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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38회>
씬 1 어느 고을 길(부감)
궁예의 행렬이 어느 고을로 들어서고 있다. 그 고을 백성들이 화려한 황제의 행차를 보기 위해 모두 길가로 나와있다.
백성1 저 분이 그 미륵부처님이시란 말인가? 아이구, 몰라보게 달라지셨구먼. 저 번쩍이는 용포 좀 보게. 예전에 보았을 때는 다 떨어진 누더기를 걸치고 계셨는데......
백성2 이 사람아.... 그럼 크나큰 나라의 대왕폐하가 되셨는데...
백성1 너무 많이 변하셨으니 하는 말일세.
백성2 그래도 저런 분이 대왕이 되신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아니면 우리같은 무지렁이들은 벌써 굶어 죽었을 게야.
백성1 그건 그렇지. 자네 말이 맞으이.....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대왕폐하 만세! 대왕폐하 만세!
점점 환호성이 파도처럼 퍼져 나간다. 궁예가 인자한 미소를 띄워 보내며 손을 흔든다. 그들 그렇게 카메라 앞을 지나치면서......
씬 2 황톳길
저 멀리 석양이 떨어지고 있는 바닷가 마을이 보여온다. 붉게 물든 그 순행의 행렬은 마치 개미떼처럼 그 마을을 향하고 있다. 궁예의 얼굴도 붉게 물들었다. 왕건도 벅찬 감동처럼 그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연화, 슬이, 은부, 미향, 월이, 박지윤, 유장자, 장자1, 2, 염상, 금대의 각기 다른 모습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해설) 궁예의 순행길, 송악을 출발하여 당시 고려의 전 국토를 돌아오는 일대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 행로를 쫓아가 보면 혈구(강화)와 한양(서울)을 지나 장구(안산), 당성(남양), 죽주(안성), 북원(원주), 명주(강릉), 어진(울진), 내령군(영주), 충주(충주), 청주(청주), 등을 거쳐 웅주(공주)에 이르는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씬 3 인써트
지도가 수파된다. 지도 위로 당시 고려, 백제, 신라의 영역이 표시된다. 그 위로 겹쳐지는 궁예와 견훤의 얼굴....
해설) 이때 궁예의 영토는 후삼국중 가장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북쪽으로는 옛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까지 맞닿아 있었으며, 아래로 백제와의 경계는 웅주(공주), 청주(청주), 충주(충주)까지 내려와 있었고, 내령(영주), 어진(울진)을 경계로하여 신라와 맞닿아 있었다. 반면 견훤의 백제는 상대적으로 고려에 비해 위축되어 있었다. 위로는 궁예와 더불어 아버지인 아자개에게 막혀 있었고 동으로는 신라가 버티고 있어 운신의 폭이 넓지 못했다. 견훤이 전군을 이끌고 나이 어린 아들들까지 출전시켜가며 대야성(합천)을 치려했던 것은 바로 이런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었다.
씬 4 대야성 부근 견훤의 진영
저 반대편으로 대야성이 보여온다. 견훤이 뒷짐을 진 채 대야성을 노려보고 있다. 그의 뒤로 신검, 양검, 능환, 최승우, 추허조, 수달, 공직, 박영규, 김총, 능애 등이 서있다.
견훤 저 성이 신라의 관문이고 목줄이란 말인가?
능환 그렇사옵니다, 폐하.
견훤 음..... 성이 아주 단단해 보이는구만....
최승우 규모가 상당한 성이옵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견훤 ........
능환 폐하, 은자 거인을 기억하고 계시옵니까? 폐하와 소신이 서라벌에 있을 때, 신라를 비방하는 참언을 퍼뜨렸다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된 왕거인이라는 현자 말이옵니다.
견훤 기억하다마다.... 세상이 다 아는 현자였지.
능환 그 왕거인이 은거해 있던 곳이 바로 대야성이 아니옵니까?
견훤 허허, 생각해 보니 그렇구만.
공직 또한 대야성엔 신라의 국찰인 해인사가 있사옵니다. 진성여왕이 저 곳에서 목숨을 버렸고 또..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학자 최치원이 그 곳 해인사에 은둔하고 있다 하옵니다.
견훤 최치원...? 우리 파진찬과 더불어 이 시대의 세 천재중 하나로 불린다는 그 최치원 말인가?
공직 그러하옵니다, 폐하..
최승우 ........
견훤 하하하. 최치원이 저 곳에 있다고 하니 더욱 욕심이 나는구먼. 잘하면 신라 삼최 중에 둘을 얻을 수가 있겠구먼... 아니 그런가..? 허허허..
신검 기다리시오소, 아바마마. 소자들이 저 성을 열어 아바마마께 기쁘게 바치겠사옵니다.
양검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견훤 암, 그래야지. 그래야하구 말구.
능환 폐하, 이제 안으로 드시오소서. 전략회의를 가져야 할 시각이옵니다.
견훤 허허허... 그리하세.... 대야성이라... 내일 아침이면 우리 것이 되겠구먼그래. 허허허
견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야심찬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나 최승우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 되면...
씬 5 군막 안
대형 지도를 둘러싸고 견훤과 제장들이 서있다.
견훤 막상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신라의 땅덩어리가 아직도 무한대로 남아 있네 그려.... 음... 적진의 상황은 좀 어떠한가?
능환 계속 동태를 살피고 있사옵니다만 아직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하옵니다.
추허조 폐하께오서 출정을 하셨다하니 놈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벌벌 떨고 있을 것이옵니다.
견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적진을 계속 살펴 빈틈을 찾아보게. 그래서 공격 시점과 방향을 결정해야 할 것이야.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서라벌의 관문인 대야성을 가벼히 본다면 아니될 일이옵니다.
견훤 ......
