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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카를로 고치의 극적 설화 <투란도트 Turandot>
대본 주세페 아다미 및 레나토 시모니
초연 1926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배경 전설의 시대, 중국의 베이징
<1989 북경 자금성 야외 실황 / 120분 / 한글자막>
마지오 무지칼레 극장 오케스트라 & 합창단 & 어린이합창단 연주 / 주빈 메타 지휘 / 장예모 감독 연출
투란도트.....중국의 공주, 알톰의 딸.........조반나 카졸라(드라마틱 소프라노)
알톰...........중국의 황제, 천자(天子)........알도 보티온(테너)
티무르........몰락한 타타르의 왕..............카를로 콜롬바라(베이스)
칼라프........티무르의 아들.....................세르게이 라린(테너)
류..............타타르의 어린 여자 노비.......바바라 프리톨리(리릭 소프라노)
핑..............총리대신............................호세 파르딜라(바리톤)
팡..............재무대신............................프란체스코 피콜리(테너)
퐁..............주방대신............................카를로 알레마노(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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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그의 완벽주의가 더해질수록 푸치니는 텍스트가 갖고 있던 결함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눈에 띄는 약점은 투란도트 자체에 내재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복수심에 불타던 얼음같던 공주가 한낱 시녀의 자결을 보고 갑작스럽게 마음을 연다는 사실과, 그 이후에 별다른 사건의 진전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그 극적인 반전이 오페라의 피날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푸치니에게는 과도한 짐과도 같았다. 오페라의 반전이 극적이면 극적일수록 그 정서적인 충격이나 간극을 메우는 것은 작곡가의 몫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푸치니는 2년이 넘도록 투란도트와 칼라프의 이중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며 류의 마지막 아리아를 완성하는데 힘겨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병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 푸치니는 1924년 11월 29일에 눈을 감고 말았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열린 푸치니의 장례식에서 토스카니니는 푸치니의 초기 오페라였던 '에드가'의 장송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세계적인 작곡가의 영면을 위로했다. 토스카니니는 말년의 푸치니와의 대화들을 통해 '투란도트'가 중요한 작품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푸치니의 유해를 자신의 가족 묘지에 안장한 토스카니니는 이 작품의 완성과 초연을 계속 추진하게 되었고, 프랑코 알파노가 푸치니가 손을 놓은 장면 - 류의 죽음과 장례의 행렬 뒤의 음악들을 완성시켰다.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마지막 이중창과 궁궐 장면의 피날레를 완성하면서 알파노는 토스카니니와 숱한 논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완성된 부분을 '전혀 수긍할 수 없다'는 토스카니니의 고집을 설득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926년 4월 25일, 이 독특한 오페라가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는 전통적으로 꾸미던 관객석과 무대의 장식을 생략했으며 입장객들은 검은색 정장을 착용함으로써 대작곡가의 죽음을 추도했지만, 작곡가에 대한 진정한 예우는 초연 지휘자였던 토스카니니에 의해 이루어졌다. 3막 1장에서 '류'가 자신이 사랑하던 칼라프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아름다운 아리아가 이어지고 곧이어 그녀를 운구하기 위해 몇 명의 출연자가 무대를 떠나는 순간의 플루트 선율이 끝나자마자, 토스카니니는 지휘를 멈추고 관객석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마에스트로 푸치니가 작곡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무대에는 커튼이 드리워졌고 관객들은 이 메시지의 의도가 지극히 정당함을 인정했다. 중단된 극에 대해서 항의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사랑했던 작곡가의 최후의 길에 최대한의 존경을 표현했던 것이다.
1막에서 중국 북경의 거리를 헤매고 있던 이국의 왕자 칼라프는 뜻밖에도 눈이 먼 채, 시녀 '류'의 보살핌을 받고 있던 자신의 아버지 '티무르'를 만난다. 이들의 재회가 이루어진 광장에 나타난 푸틴 파오는 투란도트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한다. 투란도트는 자신에게 구원했다가 3개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페르시아 왕자를 처형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를 본 칼라프는 투란도트의 잔인함에 치를 떨지만 투란도트의 모습을 직접 본 뒤로는 그녀에 대한 사랑에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이 그 도전자가 되기로 마음먹게 된다. 이 때 대신인 핑, 팡, 퐁이 나타나 칼라프의 행동을 만류하지만 결국 칼라프는 징을 3번 울림으로써 구혼하게 된다.
2막은 푸치니가 가장 '중국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고심한 부분이다. 실제로 푸치니는 이 작품을 작곡하면서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중국의 악기들과 리듬의 연구문헌들을 자세히 연구했다. 핑, 팡, 퐁이 새로운 왕자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 새로운 왕자가 내기의 승자가 됨으로써 이 어둠을 걷어주는 것이란 이야기를 하는 2막 1장은 푸치니의 이국 정서의 추구와 연구의 흔적을 간...1막에서 중국 북경의 거리를 헤매고 있던 이국의 왕자 칼라프는 뜻밖에도 눈이 먼 채, 시녀 '류'의 보살핌을 받고 있던 자신의 아버지 '티무르'를 만난다. 이들의 재회가 이루어진 광장에 나타난 푸틴 파오는 투란도트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한다. 투란도트는 자신에게 구원했다가 3개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페르시아 왕자를 처형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를 본 칼라프는 투란도트의 잔인함에 치를 떨지만 투란도트의 모습을 직접 본 뒤로는 그녀에 대한 사랑에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이 그 도전자가 되기로 마음먹게 된다. 이 때 대신인 핑, 팡, 퐁이 나타나 칼라프의 행동을 만류하지만 결국 칼라프는 징을 3번 울림으로써 구혼하게 된다.
2막은 푸치니가 가장 '중국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고심한 부분이다. 실제로 푸치니는 이 작품을 작곡하면서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중국의 악기들과 리듬의 연구문헌들을 자세히 연구했다. 핑, 팡, 퐁이 새로운 왕자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 새로운 왕자가 내기의 승자가 됨으로써 이 어둠을 걷어주는 것이란 이야기를 하는 2막 1장은 푸치니의 이국 정서의 추구와 연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부분이다. 2막 2장에서 칼라프는 투란도트가 내는 3개의 수수께기를 다 해결함으로써 승리자가 된다. 하지만, 투란도트는 자신의 결혼이 그녀의 조모가 남성에게 당한 끔찍한 일을 잊는 일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결혼을 불허할 것을 황제에게 청원한다. 황제는 투란도트에게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지만 칼라프는 투란도트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새벽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다면 자신은 기쁜 마음으로 다른 왕자들처럼 죽을 것을 다짐한다.
