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 조각을 삼켜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사기에 휘말린 사람들
뒤엉켜버린 운명의 방랑자들이 써 내려가는
탐욕, 죄악, 사랑, 망상의 아름답고도 끔찍한 서사시
배다른 남매인 폴과 빈센트는 캐나다 밴쿠버섬 최북단의 오성급 호텔 카이에트에서 일하고 있다. 폴은 거듭되는 마약 문제로 도망치듯 이곳 호텔에까지 흘러들어와 적성에 맞지도 않는 청소 관리인 일을 하며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을 꿈꾼다. 어머니를 잃은 뒤 학교 유리창에 ‘나를 멸하라’라는 낙서를 하고 학업을 그만두었던 빈센트도 같은 호텔에서 바텐더 일을 하며 다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반복되는 삶에 지쳐 있는 상태다.
어느 날 밤, 후드를 뒤집어쓴 신원 미상의 인물이 로비의 유리 벽에 ‘깨진 유리 조각을 삼켜라’라는, 자살을 권하는 내용의 낙서를 해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다. 이 일의 범인으로 의심받은 폴은 호텔에서 해고된다. 같은 시각, 바텐더로 일하던 빈센트는 호텔의 소유주 조너선 알카이티스의 구애를 받아들이고 카이에트를 떠나 그의 ‘대외적 아내’ 행세를 한다.
조너선 알카이티스는 엄청난 규모의 금융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 인물이다. 그러나 맨해튼의 고층 빌딩 높은 곳에서 그가 벌이는 사업은 실은 초대형 폰지사기 범죄이며, 신기루나 다름없다. 타고난 화술과 카리스마를 지닌 그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며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여 거대한 ‘돈의 왕국’을 세운다. 이 왕국은 오랜 세월 다수의 동조자와 방관자들의 묵인하에 건설된 것이다. 그러나 위태로운 유리의 성채에 불과했던 그의 왕국은 끝내 예정된 결말대로 무너지고 만다. 막대한 투자금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상실이 만들어낸 공백은 사람들의 삶을 나락으로 빨아들인다. 그리고 그날 밤, 돈의 왕국에서 풍족한 삶을 영위하던 빈센트가 알카이티스의 곁을 떠난다.
한편 170년 형을 선고받은 알카이티스는 수감 생활에 적응해간다. 그러나 돈의 왕국을 지배하던 스스로를 내려놓지 못한 채 자신의 나라가 무너지지 않은 가상의 세계, 일명 ‘카운터라이프’를 만들어낸다. 점차 모호해지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거닐다가 기어이 두 세계를 구별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카운터라이프에 머물며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 속으로 거듭 뛰어들고자 한다. 그러면서 자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들의 유령을 현실에서 목격하기 시작한다.
다시 수년이 지난 후, 당시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컨설턴트 리언 프레반트에게 의뢰가 들어온다. 의뢰의 내용인즉슨, 공해를 지나던 컨테이너선의 갑판에서 한 여성이 실종된 의문의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것이다.
비극을 관조하는 황량한 시선과
서정적이면서 최면을 부르는 듯한 이미지
대재앙 이후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하다
걸작 SF소설 《스테이션 일레븐》에서 대재앙 이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우리 삶의 의미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던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은 신작 《글래스 호텔》에서 무대를 현실로 바꿔, 같은 주제를 더욱 심오해진 철학과 성찰로써 그려낸다. 그러나 방랑하는 또 다른 운명들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방법은, 현실로 공간을 옮겨왔음에도 절대 평범하지 않다.