최승우 타던 불씨가 아무리 밟아도 길게 남아있는 이치는 오랫동안 타오르던 그 여력 때문이옵니다. 신라는 지금 남아있는 모든 힘을 모아 군사를 대야성에 집중시켜 놓고 있사옵니다.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대야성의 성주 김효종이란 인물은 그 중에서도 신라에 대한 충성심과고집이 대단한 장수이옵니다. 충분히 헤아리시오소서.
견훤 백번 맞는 말이야. 병법에는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고 했어. (능환을 보며)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북쪽 고려군의 움직임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야. 저들이 우리의 허를 찔러라도 온다면 갑자기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어.
능환 그 점이라면 안심하셔도 될 듯 싶사옵니다.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궁예는 계속 순행중이라 하옵니다. 폐하께서 여기에 와 계시는 사이에 전쟁보다는 확실하게 내실을 다져 놓겠다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견훤 음...... 그렇기도 하겠지. (신검, 양검을 보며) 신검아, 양검아.
신검, 양검 예, 아버님.
견훤 이 애비가 너희 이름을 왜 '검'자 돌림으로 지었는지 잘 알 것이다. 검처럼 용맹하게 싸우라는 것이야. 너희들은 그동안 많은 공부들을 했다. 이번 전투에서 내 너희들을 지켜볼 것이야.
신검 염려 놓으시오소서. 아바마마...
양검 신명을 다 바치겠사옵니다.
견훤 그럼 제장들은 지금 즉시 밖으로 나가 전열을 정비 점검하고 공격로가 확정되는대로 출병을 대기토록 하라.
모두들 예.
견훤 그리고 이찬과 파진찬은 남아서 이야기를 좀 하세.
최승우와 능환은 대답을 하며 잠시 서로를 쳐다본다. 뭔가 어색하다.
씬 6 대야성 외경
씬 7 그곳 장대
대야성 성주 김효종(40)이 보기에도 늙은 여러 노장군들과 함께 비장한 표정으로 서있다. 그들의 분위기는 모두 굳어 있다.
김효종 그예 견훤군이 성 밖에 당도했습니다.
노장군1 이곳은 폐하께서 계시는 황도의 관문이올시다. 어림도 없지요. 이 곳을 내어 줄 수는 없어요. 이 성이 함락된다면 견훤은 삽시간에 서라벌로 들어와 천년 사직을 더럽힐겝니다. 막아야지요.
장군2 그렇소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죽기로 맹세를 했소. 이번 전쟁이 아마 국가에 충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되오. 이 험난한 세월에 이렇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지요, 암요
장군3 우리들은 모두가 화랑출신들이오....오만방자한 견훤이에게 화랑의 기상을 보여주십시다.
김효종 고맙사옵니다. 노장군님들의 결의가 이러할진대 우리가 어찌 이 성을 지키지 못하겠사옵니까? 견훤이 누구이옵니까? 한낱 서라벌의 하급 군관이었던 자가 아니옵니까? 저들은 결코 이 성을 넘지 못할것이옵니다. 절대로....
해설 김효종. 그는 사다함에서 시작하여 김유신으로 이어지는 명화랑의 계보를 잇는 사람으로, 신라의 마지막 화랑이라 불리웠다. 삼국유사에 실린 '효녀 지은'이라는 설화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가 화랑으로 있을 때, 분황사 동리에 사는 지은이 그 부모를 극진히 섬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부모에게 청해 곡식과 의복을 보내어 살림을 도운 일이다. 이 소문을 전해들은 진성여왕은 크게 감복하여 자신의 조카를 김효종에게 시집보내게 되는데 그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신라의 마지막 왕이며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들어 바치게되는 경순왕인 것이다.
씬 8 견훤의 진영 군막
견훤의 좌우로 능환과 최승우가 앉아 작전회의를 계속하고 있다. 능환과 최승우의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된다.
능환 전투는 기선을 제압하는데 승부가 걸려 있사옵니다. 한시라도 빨리 총 공세를 퍼부어 성문을 여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일 듯 싶사옵니다. 견훤 ....파진찬의 견해는 어떠한가?
최승우 저들은 자신들의 지리적인 잇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 성밖으로 나오려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먼저 공격을 감행하는 측이 항상 불리한 법이옵니다.
견훤 허허.....(인상을 찌푸린다).... 두 사람의 생각이 정 반대이구료. 이래서야 어디 가닥을 잡을 수가 있겠는가?
두사람 ................
견훤 할 말은 아니지만 그대들은 완산주에서도 서로 의견이 엇갈렸네 그려. (은근히 최승우를 탓하듯) 하지만 이곳에 와서까지 이래서야.......
능환 폐하, 현 시점에서 시간을 지체한다는 것은 곧 군량미의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옵니다. 또한 적지 아니 군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옵니다.
최승우 허나 전면전이기 때문에 공격을 감행하였다가 패하게 될 경우 입는 손해는 상상외로 매우 클 것이옵니다. 아마도 감당키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옵니다.
능환 패할 것을 생각하고 어찌 승리를 바랄 수 있겠는가? 폐하, 소신에게 맡겨주시오소서.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성문을 열어보일 것이옵니다. 견훤 허.... 그거 참......(불쾌한 헛기침)....
견훤은 난감하다. 능환이 잠시 최승우를 쳐다보며 못 마땅한 표정이다. 최승우 답답한 듯 낮게 한숨을 쉰다.
씬 9 강화 포구 (강화)
궁예들이 커다란 배에서 내려와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수십 필의 말과 짐바리들도 이어진다.
씬 10 바닷가
그들의 행렬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궁예 혈구(강화)라... 혈구..... 참으로 큰 섬이로구먼..
