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사고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아이 맡길 데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가 수감되거나 학대해서 아이 혼자 남겨진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가정위탁제도’는 부모의 질병, 수감, 학대 등으로 친가정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없을 때 복지시설에 보내지 않고 일정기간 위탁가정에 맡겨 양육하는 제도다. ‘선 가정보호, 후 시설보호’라는 UN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2003년 우리나라에 도입됐다. 나는 6년째 위탁부모로 살고 있다. 처음엔 내가 위탁부모라고 하면 그게 뭐냐며 되묻는 사람이 많았다. 혹자는 입양 가기 전에 잠깐 맡아주는 게 아니냐고 어렴풋이 추측하기도 했다.
혈연중심인 한국사회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일반 위탁가정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학대아동이나 장애아동, 영아의 경우는 더욱 힘들다. [사진 pixabay]
가정위탁제도는 보호가 필요한 아이가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보호되고 양육되도록 하는 제도다. 친부모를 대신해 조부모 가정이 양육하면 ‘대리위탁’, 이모나 삼촌 등 친인척 가정이 양육하면 ‘친인척 위탁’, 혈연관계가 아닌 일반인 가정이 양육하면 ‘일반 위탁’이라고 한다. 친부모를 대신하는 것이니 조부모나 친인척이 제일 가깝겠지만 그마저도 없는 경우라면, 비혈연 관계인 일반 위탁가정에 맡겨지게 된다. 되도록이면 가정이라는 환경 안에서 개인의 생활이 유지되는 가정형 보호를 받게 하려는 취지 때문이다. 하지만 혈연중심인 한국사회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일반 위탁가정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학대아동이나 장애아동, 영아의 경우는 더욱 힘들다. 그래서 지금은 전문위탁(학대아동, 장애아동, 영아 위탁), 일시위탁(일시적 위탁)이 같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아동을 가정에서 보호하고 양육하는 위탁부모의 조건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이 위탁부모가 될까? 아동복지법엔 위탁부모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족위탁 포스터. [사진 아동권리보장원]
위탁가정이 되기 위한 조건(아동복지법 시행규칙 제2조 위탁가정의 기준)
1. 위탁아동을 양육하기에 적합한 수준의 소득이 있는 가정 2. 위탁아동에 대해 종교의 자유를 인정,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양육과 교육이 가능한 가정 3. 25세 이상(부부인 경우 부부 모두)으로 위탁 아동과의 나이 차이가 60세 미만인 경우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위탁아동을 건전하게 양육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음) 4. 자녀가 없거나 자녀(18세 이상 제외)의 수가 위탁아동을 포함하여 4명 이내 5. 가정에 성범죄, 가정폭력, 아동학대, 정신질환 등 전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야 함 6. 그 밖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준 (*조건에 모두 부합하고, 가정위탁을 희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비위탁부모교육을 받아야 함. 가정위탁 안내 및 절차에 대한 세부 사항은 아동권리보장원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이런 조건을 갖춘 사람이 교육을 받고 위탁부모가 되면, 정기적으로 보수교육을 또 받아야 한다. 각 지역의 가정위탁지원센터와 자조모임을 통해 정보를 얻고, 계속 배우면서 양육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탁부모에게 수고비는 없다. 비혈연 관계인 아이를 내 집에 데려와서 24시간 보호하며 키우지만 수고비는 전혀 없다. 지금도 나에게 얼마 받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어느 정도면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월 200만 원 정도면 할 수 있을까? 월 300만 원 정도면 할 수 있을까?’ 위탁부모는 수고비조차 받지 않기 때문에 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뭔가 (이익이) 있겠지’하며 히죽거리는 웃음이 이젠 슬프게 보일 정도다. 가정위탁제도가 그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위탁부모는 아이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신앙적인 이유로, 좀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이유로 자원한 사람이다. 나도 그렇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좀 더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앞으로도 완벽한 위탁부모는 될 수 없겠지만 내 곁, 내 공간은 내어줄 수 있길.... 한 해를 보내며 다시 소망한다. [사진 pixabay]
위탁부모 신청을 하고, 교육을 받고, 막상 은지 엄마가 됐을 때, 고민은 더 많았다. 직업이라면 출퇴근이라도 있을 텐데 내 집에서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게 버거웠고, 내 자유를 반납하고 매여 살아야 하다는 게 제일 힘들었다. 지금은 지지고 볶으면서 영락없이 가족으로 살고 있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 흔들림이 위탁가족이 되는 진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성품이 좋은 사람도, 돈이 많은 사람도, 심지가 곧은 사람도 아닌데 위탁부모로 살고 있다. 남들은 특별하게 보지만, 정작 특별한 건 없는 삶이다. 이렇게 살면서 내 삶이 더 깊어지고 온전해지길…. 앞으로도 완벽한 위탁부모는 될 수 없겠지만 내 곁, 내 공간은 내어줄 수 있길…. 한 해를 보내며 다시 소망한다. 이렇게 시간이 또 흘러가나 보다.
-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