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조갑제닷컴’의 최신정보파일을 열어보면 한명숙 국무총리의 국가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제목의 글이 여러 편 올라와 있습니다. 국무총리면 대통령 다음으로 국가에 대한 책임의식이 충실해야 하는 자리인데 총리의 국가관을 따져 물어야 하는 세상이니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너무 득세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한명숙 총리 남편의 평택 反美 활동(조갑제), 한명숙의 조국은 어디인가(김성욱), 한명숙은 조국에 충성서약해야(김상철), 한명숙 총리부부는 대한민국에 충성하는가(국민행동본부), 한명숙 총리의 국가관은 무엇인가(양영태)… 등의 글이 있는데 그 중에서 ‘미래한국신문’ 기사를 많이 참조한 ‘한명숙 총리 남편의 평택 反美 활동’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다가 가슴이 서늘해지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사람마다 서 있는 위치가 같을 수는 없으니 세상 현실을 바라보는 각도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힘도 별로 없고 세상에 대한 영향력도 미미한 산골의 농부나 어느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헛소리를 하면 지구 반대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더라 하는 소식을 접할 때만큼이나 ‘그런들 어떠하리’ 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상식이라고 믿는 가치가 높은 지위에 있는 자에 의해 부정될 때면 고통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나의 가치관으로 볼 때 그만큼 세상에 부조리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한명숙 총리 남편이라는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폭력의 골짜기를 넘어 평화의 너른 들녘으로’라는 논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슬람의 지하드(소위 ‘성전聖戰’)는 미국이 아랍세계에 가해온 폭력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제된 폭력이다. 9.11테러에 대해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이 당해 싸다, 통쾌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편이었다.”
경악! 경악입니다. 박성준 교수는 특별한 퀘이커 평화주의자 행세를 하지만 나의 시각에 박 교수의 지성은 아주 많이 썩은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박 교수가 신실한 평화주의자라면 나의 시각이 단단히 병들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9.11테러로 건물이 불타고 무너져 내릴 때 죽음이 구체적으로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직감한 희생자들이 밖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한 내용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공통적으로 “그동안 감사했어요. 사랑해요”하는 고백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 고백을 듣는 가족들은 모두 영혼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들도 모두 안타까운 희생자들이며,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결코 통쾌해 할 모습은 아닙니다.
미국의 어떤 정책노선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미주의’라는 이념에 빠져 죄 없는 미국인이 희생되는 것조차 고소하다고 하고, 대한민국 과거에 대해서는 ‘철저한 인권’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부정적으로만 파헤치고, 김일성/김정일 세습독재체제를 대할 때는 ‘인권’의 잣대를 내팽개쳐버리고 ‘내재적접근법’을 적용하며 옹호하는 것은 이념의 노예가 된 모습일 뿐입니다.
어떻게 “박정희 때는 인권탄압이 있어서 근본적으로 틀렸노라” 하면서 박정희 때보다 훨씬 심각하게 자유와 인권이 유린되는 북한 주민의 고통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모른다!”고 하거나 북한 인권을 말하려고 하면 “입 닥쳐라!”고 떠들 수 있습니까? 그런 이중성에 깊이 뿌리내려놓고는 ‘인권주의자’나 ‘평화주의자’ 행세를 하는 것은 역겹습니다.
박정희가 인권탄압을 해서 틀렸다고 말하려거든 김일성은 박정희보다 인권탄압을 더 강하게 했으므로 더 많이 틀렸다고 해야지요. 차라리 자칭 ‘범 민주양심 진보개혁 세력’이 ‘인권’을 들먹이지 말고 ‘반미주의’를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다고 고백을 한다면 최소한의 정직성은 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모든 폭력은 옳지 못하다고 믿지만, 박성준씨 주장대로 지하드가 통제된 폭력이라고 합시다. 상대적으로 작은 폭력은 정당한 겁니까? 한국의 김선일씨는 중동지역에 갔다가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그것은 미국이 아랍세계에 가해온 폭력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제된 폭력에 의한 것이니 그 테러리스트들은 미국 탓을 하면서 얼마든지 책임을 회피해도 되는 것입니까?
퀘이커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어떻게 그처럼 가슴이 메마른 개소리를 논문에 적을 수 있었는지 용납이 안 되네요. 도대체 박성준씨는 어떤 인간들과 어울려 지내기에 대체로 9.11테러는 통쾌하다고 말한 것입니까? 조지 폭스처럼 아주 사소한 거짓말 한 마디에 대해서도 지극히 순수하고 맑은 샘물에 먹물이 떨어진 것처럼 가슴아파는 감수성이 있다면 ‘그것이 통쾌해 할 일은 아닙니다’라고 조언했어야지요.
박성준씨는 무슨 근거로 퀘이커 교도 행세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조지 폭스(1624-1690, 퀘이커 시조)는 박씨처럼 결코 그렇게 상대적으로 작은 폭력을 미화하는 이념숭배자가 아닙니다. 조지 폭스는 산상수훈(마태5:1-7:29) 수준의 진실과 거룩을 투철하게 지향하던 중 내면에서 광명을 목격한, 모든 얼치기 이념의 초월자이며 신비주의자입니다.
노 대통령의 KBS특별회견에 “…그때 선두에서 그거 반대하고 투쟁하고 했던 사람들 지금 여전히 또 일만 생기면 반대 투쟁에 맨 앞장 서 가지고 투쟁합니다… 용산 기지 바깥으로 옮기라는 거 아닙니까? 용산 기지 바깥으로 옮기자면 어딘가 자리를 마련해 줘야 될 거 아닙니까?
그 사람들 다 용산 기지 반대하는 사람들인데, 용산 기지 옮기려고 평택 자리 마련하려고 하니까 거기 가서 또 반대해 버리고…. 그런데 이렇게 가면 나라가 제대로 갈 수가 없죠.”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국무총리 남편이라는 사람이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 범대위의 배후로 활동했다고 하니 때때로 대통령 해 먹기가 힘들기는 힘들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반미주의’라는 이념에 매몰되어 미국의 폭력은 처절하게 부정하는데 미국과 대립하는 위치에 있는 후세인이나 북한의 폭력은 의미를 축소시켜주지 못해 안달복달할 뿐더러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친북좌익(이들은 미국의 북폭 가능성은 격렬하게 부정하는데, 북한의 남침 가능성은 철저하게 은폐합니다) 코드를 나타내는 박성준씨가 퀘이커 교도일 수 있다면 똥파리도 새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한명숙 총리 남편인 박성준씨에게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네요. 한 총리가 남편의 뜻을 받들어 “매 맞는 시위대와 매 맞는 경찰이 다같이 없어야 한다”며 시위대와 경찰을 동일선상에서 대비해주고 있는 판국이니 평택 범대위 할동을 하는 것까지야 안 말리겠는데, 퀘이커 평화주의자 행세는 안 했으면 합니다. ‘퀘이커’뿐만 아니라 ‘평화’라는 단어를 모독하지 마십시오. |
첫댓글 평화를 위해 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