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롱베이 류탐비에 섬 4개 루트 등반
남국의 해벽에서 맞은 새해 아침 글 고미영 청주대·코오롱스포츠·사진 남영호 기자·협찬 코오롱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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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첫 번째 피치(6a+)를 등반중인 고미영씨. 이곳의 루트 난이도는 프랑스식을 사용한다. |
베트남 최고의 명승지인 하롱베이(Ha long bay)는 베트남어로 ‘용이 내려온다(下龍)’는 뜻이다. 그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롱베이에는 마치 용이 바다 속에서 머리를 내민 듯 크고 작은 3000여 개의 섬들이 솟아있다.
이 독특한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은 그 모습이 중국의 계림과 닮았다 하여 ‘바다의 구이린(桂林)’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롱베이는 그 말에 걸맞는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옛날 외적의 침략에 시달리던 이곳에 하늘에서 용의 아들이 내려와 적을 물리치고 보석을 뿜어냈다는 것이다. 그 보석들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요새가 되어 지금까지 바다에서 오는 적을 막고 있다고 한다. 깊고 푸른 바다는 그런 전설을 간직한 듯 신비로운 분위기에 싸여 관광객들을 맞는다. 하롱베이는 1994년 유네스코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어 이제 외적의 침입 같은 것은 걱정할 일이 없지만 숨죽이듯 고요한 바다에는 지난 가슴 아픈 역사도 묻혀 있다.
1884년부터 60여 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1945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다시 남북으로 나뉘어 30여 년간의 베트남전쟁까지 굴곡 많은 현대사를 겪어온 바다는 언제나 잔잔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 깊은 곳에 전쟁의 상흔을 감추고 있다.
“씬 짜오? 베트남”
하롱베이에 대한 정보는 여행안내지 <세계를 간다-베트남>과 프랑스 잡지에 실린 다섯 페이지가 전부였다.
표지에 담은 하롱베이의 클라이밍 사진은 누가 보아도 아름다웠고 신비로웠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하롱베이의 해벽등반을 처음 시도한다는 설렘과 미지의 세계를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떠나기 전부터 간절했다. 얼마간의 사전 준비를 마치고 일주일간의 여정으로 2004년 12월 28일 윤길수(애스트로맨 인공암장 대표), 손상원씨와 함께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 꽁꽁 얼어붙은 한국을 떠나 을유년 새해는 포근한 남국에서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씬 짜오? 베트남.”
‘안녕하세요 베트남’ 하는 인사와 함께 도착한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은 현대적인 시설에 불편함이 없었지만 공항을 나서자 덥고 습한 기운이 올라왔다.
하롱베이로 가기 위해 낌마(Kim Ma) 터미널로 가는 공항버스 안에서 본 바깥의 경치는 여느 중국의 시골과 다를 바 없다. 조그만 바구니 위로 옥수수와 과일 등을 쌓아놓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며, 까만 피부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낡은 작업복에 정겨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남정네들까지, 이번 여행은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하는 기대감 속에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마음은 설랬다.
하지만 승용차보다도 몇 배가 많은 오토바이의 소음은 정다운 풍경 속에서 옥의 티 같았다.
하노이 시내로 들어서니 프랑스 통치시대에 세워진 서양식 건물과 교회, 주식인 바게트까지도 식민지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가이드북에는 낌마 터미널에서 하롱베이 행 버스가 있다고 나와 있었지만 정작 터미널에 버스는 없었고 우리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왔던 길로 다시 가라며 지아람(Gia Lam) 터미널을 알려준다.
택시를 타면 편했지만 이곳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커다란 배낭을 메고 500동(한화 약 30원)의 요금을 내고 지아람 터미널 행 버스에 올랐다.
어렵사리 도착한 터미널에는 다행히 하롱베이 행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몇 시간 만에 의자에 앉아 다리를 쉴 수 있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버스 창가자리에 앉아있는데 시커멓게 때가 낀 손톱과 함께 창문으로 바게트가 쑥 들어온다.
한 개에 한국 돈으로 70원쯤 하는 빵을 사서 허겁지겁 세 개나 먹었다.
시골길을 달려 밤 9시가 넘어서야 하롱베이 바이짜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누군가 아는 척을 했다.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그는 이름이 ‘쫑’이라고 했다. 대학생으로 고향에 오는 길이던 그는 부모님이 하롱베이에서 호텔을 경영하고 배도 있다고 했다.
