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태오회장님의 카톡에서]
🏞 삶은 소풍(逍風)이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游)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고~!
장자 사상의 중요한 특징 (特徵)은 人生을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하루하루의 삶의 그 자체로서 중(重)히 여기고 감사(感謝)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目的)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手段)인 것처럼 기계적 소모적(消耗的)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자(莊子)는 우리에게 人生에 있어서 '일'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소풍(逍風)을 권한 사람이다.
우리는 '일'하러 世上에 온 것도 아니고, 成功하려고 世上에 온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다 부차적(副次的)이고 수단적(手段的)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과거 생(生)에 무엇을 잘 했는지 모르지만, 하늘로 부터 '삶'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 우주에는 아직 삶을 선물을 받지 못한 억조창생(億兆蒼生)의 '대기조'들이 우주의 커다란 다락방에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이 삶을 하늘로 부터 선물(膳物) 받아 이렇게 지구에 와 있지 않은가?
삶을 수단(手段) 시 하지 마라. '삶' 자체가 목적임을 알라.
이 '삶'이라는 여행(旅行)은 무슨 목적지(目的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이여! 이 여행(旅行) 자체를 즐겨라.
장자(莊子)가 말한 소요유(逍遼遊)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인생이란 소풍(消風)이다.
무슨 목적(目的)이 있어서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풍(消風)을 보내면서 단지 열흘짜리 휴가증을 끊어 주신 건데, 하나님 사시는 중심우주와 우리가 사는 외각우주가 서로 흐르는 시간대가 달라 그것이 백 년이 된 것 뿐이다.
장자(莊子)가 말한 '소요유'에는 글자 어디를 뜯어봐도 바쁘게 조급한 흔적(痕迹)의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소(逍) 자는 소풍 간다는 뜻이고!
"요(遼) 자는 멀리 간다는 뜻이며!
"유(遊) 자는 노닌다는 뜻이다.
즉 '소요유'는 멀리 소풍 가서 노는 이야기이다.
그러니'소요유'를 제대로 하려면 내리 세 번을 쉬어야 한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 나는 대로 쉬고 쉼 없이 달리는 인생열차!
우리 여생(餘生)의 종착역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人生 짧습니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날들입니다.
짐을 진 자는 모두를 내려놓으시고, 동심(童心)으로 돌아가 소풍 온 듯 쉬엄쉬엄 희희낙락(喜喜樂樂) 후회(後悔) 없이 즐겁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한 박자 쉬면 삶의 여유(餘裕)는 두 배가 된다고 했습니다.
소풍(消風)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이 보배로운 길이 되고 보람 있었던 모두의 길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도 사랑가득한 하루가 되시기를! ♡♡♡
===============================
< 山中日記(至人無己) >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전체인구가 80여만명
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3,000
달러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요즘 각국의 '국민행복도' 조사에서 단골로 상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 연유를 쫒아가면 이 나라에 아주 뛰어난 국왕이 있습니다.
바로 왕추크 국왕입니다. 이 국왕
은 국정의 목표를 국내총생산
(GDP)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총행복(GNH)지수를 높이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헌법에 ‘숲은 최소한 국토의 60%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예산이지만 그 예산을 자연과 교육과 의료에 쏟아 부었습니다.
고등학교 까지 무상교육이고 의료 또한 무상입니다.
이 국왕은 으리으리한 궁전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숲속에 있는 작은 나무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하들도 검소하게 사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국민들은 남과 비교해서 내가 잘사니, 내가 못사니 초조해 할 일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지그메 싱계 왕추크 국왕과 그 뒤를 이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 정치를 펼치면서
혹여 후대를 이을 왕 중에 폭군이
나 독재자가 나타날 것을 우려해
서 자신들이 왕으로서 가지는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국민들에게 자신들
의 의견을 알렸고, 의회에도 통보
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직접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고 국민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민주주의로 체제를 변경하겠다고 했는데도
오히려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국왕이 정치를 너무 잘하였기에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현재의 전제군주제를 고수하려
고 할 정도로 부탄은 정말로 평화로운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반대와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그메 싱계 왕추크 국왕은 국민들에게 적극
적으로 민주화를 설득했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도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필요성
을 강력하게 주지시키면서 의회의 반대를 일축했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2008년 7월 18일 세계에 유례없는 소위 하향식 민주주의
가 실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민주주의로 체제가 바뀌면 왕권
은 자연스럽게 약해지는 것이 통례인데, 부탄도 예외는 아니었
습니다.
