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1990년대의 어느 날, 옆자리의 외국 여성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려 김포공항 입국장으로 가던 중 그 여성을 기다리던 남성이 나타나 여성에게 서서히 다가가더니 둘이 진한 포옹을 하더란다. 그걸 보는 순간 해외에서 걸린 몸살기도 갑자기 사라지더라는 데..., 그로부터 공항에서 남녀가 포옹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고 했다.(마음자리 님 게시 글) 왜그런지는 짐작이야 하지만 본인만이 알리라.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는 부대를 따라 종군(從軍)하고 나는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피란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되어서야 아버지는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찾아왔는데,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 없는 설움과 허전함으로 지냈다. 어느 날 이른 새벽 사립문 여는 소리가 나면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던 모양이었다. 그 소리에 놀라 모두 깨어나 마루로 나섰고, 아버지가 다가서는 거였다.
나는 제일 먼저 달려 나가 아버지를 외마디로 부르며 그 품에 안겼다. 이게 내 생애 첫 포옹이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아버지의 품을 빼앗기고 말았으니, 할아버지는 아니더라도 할머니, 작은아버지, 큰고모, 작은 고모 등등이 나를 밀쳐내고 아버지 품으로 다가섰다. 이게 내 생애 첫 비애였다. 그 뒤로 나는 아버지 품에 안겨본 일도 없이 건조한 관계를 유지했다. 근엄하신 아버지 성품 때문이었을까?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5남매 중 맏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지만 나는 늘 근엄한 아버지였다. 그래서 자식들을 품어 안아본 일이 없다. 아버지의 그 성품 때문이었을까? 그들을 품어 안아주는 건 할아버지 할머니 몫이었을 뿐이었다.
이 메마른 사내에게 포옹의 기회가 온 건 다 커서 처제 때문이었다. 아내의 아래아래 처제가 대학 졸업하자마자 사귀던 이태리 청년과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결혼했다. 나는 그 생활이 늘 궁금했지만 완고한 장모님은 그 국제결혼이 부끄러웠던지 숨기는 눈치였다. 나도 그걸 알려고 하지도 아니한 채 지내다가 아내를 동반해 미국 처제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엘 에이 공항에서 나는 준비도 없이 환영 나온 처제를 만났는데 갑자기 나를 포옹해 황홀했던 기억이다. 물론 조금 뒤에 그 품을 아내에게 빼앗기고 말아 다시 서운해졌지만 말이다.
나는 두 딸로부터 손주 넷을 보았다. 이젠 다 컸지만 어렸을 때부터 포옹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나 쓰다듬어주고 하이파이브나 한다. 그건 그들의 품을 그 부모로부터 빼앗기 싫어서이다. 고루한 사람은 고루한대로 살아가야 하는 모양이다.
첫댓글
유하신 느낌으로 봐
포옹에 익숙하실 것
같은데요.아니신가 봅니다.
저도 남을 선뜻 안지 않습니다.
안 해 봐서요.
제 아버지는 제가 다치면 안아 주셨습니다.
약도 발라 주셨고요.ㅎㅎ
그러시군요.
고맙습니다.
포옹이란 표현에는
'껴안기' 라는 말과 허그란 표현도 있네요.
어린 시절,
선생님이나 어른들로부터 귀염을 받을 때
껴안아 주셨다라든가 안아 주셨다.라고 합니다.
*포옹의 효과에는
기분전환과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으며 행복감을 준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을 주네요.
포옹을 많이 할수록 정신 건강에 좋아서
많이 하면 좋겠지만,
포옹해도 무난할 사이가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정신위생적으로는 대폭 확대하는게 좋을것 같지만 굳어진 정서가 주저하게 하네요.
전 제 아버지 품에 안겨 본 기억이 없습니다. 자애로우셨는데 안아주진 않으셨습니다. 대신 목말을 딱 한번 태워주셨은데,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보러갔던 흑백영화 장면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제 아들은 제가 안아주는 것을 꺼리고 제 딸은 좋아합니다.
손주들이 있으면 많이 안아주었을 텐데 불행하게도 아이들이 결혼 생각이 없답니다. ㅎ
포옹은 아니지만, 엄마 다리 사이에 앉아 엄마 품에 등 기대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품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엄마품에 등 기대고~
그럴테지요.
저도 딸 둘을 두었는데, 작은딸은 지금도 막 안기면서 반가움을 표시하지만 큰딸은 서먹해 합니다. 제가 아이들 20 세부터 '아버지' 라 부르라고 하며 엄하게 대한 탓으로 해석이 됩니다.
무조건 시대에 맞추어 살아갈 수도 없고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문화만을 기준으로 할 수도 없으니, 무엇이 옳다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맞아요.
사랑만 담기면 되겠지요.
그래도 몸짓이 중요하기도 하고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에, 각 가정마다 분위기나 관습이 다르기도 하겠지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과 딸에 있어서도 그럴테고요.
예쁜 처제와의 포옹 황홀한 추억이겠습니다
네에, 그랬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