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Burgos)
중세부터 부르고스는,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또한 스페인의 역사와 예술, 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적들로부터 방어가 용이한 전략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고, 과거 까스띠야 왕국의 수도로
까미노 데 산띠아고가 지나가는 주요지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닷길과 까미노의 만남은 부르고스의 유물들을 널리 퍼지게 만들었고,
양모 산업의 독점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주교가 상주하는 도시이자, 박력 넘치고 아름다운 도시,
그것이 바로 부르고스 입니다.
부르고스의 구 시가지에서는 흥미로운 유적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꼭 들려 볼만한 곳입니다.
산따 마리아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ia)
부르고스 대성당(Catedral de Burgos)라고도 부르는 산따 마리아 대성당은
1221년 알폰소 10세와 마우리시오 주교의 후원으로 짓기 시작한 건축물로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빼어난 고딕 양식 건축물입니다.
세비야, 똘레도에 이어서 스페 인에서 3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스페인 고딕 양식 건축물 중 가장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성당은 2차에 걸쳐서 완성되었는데 첫 번째는 1221년 페르난도 3세의 명으로
프랑스의 건축가 앙리에 의해 신랑과 아름다 운 현관이 만들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15세기에 독일인 건축가인 후안 데 콜로니아에 의해 건축된
첨탑과 꼰데스따 블레 소성당입니다.
산따 마리아 대성당은 세 개의 신랑과 아름다운 꼰데스따블레 소성당이 있으며
특히 성당 지붕의 돔은 아름다운 르네 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밖에 13세기에 만들어진 탑과 15세기의 첨탑이 있으며,
여러 세대의 파사드와 현관 등이 손꼽힙니다.
특히 환상적인 에스깔레라 도라다(Escalera Dorada; 금계단)는
꼬로네리아 문으로 이어지고
성당의 내부에는 무수한 조각상과 부조, 회화가 소장되어 있으며
신비로운 산또 끄리스또 데 부르고스 조각상도 있습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커다란 신랑 앞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103개의 성직자 의자가 있고,
앞에 수랑과 교차하는 문이 있는데 그 아래에
엘 시드와 그의 아내 히메나의 묘표가 있습니다.
제단의 후면으로는 여러 개의 소성당들이 있으며
그 안에는 수많은 조각품들이 숨어 순례자를 맞이합니다.
특히 꼰데스따블레 소성당의 천정에는 환상적인 채광창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또한 이 소성당의 오른쪽 성물실안에는 레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의 상이 보관되어있습니다.
도시를 관통하는 강을 건너 아름다운 산따 마리아 아치를 통과하면
산 페르난도 광장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때 한눈에 가득 대성당이 들어옵니다.
광장 앞 나체로 벤치에 앉아있는 순례자의 조각상에서
기막힌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어 보거나,
대성당을 관람하기 전에 한눈에 대성당을 관찰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부르고스 대성당의 보물들
엘 빠빠모스까스
부르고스 대성당에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 거대한 입을 벌리는 인형이 있습니다.
물론 현재는 소리가 나지 않고 입만 벌릴 뿐인데, 중세에는 왜 비명을 질렀던 것일까요?
옛날, 엔리께 3세가 대성당에 기도하러 왔다가 아름다운 처녀에게 반했고,
며칠 간 그녀의 집 앞까지 따라다닌 왕은 용기를 내어 처녀에게 손수건을 주었습니다.
손수건을 받은 처녀는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주며 집으로 들어가서 슬프게 울었습니다.
그 후로 왕은 처녀를 볼 수 없었습니다.
상심한 왕이 신하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신하들이 그 집은 벌써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라고 말하였습니다.
슬픔에 빠진 왕은 그 처녀를 빼닮고, 흐느낌까지 내는 조각상을 만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조각가는 솜씨가 좋지 않았습니다.
조각가는 처녀를 빼닮은 조각은 커녕 장난기 있어 보이는 거대한 입에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는
늙은 남자 인형 밖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 비명 소리 때문에 도시의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고,
결국 부르고스의 한 주교가 영영 이 인형이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렸다고 합니다.
대성당의 십자가 상(치마 입은 예수님)
부르고스 대성당에 있는 십자가상은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경배 받는 성상입니다.
중세의 한 부유한 상인이 플랑드로 여행을 떠나며 아구스띠노스회 수도자들에게
자신이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보답으로 돌아오는 길에 좋은 선물을 가져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인은 배를 타고 귀국하면서 약속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판 위에 서 있던 상인의 눈에 바다 위를 떠다니는 큰 궤가 보였습니다.
상인이 궤를 건져냈더니 그 안에는 사람 크기의 십자가상이 들어있었습니다.
상인이 십자가가 담긴 궤를 싣고 부르고스로 돌아오자 도시의 모든 종이 저절로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죽은 이를 18명이나 살려냈다고 전해질 정도로 이 십자가상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는데,
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상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 그리스도상은 사지와 머리를 구부리고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11세기 레콩키스타(Reconquista:이슬람교도에게 점령당한
이베리아 반도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기독교도의 국토회복운동)의
영웅인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iaz de Vivar)의 묘지.
