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구도를 생각하다 / 강인한
겨울의 차가운 별들이 시리우스를 바라본다. 보름 전 이태원 항구를 떠난 젊은 별들은 지금 어느 하늘을 항해하고 있는가. 키 작은 명자나무랑 꽝꽝나무 아래서 통통 튀는 탁구공만한 참새들이 정글짐처럼 우거진 측백나무 가지 새로 파고드는 오후 세 시 셔터의 마법이 떠도는 시간이다. 시선을 십오 도로 끌어올려 연민의 각도를 높인다. 내 일찍이 살아온 발자국 밟아온 발자국마다 언젠들 꽃이 피었으랴. 황금의 삼화음이 불꽃처럼 터졌으랴. 역사란 허구와 집념의 꿈을 반죽하여 밀어붙이는 것이지. 국가애도기간이 끝난 뒤, 이방의 병든 소년을 끌어안고 수없이 연습한 기도의 자세를 시전하는 것. 내 인생의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위한 열네 살 소년의 집에서 풀어놓는 자비의 포즈. 셔터 없는 자비란 난센스일 뿐. 슬픈 주검을 무릎에 앉힌 성모의 구도를 내 프로필 뒤 눈부신 역광으로 거룩하게 드리운다.
— 《현대시학》 2023년 1-2월호 --------------------------------
* 강인한(姜寅翰) 시인(본명 동길東吉)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칼레의 시민들』『황홀한 물살』『푸른 심연』『입술』『강변북로』『튤립이 보내온 것들』『두 개의 인상』 등 시선집 『어린 신에게』『신들의 놀이터』『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시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 전남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시와시학 시인상, 전봉건 문학상 등 수상.
*********************************************************************************************************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남편을 따라간 김건희 여사가 열네 살 심장병 소년의 가정을 방문했다.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인 앙코르와트 방문을 전격 취소하고 그곳에 간 김 여사는 자신의 무릎 위에 소년을 앉히고 그의 오른다리 정강이를 어루만졌다.
그 장면이 담긴 사진을 두고 ‘빈곤포르노' 논란과 ‘조명 사용' 의혹이 불거졌다. 대통령실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사진기자가 아니라 대동한 사진작가의 사진 촬영에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의혹의 출발점은 아마도 갑자기 들이닥친 이국의 여인에게 안겨 모델이 된 소년의 눈이 아닐까 싶다. 누가 봐도 어색함과 당혹감이 역력하다.
시인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제목처럼 두 사람의 포즈는 르네상스 시대 거장 미켈란젤로가 새긴 ‘불멸'의 조각 피에타와 판박이 ‘구도’다. 김 여사를 화자로 풍자적으로 쓴 이 시의 압권은 "셔터 없는 자비란 난센스일 뿐"이란 시구.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 임종명 (전 한국일보 기자, 네이버 블로거 ‘숲속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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