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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례
요셉 성인은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님의 양아버지이다.
목수로 일한 성인은 오늘날 노동자의 수호자로 공경받고 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19 참조).
그는 꿈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아기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를 보호하려고 멀리 이집트까지 피해 갔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해마다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의 기념일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셉 성인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공경하고 있다.
◈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자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 :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의 양아버지이자 목수로 일한 요셉 성인은 노동자의 수호자로 공경하고,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해마다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의 기념일로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 한국천주교 :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제124회 노동절 메시지 “의인은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안다.”(잠언 29,7)를 통해
노동 시장의 양극화와 고용 불안정성 속에서 인간의 노동이 시장의 요구에 따라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온전히 인격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기업과 경영자들은 노동자를 '창조적인 동반자'로 볼 것을 촉구하였다.
• 교회/교구 공지
<2015년 5월 천주교 주요 행사>
▪1일 노동자 성요셉 기념일
1일(금)은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이 선포한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이자 근로자의 날이다
-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2015년 노동절 담화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에서
오랫동안 노동을 생산의 원인이 아니라 생산의 도구로 여겨 온 정부의 경제 정책과 기업의 태도는 노동의 존엄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고용의 기회를 감소시켰다고 지적하고,
정부가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위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노동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된 저소득층을 위한 보호정책과 사회복지를 실현할 것을 촉구하였다.
특히 가톨릭 기업인들이 서로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경영, 노동자와 가족의 존엄성을 보장하며 노동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앞장설 것을 요구하였다.
- 광주대교구(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4일(월) 오후 7시 광주광역시 남동 성당에서 “함께하는 세상” 월례미사를 봉헌하고, 서영섭 신부가 ‘한국사회의 노동 현실: 쌍용자동차 등’에 대해 강의한다.
- 서울대교구(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는 10일(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3층에서 “신앙 톡! ‘일과 신앙의 괴리’”를 주제로 노동절 기념행사를 하고, 유경촌 주교의 주례로 미사를 봉헌한다.
- 대구대교구(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5월 13일(수) 오후 6시 대구 가톨릭근로자회관 대강당에서 노동절 기념미사를 한다. 하종강 교수(성공회대 노동대학장)가 '한국 노동문제의 불편한 진실'을 주제로 강연하며, 미사와 뒷풀이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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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용어자료집
근로자의 날 미사
영어 [Labor Day Mass]
한자 [勤勞者~]
• 기도의 날 가운데 이날은 근로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로 정해졌다.
이날 추천하는 미사는 5월 1일의 노동자 성 요셉의 미사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기원 미사 25항에 나오는 ‘인간 노동의 성화를 위한 미사’를 바치는 것도 좋다.
인간 노동의 성화를 위한 미사에 나오는 전례 본문은 ‘간명한 노동 신학’을 제공한다.
(1) 하느님은 모든 창의력의 최종 원천이시다(입당송과 화답송). (2)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하느님의 공동 협력자이다(가해와 나해 본기도). (3) 노동은 인간 존재를 향상 시킨다(가해 본기도) (4) 인간 노동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협력케 한다(나해 예물 기도). (5) 노동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한다(가해 영성체 후 기도). (6) 인간 노동은 형제들과 일치와 성실한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한다(나해 본기도). (7) 땅이 인간에게 맡겨진 것은 경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제1독서 - 창세 2,4-9.15). (8) 삶을 위해 반드시 노동할 필요가 있다(제2독서 - 2데살 3,6-12.16). (9) 노동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과 항상 연관되어야 한다. 노동을 할 때에는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하느님께 의지해야 한다(복음 - 마태 6,31-34). (10) 노동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여가와 명상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복음 - 마태 6,31-34). 결국 전례는 우리에게 노동과 세상, 구원과 여가 그리고 우리의 최종 목표에 관한 전망을 갖도록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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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성인록
▶성 요셉/마리아의 남편(축일:3.19)◀
(같은이름: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 예수님의 양아버지 성 요셉(Josephus)에 관한 내용은 마태오 복음 1-2장, 루가 복음 1-2장의 예수 탄생 기사에서 발견되는 것이 성서상의 근거이다.
이에 따르면 요셉은 다윗(David) 왕가의 후손이고, 요셉 가문은 유대아의 베들레헴에서 왔으나 갈릴래아의 나자렛으로 이사하여 목수 일을 하고 있었고, 이미 의인으로 존경받고 있었다.
· 그는 마리아와 약혼하였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가진 마리아와 파혼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천사가 명한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는 마리아와 함께 아기 예수께 조배하러 온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았고, 헤로데의 영아 학살을 피하기 위하여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피신하였다.
