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회당제도는 바벨론 포로기간(BC606-536)중에 생겼다.
유대인들이 고국에서 정상적으로 살 때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행위를 하며 예배를 드렸었다.
그러나 바벨로니아에 의해 성전은 파괴되었고,
유대민족은 각처로 흩어져서 예루살렘에서 제사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유대인이 10명만 되면 회당(사나고그)를 세울 수 있다.
회당에서는 모여서 기도하고,예배 드리고, 교육하는 장소 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은
성전을 대신해 회당에서 모여 율법을 강론하고 시편을 낭독했다.
이 무렵에 유대교의 틀을 갖추게 되었고,
포로 후에는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성전과 함께 회당제도가
각 동리마다 보편화하게 되었다.
이 회당제도가 생긴 후에 새롭게 생긴 직제가 있는데,
그것은 소위 ‘서기관’(Scribe) 또는 ‘율법사’라는 랍비들이다.
이들이 처음에는 성서를 복사하는 일을 하였으나,
차츰 성경 연구와 해석을 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이러한 회당은 예루살렘 성전이 A.D 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되자
회당의 중요성이 더 커졌고 유대인들의 종교적,사회적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다.
회당은 예배와 종교적인 모임을 위한 장소요 학교였으며
사법적인 절차를 집행하는 곳이기도 했다.
1세기 문헌에 따르면 회당들은 팔레스타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로마·그리스·이집트·바빌로니아·소아시아 등지에도 많았다.
1세기 중반까지 대부분 유대인 공동체는 회당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매일 아침·점심·저녁에 예배를 드렸으며,
샤밭날(안식일)과 종교 절기들에는 특별한 의식을 행했다.
이러한 회당이 생기자 유대교 역사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회당은 종교의식에 있어서 전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냈는데,
공적인 종교의식의 성격에도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즉 예루살렘 성전이 없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으로서
그때까지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짐승을 죽여서 바치는 희생 제사가
기도와 종교적인 학습과 권고로 대체된 것이다.
공동체를 대표해 공적인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제사장의 전유물이 아니라 종교의식이 모든 이에게 개방되게 된 것이다.
이제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처럼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바깥뜰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되었고,
모두가 직접 종교의식을 이끌어 가는 주체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회당은 성전처럼 어떤 한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생겨났을 정도로 보편적인 기구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회당(Synagog)이라는 말은 ‘함께 모이다’라는 뜻의 synagein에서 유래된 말이며,
회당의 전통적인 기능은 그것이 갖고 있는 3가지 히브리어 이름인
베트 하테필라(기도하는 집), 베트 하크네세트(집회하는 집), 베트 하미드라시(공부하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