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3월 28일, 모로코-
사하라 사막의 입구에서, 파란 깃발이 올려짐과 동시에 수백 대의 차량이 일제히 동쪽으로 질주했다. 한 달이라는 장기간 동안 열리는 다카르 랠리가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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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던 차 한 대가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빠졌다. 이를 보는 사람들마다 그 차가 고장을 일으켰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다른 데 있었다. 남쪽으로 깊숙이 내려와 멈춘 차 주위로 두 명의 남자가 접근했다. 육안으로 차와 운전자가 보일 정도까지 다가오자, 남자 하나가 품에서 단말기를 꺼내 차를 겨누었다. 그러자 단말기 모니터에 ‘MW’이란 글자와 함께 여자 사진이 비춰졌다. 사진의 주인공은 메리 왓슨이었다.
“약속한 물건은?”
권총을 겨누며 남자가 물었다. 왓슨이 그 손을 쏘아보았다.
“여기 있어요. 좋은 말로 할 때 권총을 거두시는 게 신상에 이로울 텐데요?”
왓슨이 서류가방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알겠다는 듯, 다른 남자가 그에게 속삭였다.
“하림, 총을 거두게. 그나저나 당신, 이게 우리가 원하는 물건인지 어떻게 확신하지?”
“난 심부름꾼일 뿐, 그 안에 든 물건이 뭔지는 몰라요. 한번 봐도 될까요?”
“..좋아.”
가방을 열자, 위성사진으로 보이는 컬러 사진과 그 밑에 한 줄의 글귀가 적힌 종이 서른 장이 너풀거리며 쏟아졌다. 하나같이 리비아 정부군의 무기고 위치를 파악해놓은 것이었다.
“당신들 혹시, 코엔 수에다?”
“그걸 보고 알았나?”
“그래요.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리비아를 전복시키고 싶어 하는 이들밖에 더 있나요?”
“명석하군.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사진이 진짜라는 증명은 되지 않아.”
왓슨의 입에서 하품이 나왔다.
“속고만 사셨나..좋아요. 우리 총수께서 이럴 때를 대비해서 선물로 이걸 주라고 하셨지만, 내 맘에 쏙 든 관계로 다른 걸 주겠어요. 바로 나에요.”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라보며 왓슨이 말했다. 남자는 실로 어이가 없었다.
“뭣? 우리가 무슨 인신매매 조직인 줄 알아?”
“싱겁긴. 당신들의 작전에 잠시 동참해주겠다는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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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와 리비아 국경 부근에 위치한, 리비아 반군조직 코엔 수에다의 본부로 향하는 사이 갑자기 궁금증이 생긴 왓슨이 물었다.
“이봐요,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요?”
“뭘 말이오?”
“전에 마카오에서 죽은 사람, 코엔 수에다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죠? 하부 요원인가요?”
남자가 큭큭 웃었다. 우스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비통함을 참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그런 것이었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였소. 그 얘기 더 이상은 하지 맙시다. 상처를 다스리느라 꽤 힘들었거든.”
“알겠어요. 괜히 말 꺼내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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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리비아 남부의 작은 소도시에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자그마치 서른 대에 육박하는 반군 소유의 트럭이 훔친 무기를 옮기기 위해 동원되었으며,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에는 연기와 먼지로 인해 얼굴이 시꺼멓게 그을린 왓슨도 끼어 있었다. 몸에 상처나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문신 전문가이기도 한 반군 대장이 승리의 기념으로 직접 등에 문신을 그려주겠다는 제의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