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름철 지내기가 유별나다.
다한증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특히 가슴과 얼굴 등허리가 심하다
일이랍시고 뭘 좀 하면 나 혼자 다하는 듯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마는데 신경구조가 어디에 이상이 있어서 그렇단다. 수술하면 되지만 다른 쪽으로 옮길 우려가 있어 수술로도 근본적으로 고치지 못하는 선천적 체질이란다.
모친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면 극심한 다한증이었는가 싶다. 그 당시는 삼베적삼이 일상복인데도 온통 물에 적신 듯했다. 아마 모계유전인 듯하다. 동갑내기 외사촌도 나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 친구가 경찰을 퇴직하고 학교에 선도선생을 하는데 화단에 풀이라도 뽑을 때 도와주려 하면 보기에 민망하다며 제발 그만두라고 애걸하는 바람에 그것도 못한단다.
내가 이 다한증 때문에 덕 본 경우가 딱 한번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영어선생이 청마 유치환의 조카인 유기식선생님이었는데 이양반이 얼마나 무섭고 와일드한 지 공포 그 자체였다.
드럼칠 때 쓰는 막대를 들고 다니며 모질게 손바닥과 머리통을 야무지게 때렸다.
문제는 한 단원이 끝나면 서너 장씩이나 되는 문장을 외워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도 좋은 영어학습법이라 싶은데 20리가 넘는 길을 자전거로 통학할 때인데,
저녁밥만 먹으면 잠이 쏟아지는 판에 그놈을 다 외우기에는 언감생심 불가능했다. 1학년 때 알파벳 네 가지 외우고 쓸 때부터 따라가지 못하여 영어에 취미가 붙지 않았는데 정말 영어공부가 되지 않았다.
외우기를 통과하지 못한 전체의 삼분의 일 정도는 방과 후에 남아서 복도청소를 해야 했다.
그 당시 복도는 나무판자로 되어 있고 초 칠을 하여 마른걸레로 문질러야 반들반들 윤이 났다. 물론 요령을 피우면 드럼봉 세례가 날아왔다. 그때도 여름이었는지 내 얼굴과 등허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었고 선생님은 나를 지목하고 집에 가도 좋다고 하셨다. 그때 기분을 말할 것 같으면 로또라도 당첨된 기분이었겠지만. 그 좋은 선생님한테 왜 영어공부를 열심히 안 했던고 싶다
돌아보니 50년도 더 지난 세월인 것 같다. 좋은 스승을 만나도 시절인연을 잘못 만나면 어쩔 수 없나 보다.
지금이라도 이까짓 다한증 수백 개라도 영어와 바꿀 수 있으면 언제라도 바꾸고 싶다.
첫댓글 어릴 땐 외우는 숙제가 왜 그리 많던지요.
구구단과 국민교육헌장은 초딩때 외우고 중고등학교 국어시간 영어시간 외울 숙제가 어찌나 많던지... ㅎ
저는 암기력은 빵입니다
특히 영어는 말할 것도 없어요
다한증을 생각하면,
영어선생님 유기식 선생님이 생각 나겠습니다.
부모 슬하에 있을 땐 공부하기 싫지요.
놀고 싶은 마음이 먼저니까요.ㅎ
청마 유치환 선생님의 조카이면,
극작가 유치진님의 아들일까요.
여름이면, 좀 곤란한 날들이 많겠습니다.
여름, 잘 보내셔요.
극작자 유치진선생의 자제이신데 당시에는 청마의 아들이라고
알았습니다
원체 맹혈선생이라 나중에는 경북대학교 교수가 되셨다 합니다
그때는 다한증인지도 몰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