헤로데가 죽은 후에야 가족들은 나자렛으로 돌아와서 살았다.
그와 마리아는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주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였다.
예수가 12세였을 때 그는 마리아와 예수와 함께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을 다녀오다가 예수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다시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아들을 찾기도 하였다.
· 이때부터 성 요셉은 루가 복음 4장 22절을 제외하고는 신약성서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성 요셉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이전에 운명한 듯 여겨진다.
외경인 “야고보의 원복음서”에는 그가 마리아와 결혼하였을 때 이미 노인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 요셉에 대한 공경은 동방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요셉 이야기"라는 외경은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인기 있는 책이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아일랜드 사람인 웬거스 펠리르란 분이 9세기에 성 요셉 축일을 '기념'했다는 언급이 있으나 15세기까지는 요셉 공경이 확산되지 않다가, 1479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가 로마(Roma)에 요셉 신심을 도입한 이후 널리 전파되었다.
· 성 요셉 신심은 특히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와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 de Sales, 1월 24일)에 의하여 보편화되었고, 1870년에 교황 비오 9세(Pius IX)가 요셉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으며,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요셉을 가장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서 성모님 다음의 위치로 올리셨다.
‘노동자의 수호자’란 칭호는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가 부여하였고,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사회정의의 수호자’로,
또 비오 12세는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해서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제정 선포하였다.
성 요셉은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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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칸 성인/성지 › 프란치스칸 성인 ›
▶ 5월1일 노동자 성 요셉 ◀
(안젤라 | 2010.05.01 07:51:27 Ud.)
▷ 축일:5월1일
<노동자 성 요셉>
Saint Joseph the Worker
- San Giuseppe Lavoratore
- St. Jpseph, Opificis sponsi. B. M. C. Conf
- Died:1st century, prior to the Passion, of natural causes
- Giuseppe = aggiunto (in famiglia), dall’ebraico
= added (in family), dall’ebraico
· 성 요셉은 교회 전체의 주보로 공경받을 뿐 아니라
노동자, 가정, 동정녀, 환자, 임종하는 자의 주보이기도 하다.
교황 비오 11세는 요셉을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의 주보로 정하였고(1973년),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나자렛 성가정의 보호자 성 요셉에게 ’노동자의 수호 성인’이라는 호칭을 부여하였다.
1955년 5월 1일에 교황 비오 12세는 이 날을 노동자 성 요셉 축일로 선포하였다.
요한 23세는 성 요셉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보호자라고 불렀다 (1961년).
한국 교회는 성 요셉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더불어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공경한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성 요셉 축일을 예수 부활 후 셋째 수요일에 지내오다가
3월19일로 성 요셉 대축일을 정했습니다.
또한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1956년에 5월 1일을 노동자의 날로 정하시고,
노동자 성요셉 축일을 설정하여 요셉 성인이 모든 노동 단체의 모범이 되시고 보호자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 성인의 표양을 본받아 활동을 하고 기술을 익혀야 하며, 요셉 성인의 정신으로
자기 책임을 완수하면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세상을 다스리고 번영을 도모하여
영원한 생명의 상급을 얻어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나자렛 성가정의 보호자이신 요셉성인은 자신을 본받아 따르는 모든 이에게
보호와 은총을 누리도록 빌어주시며, 그들의 거룩한 가정을 번영하게 하여 주시리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12월8일.게시판1511번.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배필 성요셉 대축일:3월19일.게시판1669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에서 (Nn. 33-34)
• 우주 안의 인간 활동
인간은 자기 노력과 재능을 다하여 자신의 생활을 발전시키려고 언제나 분투해 왔다.
현대에 와서 인간은 특히 과학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 그 지배권을 거의 자연계 전체에 확장했고 또 계속 확장하고 있다.
또 무엇보다도 국가들 사이의 여러 가지 교류 수단이 증가함에 따라
인류 가족은 점차 전 세계의 한 공동체임을 자각하며 그렇게 형성되어 가고 있다.
여기서 인간은 한때 초 인간적인 힘에 의존하던 많은 혜택을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전 인류에게 퍼져 가는 이 거대한 노력 앞에서 인간들에게는 많은 문제점이 생긴다.
인간 활동의 의의와 가치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개인적 내지 사회적 노력은 도대체 무슨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가?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위탁받아 보존하며 거기서 종교적 내지 윤리적 분야 의 여러 원리를 찾아내고 있으므로,
개개의 문제에 언제나 즉각적인 해답은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근에 인류가 걷기 시작한 행로를 비추어 주기 위해 서 계시의 빛을 모든 사람의 경험에 결부시키고자 한다.