푸치니는 2막까지 드러나는 모든 사건의 전모들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작곡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주변인들에게 토로했다. 그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시한 초점은 류의 희생과 투란도트의 사랑이 일어나는 이야기 구조의 극적인 선회였던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좀더 충격적이고 마땅한 클라이맥스를 이루기 위해 2막의 2장 중반까지는 류와 투란도트간의 일종의 묵언적 긴장감이 존재해서는 안되었고 그것은 모두 푸치니의 음악의 역할에 맡겨져 있었다. 그리고, 푸치니는 류의 극적인 죽음까지 훌륭히 마무리했다.
3막이 시작되면 칼라프는 유명한 아리아인 '아무도 잠을 잘 수 없다.(Nessun Dorma)'를 부른다. 공주의 포고령에 따라 모든 백성은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잠들수 없는 것이다. 핑, 팡, 퐁은 칼라프에게 이 곳을 몰래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칼라프는 자신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결국, 티무르와 류는 그곳에서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류는 자신만이 이 왕자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티무르를 고통에서 떼어놓게 된다. 류가 이 장면에서 부르는 아리아는 '나의 은밀한 사랑은 고문조차 감미롭게 만든다'는 지극히 헌신적인 내용이며 이 오페라의 아리아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선율을 가지고 있다. 결국, 류는 단검으로 자결하게 되고 군중들은 류의 죽음에 슬퍼한다. 왕자는 류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열정 속에서 투란도트에게 '죽음의 공주여…'라는 말을 하며 그녀의 얼굴 베일을 벗기고 키스한다. 결국 류의 죽음을 건 깊은 사랑과 칼라프의 용기에 감동받은 투란도트는 자신의 '나의 첫눈물'이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자신의 칼라프에 대한 사랑을 인정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에 빠진 칼라프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이야기해주고 투란도트는 그를 이끌고 군중들에게 나선다. 하지만,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승리임을 선언하는 대신 칼라프의 이름을 '사랑'이라 말하며 포옹한다. 군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이상의 줄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원작이 가지고 있는 동화적이고 코믹한 내용들은 대부분 상실되었다. 동화대신 이국적인 신비가 자리잡았고 코믹한 내용은 푸치니의 전통적인 비극으로 대체되었다. 이를 위해 푸치니는 '류'의 창조를 비롯한 많은 장치들을 만들수 밖에 없었다. 푸치니의 이런 구상들을 직접 대본으로 옮기는 일은 자신이 아닌 대본작가 아다미와 시모니의 몫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갑작스러운 푸치니의 빈번한 수정 요구 때문에 작곡 내내 대본을 뜯어고치는 일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시간에 푸치니는 이전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자부심과 완벽주의에 대한 편집증적 시도로 기진맥진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토스카니니를 비롯한 많은 주변 인물들의 증언대로, 이 작품을 작곡하던 시기의 푸치니의 작업의 신중성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다른 작곡가 같았으면 새로운 오페라 한 편을 작곡할 시간을, 한 악절의 금관악기 중 몇 대에 약음기를 착용시킬건지에 대한 고민 따위로 보내 버리곤 했다.
1924년 10월, 병상에 있던 푸치니를 방문한 토스카니니는 푸치니의 병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푸치니는 자신 스스로 '건강이 많이 좋아졌고 그 덕분에 '투란도트'의 3막을 계속 작곡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형편없이 마른 몸집에 목 쉰 소리를 내는 그의 몸은 이미 후두암에 정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토스카니니와 오랜만에 조우한 푸치니는 투란도트의 작곡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대곤 했다. 토스카니니는 푸치니가 대화 내내 칼라프와 투란도트의 마지막 2중창에 대해 일종의 회의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푸치니는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지막 2중창을 구상하고 있었고, 이미 2년 전에 대부분의 구성을 끝마친 뒤였기 때문이었다.
'투란도트'를 작곡하는 푸치니에게서 이미 11개의 완성된 오페라를 작품 목록으로 가지고 있던 대작곡가의 위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20년에 시작된 이 작품의 작곡은 푸치니의 건강을 급속도로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그를 곧잘 우울증에 빠뜨리곤 했다. 그는 토스카니니와 대본작가였던 주제페 아다미에게 자신의 이번 작품은 '필생의 역작'이...1924년 10월, 병상에 있던 푸치니를 방문한 토스카니니는 푸치니의 병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푸치니는 자신 스스로 '건강이 많이 좋아졌고 그 덕분에 '투란도트'의 3막을 계속 작곡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형편없이 마른 몸집에 목 쉰 소리를 내는 그의 몸은 이미 후두암에 정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토스카니니와 오랜만에 조우한 푸치니는 투란도트의 작곡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대곤 했다. 토스카니니는 푸치니가 대화 내내 칼라프와 투란도트의 마지막 2중창에 대해 일종의 회의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푸치니는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지막 2중창을 구상하고 있었고, 이미 2년 전에 대부분의 구성을 끝마친 뒤였기 때문이었다.
'투란도트'를 작곡하는 푸치니에게서 이미 11개의 완성된 오페라를 작품 목록으로 가지고 있던 대작곡가의 위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20년에 시작된 이 작품의 작곡은 푸치니의 건강을 급속도로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그를 곧잘 우울증에 빠뜨리곤 했다. 그는 토스카니니와 대본작가였던 주제페 아다미에게 자신의 이번 작품은 '필생의 역작'이 될 것임을 알리는 동시에 그 작업이 얼마나 자신을 지치게 만드는지 털어놓곤 했다.
"나는 오늘 3막의 음악들을 다시 살펴보았지만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그 문제는 전적으로 나 때문인것만 같다. 나는 완전히 자신을 잃었다. 일이 싫어졌다. 조금이라도 좋아보이는 부분이 전혀 없다. 결국 이 오페라는 내가 완성하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이 나의 최고 작품이라는데 대한 의심은 전혀 없다. 이 작품의 가치에 비한다면 나머지 나의 작품들은 저주받을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자기비판과 자부심이 그의 생애 마지막 4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강렬한 감정들만큼이나 푸치니는 이 작품에 애착을 가졌고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탄생에서부터 몇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푸치니가 가장 곤혹스러워했던 점은 오페라의 텍스트가 갖는 결함이었다. 그는 1919년, 레나토 시모니와의 교제를 통해 18세기 작가였던 카를로 고찌의 우화적인 희곡 '투란도트 이야기'를 소개받았다. 이전까지 변변치 못한 오페라 대본으로 인해 충분히 고통받던 푸치니는 종종 바그너의 재능을 부러워했다. 물론 푸치니가 부러워했던 능력이란 '악극의 작곡가'로서 바그너가 아닌 '자신의 음악을 입힐 수 있는 대본을 직접 집필하는' 음악가 바그너의 능력이었다.