왕건 예, 폐하. 이곳은 땅이 넓어 예로부터 바다 가운데에 육지라 했사옵니다. 섬 자체가 매우 아름다울뿐더러 곳곳이 천혜의 요새이옵니다. 송악과도 가까워서 아주 쓸모가 많은 곳이옵니다.
궁예 ......(끄떡인다) ..그래보이는구료.
왕건 또한 한강의 물줄기가 길게 이곳 혈구에까지 이어서 뻗어나오니 한양 내륙으로 들어가는 거점이기도 하옵니다.
궁예 ...(고개를 끄덕인다).....
해설 혈구, 강화의 옛 지명이다. 이 곳에서는 지금도 산에 오르면 송악이라 불리었던 북쪽의 개성과 예성강이 한 눈에 보인다. 궁예가 집권하기 전만 해도 사실은 송악의 관내로서 왕건가의 영향을 받았던 곳이었다. 더불어 강화는 갈수록 그 지역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고려조 470여 년동안 황실과 깊은 관계를 유지했었고 몽고의 침입 때는 임시 수도로서 39년 동안 나라의 중심이 옮겨와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 혈구를 지금 궁예가 지나고 있는 것이었다.
씬 11 인써트
계속 바닷가로 말을 타고 가는 그들의 모습 위로 지도상에 궁예들이 순행하는 지역이 선으로 표시되고 있다. 송악에서 강화, 그리고 한강을 따라 들어와 다시 남하하는 것이다. 그 선이 끝나는 지점은 당성(남양)이다. 이 곳도 역시 바닷가.......
씬 12 바닷가
궁예와 왕건, 두 사람만이 바닷가 기암괴석 위에 서있다. 두 사람 앞까지 거센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딪치며 산산히 부서진다.
왕건 이곳 당성 또한 우리가 지나온 혈구 못지 않게 중요한 땅이옵니다. 신라는 이곳을 우리 고려에 빼앗김으로서 중원대륙과 연결될 수 있는 모든 교역로를 잃었사옵니다.
궁예 ........... (생각에 잠겨 있다) 그 이야기는 들었네 그려.
왕건 이곳 남양은 신라가 당나라나 그 밖에 여러 나라들과 제일 빈번하게 연락을 취했던 항구였고 나라의 관문역할을 했사옵니다. 훗날 폐하께서도 크게 다시 쓰실 것이옵니다.
궁예 아우와 함께 오기를 백 번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 이 번 순행길은 참으로 의미가 큰 것 같으이....잘 떠나왔어.
왕건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나는 갈수록 아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고 있네 그려.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모두가 새롭단 말일세. 생각할수록 우리는 정말 잘 만난 것 같으이.....아니 그런가, 아우?
왕건 폐하....어찌 그런 황공하오신 말씀을.....
궁예 나는 말일세. 아우를 만나고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네. 나라는 사람은 부처님밖에는 몰랐었지. 그 청정한 계율과 무서운 자기 인내와..그런 것들은 인간들이 사는 세계와는 거리가 아주 먼 것들이었어.
왕건 폐하...?
궁예 우리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한길을 같이 가게 될 것이야.
왕건 ...... (감동)... 폐하..?
궁예 아우와 나의 관계를 곱게 바라보지 않은 이들도 있어. 특히나 내원과 은장군은 아우를 경계하고 있지.
왕건 .........
궁예 두 사람의 강직함이 때때로 답답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두 충성심에서 그리들 하는 것일세.
왕건 아옵니다, 폐하.
궁예 그들이 뭐라 하든 우리 형제의 마음은 변하지 마세. 세월이 가면 다 정리가 될 것이야.
왕건 ....... 폐하의 은혜가 참으로 크시옵니다. 이 아우는 그 크신 형님의은혜를 어찌 다 갚사올지 그저 마음뿐이옵니다.
궁예 허허허허..... 이보게 아우, 그 마음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옥좌가 무엇이고 황제가 다 무엇인가...? 또 나라가 무엇이고 정치가 무엇인가.....? 다 사람이 만나고 모여서 하는 것일세. 사람.... 이 세상이 의리만 변치들 않고 산다면 참으로 살아볼만한 것일 터인데... 허허허...... 우리처럼 말일세.
바람이 불어온다. 두 사람의 시선이 뜨겁게 서로를 본다.
씬 13 송악 황궁 외경
카메라가 판 하면 황궁 저만큼 정자가 보여 오고 누군가 그 곳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씬 14 그곳 정자
종간이 정자에 서서 송악성을 내려다보고 있다. 수심에 깊이 빠진 듯한 그의 얼굴엔 고뇌의 흔적이 역력하다. 새털구름이 하늘 가득히 몰려가고 있다.
종간(E) 왕건이라.... 왕건.... 도대체 그자는 누구란 말인가?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루고 있는 이때에 일개 장수에 불과한 그를 나는 그토록 경계하고 있다. 이제 곧 폐하의 제국은 저 광할한 중원에 이를 것이고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우리의 이상은 만방에 알려지고 굳게 설 것이다. (다짐하고 강조하듯) 대 미륵의 제국,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상의 나라... 낙원의 국가....모든 이들이 헐벗지도 굶주리지도 않는 평등하고도 위대한 세상. 나 종간은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제 그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는 나라와 황궁을 얻었다. 그런데....그런데...나는 지금 무엇이 두려워 이렇게 초조해 하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왕건이라..... 그는 나의 역학으로 볼때 최악의 경우에 속해 있다. 마치 타오르는 불길 옆에 기름이 놓여있듯이... 왕건은 폐하를 태우려고 다가오고 있다...
하늘을 보는 종간의 어두운 표정과 한숨에서.....