인간이 세기를 통하여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노력해 온 이 거대한 노력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한다는 것이 신자들에게는 명백한 일이다.
과연,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며 의롭고 성스럽게 우주를 통치하고,
하느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인식하며 자신과 전우주를 하느님께 바쳐 드리라는 명을 받았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을 인간에게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의 이름이 전 우주에 빛나도록 해야 한다.
이 명령은 또한 일상 노동에도 적용된다. 자기와 가족들의 생활 유지를 위하여 노동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적절히 봉사하는 남녀는 자신의 노동으로 창조주의 사업을 계속하고 형제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며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성취시키는 데에 개인의 노력으로 이바지한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인간이 스스로의 재능과 힘으로 만들어낸 것을 하느님의 권능에 배치된다거나
이성을 가진 피조물을 창조주의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인류의 승리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증거요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계획의 결실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의 능력이 커질수록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간의 책임도 더욱 확대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우주 건설에서 인간들을 외면시키거나 동료들의 복지에 무관심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도록 강력히 촉구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ㅡ (가톨릭홈에서) ㅡ
▷ 찬미가
본받을 노동자신 성요셉이여
나자렛 성가정에 숨어계시니
우리는 기쁜소리 높이외치며
겸손된 마음으로 노래하리다.
왕족에 맞지않는 검소한생활
태연히 받아들여 묵묵히참고
손으로 심한노동 기꺼이하며
거룩한 아드님을 길러내셨네
노동자 거울이신 성요셉이여
땀흘린 노동으로 성화되시고
일터도 성화하는 모범주시려
우리게 생활증거 보여주셨네
불쌍한 주린이들 도와주시고
방종자 이끄시며 분쟁막으사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우리교회를
아버지 보호아래 키워주소서
삼위로 일체이신 하느님이여
누리의 창조주며 아버지시여
살아서 성요셉을 본받음으로
죽음도 요셉처럼 맞게하소서. 아멘.
의로운 요셉을 택하시어 성자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돌보게 하신 주여,
우리도 형제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게 하소서.
땅을 가꾸며 지배하도록 사람들에게 맡겨 주신 주여,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항상 주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도록 가르쳐 주소서.
ㅡ (성무일도 청원기도) ㅡ
▷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사제의 설교에서
(Sermo 2, de S. Ioseph : Opera 7, 16. 27-30).
• 충실한 양부(養父)이시며 보호자이신 성 요셉
하느님께서는 어떤 한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실 때 다음과 같은 일반 법칙에 따라 하십니다.
즉 특별한 은총을 주시려고 혹은 특별한 위치에 올리시려고
어떤 사람을 택하실 때 그 사람에게 자기 직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은사를 베푸십니다.
이러한 법칙은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이시며
세상과 천사들 여왕의 참된 배필이신 성 요셉에게 훌륭히 실현되었습니다.
영원하신 아버지께서는 요셉을 당신의 가장 고귀한 보화이신 외아드님과
성모님의 부양자(扶養者)와 보호자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이 직분을 충실히 완수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네 주인의 기쁨 안으로 들어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요셉을 그리스도의 온 교회와 관계하여 생각해 본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아무런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가장 정당한 길로 오시도록 하느님께서 간택하신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받았기에 동정녀께 큰 은혜를 입고 있다면,
동정녀 다음으로 요셉에게도 특별한 은혜를 입고 있으며 그에게 감사와 공경을 바쳐야 합니다.
요셉은 구약의 완성입니다. 요셉 안에서 예언자들과 성조들이 받은 약속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예언자들과 성조들에게 약속으로만 주어졌던 것이 이제 실현된 것을 요셉 홀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계시던 동안 당신의 아버지로서 요셉에게 보여 주셨던 그 친밀성과 지극한 존경심을
하늘에서도 거부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더 완전히 보여 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자, 네 주인의 기쁨 안으로 들어오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이 행복한 일이지만 주님께서 오히려
당신의 기쁨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상징적으로 그 기쁨은 단순히 사람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사람을 감싸주고
마치 하느님의 끝없는 심연 속에 삼켜지듯 사람을 흡수해 버린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복되신 요셉이여, 우리를 기억하시어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로 여긴 그분께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소서.
또 당신의 정배이시며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의 자비를 얻어 주소서.
그리스도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세세에 영원히 생활하시고 왕하시나이다. 아멘
ㅡ (가톨릭홈에서) ㅡ
• 교황 비오 12세는 1955년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 축일’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
노동자 성 요셉’ 축일을 제정하였다.