푸치니는 투란도트의 이야기가 가진 환상성과 강렬한 사랑의 메시지를 오페라로 옮기기 위해 원작에 대폭 수정을 가했다. 작품 전체에 걸쳐서 등장하는 4명의 현자를 중국의 분위기에 걸맞는 핑, 팡, 퐁의 3명의 대신으로 대체했으며 무엇보다 투란도트에게 사랑을 깨닫게 만드는 인물 '류'를 완전히 새롭게 창조했다.
이 오페라의 등장인물 '류'는 유일하게 완전무결한 인간으로 등장한다.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갈등구조의 가감에 따라 일관성을 보이지 못한다. 칼라프는 투란도트의 잔인성에 저주를 퍼붓다가 그녀를 한눈에 사랑하게 되고 투란도트는 류의 죽음으로 인해 그렇게도 경멸했던 남성들, 특히 칼라프를 용서하며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변화를 체험케하는 등장인물은 바로 군중들이다. 이 작품은 푸치니로서는 드물게도 합창의 이국적인 면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이 극대화의 세계는 그의 작품이었던 '서부의 아가씨'에서 등장했던 활기와도 구분되는 것이다. 푸틴 파오의 잔인함에 동조되다가도 처형장을 향하는 왕자의 모습에 동정하는 단순함을 보이는 군중들의 모습은 활기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단순성과 자극적인 동양적 음계의 사용을 통해 푸치니는 자신이 원하던 이국적이고 무시무시한 음울함을 동시에 이루어낼 수 있었다.
원래는 5막의 희곡이었던 이 작품은 3막으로 수정되었다.
푸치니 최후의 대작 오페라인 '투란도트'를 북경에서 공연하자는 발상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히 실험적이고 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했다. 오페라의 배경에 명시된 시기는 막연히 '고대의 전설적인 어떤 시기'라고만 되어있었는데 비해 그 장소는 '중국 북경'이라고 명확히 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이 초연 된 1926년 이후, 이 작품의 실제 배경을 무대 삼아 작품을 연출하기 위한 구상의 가능성은 늘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1996년 플로렌스의 마지오 무지칼레에서의 투란도트 공연에는 이색적이면서도 비범한 두 인물이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이 작품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은 주빈 메타는 이미 정규 음반 녹음과 함께 이 작품의 수 차례 상연을 통해 작품의 구석 구석을 잘 알고 있는 명망 있는 지휘자였다. 반면, 중국에서 날아온 무대 감독은 이 오페라에 대한 이해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영화 감독이었던 장예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렌스 공연의 프로젝트를 북경의 자금성을 무대로 옮겨 공연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데에는 장예모의 역할이 컸다. 그는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유럽 무대에서 행해지던, 단순한 동양풍인...푸치니 최후의 대작 오페라인 '투란도트'를 북경에서 공연하자는 발상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히 실험적이고 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했다. 오페라의 배경에 명시된 시기는 막연히 '고대의 전설적인 어떤 시기'라고만 되어있었는데 비해 그 장소는 '중국 북경'이라고 명확히 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이 초연 된 1926년 이후, 이 작품의 실제 배경을 무대 삼아 작품을 연출하기 위한 구상의 가능성은 늘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1996년 플로렌스의 마지오 무지칼레에서의 투란도트 공연에는 이색적이면서도 비범한 두 인물이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이 작품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은 주빈 메타는 이미 정규 음반 녹음과 함께 이 작품의 수 차례 상연을 통해 작품의 구석 구석을 잘 알고 있는 명망 있는 지휘자였다. 반면, 중국에서 날아온 무대 감독은 이 오페라에 대한 이해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영화 감독이었던 장예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렌스 공연의 프로젝트를 북경의 자금성을 무대로 옮겨 공연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데에는 장예모의 역할이 컸다. 그는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유럽 무대에서 행해지던, 단순한 동양풍인 복장과 정신없이 무대의 이곳 저곳에 늘어뜨린 천조각에 대해 아주 단순하지만 핵심적인 요소들을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당신들이 북경에서, 그것도 자금성을 배경으로 공연한다면 이런 옷 가지고는 엄두도 내지 못할 겁니다. 이 무대에서라면 이 정도 복장이라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생각을 해보세요. 사람들은 웃고 말 거예요. 15세기의 궁궐을 무대로 삼으면서 17세기나 18세기의 복장을 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다니요."
장예모는 플로렌스에서의 공연과 72만 평방미터에 9,999개의 방을 가지고 있는 자금성에서의 공연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플로렌스에서의 경우, 장예모 감독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탁월한 색채 감각을 무대에 도입하는 한편 정적인 공간의 처리를 통해 이 오페라의 무대 배경을 중국의 경극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차원의 것으로 이끌고 갔다. 하지만, 자금성 공연에서는 그런 실험보다는 더욱 진지하고 대규모적인 무언가가 요구되었다. 이 때문에 장이모우 감독은 이 궁궐이 처음 세워졌던 15세기 명나라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할 것을 제안했다.
이미 350명의 스탭과 출연진이 플로렌스에서 공수되었지만 장예모 감독의 구상에 부합하기 위해 중국 현지에서 600여명의 중국 예술가들이 초빙되었다. 이들은 오페라의 개막을 알리는 중국 전통의 북 연주를 장엄하게 만들어 주었고, 군중들의 변덕을 중국 특유의 대범함으로 표출할 줄 아는 합창단과 엑스트라로 동원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건은 모든 출연진을 위해 수작업으로 제작된 명나라 시대의 복장을 모두 새롭게 제작했다는 점이다. 1,000여명의 재봉사가 동원된 이 작업에만 60만 달러 이상이 지출되었다.
공연장이 야외였기 때문에 스탭들은 오페라의 무대에 필수적인 커튼 대신 중국 왕조의 색인 붉은색과 금색의 대형 천을 막으로 사용했다. 사실 이 두 가지 색깔은 장예모의 모든 영화에서 남다른 미학을 존재하게 만든 색채이기도 했다.
이 모든 준비 과정에서 장예모는 이 공연의 스펙터클한 모든 것을 직접 감독하고 지시했으며, 자신의 스탭들에게 화를 내는가 하면 즐거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 가지 맹신에 가까운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음악에 대해서라면, 전혀 모르겠소. 나는 그다지 전문가는 아니잖소. 그리고, 그 일이라면 지휘자 선생이 잘 알아서 하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소."
