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깊은 산속에서
서로 놀라며 처음 만났다.
그 후로도 자주 상면을 했으나
모른 척 모른 척하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문 얖에 있는 살구나무 고목에
거의 날마다 내려와 앉는다.
올빼미인지 부엉이인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너, 부엉이가 맞구나.
그런데 웬일일까?
어려서도 들어 본 그 울음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도 지난 몇 해 동안
한 사람이 딱 한 번 들은 적 있다 할뿐이다.
방울뱀이 더는 방울 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다는
생태 변화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부엉이까지 울지 않게 되었다는 말인가?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다.
제 소리를 내는 것조차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렸느냐?
인간 세상 시끄러운 소리에 기가 질려 버렸느냐?
그래도 나는 너의 소리가 그립다.
밤을 낮처럼 활개치며
자신 있고 용감하게,
너의 소리를 한껏 질러 보렴.
지금, 여기, 나 있어! 하고.
칡
딸아이가 기관지가 약합니다,
한 뿌리만 내어주세요.
숲 속 산책길에서 만난 '그분'에게 양해를 구했다.
무지한 내가 보아도 백 살은 족히 잡수셨겠다.
누군가 먼저 캐가고 남은 뿌리인데도
들어내니 80 킬로그램이 넘어보인다.
힘깨나 쓰는 나도 한 번에 들 수가 없어
산중 해체를 해서 세 번에 나누어 날라왔다.
칡의 끈질긴 생명력은 잘 알려져 있다.
천적인 멧돼지가 아무리 파헤쳐도
끄덕없이 살아남아 온 산에 퍼진다.
문제는, 그 기세에 눌려,
주변의 웬만한 나무는 배겨내질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살려는 의지가 너무 강하다보니
다른 생명이 죽는 줄은 모르는구나.
그렇게 다른 생명을 죽이면서
백 년을 살았구나.
강해야 하나 너무 강해서도 안 되고
약해도 너무 약한 건 문제일 텐데
생명의 변중법은 이해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