모든 나라에서 이 기념일을 5월 1일에 지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늘날 이 기념일은 임의적인 것이 되었다.
나자렛의 겸손하고 위대한 노동자 성 요셉의 모습은
전 인류의 구원자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면서도 인간의 삶에 직접 뛰어들어
그 고난에 동참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하여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 역사에 동참하고 완성케 하는 신비한 능력을
인간에게 주는 것이라고 노동관이 성립되었고 이것은 인간의 진정한 노동가치에 눈뜨게 해주었다.
현대인들은 때로는 폭력을 사용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와 인격의 존엄성을 주장하게 되면서 이러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사회적 투쟁으로 인하여 자신의 이익에 손실을 보게된 일부 그리스도 신자들이 이러한 노동자들의 사회적 요구를 자주 외면해 왔다.
바로 이 점이 많은 현대인들의 눈에 5월 1일이 마치 교회에 대항하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으로 비치게 된 이유이다.
이제 교회는 노동의 현실적 가치를 존중하며, 정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몇 나라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투쟁속에서 노동자 계급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옹호하기 위하여
’노동 축일’을 중요시한다.
또한 신도들에게 성직자들이 최근 들어교황 요한 23세의 교서(Mater et Magistra)나
바오로 6세의 교서(Populorum Progressio)를 통하여
끊임없이 일깨워주려 하는 내용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한 까닭이기도 하다.
’노동 축일’ 기간에 우리는 노동자 성 요셉의 보호아래 구원의 상징인 성찬 예식을 갖는다.
성찬 예식은 육일간의 창조속에서 일하신 하느님께서(창세 1-2장)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이루기 위하여 제7일에도 그의 일을 계속하시기 때문에(요한 5,17)
그리고 이제 새로이 하느님의 아들이 된 우리가 동참하는 이 새 창조는 근본적으로 성찬 예식을 통하여 완성되기 때문에
이 성찬 예식은 자연적 가치이상의 더욱 고귀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성찬 예식은 현대의 기술 사회속에서 그 목적이나 동기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가치를 나타내주기 때문에
’노동 축일’속에서 그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새 창조를 이루기 위한 이 ’새’ 일은 자연적인 법칙을 따르지만,
우리를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느님의 아들의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하느님을 위한 일(요한 6,27-29;골로 3,23-4,1;1고린10,31-33 비교) 또는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행위(성경적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성찬’이 된다)에 대하여 말한다면
신약에서는 인간의 노동은 은총과 그 은총에 활기를 더해주는 사회적 의미에 의하여
이미 ’새 세계’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사도 18,3;20,33-35;에페 4,29 비교)
우리들이 성찬 예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시작하신 일에
우리가 더욱 밀접히 참여하도록 허락해줌과 동시에 그것이 하느님의 창조 역사에 동참하는 길이며
모든 노동의 목적은 새로운 왕국의 건설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면서
우리가 인간적인 노동에 헌신하는 것조차 성화시켜 주는 것이다.
ㅡ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ㅡ
▷ 요셉은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더하신다’이란 뜻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의 날’에 대한 뚜렷한 응답으로
1955년에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요셉의 축일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요셉과 노동자들과의 관계는 이보다 휠씬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을 평범한 인간 생활로부터 떼어 놓지 않으려는 계속적이고 필연적인 노력의 하나로
교회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목수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강조했다.
이 목수의 일에 따른 만족과 고통은 모두 요셉에게서 이어받은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뿐 아니라 창조하는 것에서도 하느님을 닮았다.
인간이 탁자를 만들든지 대성당을 세우든지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손과 마음으로 결실을 거두라는 소명을 받은 것이며,
궁긍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창세2,15)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이 창조 사업을 계속하도록 명하셨다.
인간은 가정을 이루거나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그들의 노동 안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발견한다.
노동자인 요셉은 우리가 창조의 가장 깊은 신비 안에서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 참여하도록 도와준다.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를 강조했다.
"세상의 구세주이시며 신인(神人)이신 분으로부터 그대와 모든 사람에게로 영이 스며들어 온다.
그러나 그 어떤 노동자도 예수님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노동의 공동체를 이루며 가정 생활을 했던
예수님의 양아버지 요셉보다 더 깊이 그리고 더 완전하게 창조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한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고자 원한다면 우리는 오늘날에도 ’요셉에게로 가자.’(창세41,55)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 예수의 작은 형제회 소속인 르네 브와이욤은
그의 저서 ’사람의 서리에서’에서 일상적 노동과 성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예수님의 성덕은 가장 일반적인 생활 환경 안에서도 하나의 실재가 되었다.