씬 15 궁궐 안
종간이 생각에 잠겨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지나치는 내관들과 내군의 군사들이 예를 올리며 지나쳐 간다. 그러다가 문득 종간이 걸음을 멈춘다. 거대한 궁궐 정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종간 (E) 저 엄청난 궁궐은 왕건의 손으로 지어졌다. 그는 댓가의 요구나 불만도 없이 순순히 우리의 영을 따랐다. 그것으로 나는 왕건의 기를 눌렀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아니였단 말인가? (사이) 왕건은 마치 예정된 일이기라도 하듯 폐하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답답하다...왕건만 떠올리면 답답해... 도선대사가 지었다는 도선비기라도 훔쳐보고 싶구나.
그때 도선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종간은 회상에 잠긴다.
도선 (에코) 말해주랴....? 너의 앞 날 말이다.
씬 16 회상 (6회 대본중 서라벌 편에서)
종간과 궁예가 도선을 보고 있다.
그들 .........(긴장)...?
도선 석가모니께서도 많은 업을 다 닦으신 연후에 부처님이 되셨느니라.너 또한 아직 남은 업이 많으니 이를 어이 할꼬?
궁예 .........(미소).......어렵다는 말씀이오니까?
도선 뜻은 이르겠으되........ 복이 박하니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종간 뜻을 이루옵니까?
도선 물러들 가거라. 말장난 할 때가 아니니라.
종간 스님께서는 도선비기라는 앞날을 예측하는 비서가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사실이온지요?
도선 미련한 것들 같으니....... 대범한 척 하면서도 속물들이로구나. 그런 것이 있는들 어떠하며, 없다면 또 어쩔 것이냐. 감히 미륵을 운운하더니 재목들이 아닌게로구나.
씬 17 현실
종간은 회상에서 깨어난다. 도리질을 한다. 그 때 저만큼 일단의 장졸들이 들어선다. 은부를 따라 갔던 염상들이다.
염상 내원 어른, 염상이옵니다......?
종간 오, 자네는 내군장군을 따라서 폐하를 뫼셔나가지 않았는가?
염상 예, 어르신.. 하오나 중간중간 내원 어른께 순행길의 여정을 보고해 올리라는 은부장군의 영을 뫼시고 있사옵니다.
종간 허허... 그래...?
염상 폐하께오서는 지금 혈구진과 한양을 지나시고 다시 남양을 거쳐 죽주로 향하고 계시옵니다. 여기... 앞으로의 일정과 그간의 일을 기록하여 가져왔사옵니다.
종간 수고 하였네.
종간이 그것을 받아들면 이들은 곧 그곳을 벗어난다. 종간은 기록을 힐끗 보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씬 18 어느 길
궁예들이 화려한 행열을 앞세워 오고 있다. 은부가 설명한다.
은부 이제부터가 죽주이옵니다. 폐하께오서 처음으로 의로운 검을 드신 곳이 아니옵니까?
궁예 그러하네 그려.... 참으로 감개무량하구먼. 그때는 기훤이라는 포악한 도적의 괴수가 이곳을 장악하고 있었지.
은부 양길이에게 목숨을 잃은 신훤과 원회 장군을 이곳에서 만나셨다 들었사옵니다만...
궁예 그랬지... 그들이 기훤을 제거하고 나를 따랐었다네. 비록 운명을 달리 했지만 참으로 용맹한 장수들이었네.
궁예는 잠시 더 가다말고 갑자기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본다. 은부와 왕건도 이상한 듯 같이 시선을 돌린다.
은부 무엇을 그리 보시옵니까?
궁예 저 산너머에 칠장사란 절이 있네. 그중 어느 암자에 아는 분이 한 분 계시네.....
은부 그러하시옵니까? 하오면 수하를 보내어 부르오리까.....?
궁예 나이가 지긋 하신 비구니 스님이실세... 번잡한 것을 아주 싫어하신다네.
은부 하오나 폐하께오서 부르시는데.....
궁예 그 분의 아들도 어느 나라에선가 황제가 되었다더군 그래....
왕건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온지......?
궁예 허허허.....그런 일이 있었네....자, 어서 내처 가세.
은부 ......(알송달쏭 하고).....?
궁예는 다시 그 산 넘어를 본다. 행열이 계속 가고 있고....그 위로..
해설 칠장사의 노 비구니... 궁예는 지난 날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연에 연연하지 말고 큰 일을 향해 가라며 모자의 혈연까지 부인했던 그 어머니, 그 질책을 기억하며 궁예는 지금 자신도 칠장사의 어머니를 애써 외면하며 길을 계속 가고 있는 것이다.
씬 19 그 한 쪽
미향과 월이가 말을 타고 가고 있다.
미향 (산세를 둘러보며) 우리가 죽주에 이르렀다고...?
월이 그렇다 하옵니다. 마님.
미향 여기가 죽주이니 북원이 멀지 않았구나... 폐하께서는 이곳에서 북원으로 오셨지.(옛날을 생각한다) 그때.. 북원으로 아니 오셨으면 좋았을 것을....
월이 마님, 옛 생각은 이제 잊으시오소서.
미향 아버님과 숙부님, 형부들이 모두 그곳에 묻혀 계신다. 산소라도 찾아뵈어 명복이라도 빌어드렸으면 좋겠구나.
월이 (낮게) 마님....어쩌시려고 그런 말씀을..... 아니 되옵니다. 잊으시오소서. 아버님과 숙부님, 모두 잊으셔야 하옵니다.
미향 잊어라....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잊을 수만 있다면 춤이라도 추겠느니라..
월이 .........?
미향 지독한 악연이었느니라..... 악마의 장난이었느니라..... 큰 악마가 죽주에서 북원으로 왔지.. (실성한 듯한 웃음) .....악마 말이야.
월이 마님.....
월이는 누가 들을까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다. 미향은 언제부턴가 다른 사람이 된듯 하다. 고을 입구길에 다다르자 그곳의 태수가 관리들을 이끌고 저만큼 다가 온다. 가끼히 이르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다.
