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집을 찾은 것은 3일간 리틀엔젤스 회관에서 열린 일본의 뉴에이지 피아니스트인 나카무라 유리코와의 조인트 콘서트가 끝난 다음날이었다. 그의 공연은 어렵고 지루한 정통 클래식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누구라도 그의 노래를 들으면 거부감 없이 클래식을 받아들이고, 팝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한류 열풍을 반영하듯 유리코와 함께 드라마 음악, 크리스마스 팝을 담은 곡들을 연주했다. 세계적인 바리톤으로 인정받을 만큼 빼어난 가창력을 기본으로 재치 있는 말솜씨와 넘치는 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그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그에겐 이렇게 공연장에서 관객의 반응이 가슴에 와 닿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그의 집 역시 이런 그와 닮아 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 거실은 영화관으로, 주방은 제2의 공연장으로 꾸몄다.
집은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또 다른 공연장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는 집에서도 가끔 작은 공연을 연다. 주방에 낮은 무대를 만들어 피아노를 놓아 두었는데 그 앞에 있는 식탁만 치우면 주방부터 거실까지 모두 객석이 된다. 친한 사람들이 모이면 그의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그들의 노래나 피아노 솜씨를 뽐내는 시간을 갖는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공연을 앞둔 제자들은 이곳에서 모의 공연을 열어 연습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럴 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거울. 피아노 위에 올려진 작은 탁상 거울은 노래할 때의 표정과 입 모양을 확인하는 데 쓰인다. “개인 레슨은 하지 않아요. 하지만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들, 함께 공연하는 합창단은 친한 제자들이니까 가끔 봐주는 편이죠. 제가 레슨하는 것을 청강하고 싶어하는 분들도 많은데 그건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 응하지 않죠. 개인마다 부족한 것, 잘 하는 게 다른데 제가 가르치는 것을 본다고 본인의 실력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제자들에게 그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다. 릴랙스한 기분으로 몸과 목에서 힘을 빼라는 것. 그래야 억지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틀에 목소리를 맞추려 하지 말고, 내가 편한 대로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라는 것. 자신의 음악 철칙 중 하나다.
 | 1. 주방과 다이닝 룸의 구별 주방에서 바라본 식탁 전경. 주방과 다이닝 룸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 거실에 스크린을 설치한 대신 주방에 TV를 둔 것이 이색적. 물건을 한번 사면 오래도록 사용하기 때문에 구입할 때 깐깐하게 고르는 편인데, 식탁 의자는 심혈을 기울여 골랐는데도 불구하고 실패한 아이템. 보기에는 예쁜데 막상 앉으면 불편하다. 2. 미로 같은 구조, 개인 공간 침실이 있는 거실 안쪽은 드레스룸과 욕실, 침실, 서재가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욕실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파우더룸과 이어져 있다. 자질구레한 물건은 모두 화장대나 수납장 안에 감춰두고 사용한다. 3. 프로젝터가 있는 거실 정남향이라 햇빛이 잘 들어오는 거실. 빛이 너무 세서 낮에는 프로젝터를 켤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커튼을 더 두껍고 빛 차단이 잘 되는 것으로 조만간 바꿀 예정이다. 테이블은 상판을 양쪽으로 당기면 길어지는 멀티 제품. 손님이 많이 오면 더 길게 빼서 사용 한다.
집은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또 다른 공연장
요즘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열심히 찾고 있고, 하나하나 깨닫고 찾아가면서 그 방향대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정통 클래식을 버렸다는 오명으로 도마 위에 오른 적도 있지만, 지금은 관객을 위한 공연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그런 비난쯤은 가뿐하게 감수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관객이 찾아오는 공연을 하는 것이 바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이 진리는 아니니까. 그는 각자가 생각하는 길로, 색깔을 보여주는 게 진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성악가로 인식되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고 행복하다. 공연 리허설 중에 만난 그의 인상적인 말이 생각났다. 공연 시작 5분 전 그는 함께하는 스태프에게 “공연하면서 잘 하고 있는 건가 걱정하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엔조이하면서 즐겁게 한번 놀아 봅시다”라고 말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주위 사람을 편하게 배려하면서 큰 공연을 앞두고 엔조이하자고 말하는 것은 실력에 대한 자부심, 관객을 가깝게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멘트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제가 평생 노력을 한다 해도 완전할 수 없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 정도가 되기까지 도전하는 게 재미있어요. 다만 열심히 했을 때 사람들이 쳐주는 박수로 아, 내가 어느 정도구나 하는 결과를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무대에 자주 올라가지요.” 그는 클래식은 자신의 뿌리라고 말한다. 다만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 40~50대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가곡, 가요, 팝을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입혀 부르는 일에 열심이다.
 | 1. 해가 잘 드는 침실 침대만 있는 널찍한 침실.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그의 성격까지 드러난다.
2. 공연 5분 전 공연 시작 5분 전에 옷을 갈아입고, 마지막 매무새를 점검하는 그. 한때 수염을 깎아 보려고도 했으나 오래된 것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과 수염 역시 자신의 색깔이라고 믿어 그냥 유지하기로 했다.
3. 색소폰 부는 성악가 공연 도중 색소폰을 부는 것 역시 관객에게 좀 더 편안하게 클래식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다.
* 조인스닷컴 & 팟찌의 모든 콘텐츠(또는 본 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