언어 생활,가정 생활,한 마을의 사회 생활이 성덕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이것은 가장 암담하고 단조로운 인간 활동도 하느님 아들의 완덕에 온전히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신비와 관련해서 하느님의 아들에게만 고유했던 이 복음의 성덕은
생계를 위해서 노동을 해야만 하는 가난한 사람의 일상 생활환경에서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내포하고 있다."
ㅡ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ㅡ
■사람 서리에서 :
-샤를르 드 푸코 신부와 예수의 작은 형제들-
글쓴이: 러네 보아욤 | 옮긴이: 강우일 | 출판사: 분도출판사 | 1995년
• 샤를르 드 푸꼬는 예수께서 나자렛에서 하신 가난하고 미천한 노동자로서의 숨은 생활을 본받고자 했다.
이 책은 러네 보아욤 신부(작은 형제회)가
작은 형제·자매들의 믿음과 형제적 애덕을
지도·격려하기 위해 보낸 대화체의 편지들로서
사람 서리에서 가난하고 겸손하게 살고자 하는 예수의 작은 형제·자매회의 영성을 잘 드러내 준다.
• 성 요셉은 하루하루의 의무에 충실하신 분이었고
오늘날 자신의 손으로 나날의 임무를 장만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다
Joseph the Carpenter-Georges La tour - 1645, Louvre, Paris
• 자모이신 교회에서는 예수 부활 후 셋째 수요일을 다년간 성 요셉 축일로 지내던 것을 3월 19일에 지내도록 하고,
그대신 1956년부터 5월 1일을 고정적으로 노동자 성요셉의 표준 축일로 결정했다.
성서에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마태 13, 55)라는 말이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유다인들은 예수를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 생각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성가정의 보호자로 선택된 요셉은 자기 본 직업인 목수로서 일생을 보내며 성자를 무난히 양육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30년간의 나자렛의 사생활에서 목수 일을 하시어
양아버지인 성 요셉을 도와드렸으리라는 것이 수긍된다.
과거 어느때보다도 현재처럼 노동 문제가 복잡해진 때는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이미 수차 노동 문제에 관한 칙서 즉 사회 질서의 대헌장을 반포함으로써
심각해진 노동 문제를 해결해 주고 노동자들의 앞길을 명시해 주며
철저한 노동 정책을 수립하도록 세계에 호소했던 것이다.
교회의 입장에서 노동의 신성성을 주장하며 교회의 정신에 입각한 노동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고
인간의 품위와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인간 본연 목적을 달성시키고자 여러모로 노력해 왔다.
• 여기에서 역대 교황의 유지를 받들어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저 장인(匠人)들과 노동자들이 성 요셉을 자신들이 보호자로 삼고 그의 모범을 본받아 나가기를 원했다.
그 이유는 성 요셉과 또한 예수께서 목수일을 하시고 노동을 좋아하시면서 자기 정신을 연마했으므로
당연히 목수의 아들로 불려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써 그들의 노동자 사회가 건전히 발전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각 개인에, 각 가정에, 또한 그들의 단체에 항상 같이 계셔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야말로 노동 조합체의 특별한 목적이다.
여기에서 그들은 보다 나은 그리스도교적 신자생활을 영위하고 더욱 향상시키며,
하느님의 나라를 널리 전파하며 특히, 공장의 동료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 이렇게 새로운 노동 조합체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커감에 따라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1955년 5월 1일,
로마에 노동자들의 모임이 있어 수많은 군중이 베드로 대성전 앞뜰에 모였을 때
그들을 훈시하며 노동 조합체의 결성을 간곡히 요쳥하셨다.
