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뿔산 / 신성희
저것은 나의 뿔일 것이다
감출 수 없는 마음이 어디로도 나지 않는 길을 찾으며 내 뿔이 저기로 걸어갔을 것이다
벗어 놓았던 내 피부들이 서로에게 기대고 기대어 뾰족해졌다
갇혔던 소리들이 시끄럽게 검어졌을 것이다 꽃 하나 자라지 못하게 딱딱해졌을 것이다
거대한 몸집을 감추며 밤에만 걸어갔을 것이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누르며 조금씩, 조금씩 서쪽으로 융기했을 것이다 검은 뿔로 천천히 솟아났을 것이다
뿔을 잃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뿔이 된다
ㅡ시집 『당신은 오늘도 커다랗게 입을 찢으며 웃고 있습니까』 (민음사, 2022) -------------------------------
* 신성희 시인 경북 안동 출생. 2016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당신은 오늘도 커다랗게 입을 찢으며 웃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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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희 첫 시집 『당신은 오늘도 커다랗게 입을 찢으며 웃고 있습니까』(2022.10)를 읽으며 약간의 통쾌함을 느꼈다. 물론 모든 시는 슬프다고 생각하지만, 슬프면서도 시원한 데가 있었다. 아마 이 시집에 서린 그로테스크함 때문인 것 같다. 근 몇 년간 무해하기로 작정한 시들을 주로 접하다가 이 시집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찌르고, 자르고, 내리치는 것들이 그리웠다. 세계를 반으로 쭉 찢어 불속에 던져버리고 싶은 내 마음에 와 닿는 시집이었다. 그런데 그 그로테스크함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저것은 나의 뿔일 것이다
감출 수 없는 마음이 어디로도 나지 않는 길을 찾으며 내 뿔이 저기로 걸어갔을 것이다
(……)
갇혔던 소리들이 시끄럽게 검어졌을 것이다 꽃 하나 자라지 못하게 딱딱해졌을 것이다
거대한 몸집을 감추며 밤에만 걸어갔을 것이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누르며 조금씩, 조금씩 서쪽으로 융기했을 것이다
결국 “내 뿔”을 키운 것은 “감출 수 없는 마음”이자 “갇혔던 소리들”이며 억눌려 있던 “터져 나오는 울음”이다. ‘나’는 ‘나’의 “거대한 몸집을 감추”려고 어둠 속을 걷는 사람인데, 그렇다는 것은 타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불편을 주는 것을 피하고 싶은 다정한 사람인 건데, 어째서 ‘나’는 ‘검은 뿔’을 키워내게 된 걸까. 여기에 피로 쓴 기록이 있다. 난자당하는 고통을 끝없이 겪고 목격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지 않으면 ‘나’는 죽어서, 결국에 무녀가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이곳에선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아/ 검은 솔개가 살육당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지”(「바이칼의 무녀」). 살육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순간 인간이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엉망진창이고 모든 게 잘못되고 비틀린 세계를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것을 계속 목도하며 살아간다면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미진한 느낌을 주며 이 시에 대한 비평은 여기까지에서 끝나고, 평자의 언급은 시집 속 다른 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짐. _옮긴이
—《문학동네》 2022 겨울호, 신성희 시집 '서평' 중 부분 --------------------- 백은선 (시인)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에 당선하여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가능세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도움 받는 기분』,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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