헌법을 통해 왕권 약화를 위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부탄을 다스리는 왕추크 왕조의 국왕은 다음의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를 도입하나 국왕은 그대로 유지하는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다.
왕의 혈통은 이어진다.그러나 왕
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왕은 65세가 되면 반드시 은퇴해야 한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부탄의 모든 국민에게 뜻을 물어 과반수면 즉위를 할 수 있다.
또한 왕이 폭정을 일삼을 때에는 의회가 왕의 폐위 투표를 개최할 수 있으며,
국민의 3분의 2가 왕의 폐위에 찬성하면 왕은 즉시 폐위된다.'
이런 규정들은 왕권을 약화시키
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만 애초에 국왕이 앞장서서 왕권 약화를 주도한 것이기에 이 법률은 별다
른 문제없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러한 국왕의 과감한 개혁, 검소
한 생활, 국토 구석구석까지 방문
하여 국민들과 소통하는 행보,
평민과의 결혼 등에 수많은 국민
들이 감동하여 왕가의 인기와 권위가 가히 절대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국왕의 결혼식이 열렸을 때
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전국에
서 축제를 열고 축하했을 정도였
다고 합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총리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녀가 18년 동안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예전과 다름없이 겸손했고 자신
보다 앞섰던 정치인들과도 싸우
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재임 18년동안 한결같이 그녀는 새로운 패션으로 옷을 갈아입지 않았습니다.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메르켈
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있는 것을 주목했는데, 다른 옷은 없는지요?"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모델
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또 다른 기자회견에서도 한 기자
가 물었습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도우미가 있습니까?"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남편과 저는 매일 이 일들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럼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남편이 합니까?"
이에 메르켈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옷을 손보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립니다. 대부분 이 일은 무료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지금 메르켈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독일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습니다.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
인이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이 한결같습니다.
어떤 국회의원은 그에게 사인 받은 책을 보여주며 눈물까지 흘립니다.
1946년부터 23년간 총리를지낸
타게 엘란데르(1901~1985)는 재임 중 11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마지막 선거에서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을 넘는 득표
율로 재집권한 후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납니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깁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20여 년의 장기집권이 가능하도록 스웨덴 국민들이 신뢰를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총리시절에도 관저 대신 임대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
습니다.
출퇴근도 관용차 대신 어머니가 직접 운전하는차를이용했습니다
임대주택은 자신의 재임시절 서민을 위해 지은 아파트입니다.
그는 특권을 버리고 국민의 삶속으로 들어와 친구처럼,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습니다.
1968년 국민들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랍니다.
타게 엘란데르가 총리를 그만둔 후 거처할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원들이 급히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합니다.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봄메쉬빅, 한적한 시골마을
입니다.
부부는 마을 호숫가 옆 작은 주택에서 16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총리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지자보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이 더 많이 찾았다고 합니다.
타게 엘란데르는 떠났지만 23년동안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스웨덴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잡았고 세계 최고의 행복한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정직, 겸손, 헌신, 대화와 타협, 검소하고 특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탄의 왕추크 국왕은 전제군주
였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중도우파,스웨덴의타게엘란테르
총리는 급진좌파였습니다.
이들은 정치체제나 이념, 계파를 초월하여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추구함으로써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는 냉혹할 정도로 엄격하고 남에게는 한없
이 관대하면서 국민을 진심으로 섬기는 살신성인의 길을 걸었습
니다.
장자 소요유편에 지인무기(至人無己)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사람은 나라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나를 버리고 나면나아닌
것이 없다'는 말로 “나와 나 아닌 것이 하나된 삶”을 영위하게된다
는 것입니다.
윤석열아!
절반만따라해라.
아니
1/10 이라도
본받아라
이넘아!!!
정신차려
이넘아!!!
< 山中日記(至人無己) >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전체인구가 80여만명
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3,000
달러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요즘 각국의 '국민행복도' 조사에서 단골로 상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 연유를 쫒아가면 이 나라에 아주 뛰어난 국왕이 있습니다.