그 이유는 현대에 있어서 이것이 장인이나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 교리를 당연히 닦게 하고,
그릇된 사회 조직과 경제적 오류를 피하도록 하며,
또한 교회에서 직공들의 권리나 의무에 대해 설명한 바와 같은
하느님께로부터 규정된 윤리적 질서를 잘 납득해서 좋은 결실을 내며
효과있게 처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처음으로 이 문제에 관해 불변하고
가장 능률있는 원칙을 전파하셨고 또한 교회에 전해 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의 품위와 원칙은 동일한 것을 형성하며
인간의 마음속에 더 널리 잠재하고 있는 것을 간파하신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노동자 성 요셉의 표준 축일을 설정하고,
성 요셉이 모든 단체의 모범이 되고 보호자가 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표양을 따라 누구나 활동을 하고 첫째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지상을 지배하며
경제적 번영을 도모함과 동시에 영원한 생명의 상급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성 요셉은 나자렛 성가정의 보호자이신만큼 자기와 비슷한 일을 하는 자에게 보호와 은총을 내려 주며
그들의 거룩한 가정을 번영케 해 주리라는 것은 의심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가장 적합하게도 교황께서는 이 축일을 5월 1일에 지내도록 명했으며,
노동자들은 그 날을 집회의 날로 채택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발전이 기대될 것이며 특히 이 날은 목수인 성 요셉에게 봉헌되어
모든 미움과 논쟁은 감소될 것이고 세월이 갈수록 평화가 없는 나라의 사람들도 점점 행복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각국의 지도자들도 각성해 인간 사회가 요구하는 올바른 질서를 현명하게 처리해 나아가게 될것이다.
ㅡ (대구대교구홈에서) ㅡ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 노동하는 인간.
( LABOREM EXERCENS)
노동을 하여(Laborem Exercens) 인간은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얻어야 하고,
과학과 기술의 끊임없는 진보에 이바지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한 가족인 형제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회의 문화적, 도덕적 수준을 끊임없이 들어높이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노동이란 그 성격이나 환경이 어떻든간에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어떤 행위를 뜻한다.
즉, 인간성 자체로 인하여 그리고 본성으로 타고나 인간이 할 수 있는 수많은 행위들 가운데
노동으로 인식될 수 있고 또 인식되어야 하는 인간의 어떤 활동을 뜻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우주 안에 창조되었으며,
땅을 다스리도록 그 안에 안배되었다.
그래서 태초부터 인간은 노동을 하도록 부름받은 것이다.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노동이다.
다른 피조물들이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행동은 노동이라고 할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노동을 할 능력이 있으며, 오직 인간만이 노동을 하며,
동시에 노동을 통하여 자신의 지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은 인간과 인간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표시이며,
인격체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 움직이는 개개의 인격체를 나타내는 표시이다.
그리고 이 표시는 인간의 내면적 특성을 결정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본질 자체를 형성한다.
▷ 노동하는 인간, 그리스도
26. 노동을 통하여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 자신의 활동에 참여한다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강조하셨다.
나자렛에서 그분을 처음 본 청중들이 “저 사람이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하고
놀라워하였던 그 예수님에 의해서 강조되었다.
실로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영원한 지혜의 말씀인 ‘복음’을 말로만 선포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행동으로 실천하셨다.
그것은 또한 ‘노동의 복음’이었다.
복음을 선포한 그분 자신이 나자렛의 요셉처럼 노동하는 인간, 즉 장인이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서 노동을 하라는 특별한 명령은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 오히려 어느 기회에 노동과 생활에 대한 지나친 걱정을 금하신 것을 볼 수 있다 -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노동하는 세상’에 속해 있으며 인간의 노동을 이해하고 존중하신다는 것을 그분의 분명한 삶이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참으로 그분은 인간의 노동과 그 여러 형태를 사랑으로 대하셨고,
노동의 여러 형태 안에서 각기 창조주요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닮은 인간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셨던 것이다.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하고 말씀하신 분, 창세기를 비롯하여 구약의 모든 전통 안에 이미 표현된 노동에 대한 근본 진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가르침 안에 담으셨던 분이 바로 그리스도 아닌가?
• 구약의 성서들은 인간의 노동에 대해 그리고 인간이 수행하는 각각의 직업에 대해 많은 것들을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의사 약제사, 목수 또는 장인, 대장장이 - 이 말은 오늘날의 주물공에 해당될 수 있다 -
옹기장이, 농부, 학자, 선원, 건축가, 음악가,목자,그리고 어부 등이다.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찬사는 잘 알려져 있다.
하느님 나라의 비유들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이 인간의 노동에 대해 언급하신다.
즉 목자, 농부, 의사, 씨뿌리는 사람, 관리인, 종, 청지기, 어부, 상인, 일꾼 등의 노동이다.
그분은 또한 여러 가지 형태의 여성의 노동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분은 사도직을 추수하는 사람들이나 어부들의 육체 노동에 비유하신다.
또한 학자들의 노동에 대해서도 언급하신다.
• 나자렛 시절 당신의 삶으로써 모범을 보이셨던 그리스도의 노동에 관한 이 가르침은 특히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에서 생생하게 반향되고 있다.
바오로는 자신의 노동하는 직업(그는 아마 천막 만드는 사람이었을 것이다.)을 자랑하며,
사도이면서도 자기가 먹을 것을 벌 수 있게 한 그 노동에 감사하였다.