놀라운 말이지만 이러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장예모와 주빈 메타는 이 프로젝트 내내 아주 친밀하게 작업에 임했으며 주변 스탭에게는 형제처럼 보일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이 오페라의 기념비적인 자금성 공연의 실황은 푸치니가 남긴 오페라의 걸출함 이상으로 많은 감동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주빈 메타의 작품을 형상화하는 구성력과 함께 세 명의 주연 가수인 지오반니 카솔라와 세르게이 라린, 바바라 프리톨리의 연주가 대단히 뛰어나며 10월의 건조한 북경의 기후 역시 야외 오페라라는 특수성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국의 전통성과 현대의 미학을 독창적으로 배합해 내었던 무대 감독 장예모의 역량을 오페라 내내 볼 수 있다. 무대와 의상, 조명 등의 독특한 세계가 지금까지 공연되었던 다른 오페라들에 비해 더욱 강렬한 느낌을 주는 이 무대는 말 그대로 '역사적인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1997년 10월에 8번의 공연으로 공연사에 한 획을 그은 이 프로젝트에 대한 가장 간결한 평가는 지휘자 주빈 메타의 의견이다.
"오페라 애호가들은 투란도트라는 작품을 알게 된 이후로 이 작품이 이 곳에서 공연되는 것을 꿈꿔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가 이 일이 가능하다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결국, 우린 해냈고 이 공연은 이제 역사로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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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서현 글>
투란도트
지아코모 푸치니(1858~1924)
〈투란도트〉는 중국 공주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3막 구성의 오페라이다. 푸치니가 작곡한 이전 오페라와 다른 스타일이었지만, 갑작스런 죽음에 미완성 작품으로 남아있다. 1972년 10월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국내초연되었다.
푸치니의 색다른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는 작곡가 스스로도 ‘창의적이고 독특한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소재와 음악적인 면에서 이전의 푸치니의 오페라들과는 다른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선, 동화에서 소재를 가져왔고, 실제 있을법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환상적인 우화에 가까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푸치니는 18세기 극작가인 카를로 고치(Carlo Gozzi)의 희곡 《투란도테》(Turandotte)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20년 대본 작가 주세페 아다미(Giuseppe Adami), 레나토 시모니(Renato Simoni)와 함께 세심한 대본 작업에 착수한다. 푸치니는 기존의 투란도트 이야기가 가진 환상적이고 강렬한 사랑의 메시지를 오페라로 옮기기 위해 원작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작품 전체에 등장하는 4명의 현자를 세 명의 대신(大臣) 핑, 팡, 퐁으로 대체했고, 투란도트에게 사랑을 깨닫게 만드는 인물 ‘류’를 새롭게 창조했다. 이 작품은 대부분의 푸치니의 오페라처럼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지만, 그의 오페라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바로 ‘류’라는 여인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3막 ‘류’의 죽음 이후, 얼음처럼 냉혹한 투란도트 공주가 회심하고 칼라프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대단원의 결말로 이어지는 장면을 위해 작곡가는 매우 고심했다고 한다. 당시는 그를 괴롭히던 인후의 종양으로 건강도 매우 악화되어 있던 때였다.
미완의 역작, 세상과 만나다
푸치니는 결국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를 완성하지 못하고 1924년 11월 29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끝까지 푸치니와 돈독한 우정을 유지했던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투란도트〉의 완성과 초연을 계속 추진하였고, 프랑코 알파노가 푸치니가 손을 놓은 류의 죽음과 장례 행렬 뒤의 음악을 이어서 완성시켰다. 우여 곡절 끝에 1926년 4월 25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오페라 〈투란도트〉가 처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입장객들은 검은 정장을 착용함으로써 대작곡가의 죽음을 추도했다. 3막 1장 류가 죽는 장면이 끝나자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지휘를 멈추고 관객석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마에스트로 푸치니가 작곡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무대에는 커튼이 드리워졌고 관객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최고의 작곡가의 최후의 길에 애도와 존경을 표했다.
중국적인 소재와 음악
푸치니의 〈투란도트〉는 중국적인 소재와 음악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전의 오페라와는 차별된 모습을 보인다. 이국적인 장치를 위해 푸치니는 상당히 신중을 기했고, 실제로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중국의 악기들과 리듬, 관련 연구 문헌들을 자세히 검토하였다고 한다. 중국적인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중국 음악에서 가져온 몇 가지 선율을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공이나 탐탐, 종, 첼레스타, 글로켄슈필 등 여러 가지 타악기들을 오케스트라에 포함시켰는데, 다양한 타악기들은 오페라에 풍부한 색채감과 입체적인 음향 효과를 더했다. 5음 음계와 4음 음계의 사용, 불규칙적인 박자, 모호한 조성감을 주는 인상주의적인 화성 등은 이국적이고 신비스러운 정취를 풍기는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효과에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작품의 내러티브 구조에 맞도록 절묘하게 배치되었다.
1막
북경의 궁전 앞 광장에서 관리가 나타나 투란도트 공주의 칙령을 발표한다. 황제의 딸 투란도트 공주는 자신이 내놓은 세 가지 수수께끼를 푸는 구혼자와 결혼할 것이며,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자는 처형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한편, 광장 거리를 헤매고 있던 이국의 왕자 칼라프는 뜻밖에도 타타르 왕국에서 추방되어 시녀 류의 보살핌을 받으며 떠돌이 생활을 하던 자신의 아버지 티무르를 만난다. 부자의 재회가 이루어진 광장에서 궁중의 함성과 함께 성곽 위에 투란도트 공주가 모습을 보인다. 공주는 이미 자신에게 구혼했다가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페르시아 왕자의 처형을 집행하라고 지시한다. 칼라프는 투란도트의 모습을 본 뒤 그녀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스스로 도전자가 되어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기로 결심한다. 티무르와 류의 간곡한 만류와 황궁의 대신인 핑, 팡, 퐁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칼라프는 징을 3번 울림으로써 운명의 시험대에 서게 된다.
2막
대신 핑, 팡, 퐁이 새로운 왕자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내심으로는 새로운 왕자가 승자가 되어 이 어두움을 걷어내 주길 바란다고 노래한다. 이 장면은 푸치니가 의도한 ‘중국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칼라프는 투란도트가 낸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어 최후의 승자가 된다. 하지만 남자에 대한 증오를 간직한 투란도트는 이름도 모르는 이와 결혼할 수 없다며 결혼을 불허할 것을 황제에게 청하고, 황제는 투란도트에게 약속은 신성한 것이니 이행하라고 요구한다. 칼라프는 투란도트가 새벽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고 기꺼이 목숨도 내놓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마땅히 자기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3막
공주의 포고령에 따라 모든 백성은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잠들 수 없다. 핑, 팡, 퐁은 칼라프에게 이곳을 몰래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칼라프는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감수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결국 티무르와 류는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류는 자신만이 이 왕자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티무르를 고통에서 풀어나도록 한다. 결국 류는 단검으로 자결하고, 왕자는 류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사랑에 대한 열정 속에서 투란도트에게 ‘죽음의 공주여’라고 외치며 그녀의 얼굴 베일을 벗기고 키스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에 빠진 칼라프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이야기해주고 투란도트는 그를 이끌고 군중들 앞에 선다. 하지만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는 대신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 말하며 포옹한다. 군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주요 음악
1막 류의 아리아, ‘들어주세요 주인님’(Signore, Ascolta!)
