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으면서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쓰며
또 자기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더라.
그리고 그들은 날마다 하나가 되어 꾸준히 성전에 모이며,
또 집집마다 다 돌아가며 빵을 떼고 즐거움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더라.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들을 그 교회에 날마다 더해 주시더라.
사도행전 2장 44절 45절 46절 47절
1. 위의 모습은 이단들에게서 부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기도 하는 모습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이런 부분은 어찌보면 공산주의의 느낌도 나고 이단 시한부 종말론자들도 생각이 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형태를 지금 세상에서도 발견하곤 합니다. 그 첫번째가 위에 언급한 공산주의 입니다.
두번째로 많이 보는 곳이 이단들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둘의 공통점은 그 열매가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좋지 않은 이유는 사람에게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행전당시의 초대교회에서는 성공하였으나 지금은 실패하는 공동재산방식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형식과 본질의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믿음이 없는데 믿음의 형식만 갖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믿음이 없음이라는 본질이 믿음의 모양인 형식을 파괴하고 나타날 것입니다.
본질과 형식의 문제는 순서에 문제이기도 합니다.
즉 공산주의나 이단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가 바로 본질에 앞서 형식을 먼저 만든다는 점입니다.
공동으로 재산을 관리하는 형식을 갖추고 사람들을 그 틀안에 가둬서 옥죄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초대교회는 믿음의 소망이라는 본질이 있는 상태에서 자유의지로 재산을 공동으로 나눠서 쓴 것입니다.
본질이 바로 서있기 떄문에 형식으로 드러나면 믿음의 본질이 망가지지 않는 한 형식도 망가지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와 이단들의 집단생활도 실패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별하여야 하는 점은
본질이 앞서서 형식을 이루어가는 경우에는 개인의 자유의지를 속박하지 않는 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악한 세상에는 양의 탈을 쓴 삯꾼 목자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재산을 노리는 자들도 많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성경말씀에서 재산을 탈취하기 위하여 이러한 부분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분별하는 것은 자신의 생계를 지키고 경제적인 자유함을 지키는 기초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야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시지 어떤 능력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도 그가하나님을 위한다면 그를 통한 것이지 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가 사람을 그 목회자를 바라보고 의존하려는 경향이 너무 큽니다.
바른 목사라면 하나님을 잘 안내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앞에서 그가 앞서는 목사는 바른 목사라 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하나님을 바라볼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자신들은 통로일뿐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O 그것을 보던 베드로가 그 백성에게 대답하기를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히 여기느냐? 마치 우리 자신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어찌하여 우리를 주시하느냐?
사도행전 3장 12절
성전 문앞에서 구걸하던 40세가 넘은 앉은뱅이를 일으키자 사람들이 놀라서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한 말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사도들의 가지고 있었던 믿음의 본질입니다.
이 당연한 사실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놓치고 자신의 재산을 사람에게 빼앗기곤 합니다.
그 재산은 빼앗긴 사람도 망치지만 빼앗은 사람도 망칩니다.
최근에 은혜로 교회 신옥주라는 자가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의 재산과 시간과 노동력을 착취하였습니다.
그로인하여 가정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들었고 고통을 받았으며, 믿음에 나아가려던 사람들이 방해을 받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들에 의해 가려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은 그가 스스로 영광을 받을 수가 없고 사람들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본질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형식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형식이 본질을 앞서는데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그곳에 고통의 책임은 말씀으로 분별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과 각자가 일대 일이라는 대 전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