“우리는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하며 애써 노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데살로니카인들에게 권고와 명령의 형식으로 노동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썼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권고합니다.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 먹도록 하십시오.”
실제로 “게으른 생활을 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의 일에만 참견하는” 사람들을 보고 사도는 같은 맥락에서 주저없이 이렇게 말한다.
“일하기 싫어 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다른 곳에서 그는 이렇게 격려했다.
“무슨 일이나 사람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듯이 정성껏 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상으로 받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이방인들의 사도는 인간 노동의 도덕성과 영성에 관하여 그 핵심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사도의 그러한 가르침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가르침”안에서,
그분의 생애와 비유들 안에서 드러나는 신중하고도 위대한 노동의 복음을 보완하는 중대한 내용이다.
교회의 원천 자체이신 분에게서 흘러나오는 이 빛을 근거로 하여,
현대어로 표현되어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교회는 항상 가르쳐왔다.
“인간 활동은 인간에게서 나오듯 인간을 향하고 있다.
인간은 활동을 통하여 사물과 사회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또한 자신을 완성해 나간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자기 능력을 기르며 자기를 벗어나 자신을 초월한다.
이 같은 성장은 바로 이해한다면 외적 재산의 축적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따라서 인간 활동의 규범은, 그것이 하느님의 계획과 그 뜻을 따라 인류의 진정한 복지에 부합하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사명을 완전 무결하게 추구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 같은 인간 노동의 가치에 관한 전망, 또는 달리 말해서 이 같은‘노동의 영성’은 올바른 진보의 의미에 관해
공의회의 사목헌장이 같은 항목에서 말하는 것을 충분히 설명한다.
“인간의 가치는 무엇을 가졌느냐에 있지 않고 어떤 인간이냐에 있다.
마찬가지로, 더 나은 정의와 더 넓은 형제애와 더욱 인간다운 사회 관계의 질서를 확립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기술의 발전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이런 기술의 발전이 인간 향상에 물질적 바탕은 마련할 수 있지만 그 힘만으로 인간 향상을 실현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보와 발전의 문제 -현대의 사상을 지배하는 주제이다- 에 관한 이러한 가르침은 오직 인간 노동에 관한 확인된 영성의 결실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
오직 이러한 영성을 바탕으로 하여 그 가르침은 실현될 수 있고 또 실천될 수 있다.
이것이 ‘노동의 복음’에 뿌리를 박은 가르침이며 또한 하느님의 계획이다.
ㅡ (가톨릭홈에서) ㅡ
♬For the beauty of the earth-Rutter-Anthony Way
https://youtu.be/PaMkj4_H8WM
ㅡㅡ♡ㅡㅡ
◈ 위키백과
▶ 나자렛의 요셉 ◀
성 요셉 (나자렛의 요셉)
출생: 기원 전 90년경 베들레헴
선종: 17년 나사렛
교파: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콥트교회,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축일: 3월 19일
• 나자렛의 요셉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키운 남자이다.
그리스도교 전승에서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를 잉태했다는 신앙때문에, 요셉은 전통적으로 예수의 아버지가 아닌 예수의 양부라고 표현된다.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더하다’라는 뜻이며, 그리스도교에서 추앙하는 주요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축일은 3월 19일.
상징물은 꽃이 핀 나무 지팡이·목수의 도구(톱과 망치 등)이다.
▷ 행적
(복음서편집)
[목수 요셉]
마태오 복음서에서의 요셉은 다윗 왕의 28대손이며, 야곱의 아들이라고 나오지만, 루카 복음서에서의 요셉은 다윗 왕의 42대손이며, 엘리의 아들이라고 나온다.
그러나 둘 다 다윗 가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표현되며(마태 1,19) 나자렛에 살던 목수였다고 한다.
그는 마리아와 약혼한 사이였는데, 마리아가 다른 누군가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가 율법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간음죄를 범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돌팔매질을 당하며 처형당할 것을 우려하여, 남몰래 그녀와 파혼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꿈 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했으며, 그가 잉태한 아이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고 말해주며,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고 명하자 즉각 마음을 돌려먹고 마리아와 결혼하였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등록하러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태어난 후에는 헤로데스 1세의 횡포로부터 예수를 구하기 위해 성가족을 데리고 잠시이집트로 피신하였다는 전승 다음에 베들레헴의 2세미만의 어린이들이 헤로데스 1세가 보낸 군대에 의해 학살되었다는 전승이 나오는데
이러한 전승편집방식은 자신의 복음서의 독자들인 유대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익숙한 인물인 모세의 탄생 설화를 연상시키는 예수의 탄생 설화를 언급함으로써예수가 모세와 같은 위대한 예언자라고 주장하려는 그리스도론이 담겨 있다.