1막에 나오는 류의 아리아. 투란도트에게 반한 칼라프가 수수께끼에 도전하겠다고 하자 왕자를 남몰래 연모하는 류가 이를 만류하며 부르는 아리아이다. 5음 음계에 바탕을 둔 서정적인 선율과 애절한 류의 마음이 어우러진다.
1막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울지마라, 류’(Non piangere, Liu)
1막 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기로 하는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혹시 자신이 잘못되면 아버지를 잘 돌봐드리라는 부탁의 말을 전한다.
2막 투란도트의 아리아, ‘옛날 이 황궁에서’(In quest regina)
2막에서 투란도트 공주가 부르는 아리아. 옛날에 궁전을 쳐들어온 타타르군인들에 의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로우링 공주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외국의 젊은이들에게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어 복수하게 되었으며, 아무도 자신을 차지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음정이 크게 도약하고 고음역이 많은 극적인 곡이다.
3막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
3막 첫 장면에 나오는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제목의 원래 의미로 보자면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이다. 투란도트는 왕자의 이름을 밝혀내기 위해 아무도 잠들지 말라고 명하고, 왕자는 날이 밝으면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과 공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유명한 아리아이다.
3막 투란도트의 아리아, ‘처음 흘려보는 눈물’(Del primo pianto)
3막의 후반부에 나오는 투란도트의 아리아. 칼라프 왕자의 열정적인 사랑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자신의 마음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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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2월 15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투란도트
푸치니는 3막 일부까지 작곡하고 사망, 제자 알파노가 마지막 부분을 완성
전 3막 구성으로 1924년 4월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를 듣고 있으면 그가 20세기 작곡가라는 사실을 얼른 깨닫기 어렵습니다.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같은 그의 대표작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멜로디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00년을 전후한 이 작품들과는 달리, 1926년에 초연된 푸치니의 유작 [투란도트]는 과감한 음악적 도약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작곡하면서 “이제까지의 내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라고 말할 정도로 푸치니는 그의 [투란도트]에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공주가 던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중국 베이징의 황궁. 아득히 높은 계단 위에 ‘투란도트(Turandot)’라는 해괴한 이름의 공주가 서 있습니다(‘투란’은 중앙아시아의 지역 이름이고, ‘도트’는 ‘딸’이라는 뜻입니다. ‘투란의 딸’이라는 이름이죠). 수수께끼 세 개를 맞추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데도, 도처에서 숱한 외국 왕자들이 투란도트에게 청혼을 하러 찾아왔다가 다들 한 문제도 맞추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갑니다. 오늘은 전쟁에 패해 나라를 잃은 칼라프라는 이방의 왕자가 이 냉혹한 공주에게 한눈에 반해 목숨을 겁니다. 투란도트는 새로운 도전자를 맞이해 계단 꼭대기에 서서 평소와 다름없는 오만한 표정으로 출제를 하지요. “어두운 밤에 유령처럼 날아다니며 사람들 마음을 들쑤셔 놓고는, 아침이면 사라졌다가 밤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이 괴상하고 비논리적인 질문에 칼라프는 놀랍게도 정답을 말합니다. “희망!(La speranza!)” 선문선답 혹은 ‘기 싸움’이라고 할까요?
중국의 광대한 영토를 사철 꽁꽁 얼게 만드는 ‘히스테릭 얼음공주’ 투란도트는 처음으로 한 문제를 맞춘 남자를 보고 너무나 놀라고 초조해져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살벌한 독신 여왕 대신 평범한 남자의 통치를 받고 싶은 보수적인 베이징 시민들은 한 문제를 푼 칼라프에게 환호합니다. ‘시작이 반이다. 수수께끼 하나를 풀 수 있다면 세 문제를 못 풀 이유가 없다.’ 다들 이런 희망을 품고 다음 퀴즈를 기다리지요.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은 아니다. 그대가 패배할 때는 차가워지고 승리를 꿈꿀 때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 목소리는 희미하지만 그대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방인 왕자의 입에서는 두 번째 정답이 나옵니다. “그것은 피!(Il sangue!)"
대체 어느 나라 백성인지, 군중 가운데 그 누구도 자기 나라 공주인 투란도트를 응원하지 않습니다. 모두 이방인 왕자에게만 미친 듯이 열광합니다. 이제 투란도트는 이 건방진 이방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려고 계단 맨 아래까지 내려와 그를 정면으로 쏘아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던집니다.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 그러나 그대가 뜨겁게 타오를수록 더욱 차갑게 어는 얼음... 그것이 그대를 종으로 삼으면 그대는 제왕이 되지. 그건 대체 뭘까?” 각본상 칼라프 왕자는 꽤 오래 고민합니다. 속이 바짝 타들어가는 베이징 시민들은 칼라프에게 힘을 내라고 외치고, 마침내 칼라프는 세 번째 정답을 말합니다. “투란도트!(Turandot!)"
위의 수수께끼 장면은 [투란도트]에서 극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주인공 남녀가 엄청난 긴장감을 조성하며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는 2막의 이 장면에 앞서, 투란도트는 ‘이 황궁에서 In questa reggia’라는 첫 아리아로 자신이 왜 남자들을 그토록 혐오하게 되었는가를 밝힙니다. “누구도 꺾지 못할 긍지와 확신으로 엄격하게 나라를 다스렸던” 자신의 할머니 로우링 공주가 타타르 인의 침략 때 칼라프같은 이방인 사내에게 겁탈 당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 할머니의 원한을 풀기 위해 자신은 청혼자들을 모두 죽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 음악의 멜로디와 중국적 분위기를 살려낸 오페라
이 ‘투란도트’ 소재를 처음 작품화한 사람은 18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극작가 카를로 고치였습니다. 그의 [투란도트]는 이탈리아의 전통 희극 코메디아 델 아르테 형식을 따른 작품으로, 왕자는 안하무인이고 공주는 제멋대로인데다 잔인하기까지 한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쉴러가 개작한 [투란도트](1801)에서는 쉴러의 미적 이상(理想)에 따라 왕자는 진지한 사랑으로 기꺼이 공주에게 승복하고,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 사랑을 거부하던 공주가 차츰 사랑에 눈 떠가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쉴러 작품의 이탈리아어 번역판을 읽고 감동 받은 푸치니는 대본작가들과 함께 이 작품을 다시 각색해 오페라 [투란도트]를 만들었습니다. 1920년 런던 여행 때 알게 된 중국 음악들을 참고로 푸치니는 이 작품에서 중국 멜로디를 일곱 번 사용했고, 중국제 뮤직박스(오르골)로 ‘황제찬가’를 듣고 그 멜로디도 작품에 유용하게 썼답니다. 5음계 및 공(Gong), 탐탐, 종, 실로폰 등의 악기를 이용해 중국적 분위기를 살려낸 것도 작품의 인기에 일조했습니다.