드디어 하루를 편안하게 마감할 수 있겠구나 하며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그를 따라갔다. 쓸쓸한 겨울 밤바다를 걸어 10분쯤 가니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5층짜리 건물이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더군다나 두 명이 쓰는 방이 하루 7달러라고 하니 가격도 저렴해 좋았다. 하루 종일 일어났던 이런 저런 일들로 피곤함이 온몸에 젖어들었으나 타국에서의 첫날밤을 그냥 넘기기는 아쉬웠다.
함께 온 일행들과 근처 레스토랑에서 해물볶음밥과 타이거 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내일의 멋진 등반을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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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먼더그레이트(7a)의 손상원씨. 아래 확보자는 윤길수씨다. |
조각배를 타고 찾아간 해벽
대부분의 베트남 음식은 한국에서 ‘고수’라고 하는 채소가 향신료로 들어가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은 먹기가 힘들다. 아침을 베트남 국수로 때우면서 함께 온 일행들은 음식에서 나는 향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나는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외국에 나오면 현지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이 오래 버틴다는 것을 많은 경험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회색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했지만 우리의 가이드를 자처한 쫑의 이야기로는 오후에 햇빛이 날 것이라며 가장 가까운 1번 구역인 다우고(Dau Go)로 가자고 한다. 수천 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하롱베이의 바다는 잿빛하늘과 더불어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낭만이 감돌고 있었다.
배를 타고 다우고에 다가서자 바람 한 점 없는 바다와 주변의 수상가옥이 주는 신비함은 표정 없는 사람들의 얼굴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비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우고는 하롱베이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경치가 좋은 곳으로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거치는 첫번째 지역이라고 한다.
직접 잡은 고기를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는 일이 이 지역 사람들의 주 수입원이고, 가끔씩 관광객을 작은 배에 태우고 산책하는 일이 부수입이라고 한다.
매일 배를 타는 탓에 거의 걷지 않는 사람들의 다리는 퇴화한 것인지 가늘기만 했다. 집집마다 개를 키우고 있는 것도 특이한 풍경이었다. 물 위에 떠있는 집과 난간 끝에서 땅을 그리워하며 육지 쪽을 향해 서 있는 개들의 모습은 그들의 오랜 전통과 고단한 삶을 함께 보여주는 듯했다.
클라이밍 지역인 류탐비에(Luy Tam Biet)까지 가기 위해서는 조그만 보트를 빌려 타야 했다. 수천 개의 섬 속에서 목적지를 찾아내기란 현지인들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렁이는 배는 조금만 움직여도 뒤집힐 것 같았다. 류탐비에 섬에는 총 네 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작은 보트에서 내려 뱀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엘리자콤이라는 루트 사이로 올라가면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테라스가 나타난다. 이곳에 불필요한 짐을 두고 장비만 챙겨 이동해야 한다.
총 세 마디로 이루어진 뱀파이어 스테이트 빌딩(Vampire State Building)은 각 마디의 최고난이도가 5.10c, 5.11b, 5.12b 정도로 올라갈수록 고도감과 함께 날카로운 홀드로 손끝이 아프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홀드가 불안정해 보이지만 막상 깨지는 홀드는 거의 없었다. 등반 중에도 초크 가루의 흔적이 없는 것을 보면 여름 이후 방문한 사람이 없었던 같다.
많은 이들이 여름휴가 때 관광 삼아 왔다가 하루 이틀 클라이밍을 맛보고 가는 것 같았다. 한 피치로 이루어진 엘리자콤(Elizakom·6c+), 샤먼더그레이트(Shaman the Great·7a), 붐붐마사지(Bum Bum Massage·6b+)는 주로 크랙등반 루트였다. 크랙 경험이 적은 스포츠 클라이머들에게는 흥미 있는 루트일 것 같았다.
엘리자콤은 첫 볼트가 다소 멀다고 느껴지므로 출발 지점에 프렌드를 설치하여 확보를 보는 것이 안전하다. 우리는 별다른 장비를 가져오지 않았지만 일행 중에 많은 경험을 가진 윤길수 선배가 캠과 너트 등의 장비를 미리 준비해서 다행이었다.