헤로데스 1세가 죽었다는 천사의 전갈을 받은 요셉은 다시 성가족을 이끌고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그 후 나자렛에서 얼마나 더 살았는지 알 수 없으나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명절을 지내러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었다.
요셉이 다시 복음서에 등장하는 것은 12살의 어린 예수를 잃어버려 성모 마리아와 함께 애타게 찾아 돌아다녔으나,
예수는 성전에서 어린이를 대화의 상대로 존중하는 참 지식인들인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였다는 전승이 있는루카 복음서에서다.
물론 루카가 예수의 어린시절을 언급한 이유는 예수가 우리와 똑같이 유년시절을 경험한 완전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 외경(편집)
외경에서는 예수를 어린시절부터 진흙으로 새를 만들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언급하는 등 범상치 않은 초능력자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외경에 나오는 예수의 유년전승에는 한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던 중에 성가족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몇시간 뒤 기적처럼 그 씨가 자라 여물고 열매를 맺어 수확까지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 후 성가족을 봤냐는 헤로데스 1세 휘하 군사들의 질문에 농부는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군사들 중 누구도 성가족을 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추격을 포기하고 되돌아갔다고 한다.
피신 도중 성가족이 종려나무 그늘 아래 멈춰 휴식을 취할 때 나무가 아기 예수의 명령에 따라 가지를 기울여 성가족이 열매로 배를 채울 수 있게 했고, 뿌리들을 좌우로 갈라 숨겨진 수맥을 드러내 그들의 목을 축여 주었다고 전한다.
그들이 헤르모폴리스에 있는 이집트인 마을에 도착하자 그곳 신전에 있던 365개의 우상들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이것을 본 마을의 수장 아프로도시우스가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성가족에게 경의를 표했다고도 한다.
• 죽음(편집)
요셉의 죽음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은 없지만, 전승에 따르면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하기 직전에 죽었다고 한다. 작가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나 영화 《가든 오브 에덴》에서도 그리스도가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죽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 그리스도교에서의 성 요셉의 위치(편집)
· 로마 가톨릭(편집)
로마 가톨릭에서는 3월을 요셉의 성월로 지정해 신자들에게 요셉을 본받고 그의 전구를 청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한 1841년 8월 22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요셉과 원죄 없이 잉태한 마리아를한국의 공동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또한 요셉은 캐나다와 중국, 베트남의 수호 성인이기도 하다.
이 밖에 교황 레오 13세는 요셉을 가장(家長)의 모범으로 선포하였으며,
교황 베네딕토 15세와교황 비오 11세는 각각 요셉에게 노동자의 수호자와 사회 정의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1955년에 교황 비오 12세는 제2차 인터내셔널에서 미국의 노동 운동이 평화 시위로 실천된 5월 1일을 노동절로 지정한 다.
즉,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노동해방을 이루려는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대응으로 역시 같은 날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요셉의 이름을 로마 가톨릭 미사 전문에 실리도록 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하여 특별히 요셉의 도움을 위탁하였다.
· 미사에 사용되는 본기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성 요셉에게 구세주를 충실히 돌보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교회가 인류 구원 사업에 충실히 봉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성공회(편집)
성공회에서는 요셉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예수를 돌본 수호 성인으로 존경하고 있다.
2007년 교회력에서는 3월 19일자에 요셉을 수호 성인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성서정과에는 이날 마태 1:18-25,
로마 4:13-18, 시편 89:27-36, 사무엘하7:4-16을 읽도록 되어 있다.
감사성찬례 즉, 성공회 미사때 선언되는 본기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 하느님, 주님의 종 다윗의 가문에서 요셉을 선택하시어, 육신으로 나신 성자 예수의 보호자이며성모 마리아의 배우자로 삼으셨나이다.
비옵나니, 우리가 그의 바른 생활과 순종을 본받아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게 하소서.
이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바깥고리편집
Patron Saints Index: Saint JosephCatholic Online Saints: St. JosephBernard Orchard, The Betrothal and Marriage of Mary to Joseph, Part 1; Part 2Bernard Orchard, Summary of The Betrothal and Marriage of Mary to Joseph and chronological chartSkeptics Annotated Bible:BeliefNet articleJosephite Fathers in the USEastern Orthodox Tradition: The Righteous Elder Joseph The Betrothed, And His ReposeNovena to St. Joseph (EW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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