투란도트는 [라 보엠]의 미미나 토스카, 나비부인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오페라에서는 투란도트 대신 또 하나의 여주인공이 푸치니의 전형인 ‘희생적 여인상’을 보여줍니다. 나라를 잃고 구걸을 하며 떠도는 눈먼 왕 티무르를 극진히 돌보는 노예 류(Liu)입니다. 베이징의 군중 속에서 티무르의 아들인 칼라프 왕자와 마주쳤을 때 류는 “어느날 궁전에서 왕자님의 단 한 번 미소에 반한” 자신의 절절한 사랑을 고백합니다(‘왕자님, 들어보세요 Signore, ascolta’). 류는 사랑을 모르는 냉혹한 투란도트에게 ‘보상을 원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려고 나중에는 목숨까지 바칩니다. 이런 비극은 수수께끼를 통과한 칼라프가 만용을 부려 투란도트에게 자기 이름을 맞춰보라는 문제를 내놓고 그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호기롭게 부르면서 시작됩니다. 어떻게든 결혼을 피하려는 투란도트는 필사적으로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류와 티무르를 고문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류가 왕자를 위해 자결한 것입니다.
푸치니는 [투란도트]에서 의욕적으로 새로운 음악 형식에 도전했지만, 후두암 수술 후유증으로 류가 죽는 부분까지만 작곡을 한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류의 희생을 딛고 칼라프가 마침내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게 되는 해피엔딩은 푸치니의 절친한 친구였던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감독 하에 푸치니의 제자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했습니다. 마침내 이 작품이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첫날 저녁, 토스카니니는 ‘류의 죽음’까지만 연주한 뒤 “푸치니 선생님은 여기까지 작곡하고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며 숙연하게 지휘봉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투란도트-칼라프-류 순
[음반] 비르기트 닐손, 프랑코 코렐리, 레나타 스코토 등, 로마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프란체스코 몰리나리 프라델리 지휘, 1965년 녹음(EMI)
[음반] 존 서덜랜드, 루치아노 파바로티, 몽세라 카바예 등,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존 올디스 합창단, 주빈 메타 지휘, 1972년 녹음(Decca)
[DVD] 에바 마르톤, 플라시도 도밍고, 레오나 미첼 등,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제임스 레바인 지휘,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 1988년 공연 실황(DG)
[DVD] 가브리엘레 슈나우트, 요한 보타, 크리스티나 가야르도 도마 등,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및 빈 국립합창단, 발레리 게르기에프 지휘, 데이비드 폰트니 연출, 200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TDK)
[네이버 지식백과] 푸치니, 투란도트 [Giacomo Puccini, Turandot]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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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5월 19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이 궁전에는
푸치니 <투란도트>
푸치니 최후의 스펙타클한 오페라
전설 시대의 중국 북경을 무대로 하여 이국정서의 환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섞은 푸찌니(푸치니, Puccini) 최후의 유작(遺作)이다. 스펙타클한 미완(未完)의 오페라를 완성시킨 사람은 제자인 알화노(Franco Alfano, 알파노)이며 원작은 고찌(Carlo Gozzi, 고치)가 1762년에 발표한 희곡을 아다미(Guseppe Adami)와 시모니(Renato Simoni)가 대본으로 만들었다.
모든 남성을 혐오하는 투란도트 공주의 냉혹한 노래
북경의 황제의 아름다운 딸 투란도트는 옛날 다른 민족이 침입하여 그 조상이 능욕(凌辱)을 당한 일에 대한 보복심으로 불타고 있다. 세계 각지로부터 공주를 아내로 삼으려고 찾아드는 왕자들에게 그 조건으로 수수께끼를 풀라고 하고 풀지 못한 자들은 가차 없이 목을 베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모습에 매혹된 티무르의 왕자 칼라후(Calaf, 칼라프)는 아버지와 그의 하녀 류가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 도전하여 승리한다. 실은 결혼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공주가 그 약속을 없던 것으로 하고 싶어 황제에게 애원하는 것을 보고 그는 그러면 내일 아침까지 자기 이름을 알아낸다면 다른 왕자들처럼 기꺼이 죽겠다고 오히려 공주에게 수수께끼를 던진다. 다급해진 투란도트는 킬라후 아버지의 하녀 류를 고문하여 알아내려고 하지만 입을 꽉 다문 채 죽어도 왕자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지키려고 고문 속에 죽는 류를 보고 놀라는 투란도트는 이윽고 칼라후의 뜨거운 입맞춤에 드디어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 버린다. “이제 겨우 이름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라고 알리는 그녀를 축복하고 일동이 두 사람을 칭송하는 노래를 높이 부르는 속에 푸찌니의 마지막 오페라는 화려하게 막을 내린다.
'이 궁전에는'
이 궁전에는 몇 천 년 전부터
절망의 외침 소리가 울려 왔다.
그 외침은 핏줄기를 타고 전해와
내 마음 속에 잠겨 있다.
나의 조상 로우링 여왕은,
온순하고 청초하게 나라를 다스려
백성이 편안한 삶을 누리게 했으나,
오랑캐의 위협에는 분연(憤然)히 일어나
단연 맞서서 싸웠으며 그 긍지(矜持)가 나에게 있다.
사람들이 다 아는 당시의
당황, 전율, 검투(劍鬪)의 메아리 속,
나라는 망했다! 나라는 망했다!
나의 조상 로우링은,
그대 같은 다른 나라 놈에게 능욕을 당하고.
그 두려운 한 밤 중에,
그 싱싱한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갖가지 나라의 왕자들이
긴 대상(隊商)을 이끌고
그의 운명을 걸려고 오더라도,
나는 여왕을 위해 원한을 풀고,
그 순결, 고민, 죽음에 대한 보상(報償)을 받는다.
보상(報償)을 받는다!
나는 누구의 것도 되지 않겠다.
여왕을 죽인 공포가
내 마음 속에 되살아난다.
그렇다, 나는 누구의 것도 되지 않겠다.
