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끌어안다 - #저자게리홀츠_로비홀츠_옮긴이강도은_출판사행성B잎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요즘 일상에서 내가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낭독을 통해 절반을 읽을 때에는 여러 목소리들은 저마다 독특함이 있어서 전달되는 느낌들이 보다 더 풍부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낭독을 통한 책읽기는 무의식을 자극하여 머릿속을 한차례 뒤집어 놓은 것과 같았다. 이리 태풍이 바닷속 뒤집어 순환하게 만들어 놓듯이 낭독으로 뒤집고 엎어 놓은 무의식은 남은 절반의 책을 읽어 가는 도중에도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미 이 책 내용들이 뜻하고 있는 바를 알고 있다고 여겨졌다.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고 상황은 다르지만, 그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가자 잔잔하던 내면에 돌 하나 던져 가라앉아 있던 온갖 부유물들이 떠올라 금새 혼탁해졌다. 무의식의 영역에서도 감정체계들이 건드려진 느낌이었다. 감정체계들이 뒤죽박죽된 느낌이었다. 그러자 의식이 가려졌다. 머리도 무겁고 몸도 잠겨버리는 느낌이었다. 컨디션이 난망해졌다. 그럼에도 무의식은 계속 왕성하게 활동 하였다. 온갖 상념들이 떠올랐다. 지난 시간들의 기억은 그렇게 잠복되어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최근까지의 감정의 부산물들이 이젠 내차례야 하듯이 하나씩 솟구쳤다. 그럴때마다 감정은 요동쳐서 분노와 화와 슬픔과 미움과 안쓰러움과 후회와 원망과 회한과 서러운 감정들이 같이 나타났다. 나는 감정의 부산물들이 불러 일으키는 기억들과 동시에 나타나는 대표적 감정들에 같이 흠뻑 놀아 주었다. 그 안에 잠겨서 충분히 그 기분을 만끽하여 주었다. 그래 억울했겠다. 그래 슬펐겠다. 그래 기뻤겠다. 그래 화났겠다. 그래 아팠겠다. 그래 울고 싶었겠다. 그래 후회 되었겠다. 그래 미웠겠다. 그래 안타까웠겠다. 그래 안쓰러웠겠다. 그리 그 감정에 충실하게 따라가 주고 느껴 주었다. 그렇다고 하여 심리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었다. 단지 머릿속이 탁해졌고, 몸은 잠긴듯 하였을 뿐이다.
나는 내가 평소에 해오던데로, 이건 진짜 내 마음이 아니야... 로 감정의 부산물들을 거둬내어 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솟아나는 감정의 부산물들과 마주하여 나를 보았다. 하나씩 정리해가듯 하나하나 감정의 부산물들을 벗겨내었다. 오늘은 이 혼탁함에서 벗어날듯도 하여 에어컨을 꺼놓고 차를 마시면서 땀을 배출시켰다. 그러자 바닥에 발이 닿는 느낌이 들었다. 심연에서 드디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자 의식이 맑아졌다. 무의식은 이제 안정화 되었다.
그 무의식을 만난 순간은 어떤 불편한 기제들이 자꾸 꾸물꾸물 거리며 머리속을 가득 채워버리는거 같았다. 무의식의 바다가 요동을 치기 시작하자 의식은 저 뒤로 가리워졌다. 그 상태에서 무의식을 만난 것이다. 나의 감정의 부산물들을 만난 것이다. 이 부산물들과 대면하고 난 후 의식은 다시 주인이 되었다. 의식은 무의식이 전해준 이야기들을 잘 알아 들은듯 하였다. 머릿속은 차분해졌다. 나는 알고 무의식과 만난 것이다. 무의식을 대면할때는 기분이 완전히 가라앉아서 컨디션 성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쳐내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나는 내가 지금 경험한 내면세계를 바로 지금 알 필요가 있었다. 의식은 그때 자리를 비켜 주었으나 아주 가리워진 것은 아니고 나를 통제하고 있는 상태였다.
<가만히 끌어안다>책은, 저자인 게리 자신이 '다발성 증후군'이란 휘귀병으로 온몸이 마비가 되어 가는 증세가 나타나자, 호주 원주민을 찾아가 치료 받는 과정을 그려가고 있다. 그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형태는 치료 방식이 상당히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치료 프로그램은 과학적이기까지 하다. 반면에 영적인 현상이 나타나서 신비로운 형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스스로들도 인정하기 어렵고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어떤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사람들은 느끼기도 한다. 단지 인정하기 어려운거 뿐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가운데 나의 무의식은 건드려졌다.
다른 심리학 책들을 읽으면서도 무의식이 건드려지는 느낌을 받은 적들이 있다. 다만, 그 내용이 뜻하는 바에 의해서 무의식도 건드려지는 영역들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인 게리는 감정체계에 문제가 생겨 '다발성 증후군'을 얻게 된 것이므로, 이 책은 감정체계를 건드리는 형태의 서술이라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읽자 감정체계가 건드려진 것이었다고 여긴다. 덕분에 감정정리여행 시원하게 잘 하고 돌아온 느낌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빅가이'는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하였다. 책에서 빅가이는 '자기 내면의 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 - 남자의 내면에는 여성성이, 여자의 내면에는 남성성이 있다고 한다. 호주 원주민 치료사도 이 내면의 신적 특질을 지닌 존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즉 사람 각자의 수호천사 형태라고 한다. 이 여성성과 남성성의 신적 특질에 대하여서는 로버트 A 존슨의 책 '내면작업'에 잘 나타나 있다. we, she, he 등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여성성 남성성은 각 남녀 사람안에 감추어진 잠재적인 특질이기도 하다. 존슨은 일본 다도의 영향도 받았다고 여겨진다. 그는 다도가 가진 특질을 그의 심리학체계에 통합한거 같다고 여겨졌다.
