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6)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하늘 향한 ‘성모의 꽃봉오리’ 천국의 문 열고 구원의 길로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구역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곳은 성당 정문 앞에 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이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피렌체는 문화의 도시 가운데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아름다운 성당과 미술관, 고풍스러운 건물을 바라보면, 왜 이 도시가 문화의 으뜸 도시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피렌체에는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산재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받는 곳은 ‘두오모 성당’(Duomo di Firenze)이다. 이 성당의 본래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Santa Maria del Fiore)이다. ‘델 피오레’는 ‘꽃의’라는 뜻이기 때문에, 정확한 이름은 ‘꽃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다.
이곳에는 6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성당이 낡아 붕괴의 위험이 생기자, 1296년 9월 8일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특사에 의해 대성당 공사가 시작됐다. 그 날은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성당 이름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로 정했다.
흰 대리석과 초록 및 분홍색 석판으로 장식된 성당 외부는 거대한 돔과 종탑으로 이루어진 피렌체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특히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돔은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 형상이다. 피렌체의 좁은 골목 어디에서든지 돔이나 종탑을 이정표처럼 볼 수 있다. 직경 43m의 돔은 최초의 르네상스 건축가로 불리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가 1420년부터 1436년까지 16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했다.
피렌체 대성당 정면 장식은 에밀리오 데파브리스(Emilio de Fabris, 1807~1883년)가 신고딕 양식으로 꾸몄다. 처음 공사를 시작해 정면이 완성되기까진 총591년이나 걸렸다. 이 대성당은 피렌체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 및 이국적인 건축 양식과 장식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구역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곳은 성당 정문 앞에 있는 팔각형의 커다란 세례당이다. 피렌체의 수호성인인 세례자 요한의 이름이 붙여진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은 성당 못지않게 유명한 건축물이다. 이 세례당은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건축물로, 1059년에서 1128년 사이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립됐다. 유럽의 대성당 가운데는 이처럼 세례당이 성당 안이 아닌, 성당의 마당에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례당이 성당 앞에 있는 것은 교회의 칠성사 가운데서 세례성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세례성사는 교회의 입문성사로서, 누구든 이 성사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즉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세례성사인 것이다.
세례당이 팔각형으로 지어진 것은 새로운 날을 상징한다. 교회 미술에서 ‘팔(8)’은 새날을 뜻하는데, 창세기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육 일간 온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칠 일째는 쉬셨다고 한다(창세 1,1-2,4참조). 그 다음날인 팔일은 다시 새로운 날의 시작이다. 세례자는 과거의 어두운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이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새롭게 살도록 초대받았음을 알려준다.
산 조반니 세례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세 개가 있는데, 각각 성경의 주요 장면으로 장식했다. 남쪽문은 안드레아 피사노(Andrea Pisano, 1270년경~1348년경)가 꾸몄고, 북쪽과 동쪽문은 로렌조 기베르티(Lorenzo Ghiberti, 1378~1455년)가 만들었다. 기베르티가 1425~1452년에 만든 동쪽문을 ‘천국의 문’(Porta del Paradiso)라고도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이 문을 보고 감탄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이 문은 매우 아름다워서 천국의 문으로 불리지만, 그보다는 이 문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 즉 세례당에서 새 영세자가 이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천상의 잔치가 열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천국의 문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 산 조반니 세례당 벽 상단과 천장의 모자이크 장식.
세례당 내부는 다양한 색깔의 대리석으로 꾸며졌고 벽의 상단과 천장은 화려한 모자이크로 장식돼,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성스러운 세상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준다.
정면 벽에는 부활한 예수님께서 양팔을 내밀어 최후심판하시는 모습이 있다. 예수님의 발아래에는 구원받아 하늘로 오르는 사람들과 죄악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표현돼 있다. 그분 주변에는 많은 천사와 성인들의 무리가 있으며, 성경의 주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 세례당의 내부는 우리 삶의 끝 부분에서 일어날 최후심판과 그 이후에 펼쳐질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세례당에 이 같은 모자이크 그림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황금색은 영원불변의 진리처럼 고귀한 것을 표현할 때 즐겨 사용된다. 교회의 가르침이나 세례성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세례를 받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올바른 삶을 가꾸면 최후심판 때에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산 조반니 세례당은 세계의 모든 세례당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여겨진다. 황금색 모자이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빛은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가 얼마나 값지고 고귀한 지를 알려준다. 또한 세례 받은 이후에 신자로서 어떤 삶을 가꾸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세례당의 정면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오른손을 펼쳐 선한 사람들을 천상으로 받아 주신다. 그러나 그분은 왼손을 펼쳐서 악한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신다. 최후심판하시는 예수님을 올려다보면서 우리 자신이 어느 쪽에 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2월 12일,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