어디까지나 오욕(汚辱)을 모르는 자의
자랑이 내 속에 숨 쉬고 있다.
이방인이여, 운명에 거역해서는 안 된다.
“수수께끼는 세 개, 죽음은 하나”
박력과 긴장감이 감도는 스케일 큰 투란도트의 아리아
신비에 싸인 투란도트가 드디어 무대에 그 모습을 나타내는 장면에서 부르는 이 노래는 압도적인 박력과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도는 매우 스케일 큰 아리아이다.
군중의 합창이 도중에 두 번, 투란도트의 이야기를 확인하고 마지막 한 줄은 투란도트와 칼라후의 2중창으로 되풀이된다. 칼라후의 가사는 No, no! Gli enigmi tre, una è la vita(아니, 아니야! 수수께끼는 세 개, 삶은 하나!)이다.
1926년 4월에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때 토스카니니는 푸찌니가 못 다 쓴 부분에 이르자 ”여기서 마에스트로는 펜을 놓고 돌아가셨습니다.”고 연주를 멈춘 뒤 지휘대를 내려왔다. 그 후에 제2회 공연 때 다른 지휘자가 처음 전곡을 연주했다.
추천할 만한 음반과 DVD
[CD] 에레데 지휘, 로마 산타 체칠리아 관현악단/합창단(1955) 잉게 보르크(S) DECCA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전성기의 젊고 활달한 델 모나코와 역시 발랄한 시절의 색채감 넘치는 서정적인 테발디의 명창을 들을 수 있다. 그녀가 5년 뒤(1960녀)에 라인스도르후 지휘반(RCA)에서 다시 노래한 것보다 목소리의 투명함이나 다양한 극적 표현이 월등 뛰어나다. 무엇보다도 매끄러운 피아니씨모가 절묘하다. 잉게 보르크(Inge Borkh)의 투란도트도 강인한 개성을 잘 살리고 있고 코레나(Fernando Corena), 칼손, 화넬리의 핑과 퐁도 능숙한 솜씨를 발휘하여 이 오페라에 기막힌 양념 구실을 한다. 그러나 에레데(Alberto Erede)의 지휘는 완급자재(緩急自在)의 오케스트라를 움직여 이탈리아 오페라의 풍부한 음향을 선사한다.
[CD] 세라휜(Serafin, 세라핀) 지휘, 밀라노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7) 칼라스(S) EMI
칼라스의 투란도트에 압도된다. 제2막의 귀기(鬼氣) 서린 표현에는 전율을 느낀다. 예리하고 힘찬 동시에 부드러운 아름다움까지 표현해야 하는 역할을 거뜬히 소화해서, 사랑을 모르는 차가운 여인과 이윽고 사랑을 안 여자의 몫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세라휜의 지휘도 극적인 전개 속에 유려한 노래를 한껏 펼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진수를 맛보게 해주는 명연이다. 다만 류를 노래하는 슈바르츠코프가 너무 지적(知的)이어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슬픈 사랑의 숙명을 타고난 다부진 여인으로는 적합지 않다. 그리고 칼라후 역의 훼르난디(Eugenio Fernandi, 페르난디)가 너무 평범한 것도 흠이다.
[CD] 몰리나리-프라델리 지휘/로마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65) 비르기트 닐쏜(닐손, Birgit Nilsson, S) EMI
오페라 [투란도트]의 특징은 여주인공 투란도트를 중심으로 한 비극적 긴장과 류를 위시한 서정적인 분위기, 그리고 가면을 쓴 세 대신이 벌이는 희극적인 재미라는 세 가지 요소가 혼연일체로 하나가 된 데 있다. 위의 세 요소를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재현한 지휘자로는 흔히 세라휜을 곱는다. 그러나 세 주역의 남다른 걸출한 노래를 이 음반이 담고 있다. 닐쏜과 코렐리는 거의 이상에 가까울 정도의 열창이다. 스코토의 류도 숙명적인 여인의 애틋한 모습을 가슴 저리게 그려낸다. 지휘자 몰리나리-프라델리(Francesco Molinari-Pradelli)는 오페라의 서정적인 면을 따라 다채로운 화성과 다양한 색채 및 복잡한 극적요소를 능숙한 솜씨로 치밀하게 표현하여 노래의 매력을 유감없이 이끌어 내고 있다.
[DVD] 레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발레단(1987) 마르톤(S) 제휘렐리 연출 DG
제휘렐리의 연출은 밀라노 스칼라 극장의 호화로운 무대(1983년의 시즌에서 초연)를 기반으로 하여 보다 광대한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무대용으로 확대한 새로운 공연이다. 뉴욕 시민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하니 보다 스케일이 크고 특히 제2막 제2장과 제3막 제2장의 금빛 찬란한 궁전 앞 광장 장면은 압도적인 것이며 또 각 장면의 대비(對比)와 색채는 제휘렐리 연출의 극치라고 할 만큼 뛰어나다. 연주도 그렇듯 호화로운 무대 못지않게 훌륭하며 레바인이 푸찌니의 마지막 음악을 웅변으로 생생하게 북돋운다. 가수진도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여, 이국(異國)의 왕자에 알맞은 가품과 스케일을 갖춘 도밍고의 칼라후는 모습과 노래가 다 함께 그 역할에 꼭 들어맞으며 마르론(Eva Marton)의 투란도트도 냉철한 마음에 차츰 여자로서의 고뇌와 연약함이 싹터 올라 사랑에 눈 뜨는 모양을 솔직하게 나타내고 있다. 미첼(Leona Mitchell)의 류, 이 공연 때 84세로 데뷔한 유구 쿠에노(Hugues Cuenod)의 알툼 노(老)황제 등 그 밖의 출연자들도 단역에 이르기까지 충실하다. 영상은 호화로운 무대의 질감(質感)과 색채를 선명하게 전하고 있으며 음향은 명쾌하고 음폭도 넓고 넉넉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 궁전에는 - 푸치니, [투란도트]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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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1월 10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
푸치니 <투란도트>
푸찌니(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가 작곡한 마지막 오페라이다. 벨지엄에서 후두암으로 죽은 푸찌니가 작곡한 것은 제3막의 전반(前半)의 류가 죽는 데까지이며, 그가 남긴 초고에 의거하여 3막의 후반을 써서 전곡을 완성한 사람은 알화노(플랑코 알파노, Franco Alfano)이다. 북경의 거리를 무대로 하여 펼쳐지는 이 오페라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낯익은 중국의 음악이 몇 곡 들어가 있다. 푸찌니의 3대 걸작이라고 꼽는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을 제치고 이 오페라를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하는 평론가가 의외로 많은 것은 결코 그 특이성(特異性)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3대 걸작을 완성함으로써 이미 자기 음악의 정점(頂点)에 이른 푸찌니가 그 이상의 음악을 만들어 내려면 이미 그때까지의 음체계 속에서는 불가능함을 깨닫고 [서부의 딸]이나 [3부작]등의 작품에서 암중모색(暗中摸索)을 거듭한 결과 드디어 이 오페라 [투란도트]로 새로운 음 체계 속의 자기 음악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대한 평가이다. 그리고 이 오페라는 주인공인 투란도트와 칼라후가 매우 드라마틱하고 어렵기 때문에 그리 쉽게 공연할 수가 없다. 참신한 화음, 관악기, 타악기의 효과적인 사용법 등 지금까지의 푸찌니의 이미지가 전혀 달라질 정도로 색다른 내용을 가진 아주 흥미 있는 작품이다.