겉이 여성형으로 드러나면 내면은 남성성의 잠재특질을 지니게 된다. 자기 내면관리를 통하여 이 특질들을 자기안에서 통합하게 되면, 그 사람의 내면이 안정화 된다. 내면이 안정화 되면 겉도 안정된다. 자기가 자기 통제하에 있으므로 자기 삶이 평안해지게 된다. 우리 조상들이 완전한 인격체를 지향했던 것과도 상통한다. 내면을 조화롭게 만들어 내는 것. 거기에는 예술적 특성들과 자연과의 교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또한 이 모두를 통제하고 제어할 의식의 고취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했다. 내면을 통제하여 밖으로 꺼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표현형식의 고민은 거기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건 다시 삶의 양식으로 표면화 되었다. 삶의 양식은 다시 의식을 고양시키고 무의식으로 넘어간다.
호주 원주민의 치료 방식의 내용을 보자면, 동양의 초기불교와도 비슷하고, 유식불교와도 흡사하고 선불교적인 측면도 있다. 딴은 보기에 따라서 여러 측면들에서 보는 방식에 따라서 어떠한 것들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호주 원주민의 치유 방식에도 음양이 조화되어 있었다. 어찌보면 동양식이고, 서구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여성성 남성성은 원시 신화에 모티브를 두고 있으므로 어찌보면 서양식이다. 그러나 모두 에너지 형태가 그 사람에 맞게 형상화 된 홀로그램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이해시키는 형태로서 나타나는 에너지의 파장이 형상을 가진 홀로그램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마치 잠을 잘때 꿈속에서 펼쳐지는 영상속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사람... 즉 자신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호주 원주민의 심리치료 방식에서도 느껴지지만, 현대의 심리학은 그 기원을 원시 무의식까지 거슬러 올라가므로, 동서양의 무의식 기제들이 점차로 통합되는 형태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가만히 끌어안다> 책에서 말하는 치유 프로그램은 이런 순서로 진행되고 있다. 기꺼이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 받아들이기, 힘 부여하기, 집중하기이다. 단계별로 진행된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이미 내가 알고 있었다고... 여기게 된 이유가 바로 이 프로그램 순서이었다. 아주 낯이 익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것도 잠재의식인 것일까... 나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해보거나 자기 무의식적 압박에서 벗어날때, 대체로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고 여긴다. 잠재적 무의식적이든, 학습된 형태이든 말이다. 이러한 형태로 내면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이유는, 몸에서 정신에서 마음에서 느끼는 형태로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외의 다른 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공통점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 책은 더구나 편집도 훌륭하다. 각 챕터별로 소 제목이 붙어 있는데, '가만히 끌어안다'가 정말로 이 모든 소 제목들을 가만히 따뜻하게 강하게 끌어안고 있다. 자신들의 특질들과 잘 조율되면, 내면은 부드러워져 윤활유가 잘 흘러 경직되지 않고, 의식은 오히려 강해져서 내면세계와 바깥세계를 잘 연결시켜 준다.
<가만히 끌어안다> - 한때 알았던 세계와 작별하기 , 상처받은 영혼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 외면하지 않을 용기, 결국 아무도 없었다, 모난 삶도 보듬다 보면, 내 인생을 책임지는 법, 코끼리 생각하지 않기, 몸이 알고 있는 진실을 찾아, 나에게 달린 일, 영혼의 소리를 듣다,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각 챕터들은 지극한 사유의 힘을 느끼게 하였다. 언어가 아름답다는 느낌도 들게 하였다.
각 챕터로 넘어갈때마다 묘한 흥분과 위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책 한권이 주는 힐링이 있다면 아마 이런 느낌일 것이다. 책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르지만, 그 책 한권과 여행을 하며 자신을 거기에 온전히 담구었다가 꺼내면, 그것이 바로 제대로된 책 읽기 힐링이라고 여긴다. 자기를 만나고 나오고 세계를 만나고 나오는 것. 그것이 책읽기가 아닌가 싶다.
사람은 자기 자신도 바깥환경으로 여긴다. 그러니까 뇌에게는, 더 정확히는 의식에게는 의식을 제외한 모든 것이 자기 바깥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의식을 확장하여 자기를 더 넓게 인식시키는 것이야말로 자기 환경을 좋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으로는 내면세계 저 깊숙한 무의식을 끌어안아야 하고, 밖으로는 자기 정신세계가 미치는 범위를 사유하여야 하고, 실제로 사는 현실의 세계를 가꿀 때 자기환경은 좋은 상태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것은 자기 몸을 통하여 일어난다. 그러니 시작도 최종적인 것도 자기 몸을 통한다. 눈,코,입,귀, 몸을 통하여 뇌를 거쳐 의식은 일어난다. 모든 감정체계는 자기안에서 경험된 세계와 이미 축적된 세계를 통하여 일어난다.
<가만히 끌어안다>책은 지금 변화하고자 하나 방향이 불분명할때 우리들 삶의 형태에 에너지를 부여하는거 같다. 아름답게 잘 편집되어 더 가슴으로 스며오는 책, 혹여 자신의 감정과 부딪치더라도 끝까지 따라가 보기를 권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