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6대 국왕 고종의 황후 명성황후에 대해
'명성황후라는 존호는 과분하다.', '그래도 민비라는 호칭은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멸칭이니 쓸 수 없다.' 등
논쟁이 일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명성황후'라는 존호를 쓰는 것이 옳습니다.
생애의 모습을 떠나서 존호란 그 당시 그 인물의 사회적 신분이나 위치에 의해 내려지고 쓰이는 것이며,
현대에 이르러 '훌륭했느냐,부덕했느냐'를 논하여 존호를 폐하거나 정정하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식으로 한다면 백성들에게 온갖 고역을 시키고 핍박한 시황제,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는 수 많은 살상을 일으킨 칭기즈칸 등... 역사 속, 수 많은 인물들이
'긍정적 인물과 부정적 인물'로 평가되고 분류되어 일일이 존호를 폐하거나 정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대중 매체물이나 저연령층 출판물에서
명성황후에 대해 ‘조국과 백성을 사랑한 국모’, ‘일본의 침략에 맞서 구국활동을 하다
비운하게 생을 마감한 왕비’의 모습으로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명성황후의 실제 면모와는 극적으로 상반되는 명백한 역사왜곡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사학계에서 사실로 알려진 여러 가지 기록이 있으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첫댓글 역사속 사건들이나 역사속 인물들이 다 그렇듯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도 양면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조선시대 왕비들은 '중전' 이라는 호칭으로 불렀고 그뒤에 성을 붙였으니 명성황후에 대해서도 정석대로 라면 '중전 민씨'라 부르는게 옳겠죠. 저도 '민비'란 호칭은 아닌거 같다는 사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성황후에 대해선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가 된후 추서한 호칭이니 황제의 부인으로 황후라 하는게 틀린 것 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명성황후도 다 잘한 것 만은 아니며 실제보다 미화한 면도 있을 수 있지만 그녀가 오히려 남자 정치인들 보다 당시 세계정세를 냉정히 내다보는 안목으로 조선을 이끌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을미사변이 있은 후 당시 러시아의 조선공사 였던 위베르가 을미사변에 대해 러시아정부에 보낸 보고서 에서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를 보면, 당시 조선인 치고 그 것도 여자로서 국제정세를 보는 정치감각이 뛰어났음을 칭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녀의 국제정세 감각은 외국공사들 조차도 인정할 정도였던 겁니다. 다만 위베르는 명성황후가 서구열강들을 이용해 일본을 잘 견제해 나가다가 미우라 와의 머리싸움 에서 막판에 방심하는 바람에 그렇게 당했다고 명성황후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원인에 대해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 위베르의 보고서는 을미사변 당시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직접 목격한 러시아인 기사 사바틴의 진술도 참고한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 뮤지컬 명성황후에 보면 마지막에 명성황후가 '조선이여 일어나라!' 라고 외치는 대목이 있다는데 '조선' 인지 '민족'인지 마지막 단어가 들은지 오래 되서 잘 기억이 안나네요. 그런데 그 말은 명성황후가 한 말이 아니라 동학농민군의 장군 중 한명이 한 말이라네요.
이건 사소한 것이긴 합니다만, 러시아 공사 베베르(Weber)는 독일계로서 독일식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덧글은 잘 읽었습니다. ^^
사실 Weber를 독일어식으로 좀 더 정확히 읽으려면 (Max Weber 를 막스 베버라고 하듯) '베버' 입니다만, 베베르라고만 읽으셔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백성을 사랑한 국모는 아닌 듯..조국을 사랑한 국모는 맞죠..어떤 목적 때문에 사랑했느냐가 문제일 뿐..일본의 침략에 맞선 인물도 맞습니다..맞선 이유가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 없어서 문제지..
고종과 민중전은 나라를 망국으로 가는데 아주 일조한 사람입니다.
가장 정확한 호칭은 명성왕후입니다
고종이 칭제한 후에 명성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니 명성황후가 적절하겠지요.
명성황후 민씨로 호칭해야죠....
세자의 병때문에 금강산 1만 2천 봉우리마다 상당수의 돈과 베를 바친것은 그렇다쳐도, 조선 개국이래 처음으로 정권다툼에 청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조선을 망가뜨린 점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호칭 문제는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논외로 하고, 명성황후가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녀가 기득권자였기 때문입니다. 티이거님의 말씀처럼 국제정세를 잘 알았을 지라도, 민씨 정권이 청이나 러시아 등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던 것은 바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당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일제 강점이 이루어졌기에 명성황후에 대한 동정심이 강하게 작용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의 부정적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