이런 중간확보 장비들이 없었다면 등반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롱베이 주변에는 많은 섬이 널려있어 멀리 가지 않아도 장비만 준비되어 있다면 해벽이 있는 섬을 골라 새로운 루트를 만들어 초등도 가능해 보였다. 미국과 유럽의 스포츠 클라이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한다는 이곳은 멋진 경치와 함께 가슴 졸이는 등반을 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금방 탄로 날 얄팍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하지만 그들의 야윈 볼을 보면 왠지 미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다투고 나면 또 다른 사람이 와서 거짓말을 하는데도 말이다. 첫날 등반을 마치고 일행들과 저녁을 먹으며 지금까지 겪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빨간 국기와 하얀 아오자이 차림의 여자들과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오토바이와 바다에 떠있는 수상가옥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나라 베트남. 남국의 해벽에 매달린 채 한 해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이제 새해 새아침을 기다릴 시간이 온 것이다.
3월호에는 마지막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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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근로 |
INFORMATION
하롱베이 등반 길잡이
하롱베이에 있는 수천 개의 섬들 중 등반지로 알려진 곳은 대략 7개 정도이며 총 70여 개의 루트가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류탐비에(Luy Tam Biet)에는 4개의 루트가 있으며 GPS 좌표는 N20 54’ 02” E107 01’ 06” 이다.
접 근 로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하롱베이의 바이짜이로 가려면 버스와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3번 버스를 타고 하노이시의 지아람(Gia Lam) 버스터미널까지 가서 하롱베이의 바이짜이로 가는 버스를 갈아탈 수 있다.
공항에서 지아람까지는 30분 소요되며 요금은 500동이다. 지아람에서 바이짜이까지는 3시간 30분 소요되며 요금은 3만5천동이다. 간혹 배낭이나 짐이 클 경우 돈을 더 요구하지만 지불할 필요가 없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사전에 택시기사와 요금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
공항에서 바이짜이까지는 보통 80만동이며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택시는 종류가 다양하므로 승차 인원과 짐의 개수 등을 고려해 차량의 종류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바이짜이에서 등반지까지는 배를 이용한다. 빠른 모터보트가 있으면 좋겠지만 운행되는 대부분의 배는 30~40명은 탈만한 작은 유람선이다.
배에서 숙식이 해결될 만큼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배도 있다. 3000개나 되는 섬 속에서 원하는 곳을 찾아가기란 현지인들도 어려워 필히 GPS가 장착된 보트를 빌려야 한다.
배를 빌리는 비용은 하루 60달러 정도에 구할 수 있으며 기타 입장료와 배에서의 식사비는 별도로 청구된다.
숙 식
부온 다오(Vuon Dao) 거리에 싼 미니호텔이 많다.
대부분 트윈 룸이며 샤워실과 화장실이 딸려 있고 작은 냉온풍기가 있다. 가격은 성수기인 여름에는 10~15달러이며, 비수기인 겨울에는 7~10달러 선이다. 간단한 베트남 국수 등이 조식으로 제공된다.
보다 편한 잠자리를 원하면 선착장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여러 고급 호텔들을 이용할 수 있다.
별 3개짜리 호텔은 일반실 기준으로 성수기에 70~100달러, 비수기엔 40~50달러에 이용할 수 있다. 별 4개 고급 호텔은 성수기에 100~150달러, 비수기에는 50~70달러 정도이다.
먹거리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에 걸맞게 해산물 전문식당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대중음식점이라면 볶음밥, 국수 등을 1만~2만동 정도에 맛 볼 수 있다.
해물요리의 경우 재료의 종류와 무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므로 주문 전에 확인해야 한다. 콜라 등의 캔 음료는 음식점에서 보통 1만동 정도한다.
클라이밍 시기와 장비
12월에서 2월 사이가 등반하기 좋다.
베트남은 겨울철에도 따뜻할 것 같지만 의외로 쌀쌀하다. 한국의 겨울보다 기온은 높지만 바닷가에 접해있는 탓에 하루 종일 찬바람이 불어온다.
특히 등반을 위해 바닷가로 나갈 땐 보온에 특별히 대비해야 한다. 우모복과 파일재킷 등은 필수품이다. 중간에 볼트행거가 깨진 곳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를 대비하여 캠장비, 너트, 여분의 슬링 등의 장비를 준비하면 요긴하게 쓰인다. 특히 와이어행거를 준비하면 깨진 볼트행거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다.
기타 정보
환율은 1달러에 15500동 정도하며, 시내버스는 500동, 오토바이는 1000동, 택시는 기본요금 이 9000동~1만1천동 가량 한다.
국제공항 이용료가 14달러이고 시차는 한국보다 2시간이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