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이 쉽게 풀리지 않는 이유>
장성민 전 국회의원
- 이란, 생존 위협 앞에서 더 이상 시간 끌기 하면 불행
- 미국, 이란의 체면을 세워주는 ‘힘을 통한 협상’ 해야
- 이란, 중동의 북한이 될 것인가?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대표적인 미로가 이란 전쟁이다. 워싱턴과 테헤란 사이의 꼬이고 얽힌 관계를 괴롭혀 온 핵 문제는 단순히 농축(enrichment), 원심분리기(centrifuges), 기만(subterfuges)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크게 보면 미중 패권전쟁의 대리전이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대중 에너지 봉쇄전략이며, 중동 패권과 글로벌 지정학적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이란의 중동 패권을 견제하는 이스라엘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이란 전쟁은 이란의 지정학적 요인, 국가의 정체성과 생존, 그리고 격동적이며 때로는 비극적이었던 역사와 직결되어 있다.
역사가들에게 이란에 대해 물으면 보통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라고 말한다. 이란의 경우 그 시작은 아주 멀리, 기원전 6세기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의 메디아·페르시아 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들의 법은 변하지 않는다”는 표현처럼 이란은 쉽게 변하지 않는 나라다.
지금 이란 문제가 쉽게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과거 페르시아 제국이었고, 지금도 제국을 지향하기 때문에 거의 완성품에 가까운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반면 미국은 당장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더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지금 이란과의 종전을 향한 휴전협정 문제는 핵 문제에서 막혔다. 이 핵 문제를 푸는 미국과 이란의 태도를 보면, “미국인들은 (핵 이외의) 모든 것을 잊고, 이란인들은 (핵에 관한 한)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는 지점에서 교착상태를 맞고 있는 느낌이다.
이란의 핵 개발에는 이란인들의 역사적 원한 의식도 묻어 있다. 이란은 과거 영국, 구소련, 독일의 간섭과 침공, 영향을 받아 왔고, 튀르키예의 침입도 받아 왔던 만큼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피해의식이 매우 강해 보인다.
그중에서도 단연 이란에 영향을 미쳐 온 강대국은 역시 미국이었다. 오늘의 이란이 친미에서 반미로 돌아서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79년 축출된 샤(Shah)를 미국이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팔레비의 정적이었던 호메이니조차도 자신의 적이 그런 선물을 안겨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호메이니가 이란의 지도자로 등극하게 된 결정적 분수령은 그의 정치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반대 측의 치명적인 오판 때문이었다.
미국이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을 공개적으로 지원한 것도 이란인들에게 반미 감정을 쌓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1900년 무렵 이란인들이 자기 나라를 돌아보았을 때, 그들은 러시아가 자국의 가장 부유한 지방 일부를 차지했으며, 이란의 명목상 통치자들이 악명 높은 “양허(concessions)”와 “굴복(capitulations)”을 통해 주권을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보았다. 또한 방탕하고 무능한 왕조가 외국의 고통 구제, 원조금, 대출에 의존해 존재하고 있었다. 사회복지의 모든 기준 - 교육, 문해율, 기대수명 - 에서 이란은 유럽뿐 아니라 일본, 인도, 튀르키예, 이집트보다도 크게 뒤처져 있었다. 국가는 파산 상태였고, 외국인들이 남아 있는 자원마저 통제하고 있었다.
이런 역사를 갖고 있는 이란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핵 문제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다. 그래서 지금 협상 시간을 자꾸 연기하며 시간을 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미국과 이란이 서로 핵 문제를 논의한 것을 보면, 양측이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에게 핵 문제는 현실적 생존 위협의 문제다. 그리고 법적·기술적 문제다. 원심분리기, “돌파 시간(break-out time)”, 고농축 우라늄, 조약 의무 등이 핵심이다. 반면 이란 측에게 핵 문제는 주권, “정의”, 그리고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국가적 존엄의 회복에 관한 문제다.
냉혹한 현실은 수세기 동안 이란인들이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런 역사 속에서 그들에게 핵 보유에 대한 집념은 더욱 강해 보인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당시 대통령 아흐마디네자드는 미국 학자들에게 사실상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나름의 이유로 우리는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핵 프로그램에 대한 결정은 우리가 내리는 것이다. 당신들(미국과 유엔, EU 등)이 우리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아흐마디네자드의 이 발언의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당신들은 수세기 동안 우리에게 지시해 왔다.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라는 의미다.
그동안 이란은 굴욕의 역사 속에서 외부 강대국들의 영향을 받고 중요한 국가정책을 결정해 왔음을 고백한다. 이란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질 현실적인 생존 위협의 문제와 오랜 역사적 자존심 사이에서 핵 문제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이란의 체면을 세워주는 핵 포기 협상전략이 더욱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힘을 통한 외교를 추구하더라도 이란의 역사적 자존심과 체면을 세워주는 노련한 협상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란이 더 이상 미국과의 협상에서 시간 끌기 전략을 지속하는 것은 국가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충분히 인내의 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가 티핑 포인트인지 모른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다면 이란의 대미 협상은 혁명수비대 강경파들이 장악하게 될 것이고, 그 순간 이란에는 치명적 위협이 시작되는 재앙의 시간이 열릴 것이다.
이란은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지금 미국과 이란 사이의 핵심은 “외교란 어떻게 도저히 화해할 수 없어 보이는 양국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집중될 것이다. 그 안에서 서로 일치된 선택, 즉 양립 가능한 공집합을 찾아내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무조건 자존심을 내세워서도 안 되지만,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여서도 안 된다. 자존심과 힘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충돌을 피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해내는 것이 외교다. 이 외교가 사라지는 순간 전쟁은 시작된다. 외교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지금 이란에 필요한 생존전략은 핵 폐기를 통한 경제회복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동의 북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