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곡가, 피아노 주자, 교육자. 낭만파의 전통을 계승,
당시 유럽에서 인정된 최초의 미국 음악가 중 한 사람. 8세에 피아노를 시작,
1876년 파리로 건너갔습니다. 이들 해 파리 음악 원에 입학했으나 마음에 맞지 않아 독일로 옮깁니다.
1879년 프랑크푸르트 음악 대학에 들어가 라프 (Raff)에게 작곡을 사사. 그 이듬해 음악 대학을 떠나고,
1881년 다름슈타트 음악 원의 강사가 되었습니다.
1882년 리스트의 추천을 얻어 <제1 근대 모음곡>을 취리히에서 초연하여 성공을 거두고 작곡가가 될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듬해 다시 리스트의 추천으로 <제1 근대 모음곡>과 <제2 근대 모음곡>이 출판되고,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리스트에게 헌정,
그 후 1883년에 미국으로 돌아 오기까지 독일에 체재하면서 작곡, 연주, 교육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귀국 후 보스턴에서 활약하며 미국의 주도적 음악가로서 지위를 확보.
1896년 컬럼비아 대학 최초의 음악과 교수에 취임하여 열심히 교육에 힘 썼으나,
1904년 대학측과의 대립으로 사임. 교통사고에 의한 뇌 장해로 인해 마지막 3년간은 폐인이 되었습니다.
작품은 독일에서 받은 낭만파의 교육에 뿌리박고 있으며, 미국 특유의 요소는 적습니다.
특히 자신이 통달했던 피아노를 위한 작품은 리스트와 그리그의 영향이 큽니다.
그 중에서는 <들 장미에게> (1896) 등 몇 개의 소품이 널리 알려져 있습다.
인디언의 선율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디언 모음곡>도 결코 독일 낭만파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Piano Concerto No.2 in D minor, O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