바로 왕추크 국왕입니다. 이 국왕
은 국정의 목표를 국내총생산
(GDP)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총행복(GNH)지수를 높이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헌법에 ‘숲은 최소한 국토의 60%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예산이지만 그 예산을 자연과 교육과 의료에 쏟아 부었습니다.
고등학교 까지 무상교육이고 의료 또한 무상입니다.
이 국왕은 으리으리한 궁전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숲속에 있는 작은 나무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하들도 검소하게 사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국민들은 남과 비교해서 내가 잘사니, 내가 못사니 초조해 할 일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지그메 싱계 왕추크 국왕과 그 뒤를 이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 정치를 펼치면서
혹여 후대를 이을 왕 중에 폭군이
나 독재자가 나타날 것을 우려해
서 자신들이 왕으로서 가지는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국민들에게 자신들
의 의견을 알렸고, 의회에도 통보
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직접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고 국민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민주주의로 체제를 변경하겠다고 했는데도
오히려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국왕이 정치를 너무 잘하였기에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현재의 전제군주제를 고수하려
고 할 정도로 부탄은 정말로 평화로운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반대와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그메 싱계 왕추크 국왕은 국민들에게 적극
적으로 민주화를 설득했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도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필요성
을 강력하게 주지시키면서 의회의 반대를 일축했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2008년 7월 18일 세계에 유례없는 소위 하향식 민주주의
가 실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민주주의로 체제가 바뀌면 왕권
은 자연스럽게 약해지는 것이 통례인데, 부탄도 예외는 아니었
습니다.
헌법을 통해 왕권 약화를 위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부탄을 다스리는 왕추크 왕조의 국왕은 다음의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를 도입하나 국왕은 그대로 유지하는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다.
왕의 혈통은 이어진다.그러나 왕
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왕은 65세가 되면 반드시 은퇴해야 한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부탄의 모든 국민에게 뜻을 물어 과반수면 즉위를 할 수 있다.
또한 왕이 폭정을 일삼을 때에는 의회가 왕의 폐위 투표를 개최할 수 있으며,
국민의 3분의 2가 왕의 폐위에 찬성하면 왕은 즉시 폐위된다.'
이런 규정들은 왕권을 약화시키
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만 애초에 국왕이 앞장서서 왕권 약화를 주도한 것이기에 이 법률은 별다
른 문제없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러한 국왕의 과감한 개혁, 검소
한 생활, 국토 구석구석까지 방문
하여 국민들과 소통하는 행보,
평민과의 결혼 등에 수많은 국민
들이 감동하여 왕가의 인기와 권위가 가히 절대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국왕의 결혼식이 열렸을 때
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전국에
서 축제를 열고 축하했을 정도였
다고 합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총리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녀가 18년 동안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예전과 다름없이 겸손했고 자신
보다 앞섰던 정치인들과도 싸우
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재임 18년동안 한결같이 그녀는 새로운 패션으로 옷을 갈아입지 않았습니다.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메르켈
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있는 것을 주목했는데, 다른 옷은 없는지요?"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모델
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또 다른 기자회견에서도 한 기자
가 물었습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도우미가 있습니까?"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남편과 저는 매일 이 일들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럼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남편이 합니까?"
이에 메르켈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옷을 손보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립니다. 대부분 이 일은 무료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지금 메르켈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독일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습니다.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
인이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이 한결같습니다.
어떤 국회의원은 그에게 사인 받은 책을 보여주며 눈물까지 흘립니다.
1946년부터 23년간 총리를지낸
타게 엘란데르(1901~1985)는 재임 중 11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마지막 선거에서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을 넘는 득표
율로 재집권한 후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납니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깁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20여 년의 장기집권이 가능하도록 스웨덴 국민들이 신뢰를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총리시절에도 관저 대신 임대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
습니다.
출퇴근도 관용차 대신 어머니가 직접 운전하는차를이용했습니다
임대주택은 자신의 재임시절 서민을 위해 지은 아파트입니다.
그는 특권을 버리고 국민의 삶속으로 들어와 친구처럼,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습니다.