죽주태수 어서 오시오소서, 폐하.. 죽주의 태수 폐하께 알현이옵니다.
궁예 반갑소. 자 가십시다.
죽주태수 예, 폐하...애들아, 폐하를 뫼시어라.
한바탕 소란이 일고 궁예와 그 일행들은 고을로 인도된다.
씬 20 죽주 관아 외경
씬 21 동 관아 안 회의장
궁예가 상석에 앉아 광치나 박지윤의 보고를 받고 있다.
박지윤 소신이 이곳 죽주의 사정을 살펴본 바로는 폐하께오서 제정하신 법령에 아주 충실히 따르고 있었사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어 공평하게 세금을 부과하였고 긴 안목으로 농사를 장려하여 그 수확도 상당하였사옵니다.
궁예 (끄떡이며) 그러나 그런 농사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외다. 갈데없는 노약자와 병자들이 바로 그들이고 또 떠도는 유랑민들도 그러하고....
박지윤 그 일에 관해서는 폐하께서 내리신 황명을 지켜 구휼소를 두고 있었사옵니다. 그곳에서 환자들에게는 약을 주고 굶주린 자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고 있었사옵니다.
궁예 (끄덕이며) 태수의 노고가 아주 많았구려...
태수 모든 것이 폐하의 크나큰 은덕에 힘입은 것이옵니다.
유장자 예전에는 탐욕스런 신라 조정의 관리들과 양길의 막하에 있던 비뢰성주 때문에 고을민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하옵니다. 헌데 폐하께오서 이곳을 다스리게 되신 후에 백성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나랏일에 참여하고 있다하옵니다.
은부 하하하. 순행을 가는 곳마다 모두가 폐하를 칭송하는 말들 뿐이옵니다. 아니 그렇소이까?
왕건 그렇사옵니다. 대왕폐하의 위엄이 각 고을고을마다 미치고 있사옵니다. 실로 놀라우신 지도력이시옵니다.
궁예 하하하. 다들 그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소. 하하하.
태수 소관이 폐하를 위해 작은 주연을 마련 했사옵니다. 그곳으로 가시오소서.
궁예 그러고보니 벌써 저녁이 되었구려. 다들 일어서십시다.
태수의 뒤를 따라 그들 연회장을 향한다.
씬 22 연회장
화려한 만찬이 준비되어 있다. 보기에도 진귀해 보이는 음식들이 상다리가 부러질 듯 차려져 있고 유리잔까지 보인다. 신료들은 상당히 놀랍다는 표정들이다. 궁예의 얼굴은 이미 일그러져 있다.
궁예 이것들이 다 무엇인가?
태수 ...?
궁예 이것들이 다 무엇인가 물었소.
태수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온지.......
궁예 이곳 관아에는 재물들이 우리 황궁보다도 많은 모양이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렇게도 분에 넘치는 상을 차려낼 수 있다는 말인가?
태수 아, 그... 그것은 저.....
궁예 (유리잔을 집어들며) 이것은 유리잔이 아닌가? 짐은 궁궐에서도 이렇게 호화로운 물건은 쓰지 않아 (바닥에 던져 깨버린다)
모두들 .......? (숨을 죽인다)
태수 하...하오나 폐하.........
궁예 청렴한 관리가 있어야 백성들이 편한 법이야. 그대는 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 상을 마련했을 것이야. 하지만...이렇게 되려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피눈물이 있었겠는가?
태수 아...아니옵니다. 폐하...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무릎을 꿇으며) 폐하께오서 이곳에 왕림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죽주의 부호들이 다투어 달려와서 자신들의 성의를 보인 것이옵니다.
궁예 (더욱 엄하게) 부호들의 그 성의라는 것이 바로 백성들의 피와 땀이 아닌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세상에는 아직도 굶주린 백성들 천지일세. 그대는 본을 보여야 할 고을의 수령이야. 다시 상을 내오도록 하라.
모두들 .........
태수 ......... (어쩔줄을 모르고 떨며) 예, 폐하....
궁예 세 가지 이상의 찬을 내서도 아니 될 것이며 육식들도 모두 치우도록 하라.. 이 음식들은 가져다가 구휼소의 병자들에게 전해주도록 하라. 지금 즉시 하라.
태수 ...예, 폐하.. 분부대로 시행하겠사옵니다. 여, 여봐라...여봐라...
태수가 급히 밖으로 나간다. 왕건이 존경어린 시선으로 궁예를 쳐다본다. 과연, 과연 궁예인 것이다..... 그런 모습에서......
씬 23 관아 마당
달빛이 은은하게 그곳 마당을 비추고 있다. 왕건이 홀로 나와 나뭇가지 위로 걸려있는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다. 그때 어디에선가 유장가 나타나 왕건에게로 다가온다.
유장자 밤이 늦었네, 그려.
왕건 (돌아보며) ..........유장자 어른이 아니십니까?
유장자 폐하께서도 침소에 드셨는데 왕장군은 아니 주무시는가?
왕건 달빛이 너무 좋아 잠시 바람좀 쏘이고 있었습니다.
유장자 그러셨구먼.
유장자 헌데.. 어째 왕장군의 그 의형제들은 어디다 두고 순행길에 혼자 따라 나섰는가?
왕건 충주에 있사옵니다. 상주의 아자개와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앟으면 같이 왔을 것인데....
유장자 음..... 상주라.... 사벌주.... 그곳은.. 맞아.. 아자개가 버티고 있지. 견훤왕의 아비가 아닌가?
왕건 그렇다 하옵니다.
유장자 참으로 재미있는 일일세. 아들은 황제가 되었는데.. 그 아비는 아들을 거들떠도 안본단 말일세.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허허허...
왕건 그러게 말이옵니다. 뭔가가 있겠지요.