부르고스 출신으로 ‘엘시드(El Cid)’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그의 유해는
1919년 아내인 도냐 히메나(Dona Jimena)의 유해와 함께 성당 중앙,
플라테레스크(Plateresque)양식의 금속 세공으로 장식한 돔 아래에 안치되었다.
엘 시드의 궤
부르고스 대성당 회랑에는 엘 시드의 노래에 등장하는 궤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엘 시드는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유대인 디마스와 라켈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그는 담보로 두 유대인에게 이 궤를 잡히면서,
그 궤에는 보물이 들어있지만 일 년 안에 궤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 후 엘 시드는 돌아와서 빚을 모두 갚았고 유대인들 앞에서 궤를 열었는데,
그 안에는 보물이 아니라 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엘 시드는 자신이 말한 보물이란 황금보다 더 값나가는 자신의 말과 약속이라고 말했습니다.
▲황금 계단, (Golden Stairway)
교차부의 북통으로 떠받치는, 끝이 8개인 별 모양 궁륭은 세련된 건축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 건축의 영향을 받은 리브의 짜맞춤이 대단히 아름답다.
경사면에 성당을 건축하여 높이가 맞지 않아 처음엔 보기 흉한 계단이 있었는데
어떤 주교님이 이것을 치우라고 해 허물어 버리고
천재 건축가인 디에고 데 실로에(Diego de Siloe (1519-1522)가 건축한 작품.
39개 계단을 금으로 도금.
산타마리아 성문 Arco de Santa Maria
산따 마리아 아치는 황제 까를로스 5세를 기리며 16세기에 건설되었습니다.
성벽을 통해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입구로,
현재는 부르고스 주의 수도인 이 도시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1943년 스페인의 문화 자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산 레스메스 성당 (Iglesia de San Lesmes)
산 레스메스 성당은 15세기에 만들어진 건물로
15세기의 봉헌화와 16세기의 무덤, 회화 등이 있으며
이 도시의 수호성인인 레스메스 성인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la Real)
14세기에 만들어진 성당으로 가모날에 위치해있습니다.
원래의 고딕 양식 대문 앞에 15세기의 풍의 십자가를 든 야고보 성인 상이 있습니다.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우엘가스 수도원
(Monasterio Santa Maria Real Huelgas)
라스 우엘가스 수도원은 까스띠야의 알폰소 8세와
레오노르 왕비가 12세기 후반에 지은 건물입니다.
여러 가지 우아한 회랑과 부조, 조각 등이 있고
중정에서는 꾸르삐요스 축제가 열리며 태피스트리 박물관도 있습니다.
수도원 건물로 사용되었으나 수많은 왕과 여왕,
왕실 가족들이 묻힌 왕실 판테온이 되었습니다.
내부에는 도냐 레오노르를 비롯한 많은 왕가의 무덤이 있습니다.
산 에스떼반 성당 (Iglesia San Esteban)
13세기에 짓기 시작해서 14~15세기까지 변화를 거친
산 에스떼반 성당은 아름다운 장미창과 고딕 양식 회랑이 있습니다.
현재 제단 박물관이 있습니다.
산 힐 성당 (Iglesia de San Gil)
13세기에 시작하여 14세기에 완공된 이 성당에는
15~16세기의 흥미로운 봉헌물과 부유한 부르고스 상인이 가져왔다는
커다란 십자가상이 있는 소성당이 있습니다.
산 니꼴라스 데 바리 성당
(Iglesia de San Nicolas de Bari)
부르고스의 페르난 곤잘레스 거리에 있는 가톨릭 교회로,
부르고스 대성당 뒤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옆에 있습니다.
주로 스페인에서 가장 큰 제단 중 하나이자
석회암으로 조각된 유일한 제단으로 유명합니다.
산 에스테반 교회가 박물관으로 바뀐 이후로
산 에스테반 교구의 자리로 사용되었습니다.
프란시스코 데 꼴로니아의 석재 봉헌 작품이 눈에 띕니다.
산 아마로 성당 (Ermita de San Amaro)
아마로 성인은 프랑스 출신의 순례자로
델 레이 병원에서 헌신적으로 순례자들을 도왔습니다.
17세기 그를 기리기 위해 건축된 이 성당에는
아마로 성인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산 마르띤 아치 (Arco de San Martin)
14~15세기에 걸쳐 건설된 아치는 도시를 둘러싸는 성벽의 일부였으며
왕족이 도시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무데하르 양식의 이 문을 통해 순례자들은 부르고스를 떠나게 됩니다.
엘 시드의 집 (Solar del Cid)
18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엘 시드라고 불린 로드리고 디아스의 집이 있었던 곳에 만들어졌습니다.
까사 델 꼬르돈 (Casa del Cordon)
프란시스코 회의 꼬르돈(Cordon; 허리띠)가
이 저택의 현관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립니다.
15세기의 건물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저택에서 가톨릭 왕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아메리카 대륙 탐험을 다녀 온 콜럼버스를 맞이했습니다.
또한 1515년엔 나바라와 까스띠야의 통합을 이룬 의회가 열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건물은 부르고스에서 가장 훌륭한 도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묵은 숙소(디비나 파스토라 Divina Pastora)는 성당 3층에 침대가 있음.
16명 밖에 수용 못함
1층은 성당으로 저녁 7시에 미사 드리고 순례자 6명 안수 강복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