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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홀로 테마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광나루
[2] 일본식 카레를 파는 국수집
송정국수
사실 송정국수는 원래 계획에 없던 코스였다. 취재를 빌미로 직장인의 사치라는 평일 브런치를 즐겨보려 했건만, 미리 정해둔 식당이 사라지는 바람에 급히 찾은 식당이다. 노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송정국수는 회색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이 주를 이루는 송정동 골목에서 알록달록한 간판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겉모습보다 더욱 인상적인 인테리어가 기다리고 있다. 식당 안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내뿜는 자개 가구들은 사장님의 취향이다. 동네에 버려진 자개장과 서랍장을 직접 들고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만면에 뿌듯한 미소를 지으셨다.
오래된 물건에 무심하게 붙어 있는 힙한 스티커와 벽에 발린 청록색 페인트는 사장님 아들의 취향이다. 부자의 합작으로 언밸란스하지만 어딘가 힙한 인테리어가 완성됐다. 테이블마다 하나씩 놓인 주전자에는 보리와 강냉이, 결명자를 넣고 직접 끓인 물이 담겨있다.
평일 점심시간에 방문하니 작은 매장 안이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송정동 사람들이 여기 다 모인 줄 알았다. 혼자 방문한 나는 난생처음으로 합석을 하게 됐는데, 듣자 하니 이 근방에서 제일 괜찮은 식당이라 주변 직장인이 많이 찾아온단다. 피크타임이라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친절한 사장님 내외의 응대가 인상적이었다.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고, 앞치마를 손에 쥐여 주고, 불편한 건 없는지 거듭 물어봤다.
메뉴 구성은 단출하다. 뜨끈한 국수 하나, 시원한 국수 둘, 한식 카테고리에 어울리는 낙지볶음. 나는 그 사이에서 혼자 튀는 치킨치즈카레를 주문했다.
사장님 아들이 일본 유학 시절 배워온 레시피로 만든 일본식 카레다. 진한 감칠맛과 적당한 매콤함이 치즈를 얹은 밥과 잘 어울렸다.
송정국수에서는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바지락 칼국수 국물과 직접 담근 김치를 함께 내어준다. ‘칼국숫집 김치는 무조건 맛있다’는 사회적 약속에 걸맞게 맛있는 김치는 시원하고 칼칼한 겉절이 스타일. 당연히 카레와도 찰떡궁합이다. 안 어울릴 것 같은 일본식 카레와 개운한 칼국수 국물도 예상외로 괜찮은 조합이었다.
계절 메뉴인 콩국수는 가장 좋은 품질의 서리태콩만 써서 공들여 만든다고 한다. 콩국물만 구매해 가는 손님이 많을 정도로 인기 있는 메뉴라고 하니, 다음 여름에 방문해서 꼭 먹어 봐야겠다.
송정국수
[3] 산책로 옆 풍경 맛집
송정커피
송정커피는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다. 처음 방문한 건 2021년 2월. 친한 대학 후배가 좋아하는 카페라며 데려갔다. 나무가 앙상한 추운 계절에 처음 방문했는데, 봄이 되고 다시 가보니 그제야 이 카페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가 파릇파릇 살아나는 계절이 되면 창문 밖으로 액자처럼 펼쳐지는 산책로 풍경이 장관이다.
1층과 2층, 루프탑까지 갖춘 이 카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2층. 좌석 간 거리가 널찍하고 탁 트인 공간과 넓은 유리창으로 훤히 보이는 산책로 뷰까지. 가만히 앉아 멍때리기만 해도 좋은 공간이다. 주민이 아닌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르는 한적한 동네라,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가져가 작업하기에도 좋다. 대부분의 좌석에 콘센트도 준비되어 있다.
송정커피는 30개가 넘는 종류의 커피와 음료를 판매하는데, 그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메뉴는 송정크림라떼다. 6년 전 방문한 익선동 어느 카페에서 아인슈페너를 처음 마시고 쫀쫀한 크림에 홀딱 반했었다. 카페는 사라졌고, 나는 그 맛을 찾아 헤맸지만 뭘 먹어도 그 맛이 아니더라. 그런데 송정크림라떼에 올라가는 크림이 딱 그 맛이다. 마냥 달지 않고 고소한 풍미에, 휘핑크림처럼 너무 묽지도 않으면서 커피랑 따로 놀 정도로 단단하지는 않은 질감이라 라떼와의 조화가 완벽하다. 참고로 여름에는 옛날 스타일의 컵팥빙수도 추천한다.
송정커피
[4] 도심 속 비밀의 숲
송정제방길
이곳이 바로 오늘 코스의 하이라이트. 송정제방길은 송정동부터 성수동까지 쭉 이어진 산책로다. 나무가 빼곡하게 줄지어 서 있고 산책로 옆으로는 중랑천이 흐른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종종 보이긴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자전거 통행이 금지된 곳이라 산책하는 강아지도 많이 마주칠 수 있다.
가장 좋은 건 해가 지기 전에 성수동에서 송정동 방향으로 산책을 즐긴 후, 송정커피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잔. 그리고 해가 질 무렵 다시 송정동에서 성수동 방향으로 걸으면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산책로는 누굴 데려가도 실패한 적이 없다. 참고로 봄에는 벚꽃이 만개하고, 가을에는 단풍길이 펼쳐져 더욱 아름답다.
오늘 소개한 송정동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동네다. 오래된 가게와 건물이 가진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자주 가더라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익숙해진다. 시끌벅적한 성수동과 군자동 사이,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일상에서 잠시 떠나온 듯한 쉼을 안겨주는 송정동. 가끔 휴식이 필요할 때면 송정동을 떠올리고 찾아가 보길,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찾은 안정을 얻을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