유장자 그러기에 집안에 불화가 있어서는 아니되는 것이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하였네. 집안이 잘못되면 나라를 다스릴수가 없는게야.
왕건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유장자 집안 얘기를 하다보니.... 이 늙은이가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네.
왕건 말씀하시지요?
유장자 왕장군은 왜 아직도 혼인을 하지 않고 있는 겐가?
왕건 .....전장터로만 돌다보니 사정이 그리 되었습니다.
유장자 허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구먼?
왕건 허허허... 글쎄올습니다.
유장자 그렇게 미장가로 있는 것이 혹..... 황후마마 때문은 아닌가?
왕건 ....(사이) 장자 어른.....?
유장자 (진중하게) 잘 생각해 보게. 그렇게 계속 혼자를 고집한다면 사람들은 왕장군이 황후마마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일세.
왕건 ...........?
유장자 달이 참 밝기도 하지. 오늘이 보름인 모양일세? 자... 이제 그만 이 늙은이는 처소로 가려네. 자주 시간을 갖세나...
유장자가 웃으며 사라지고 있다. 그 뒷 모습을 바라보는 왕건의 얼굴이 서서히 굳는다.
씬 24 그곳 관사 외경
이곳에서도 달은 밝다. 숙위하는 내군의 금대와 장일등 군사들이 번을 서거나 지나치고 있다.
씬 25 동 관사 안
은은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궁예와 연화가 술상을 놓고 마주해 있다. 궁예는 술이 제법 되었다.
궁예 이렇게 술을 한 잔 하니 옛 일들이 떠오르는구려. 나는 이곳 죽주에서 일어나 북원으로 갔었소이다. 그곳에서 양길을 만났고.... 미향 보살도 거기서 만났지
연화 ......
궁예 여인들이란 그런 것이가 보오. 자신이 사모하는 남자를 위해 죽음까지 서슴치 않는... 북원 부인이 그랬었지. 내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목숨까지 내놓으려 했소. 나는 결국 그 여인을 받았소이다. 결과적으로는 어리석은 일이었어요.
연화 오랫만의 어주에 취하시나 보옵니다. 그만 침수드시오소서.
궁예 그렇소. 취하긴 취한 모양이오. 오늘따라 황후의 자태가 참으로 고와 보이니 말이요.
연화 .............?
궁예 다들 그대가 대 제국의 황후감이라고 했소이다. 그렇소 내가 생각하기로도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지. 허나 나는 만류했었소. 나와 가까이 하는 여인들은 모두 불행해지기 때문이오. 불행말이오.
연화 그만 하시오소서.
궁예 나는 그대의 운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오. 내 어머니는 나를 낳고 수 없는 핍박과 죽음을 넘어 비구니가 되셨소이다. 내 어머니가 그러하였고 또 유모도 그리 죽었고.... 저 북원부인도 또한 그러하오.
연화 .............
궁예 사실 불행의 원인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그 마음이란 놈만 잡을 수만 있다면.... 되는 것인데....그것이 쉽지 않단 말이오. 나의 그 마음 하나가 바람을 이르키고 폭풍을 몰아오며 세상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는 것이거든... 황후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아름답게 보이는 그 마음 말이오.
연화 .............?
궁예는 연화 가까이 이르러 이끌리듯 본다. 연화도 궁예의 인간적인 모습에 흔들린다. 묘한 교감이 오고간다.. 그러다가 이내 궁예는 마음을 다잡는다. 홱 돌아서며 차갑게 이른다.
궁예 (뒤돌아서며) 이제 그만 나가보시오.
연화 폐하......
궁예 나가라 하지 않소. 밖에 게 아무도 없느냐?
내관 (급히 뛰어 들어와) 예, 폐하.
궁예 (역정) 어서 황후를 모시고 나가거라.
연화가 머뭇거리다가 내관과 함께 밖으로 나간다. 궁예는 한동안 연화가 나간 곳을 보고 있다가 실소를 한다.
궁예 역시 술이란 묘한 것이로다. 여인이 보이다니 여인의 냄새라니.....허허허허.... 마군이가 이 미륵부처를 시험하는 모양이로구나. 감히 이 궁예를......
씬 26 대야성 외경(낮)
여전히 굳게 버티고 서있는 대야성의 모습이 보여 온다..
씬 27 그곳 언덕
대야성 위로 수많은 군사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보여온다. 견훤과 제장들이 심각한 얼굴로 그것을 쳐다보고 있다. 견훤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나온다.
견훤 며칠째 이러고 있다니....도대체 아직도 공격로를 찾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토록 저들이 대단하다는 말인가?
최승우 서두르지 마시오소서. 언젠가는 자신들의 결함을 보이게 될 것이옵니다.
능환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저 모든 것이 허장성세에 불과하옵니다.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성안의 군사들이나 장수들은 한결 같이 노쇠하고 늙은이들 뿐이라 하옵니다. 아군의 전략이 너무 소심한 것이 아닌가 사료되옵니다.
견훤 내가 생각하기도 그런 것 같네 그려. ......이쯤해서 밀어 붙여야지 눈치만 보다가 기회를 다 놓치겠네그려
능환 영을 내리시오소서.
최승우 아니되옵니다. 좀 더 살피고 기다리셔야 하옵니다. 대야성에 와 있는 노장군들은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옵니다.
견훤 파진찬이 너무 몸을 사리는것 아닌가?. 짐이 이만한 군사를 가지고 늙은이들이 모여 있는 저 성하나 빼앗지 못하고 차일피일 눈치나 보고 있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세상이 웃을 일이겠는가? 기다릴 만큼 기다린 것 같으니 정면 돌파를 하세나.
최승우 ............ (한숨을 쉰다)
견훤 잴만큼 재고 살필만큼 살폈네. 우리가 공격하지 않는다면 해결이 없는 전투가 될걸세.
