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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낮, 막걸리 한 잔에 취한 열두냥짜리 인생
성탄절 낮의 종로3가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주춤했지만 전철역 이곳 저곳에서 구세군 냄비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북적이는 인파 사이로 부지런히 비집고 약속장소로 향하는데, 1번출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아내를 만났다. 나는 직장에서 출발했고 아내는 집에서 출발했으니 누가 먼저 도착하든 1번출구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수많은 인파속에서 딱 마주쳤다.
1번출구에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가 반색을 하며 안내하는 대로 따라 가니 꼬불꼬불 먹자골목 안쪽에 위치한 보쌈집에 먼저 도착한 일행이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어린시절에 함께자라던 고향 친구들인데, 약 3년전에 친목회를 만들어 약간의 회비도 저축을 했고, 가끔은 고향이 그리워 소주 한잔씩 나누면서 고향을 그리워 하곤 했는데 이번 송년모임에는 부부동반으로 만나기로 했다. 반가움에 한 잔, 즐거워서 한잔, 성탄절이라 한 잔, 사는 얘기에 취해서 또 한 잔, 이래저래 한 잔, 순식간에 소주 다섯병이 비워졌다.
TV에도 방영됐던 집이라는 글씨가 입구쪽에 버젓이 걸려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웬 사람들이 그토록 많던지? 사람에 취해서 또 한 잔을 하다보니 어느새 취기가 가득 올라왔다. 모처럼 아내들도 홀짝홀짝 한잔씩 들이키더니 모두가 취기가 올라 얼굴에 홍조가 붉그래 돈다. 그래, 오늘 같은 날 한 잔 안하면 언제 할손가? 부어라 마셔라 낮술 한잔에 세상은 돈짝만하게 빙글빙글 돈다.
아직은 어둠이 깔리지 않아 환한거리로 나왔는데, 한 친구가 술도 깰겸 세상 구경도 하면서 걸어서 광장시장을 들러 녹두 빈대떡에 간단하게 한 잔 더하잔다. 술을 깨자고 하면서 무슨 술타령? 술낌에 술을 마신다더니... 어찌 되었건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어 종로3가에서 5가쪽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두런두런 얘기를 하면서 걸었다. 성탄절이라 그런지 한층 불어난 사람들의 표정도 한층 밝아 보였다. 복잡한 도시를 부지런히 헤집고 드디어 광장시장엘 도착했는데, 아뿔사… 인산인해(人山人海) 시장 골목에는 각종 먹거리들로 왁자지껄, 발디딜틈(?)조차 없을 듯 북적였다. 두툼한 녹두빈대떡이 기름에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고 포장마차, 노점상 등에는 벌써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러앉아 있었고 이 집 저 집에 일곱명이라고 손가락을 펴보이지만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지금은 자리가 없단다. 그렇다고 그냥 발길을 돌릴 순 없지 않던가! 한 친구가 부지런히 이곳저곳에 발품을 팔더니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2층 한 곳에 막 자리를 비운 일행이 있어 운 좋게 그 자리를 잡았다. 2층에 자리를 잡고 두툼한 녹두빈대떡에 소주와 막걸리를 시켰다. 드디어 감칠맛 나는 녹두빈대떡 안주에 시원한 막걸리를 들이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막걸리 맛, 이미 소주로 취한 상태에서 찬 막걸 리가 들어가니 알딸딸한 기분에 모두가 흥에 겨워했다.
그 때, 한 친구가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사랑이 좋으냐 친구가 좋으냐 / 막걸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더 좋더라”
막걸리 한 잔에 세상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이 순간에 이 노래는 정말 격에 딱 맞는 노래인 것 같았다. 젊은 시절 언제인가 유행처럼 따라 부르던 노래이다 보니 슬며시 옛추억이 생각나서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부르다가 나중에는 모두가 이구 동성으로 서서히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미간을 찌푸리면서 질색을 하는 아내들의 만류로 잠시 주춤하였지만 한 번 터진 노래장단을 멈출수는 없었다. 한 친구가 흥에 겨워 그 자리에서 일어나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춤까지 추면서 불러대니 모두가 박장대소…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에게 한 친구가 다가가서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노래는 멈출줄을 몰랐다.
“사랑이 깊으면 얼마나 깊어 여섯자 이내 몸이 헤어나지 못하나 / 하루의 품삯은 열두냥금 우리 님 보는 데는 스무냥이라. 엥헤이 엥헤야 엥헤이 엥헤야 에헤이 에헤이이 에헤이~”
그런데, 옆 테이블의 손님들도 왠지 흥얼흥얼 장단을 맞추면서 콧소리를 내고 있었다. 손님 왈, 자신들도 젊은 시절에 즐겨불렀던 노래라고 하면서 붉그레 상기된 얼굴로 콧노래를 부르지를 않던가? 일순, 노랫가락에 맞추어 우스꽝스럽고 어눌한 춤까지 덩실덩실 추는 친구를 보면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이 시간도 흐르고 술도 취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어둠이 깔린 종로거리는 휘황한 네온이 점멸하는데, 찬 바람이 얼굴을 스치니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각자 헤어져 난 종로 3가쪽으로 아내와 함께 걸었다. 술도 좀 깰겸해서 걸었는데, 걷다보니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한다. 갑자기 찬 막걸 리가 속에 들어가니 이상이 생긴 듯, 간신히 화장실에서 나와 3호선 전철을 탔다. 그리곤 고개를 옆으로 떨군 채 잠이 들었고 슬며시 배가 또 아파 잠이 깨었을 때는 두 정거장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런데 살살 아파오던 배가 금새라도 소나기처럼 쏟아질 듯 용틀임을 해대는데,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두 정거장이면 최소 4분이상은 걸릴터인데… 간신히 버티다가 집근처 정거장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거의 혼절하기 직전까지 용틀임을 해댔다. 나는 온갖 인상을 그리면서 참고 있는데 옆에서 있던 아내가 킥킥거린다. 전철이 도착하자마자 나는 바지춤을 부여잡고 처음엔 뛰다가 다음엔 오리궁둥이처럼 뒤뚱대면서 화장실까지 갔는데…
난 그 날, 만년 팬티로 집에 돌아왔다.
바짓가랑이로 들어오는 싸늘한 바람이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가는데, 머릿속엔“막걸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 사랑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더 좋더라”음율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는다.
성탄절날, 화려한 만찬을 꿈꾸었던 우리들에게 소박하지만 잊을 수없는 열두냥짜리 인생임을 깨닫게 해 준 하루였다. 살면서 화려함 보다는 오히려 소박함이 더 순수한 우정을 나눌 수 있음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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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럽고 좋은 시간이셨지만 성탄절 미사가 어찌되었을지 걱정됩니다 ㅋㅋ
성탄 자정미사 당연히 참석했고,
성탄절 당일 날, 11시 교중미사 참석했고,
그리고 만남을 가졌으니 걱정 전혀 안하셔도 괜찮습니다.
성탄절 잘 보내셨는지요? 한번 만나야 할터인데...
@야고보 1월초에 연락주십시요. 이삭 형제님도 기다리고 있어요.
@본드 잘 알겠습니다.
@야고보 멀리 갈것도 없이 1 월1일날 오후시간은
어떠실런지요.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