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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성인 다시 모시길” 눈물의 합장 | ||
[한겨레 2004-12-05 20:21] | ||
백안의 제자들은 수덕사에 마련된 분향소 앞에 길게 늘어서 수만명의 조문객에게 일일이 큰절을 올리는 등 까다로운 한국 전통 불가의 장례 의식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수행했다. 이날 영결식엔 이미 조계종의 정식 승려가 됐거나 사미(니)계를 받은 55명을 비롯해 모두 200여명의 외국인 제자들이 스승의 법구(주검)를 지켰다. 대부분 미국 하버드대, 예일대 등 명문대를 나오거나 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 상류층 출신으로,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전세계에 퍼뜨린 애제자들이다. 숭산 스님의 한국인 제자인 서울 화계사 주지 성광 스님과 영주 현정사 도관 스님과 함께 나란히 조문객을 맞은 이는 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조실 대봉 스님이었다. 선의 본가인 한국에서 선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을 지도하고 있는 그는 숭산 스님이 깨달음을 인가해 ‘선사’ 칭호를 준 7명 중 한명이다. 성광 스님은 “대봉 스님은 어떤 상황에도 얼굴빛이 변하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숭산 스님을 모셨던 화계사 조실에 그를 모시겠다”고 말했다. 한국 전통 사찰에 외국인이 최초로 선가의 상징인 조실로 모셔져 숭산 스님을 대신하게 되는 셈이다. 항상 밝은 빛을 잃지 않던 대봉 스님도 영결식장에서 숭산의 육성 녹음이 흘러나오자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는 “큰스님을 만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란 책으로 널리 알려진 외국인 제자인 현각 스님(화계사 국제선원장)은 한국 예법에 서툰 외국인들에게 일일이 예를 갖추도록 했다. 그는 “숭산 스님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처럼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며 “내게도 의지하지 말고, 너희들 자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봐서, 스스로 서도록 했다”고 말했다. 헝가리 출신의 청안 스님은 “큰스님의 몸은 갔지만, 중생을 깨우쳐주던 그 마음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애도했다. 법구에 불이 붙고 대부분의 불자들이 떠나간 뒤에도, 이들 외국인 제자들은 산처럼 쌓였던 장작이 완전히 사그라지기까지 4시간여 동안 다비장을 떠나지 않았다. 외국인 비구니 스님들과 캘리포니아 태고사 주지 무량 스님 등은 타오르는 스승에게 합장하며 눈물을 쏟고 서로 얼싸안으며 위로했다. 어린 아들과 딸을 업은 외국인 불자들도 겨울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향해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했다. 숭산 스님을 가장 오랫동안 시봉했던 미국인 무심 스님(무상사 선원장)은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잊지 못했다. 그는 “큰스님은 동서양의 종교를 초월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길을 가르쳐 준 스승이었다”며 “다비식 내내 이런 위대한 성인을 다시 한번 곁에서 모실 수 있기만을 기원했다”며 두손을 모았다. 예산/글·사진 조연현 기자 3D3D3Dcho@hani.co.kr">3D3Dcho@hani.co.kr">3D3Dcho@hani.co.kr">3Dcho@hani.co.kr">3D3Dcho@hani.co.kr">3Dcho@hani.co.kr">3Dcho@hani.co.kr">cho@hani.co.kr ⓒ 한겨레 |
"나를 따르라는 말 한번 없었죠" | ||
[한국일보 2004-12-05 20:06] | ||
“처음 뵈었을 때 스님은 ‘당신은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제 이름은 폴’이라고 대답하자, 스님은 ‘그건 당신 몸의 이름이다.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 현각스님(서울 화계사 국제선원장)은 다비식이 있기 하루 전인 3일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숭산스님의 큰 뜻과 행적, 인연의 한자락을 펼쳐놓았다. 숭산의 수제자로 통하는 현각스님은 1990년 5월 하버드대학원 대강의실에서 열린 숭산스님의 특별강연에 매료돼 한국 선불교에 입문했고, 99년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열림원 발행)라는 책을 써 숭산스님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서툰 영어였지만 그 날 스님께서 주셨던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이라는 가르침은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 외국인 제자들은 숭산스님의 법력이 워낙 대단해,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베풀어주신 스승으로 기억하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현각스님의 설명은 명쾌하다. “스님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처럼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 숭산스님은 25년 전부터 해외포교에 나서 32개국에 120여개 선원을 열었다. 때문에 그의 빈 자리가 너무 넓어 해외선원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각스님은 “숭산스님의 해외 포교는 현지 선원을 이끌어갈 지도자, 곧 후계자를 양성하는 과정이었다”며 이런 걱정을 일축했다.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직전 ‘걱정하지 마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도 너희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 남경욱 기자 3D3D3Dkwnam@hk.co.kr">3D3Dkwnam@hk.co.kr">3D3Dkwnam@hk.co.kr">3Dkwnam@hk.co.kr">3D3Dkwnam@hk.co.kr">3Dkwnam@hk.co.kr">3Dkwnam@hk.co.kr">kwnam@hk.co.kr |
첫댓글 할렐루야 신자들도 열심히읽어보길 !...........하나님에 말씀은 아녀도 좋은글은 마음에 양식이될꺼야 .오일회 친구들은 하나님에 자녀가 많운것 같은디 스님에 말씀도 열심히읽어보았으면....................
일종 친구 오랫만이야.., 티브이 에서도 몇번 다큐로 보았던 스님 이지요. 즐건 시간 되세요.
일종아 진짜 오랜만이네~~ 한국의 불교성인 큰 숭산스님 .........잘 보고 간다 요즘 니 흔적보기 힘들어 보고 싶었는디~ 업무댐시 송년모임도 못 오궁~ 가끔 카페서라도 흔적 남겨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