최승우 폐하.......조금만 더 .....
견훤 가다려도 마찬가지일세. 공격하세.
능환 현명하신 판단이시옵니다. 폐하.
견훤 이보게 추장군!
추허조 예, 폐하
견훤 날이 저물면 총 공격을 감행할 것이니라. 태자 신검과 함께 선봉을 맡아 정문을 뚫어라..
추허조 (군례를 올리며) 선봉을 주시니 고맙사옵니다, 폐하.
신검 ..........
견훤 그리고 수달장군은.....
수달 예, 폐하.
견훤 양검과 함께 적의 좌측 방어선을 교란시키도록 하게.
수달 알겠사옵니다.
견훤 인가별감 김총은 우측을 집중 공략하라.
김총 예
견훤 장군 공직은 예비군을 이끌고 있다가 영을 받는대로 군사를 투입하라.
공직 예, 폐하.
견훤 오늘 밤 안으로 다 끝을 내야 할것이야. 내일 아침이면 우리 백제국의 깃발이 저 성루에 걸려 있어야 할 것이야.
모두들 예....
씬 28 능환의 군막
등을 돌리고 서있는 능환에게 최승우가 계속 설득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승우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옵니다. 재고하여 주십시오, 이찬 어른....
능환 ............
최승우 이찬 어른..........
능환 이미 폐하의 영은 떨어졌네. 나보고 어쩌라는 겐가?
최승우 설득하여 주시오소서. 이찬의 말씀이라면 폐하께오서도 다시 생각하실 것이옵니다.
능환 이 능환이는 폐하의 성품을 잘 알아. 절대로 영을 거둘 분이 아닐세.
최승우 저 성을 보시오소서. 그야말로 철옹성이옵니다. 빈틈이 보여야 비집고 들어갈 것이 아니옵니까? 지형이 악하고 도처에 감당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널려 있사옵니다. 또한 첨병들의 보고에 따르며 신라의 지원군이 서라벌에서 속속 도착하고 있다 하옵니다.
능환 ......... (그저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런 쓸모 없는 신라군들이야, 뭐 크게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최승우 이찬 어른...
능환 우리는 한 번도 져본적이 없는 철기군을 앞세우고 있네. 천하무적의 철기군 말일세. 이보게 신라를 도모하는 것은 급하고도 중한 일일세. 이번에 망설이면 아무것도 아니되네. 이번만은 내 뜻을 따라 주시게.
최승우 이찬 어른....?
능환 자넨 앉아서 구경만 하게. 이 능환이도 병법과 지략에는 일가견 있는 사람이니.........
최승우 .....(한숨)......
씬 29 임시 군영 (밤)
어둠속에 풀벌레 소리가 높다. 그곳 임시 군영에는 대오를 정열한 백제의 군사들이 곳곳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바람은 더욱 거세어져 있다. 군사들과 제장들은 숨소리마저 죽인 채 수장인 추허조와 신검의 영을 기다리며 멀리 어둠 속의 대야성을 보고 있다. 그 좌우로 수많은 군사들 속에서 수달과 공직등의 장수들이 보여 온다. 드디어 추허조의 공격령이 떨어 진다.
추허조 전군, 공격하라.
이어서 제장들이 계속해 영을 메아리처럼 복창하고 있다. 장졸들과 군마가 중장비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둠 속의 벌판은 들끓기 시작한다.
씬 30 그 후미의 견훤 본영
견훤과 능환, 최승우들이 몰려가고 있는 대군을 보고 있다.
능환 폐하의 대군이 출병을 시작했사옵니다.
견훤 ...............?
능환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옵니다. 우리 백제국의 명장들이 모두 참여한 전투이옵니다.
견훤 .......(끄떡이며) 헌데.... 신검이와 양검이가 잘 해낼 수 있을 지........?
능환 폐하의 피를 이어 받으셨사옵니다. 신은 두분 태자마마를 가르쳐온 스승으로서 말씀드리건데 이번 전투에서 꼭 큰 기쁨을 안겨드리리라 믿사옵니다.
견훤 허나... 아직은 경험도 없고...이번이 첫 전투일세. 좀 더 일찍 전장터를 알게 해주었어야 했는데....
능환 기다려보시오소서. 분명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옵니다. 승전보를 기다리시오소서.
견훤 그래... 한 번 믿어보세 그려. 그리도 이 견훤이의 아들이 아닌가?
최승우 ..................
씬 31 대야성 성곽
견훤의 군사들이 개미떼처럼 성문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다. 추허조가 중앙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고 신검은 두려운 듯 그 옆으로 붙어 달린다. 저만큼 좌우로 수달과 김총들도 장비를 몰아 가면 달리고 있다. 이들은 그 성 밑에 이르고 치열한 공격과 방어가 시작된다. 그 치열한 접전.....불화살과 돌덩들이 쏟아지기 시작 한다..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고 피아 간에 손실이 곳곳에서 보여 온다.
추허조 공격하라! 성문을 열어라!
운제가 동원되고 문을 부수는 포차가 다가 간다. 그 와중에서 무수한 군사들이 떼로 죽어 간다. 추허조 옆에 붙어 잇는 신검의 표정이 공포와 겁에 질려 있다. 추허조는 계속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다.
추허조 물러서지 마라. 운제를 올려라 . 화살을 쏘아라... 좌측 공격하라. 우측 공격하라. 태자마마 소장 근처에서 떨어지지 마오소서.
신검 예, 장군.
씬 32 그 좌측과 우측의 모습들
군사들이 필사적으로 비탈진 성을 오르려 하고 잇다. 그러나 중과부적이다. 신라의 노장들이 힌 수염을 휘날리며 성안의 군사들을 부리고 있다.
