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권우상
아버지의 지게
아버지가 날마다 지시던
손때 가득 묻은 지게가
마당 한쪽 구석에
그림처럼 놓여 있습니다
자나 깨나 논두렁 밭두렁
분주히 오가며
삶을 퍼 담아 나르시던
아버지의 지게
지금은 먼 나라로 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고단함이
지게에 담겨 있습니다
휘청거리는 두 다리를
작대기 하나에 기대시고
안개 자욱한 새벽길 나서시며
흙과 함께 살아오신 아버지
억척스럽게 산더미 같은
소먹이는 풀도 베어오시고
마늘과 풋고추, 생강도 담아
우리들을 길러내시던
아버지의 땀방울 맺힌 지게
고향의 따스한 정을 받으며
지난날들의 뒤에 서서
아버지의 지게는
오늘도 나를 반깁니다.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소감 깨끗한 동심 심어주기 위해 칠순에 도전장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흐른 세월만큼 눈물과 애환도 많았습니다. 남들은 모두 잘 따내는 신문사 신춘문예를 저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낚아 올리지 못하고 한평생 가슴에 미련을 묻고 살아야 했는지 의아할 때가 있었습니다. 두 번의 전쟁을 몸소 체험하면서 전쟁이 무엇이며 전쟁의 상처가 어떤 것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저는 잘 압니다. 그리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지 그 모습도 보았습니다.
책이 귀했던 시절이지만 아버지는 수시로 책을 사오셔서 저에게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책은 늘 저와 함께하는 친구이며 인생의 동반자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멈출 수 없는 문학에 대한 열정도 함께하였습니다. 문학은 적어도 인생을 견디도록 해 줍니다. 살기 어려운 시절에 자식을 키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한 편의 동시에 담아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지게’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살기가 어려울 때 우리나라 아버지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겁이 납니다. 정서가 없고 어른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답게 자라도록 동심을 심어줘야 하며 그것은 어른들의 몫입니다. 너무 오래 신춘문예의 벽을 넘지 못해 포기하려고 작심했는데 올해 혼불 문학상에 77세 할머니가 당선됐다는 소식에 용기를 내어 응모했습니다. 저의 동시를 예쁘게 봐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감사한 마음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더욱 멋진 동시를 쓰는 데 열정을 쏟겠습니다.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권우상(부산시 북구 화명2동) 1941년생. 단국대 부설 통신교육대 수료 국제상사(주), 부광철강(주) 등 근무
2012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심사평
토속적인 심상과 사물을 보는 깊이 있는 시선
어린이들의 현실적 정신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어린이들의 정신세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시인의 치열한 시정신이 요구된다. 다행한 것은 작품의 대상이 되는 소재나 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불변의 동심이라는 것이다. 동심은 시인이 평생을 천착하는 과제이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것은 언어적 유희나 성인의 고형화된 동심을 오늘날의 동심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응모 작품을 정독하면서 느낀 점은 작품의 다수가 어른들이 지난날을 반추하면서 쓴 관념화된 동심, 또는 생활 현장에서 보여주는 어린이의 행동이나 말투 등 표피적인 것에 시선이 닿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심금섭 씨의 ‘여름 일기를 읽으며’ 외, 권우상 씨의 ‘아버지의 지게’ 등이 기대를 갖게 하였다.
먼저 심금섭 씨의 ‘여름 일기를 읽으며’는 심상이 활달하고 시의 구성 또한 유기적으로 잘 교직되어 있었다. 특히 ‘갈매기 소리 한 줄’ ‘넓은 갯벌에서 웃었던 일 몇 줄’ 등 바닷가에서 있었던 사연들이 일기장에 쓴 줄에서 반갑게 달려 나온다는 표현은 동심과 시심에 잘 닿아있어 좋았다.
그러나 신인다운 참신함과 독창성에 흠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선자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기성시인의 유사한 심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신선한 발상과 정감 있는 표현, 빠른 시행 전개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으나 마무리가 약한 부분이 흠이 되었다.
권우상 씨의 ‘아버지의 지게’는 아버지의 신산한 삶을 지게를 통해 사실적이며, 토속적인 심상으로 형상화하였다. 특히 지금은 마당 한쪽 구석에 그림처럼 놓여 있는 지게를 통해 아버지의 수고로움과 가족 사랑을 동심의 눈으로 조응한 점은 매우 좋았다. 그러나 ‘삶을 퍼 담아 나르시던’과 같은 표현은 이 작품의 세부적인 눈높이가 아직 동심에 밀착하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어 아쉬웠다. 하지만 전체적인 발상과 표현이 동심에서 크게 일탈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사물을 보는 깊이 있는 시선이 신뢰를 갖게 해주었다. 선자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빈다.
하청호(아동문학가)
첫댓글 아! 그 분, 할아버지, 아니 오빠~ 진심으로 신춘당선을 축하합니다. 멋지십니다. 대단하십니다. 대박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