들쭉술로 술잔을 기울인다.
마른 명태 한 마리를 내놓으며 맥주를 박스째 들고 온다, 서비스라며 밤새 마시자고 한다. 내일 새벽 선양행 열차를 타라며
남편과 영상통화를 연결해 준다.. 반갑다, 기다렸다, 이런 뜻으로 이해가 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용정 명동촌 인연의 젊은 커플에게 전화를 넣는다. 1년 넘게 시그널을 잘 보관해 줘 고맙다,
주인장 부부게 감사를 표한다. 23회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지폐를 선물로 남긴다. 열차 나그네들에게 한국 평창을 많이 알려 달라
내년에 다시 만나자며 거듭 감사를 표한다. 통역을 부탁하며 전화를 주인장에게 건네자. 주인장과 주방장은 휴대폰을 스피커 상태로 열어놓고
함께 들으면서 활짝 웃는다.
하나의 작은 선물에도 너무 좋아하는 모습들이 여행길 나그네의 피로를 풀어주고 있다.
서
시간이 없다. 아쉽지만 다음을 또 기약하자며 일어서자 마른 명태 한 마리를 더 갖고 와 배낭 사이드 주머니에 꾹 찔러준다.
열차에서 먹으라는 손짓을 하며 따라 나온다. 검색대도 자유롭게 통과하고 대합실까지 따라와 다음에 또 기다리겠다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손을 흔들며 다시 검색대를 빠져나간다.
더 넓은 역 광장을 빠져나가면서 몇 번인가 뒤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국적은 달라도 백두산 산골의 산 사람들.. 찡한 울림이 온다.
밤새 달린 열차는 백산 퉁화를 거쳐 다음 날 아침 8시 30분 선양 본 역에 도착한다.
선양에서 조식 시간이 없다. 9시 17분발 단동행 고속철에 몸을 실어야 한다, 서둘러 단동행 고속철에 환승하고 고속철은 단동까지
1시간 5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역에서 가까운. 조선의 거리 중앙에 자리한 예약된 호텔을 찾아가 짐을 풀고 평양 아주마이 식당을
찾아갔으나
문이 닫혀있다
옆 가게로 가 평양 아주마이를 찾자 얼마 전 평양에 들어갔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한다. 많이 아쉽다.
압록강변으로 간다 강 건너 신의주와 마주한 강변길 우측에 자리한 송도원 식당으로 들어가자 평양 미녀들이 막아선다.
남조선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식당 내부에는 손님 한 사람 없는데 왜 못 들어가느냐? 지금 다 예약돼 있고 본래 남조선 사람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하는 거짓말이 일상적인 같아 안타깝다.
주변 맛집을 찾아가 조식 겸 중식을 넉넉히 해결한다,
어둠이 깔리고 다시 압록강변으로 간다. 압록강 단교다. 다리 상하를 붉게 불 밝힌 곳이 중국령 단교며 붉은 불빛이 끝난 지점에서
뒤편의 작은 흰 불빛 사이 어두운 부분이 끊어진 단교 자리며 압록강 반쪽의 북한령이다.
강 건너 작은 흰 불빛은 신의주 관세청이나 압록강 철교(조중우의교) 북녘의 국경 검문소로 보이고 작은 휜 불빛 우측 전체가 신의주 도심의
중심지이나 불빛 한 점 없는 암흑 천지다.
저들의 전력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넘치는 중국 측 불빛과 압록강 반쪽을 사이에 두고 천당과 지옥이다.
강변길 뒷 거리에 접어들자 평양 고려식당이 나온다. 모자를 벗어 카메라와 함께 패딩 속에 집어넣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낮에 송도원 식당 학습 효과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식당 내부 전체가 텅 비어있다
평양 미녀들이 막아선다
남조선 사람이냐고 묻는다.
나 연변서 왔소
그래도 못내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일 업습다. 하고 밀고 들어선다 텅 빈 홀 한 곳에 앉자 카운터 옆에 앉으라고 한다. 카운터에 평양 미인 셋이 함께 앉아 있는데
몰카 등을 감시할 목적인 것 같다 차림표를 요구하자 갖고 온다. 장어 한 접시와 들쭉술을 주문하자
들쭉술은 지금 없다고 한다. 평양 소주를 찾자 그것도 없다고 한다.
자신들이 추천하는 조국의 좋은 술이라며 한 병들고 와 맥주잔 크기의 글라스에 가득 부어준다.
평양 소주나 들쭉술에 비해 질이 많이 떨어진다. 장어구이는 우리 것 이상 맛을 낸다
술잔을 비우자 이들이 쫓아와 또 가득 부어준다. '두 잔을 비우자 취기가 오른다. 왜 이곳에 남조선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느냐?
그런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지금 한국에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이 함께 참석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했다.
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고 남북 응원단이 하나가 돼 지금 목 아프게 같이 응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왜 남쪽 사람들을 못 오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자. 자신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김여정 동지를 칭할 때 동지라고 칭하라며 남조선 사람이 맞다며 나가 달라고 한다.
이제 웃음이 다 나온다. 또 한 잔 마시자 마지막 남은 반 잔 정도를 또 부어준다. 카메라와 올림픽 기념지폐는 꺼내지도 못하고
술잔을 비우고 계산한다. 350원이다 우리 사회에 비해 술은 비싸고 장어는 싼 편이다.
연길 유경호텔에서는 출입은 막지 않았는데 이곳은 출입 자체를 막고 있다 어느 곳이든 손님 한 사람 없이 텅 빈 홀이다.
사진촬영은 다 같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다음 날 아침 숙소 주변 하회마을이라는 한국식 맛집을 찾아가 조식을 들고 또다시 압록강변으로 간다
압록강 길목에 자리한 평양아주마 식당 문이 열려 있다
반가움에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평양 아주마이가 반긴다. 평양 들어갔다고 하던데??
어제 오후 평양에서 열차 편으로 왔다고 한다. 다행이다. 선물을 못 주고 갈 뻔했다. 평양 돈주가 되었나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
자신은 평양 돈주 근처에도 못 간다며 지금 평양은 돈주들의 횡포가 심하다고 한다. 주안상 올리기에 앞서
먼저 남남북녀가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파이팅을 한번 외치자 2014년 12월 1차 당시 처음 만날 때와 달리 이제 카메라에
별 부담이 없다. 자본사회에 잘 적응된 느낌이다.
주안상이 들어오고 남남북녀가 마주 앉았다 한잔 술에 너 내 설움 다 잊고 한번 취해보자
평양 아줌마
다음 날 조식 후 단동역으로 간다.
북간도를 한 바퀴 도는 7.000리 북간도 열차 길 마지막 구간이다. 10 :시 48분발 대련행 고속철이다.
단동역에서 열차는 출발되고, 잠시 후 시가지를 벗어나자 좌우로 남만주 벌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광개토대왕이 국내성에서 안시성을 오가며 대륙으로 말 달리던 고구려길. 지금 중국 열차가 달리고 있다.
정확히 13 : 10분 대련북역이다. 대련역을 기점으로 7.000리 열차길을 따라 북간도를 한 바퀴 돌아 7일 만에 제자리에 돌아온다.
7.000리 길 내내 북녘 동포들과 조선족 동포와 한족들을 만나 작은 것을 주고 너무 많은 것을 얻어간다.
북간도에서 인연을 만들어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대한민국 평창 파이팅이다.
팔공산 자락에서
이 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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