노장군1 돌을 굴려라. 뜨거운 기름을 쏟아부어라
아비규환이다. 돌과 기름들이 쏟아져 내리고 수달과 군사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죽어나가고 있다. 그것은 또 다름 쪽의 김총도 마찬가지이다.. 힘겨운 전쟁이다. 견고한 성을 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씬 33 다시 견훤의 본영
멀리 불야성이 보여오고 있다. 아수라장의 전투 소리들이 들려 오고 있다. 견훤의 표정이 초조 속에 꿈틀거리고 있다. 능환도 최승우도 굳어 있다. 공직이 옆에서 함께해 있다.
견훤 전선이 어렵다고...?
공직 예, 폐하... 정면의 본군과 좌우 측면의 모든 군사들이 피해가 속출한다 하옵니다.
능환 일시적이옵니다. 좀 더 지켜보시오소서.
최승우 .....?
공직 일시적이 아니옵니다. 대접전이 시작된지 두식경이 훨씬 넘었사옵니다. 적군은 손실이 없사온데 아군의 피해만 크게 늘어나고 있사옵니다.
견훤 ...............?
씬 34 다시 그곳 성루.
본성 안에서 김효종이 전투를 지휘하고 있다. 성 아래로 즐비한 견훤군의 시체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노장군들이 목이 터져라 독전 하고 있다.
노장군2 화살을 퍼부어라. 저 반군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그 와중에서 전세를 살피고 있던 김효종이 옆의 노장군3에게 눈짓을 한다. 그러자 한 떼의 궁수부대가 나타나 성 밑에서 지휘하고 있는 추허조를 겨냥한다. 지시에 의해 숱한 화살이 날아간다. 추허조는 신라군이 특별히 자신을 겨누고 있음을 눈치챘다. 한 번. 그리고 두 번은 피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롭지가 못하다. 옆에 신검이 있기 때문이다.
씬 35 그 성 밑
추허조에게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다. 주변의 군사들은 이미 태반이 죽어서 쓰러져 비어있다. 신검이 어쩔 줄을 모른다.
신검 (두려워) 장군... 우리 쪽으로만 화살이 날아오고 있소. 구..군사들이 다 죽었소이다...?
추허조 소장에게 바짝 붙으시오소서. 이 곳을 벗어나야 하옵니다.
그러나 그때 화살 하나가 추허조의 어깨를 관통한다. 그리고 연이어 다시 한나가 더 꽂힌다. 추허조가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져 나뒹군다. 신검이 어쩔줄을 모른다.
신검 자, 장군....?
추허조 피하시오소서 어서....태자마마 어서....
신검 장군....
추허조가 화살을 꺽어 뽑고 칼을 꼬나쥔다. 성안의 김효종이 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으면서 수기를 흔든다.
김효종 적장이 쓰러졌다. 목을 베어라.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 매복해 있던 신라의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시에 쏟아져 나온다. 신검은 결국 눈치를 보다가 말머리를 돌려 어둠 속으로 달아난다. 견훤의 군사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허둥지둥 대다가 백병전으로 이어진다. 추허조는 군사들과 한께 어우려져 싸우다가 그 어둠 속으로 묻혀 보이지 않는다.
씬 36 견훤의 본영 앞
견훤이 놀라 외치고 있다.
견훤 추장군이 무너져? 추허조가 당했단 말인가?
전령 그러하옵니다. 집중적으로 쏟아부운 궁수부대의 화살에..... 그만.....
견훤 죽었는가?
전령 확인되지는 않았사오나... 말에서 화살을 맞고 떨어져...... 그 행방이 불분명 하옵니다.
견훤 군사들은...?
전령 선봉에 섰던 추장군 예하의 일천여 군사는 전멸했사옵고......
견훤 (믿기지가 않는다.)...전멸...?
능환은 불안함에 어쩔줄 몰라하고 있고 최승우는 예상이라도 한 듯 담담하다.
견훤 신검이는..... 신검이는 어찌 되었느냐?
전령 다행이도 미리 후진으로 급히 나오시어.....목숨만은 부지 하셨사옵니다.
견훤 후진?.... 뭐라.....미리..... 후진으로 나와.....?
모두들 ......?
견훤 방금 미리.... 후진으로 나왔다 했겠다? 함께 간 지휘장수가 쓰러지고 있는데 짐의 장자가 비겁하게 후미로 달아나....?
전령 그... 그게....
견훤 이런 천하에 못난 놈을 보았는가? (화를 누르며) 수달은....? 장군 김총이는.... 다 어찌 되었는가?
최승우 ....그곳에서는 아직 전령이 도착하지 않았사오나 조금 전까지 알려진 상황으로 보아서는.....어려운것 같사옵니다.
견훤은 순간 아찔함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그때 신검이 눈치를 보며 들어선다. 견훤의 눈이 점점 더 크게 분노로 떠지며 떨기 시작한다.
최승우 (달래듯 ) 폐하....?
신검 아바마마.....
견훤 추장군은 어디에 있느냐?
심검 .....
견훤 너와 함께 간 장군 추허조는 어디에 있어?
신검 아바마마....적군의 공격이 워낙 심하여....
견훤 예끼 이놈........
말채찍을 그대로 얼굴에 날린다. 신검이 얼굴을 감싸쥔다. 피가 떨어지고 있다.
견훤 함께 간 장수가 쓰러졌는데 너만 도망을 치다니....네가 그러고도 이 견훤이의 아들이란 말이냐? 그러고도 네가 대 백제국의 태자이냐?
견훤은 다시 말채를 내려친다. 두 책사는 어쩔줄을 모른다. 견훤은 다시 이번에는 검을 빼어든다. 그리고 아들을 노려본다.
두사람 페하,
견훤 너는 나라의 명예를 더럽혔다. 이 칼로 목숨을 끊어라.
신검 아바마마?
견훤 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