실제 사건인 ‘메이도프 폰지사기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도 사실에 끌려다니는 가상의 서사를 만드는 것은 현재 영미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일컬어지는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의 방식은 아닐 터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폰지사기 사건을 다루면서 가공의 등장인물을 이야기 속에 담가 그 인물의 시각으로 사건을 훑는 기존의 서사를 거부하는 대신, 맨델은 오히려 차디찬 관조의 시선을 유지하며 사건과 인물의 삶 위로 짙게 끼어 있는 기만의 바닥에 깔린 황량함에 주목한다. 사건의 경과를 모사하고 그것이 비롯된 원인을 판단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삶을 은유하는 핵심을 가운데 둔 채 사건과 다양한 형태로 연결된 이들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때론 격렬한 필치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다.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이 중심에 놓은 것은 모든 사기 행각이 이루어진 장소, 즉 조너선 알카이티스의 사무실이 있는 맨해튼 중심가의 빌딩이 아닌, 캐나다 벤쿠버섬 최북단의 오지 카이에트에 자리한 오성급 호텔 카이에트다. 사건의 시작이 아닌 비극의 시작이자, 사건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깨진 유리를 삼켜라’라는 낙서가 거대한 유리 벽에 새겨진 곳이 바로 이 카이에트호텔이기 때문이다. “시공간을 탈출”하기 위해 카이에트호텔을 찾는 부유층이 유리를 통해 그곳의 황량하기 그지없는 황무지를 내다보기 원하면서도 정작 그곳에 직접 들어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점 또한 ‘경계의 장소’로서 이 호텔이 품는 진정한 의미를 드러냄과 함께 작가의 의도를 뚜렷하게 한다. 현실과 환상을 아울러 끌어안은 듯한 몽환적인 풍광의 이 호텔에서 빈센트는 마침내 돈의 왕국에 입성했으며, 그것이 폴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되어 꿈을 이루게 했고, 해운 회사의 임원이었던 리언 프레반트는 이 호텔을 찾았다가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빈곤의 세계인 ‘어둠의 나라’로 추락하고 만다.
유리로 이루어진 카이에트호텔과 그 안에서 내다보는 황무지는 아름답지만, 실제 바깥의 그 땅은 황폐하고 황량할 뿐이다. 호텔이라는 ‘경계’에 발을 들였던 이들이 유리 너머로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눈으로 보면서도 스스로의 삶 속에서 외면하고자 해왔던 것들이다. 그것은 황무지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잔인한 내용의 낙서일 수도 있으며, 혹은 내면의 눈을 감아버린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삶을 잃어버린 망자들의 환영일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 ‘기회’라는 말과 함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은, 욕망에 추동되어 이러한 경계에 드나드는 그들을 통해 현대인의 화려한 삶 속에서 웃음 짓는 기망의 초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방관과 동조 그리고 도덕적 제스쳐의 결여가 가져오고 말 파멸은 결국 이 환상적인 호텔의 유리 벽 너머, 그 안쪽이나 바깥쪽 어딘가에서 이루어질 예고된 비극 혹은 그 비극의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은 《글래스 호텔》이 다만 은유의 우화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작가는 이 호텔의 유리처럼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보이는 위태로운 삶의 조각들이 정말로 실제의 삶들과 같은, 수많은 유리창이 반사하는 빛의 결들과 같은 다양한 형태와 색채를 갖게끔 의도한다. 이를 위해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모든 서사를 잘게 쪼개고 순서를 뒤바꿔 재조합하는 파격적인 형식을 시도한다. 거대한 비극 앞에서 유리 조각처럼 깨어진 삶들이 언뜻 관련 없어 보이는 다른 인생의 조각들과 맞춰지고 또 그렇게 서로 연결되는 과정을 절묘하게 묘사함으로써, 어떤 선택과 행동이 타인의 생에 어떻게 작용하여 어떤 구조를 만들어내는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맨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작중 ‘카운터라이프’로 칭해지는 다중우주라는 SF적 개념을 불러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이란 선택의 총합임을 보여주며 인생이 가진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이 자신만의 리얼리즘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작품 고유의 아름다움이 ‘뜻밖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유리와 황무지, 그리고 도심과 바다라는 급변하는 이미지들의 파편과, 복잡한 구조와 흩어진 퍼즐 조각 같은 서사 한가운데서 잠시 길을 잃었던 독자들은 결말에서 그것이 한순간 맞춰짐과 함께 마음이 뒤흔들리는 격정의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흡사 유리에 비친 변화무쌍한 광채처럼 예상치 못한 감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소설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고안한 구조가 기괴함 속에서 도리어 문학적 미학을 꽃피워내고 만 셈이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장과 서정적인 묘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이 인상적인 감상의 유발은, 소설을 읽는 이에게서 새로운 이미지와 감동을 경험케 하는 비일상적 공감각을 일깨운다.
《글래스 호텔》은 ‘선상 실종 사건’이라는 미스터리적 요소를 한 축에 놓아 힘 있는 이야기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동시에, 때론 날카롭고도 때론 유리에 비친 햇살같이 온화하면서 또한 형형한 색채를 가진 인물들의 섬세한 사연으로 독자의 감정을 격앙시키는 소설이다.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은 전혀 새롭고 다소 혼란스럽지만 그렇기에 경이로운 방식으로, 우리 삶의 비극과 의미를 새로운 감각의 유리창 너머로 돌아보게 만든다. 《글래스 호텔》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카이에트호텔의 유리 벽 너머로 바라본 세상만치나 아름다우면서 황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