투란도트 공주와의 승부에서 승리를 확신한 왕자가 부르는 노래
북경의 황제 알툼의 아름다운 딸 투란도트는 옛날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으로 한 여왕이 능욕(凌辱) 당한 일에 대한 복수로, 그녀의 미모(美貌)를 듣고 세계 각지에서 아내로 삼겠다고 찾아오는 왕자들에게 그 조건으로 수수께끼를 내, 풀지 못한 자는 목을 잘랐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반한 티무르의 왕자 칼라후(Calaf, 칼라프)는 아버지와 그를 사모하는 시녀 류가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 도전하여 멋지게 승리한다. 그러나, 애당초 결혼할 생각이란 털끝만큼도 없는 투란도트 공주는 자기의 약속을 어떻게든 없던 것으로 하려고 아버지 알툼 황제에게 매달린다. 그런 그녀를 보고 칼라후 왕자는 그렇다면 내일 아침까지 내 이름을 알아낸다면 그녀가 내걸었던 조건도 없애고 다른 왕자들처럼 기꺼이 그녀를 위해 죽겠다고 오히려 거꾸로 수수께끼를 내놓는다. 그리고 승리를 확신한 왕자가 그날 밤 자신만만하게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아무도 잠들지 말라’이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
아무도 잠들지 말라!
아무도 잠들지 말라....
공주여, 당신도 역시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방에서
별들이 사랑과 희망으로 떨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허나 내 비밀은 닫혀 있어
누구도 내 이름을 알 리 없다!
그렇다, 당신의 입술에 내가 알려 주리다!
햇빛이 빛나기 시작했을 때에는!
그라고 내 입맞춤으로 침묵의 입을 열리라
당신은 내 것이라고!
밤은 꺼져라, 별은 가라앉아라
별은 가라앉아라
동 틀 무렵이면 내가 이긴다!
이긴다! 이긴다!
테너 아리아의 왕자, 빛나는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테너인 주인공의 빛나는 아리아이다. 품격(品格)과 멜로디가 테너의 아리아 중 왕자라고 말할 만한 당당한 음악이다. [투란도트]의 무대는 전설 속의 중국 북경이나 실제 중국에서는 투란도트 공주 같은 인물이 있을 리가 없다. 이 ‘북경’ 은 동화적인 이야기가 일어날 수 있는 ‘어떤 고장’에 지나지 않으며, 무대도 실제와는 동떨어진 환상 세계가 될 것이다. 오페라 평론가인 디가에타니(J. Louis DiGaetani)는 “이 오페라에는 후로이트(프로이트)적인 뜻도 내포되어 있다. 제1막에서 투란도트가 남자에게 보이는 격렬한 증오는 분명히 강박관념(强迫觀念)에 사로잡힌 신경증 화자의 증상이며 거기에는 사랑의 감정이 역설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또 고귀한 신분인 왕자 칼라후가 그 산분을 감추고 투란도트의 수수께끼 풀이에 과감히 도전하여 풀어낸다. 이것도 역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번 투란도트의 얼굴을 보자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칼라후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 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그에게 내린 유일한 선택이었다. 만약 그녀가 낸 수수께끼를 대답하지 못하면 목이 잘리는 형벌이 기다리고 뿐이다. 이 오페라는 증오와 사랑, 혹은 죽음과 사랑을 우화적으로 결부시키고 있지만 분명 이것은 후로이트적인 주제라 할 수 있겠다. 성악적인 면에서는 푸찌니 오페라의 표준적인 소프라노 역과의 비교로 말하면 투란도트는 좀 더 어려운 역이다. 이 역에 필요한 것은 연기도 할 수 있는 바그너 소프라노 적인 가수이다. 한편 리의 역에 필요한 것은 미미나 나비부인을 연상케 되는 서정적인 가련함을 지닌 목소리이다. 그리고 칼라후에게 요구되는 것은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힘찬 음향을 타고 넘는 웅장한 헬덴테너의 목소리이다”(An Invitation to the Opera)라고 분석하고 있다.
추천 음반 및 DVD
[CD] 라인스도르후 지휘, 로마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9) 뵤를링(T) RCA
닐손(Birgit Nilson), 테발디, 뵤를링(유시 비엘링, Jussi Bjoerling)의 주역 트리오는 레코드 녹음이니까 가능했던 출연진이었다. 당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라인스도르후(Erich Leinsdorf, 에리히 라인스트로프)의 패기 넘치는 명지휘 반이다.
[CD] 메타 지휘, 런던 휠하모니 관현악단/죠 올디스합창단(1972) 파바로티(T) Decca
메타(Zubin Mehta)의 지휘가 스케일이 크며 깊이 있는 조형(造形)에서 생기는 비극적인 감동은 비길 데가 없다. 목소리의 질도 안 맞을 것 같은 서덜랜드(Joan Sutherland)가 주역에 도전하여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이 사랑에 눈 뜨며 녹아 내리는 과정이 다른 어떤 드라마틱 소프라노보다도 풍성한 인간미가 넘치며 파바로티의 칼라후와 까바예(Montserrat Caballé)의 류도 더할 나위 없는 명연이며 또 중국 황제에 피터 피아즈가 기용되는 등 조역진과 합창단도 충실하다.
[CD] 카라얀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 가극장 합창단/빈 소년 합창단(1981) 도밍고 DG
도밍고를 비롯한 리치아렐리(Katia Ricciarelli), 핸드릭스(Barbara Hendricks), 데 팔마(Piero de Palma), 라이몬디(Ruggero Raimondi) 등 쟁쟁한 배역진이다. 그러나 진짜 주역은 카라얀이다. 그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모두 음악이 아름답게 흘러 절대로 가수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요소(要所)는 틀림 없이 챙긴다. 카라얀의 레퍼토리는 매우 넓으나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그의 미학이 가장 잘 빛난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무도 잠들지 말라 - 푸치니, [투란도트]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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