1968년 국민들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랍니다.
타게 엘란데르가 총리를 그만둔 후 거처할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원들이 급히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합니다.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봄메쉬빅, 한적한 시골마을
입니다.
부부는 마을 호숫가 옆 작은 주택에서 16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총리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지자보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이 더 많이 찾았다고 합니다.
타게 엘란데르는 떠났지만 23년동안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스웨덴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잡았고 세계 최고의 행복한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정직, 겸손, 헌신, 대화와 타협, 검소하고 특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탄의 왕추크 국왕은 전제군주
였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중도우파,스웨덴의타게엘란테르
총리는 급진좌파였습니다.
이들은 정치체제나 이념, 계파를 초월하여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추구함으로써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는 냉혹할 정도로 엄격하고 남에게는 한없
이 관대하면서 국민을 진심으로 섬기는 살신성인의 길을 걸었습
니다.
장자 소요유편에 지인무기(至人無己)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사람은 나라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나를 버리고 나면 나아닌것이 없다'는
말로
“나와 나 아닌 것이 하나된 삶”을 영위하게된다
는 것입니다.
==============================
♤생각하는 글♤
♡쫓겨난 할머니 (실화)
아들을 생각해서 모든
재산도 다 미리 상속해주고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한 서울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과 며느리가
할 말이 있다며 말하기를
"어머니!
저는 어머니랑
마음이 안 맞아서
같이 못 살겠어요!
이제 집을 나가주세요!
나가서 혼자 사세요! "
"이런
짐승만도 못한 녀석들.....”
어머니는
그날 마음에 너무나
큰 상처를 받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버림받고
돈도 없이 집을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당장 먹고
살 곳도 없고
돈도 없고.....
정처 없이 그저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무조건
번듯한 동네를 찾아가서
벨을 누르고 파출부로
써달라고 슬픔을 참으며
할머니는
간절히 부탁을 하면서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할머니는 심신이 모두 지친 가운데 계속 퇴짜를 맞다가
어느 집인가에서
할머니를 보고 그 집
주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저희 집에 아버님이
병환으로 누워계시는데
혹시 외람되지만
가능하시다면 병간호 좀 해주시고 그냥 말벗도 좀 되어주시겠어요?"
아들과
며느리에게 쫓겨나
거처와 돈이 없었던
할머니는
"네! 그럼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머니는
그날부터 그 집에 들어가
사랑과 정성을 다해
그 집 환자
할아버지를 돌보고
친구처럼 말벗이 되어주었습니다.
어느덧
그렇게 1년이 지날 쯤 할아버지와 예쁘장하게
생긴 할머니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그 집 주인
부부는 어느 날 이렇게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 할머니! 저....
어려운 부탁이 있는 데요.
저희
어머니가 되어주세요!
아버님도 할머니를 너무 좋아하시고 저희 부부도
우리 어머니께서
너무 일찍 돌아가셔
어머니가
안 계셔서 어머니로
꼭 모시고 싶어요.
괜찮으시면
저의 어머니로
모시는 것 허락해주세요...."
그렇게 그
할머니는 그날부터
뜻밖의 간청을 받고
마치 재벌 동네 같은
지역에서 착하고
마음씨 좋은 아들,
며느리 또래의 그 집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와 부부와 함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밖을 나가는데
정말 우연히
어디선가 오래전
그 할머니의 독자였던
아들과
며느리를 만났습니다.
아들이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니 놀랍게도 훤해진 어머니.
예전 모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매우 럭셔리하면서도
우아한 옷과 장신구를
한 어머니....
누가 봐도 한눈에
재벌 집 마나님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묻고는.......
당시
사업에 어려움을
겪게 된 그 아들은
다시 보게 된 어머니가
돈 좀 있어 보이니 그
아들과 자부가 말하기를
"어머니!
다시 우리 집에
들어오셔서 사세요.....
저희가 잘 모실게요! "
하니 할머니 왈 :
" 누구신지요?
나는 당신과
같은 아들과 며느리를
둔 적이 없습니다.
내 아들과
며느리는 저기 있고
내 남편도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그렇게 배반의 늪을 지나
신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일로
우리
모두에게 많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흐~윽 흐~윽
어쩌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