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개인 손배소’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현대차 하청노동자 4천500만원 손배소 상고심 … 24일 대법관 전원 참여 첫 심리, 판례 바뀌나
▲ 현대차·기아 비정규 노동자들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결과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현대차·기아의 사내하청 노동자 400여명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이들을 회사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정기훈 기자>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했다는 이유로 수천만원을 청구받은 비정규 노동자의 손해배상 사건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개별 노동자에게도 불법행위 책임을 지울 수 있다고 본 종전 판례가 변경될지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 ‘고정비’ 손해액 배상 소송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4일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지회장 유홍선) 조합원 5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현대차가 소송을 낸 지 약 10년 만이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전원이 참여해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나 기존 판례를 뒤집을 필요성이 있을 때 심리해 판결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은 24일 오전 이번 사건의 첫 심리기일을 진행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변론기일과 달리 대법관 전원이 전원합의실에 모여 원·피고 없이 의견을 나누고 쟁점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이후 변론이 필요하면 법정에서 변론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이번 소송은 현대차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조업을 중단해 시작된 사건이다.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하청노동자 최병승씨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2010년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대차가 교섭요구를 거절하자 2013년 7월12일 대체인력 투입저지를 위해 공장에 진입한 후 ‘크래시 패드 장착’ 공정을 점거해 약 63분간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사측은 불법파업에 따라 라인이 정지됐다며 고정비(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 4천500만원의 손해액을 배상하라며 2013년 8월 소송을 냈다. 노동자들은 “2년 넘게 근무해 현대차가 직접고용할 의무를 부담하는데도 교섭을 거부해 쟁의행위에 이르게 됐다”며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특히 사측의 청구는 ‘권리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손해 보전이 아니라 노조활동을 통제할 목적이라는 것이다. ‘고정비 손해’와 관련해서도 연장·휴일근로 등으로 자동차를 추가 생산·판매해 상당 부분 회수됐기 때문에 손해액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항소심 “불법행위”, 노동자 절반 책임제한
1심은 불법행위가 아니라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항소심은 “쟁의행위는 반사회적 행위로서 정당성이 없다”고 판결했다. 노동자의 권리남용 주장도 “헌법이 정한 테두리를 벗어났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고정비 손해’는 가동 중단 여부와 무관하게 지출된 비용에다 쟁의행위 후에 발생한 사정에 불과하다며 손해액 산정에 고려할 요소가 아니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전적으로 노동자 책임만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A씨 등이 손해배상 소송 1심 당시인 2014년 9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승소한 점이 인정됐다. 이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은 지난달 대법원에서 노동자들이 최종적으로 승소했다. 재판부는 단체교섭을 거부한 사측의 책임을 물어 손해액의 절반인 2천300만원을 노동자들이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 금속노조가 지난 3월24일 오전 서울 양재동 현대차·기아 본사 앞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불법파견을 규탄하고 대법원에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손배 책임제한·고정비 범위” 쟁점
노동자들은 이에 불복해 2018년 9월 상고했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에 이번 사건을 넘기면서 상고심의 쟁점별 판단에 따라 향후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쟁점은 △고정비 손해 발생·범위에 대한 증명 △손해배상의 책임제한 등 크게 두 가지다.
전원합의체가 일반조합원의 경우 쟁의행위로 인한 손배 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기존 판례는 뒤바뀐다. 대법원은 2011년 3월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로 손해를 입은 사용자는 ‘노조’나 ‘근로자’에 대해 손배를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계류 중인 사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된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소는 7건이고, 1심이 선고된 사건도 1건이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수집한 197건의 손배소 사건 중 1심에서 사용자가 일부승소한 사건은 47%다. 대법원 판단 결과에 따라 하급심 판결도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 요구가 높아진 터라 대법원이 판례 변경을 심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된다. 국회에는 개인에게 파업에 따른 손배 청구를 금지하는 노조법 개정안이 다수 계류 중이다. 노동자들을 대리하는 정기호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실제로 생산 손실이 없는데도 고정비 청구를 한 것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가 주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하면 손배 책임 제한 등 법리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두섭 변호사(직장갑질119 대표)는 “고정비 부분에 의미 있는 판단이 나온다면 손해액이 줄어들 여지가 있다”면서도 “원천적으로 정당한 쟁의행위를 불법행위라고 판단하는 부분들을 전향적으로 판결하고, 국회에서 법 개정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홍선 지회장은 “2010년 최병승씨 사건의 대법원 판결 이후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다면 공장 가동 중지가 됐을지 의문”이라며 “사측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불법행위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일노동뉴스] 2022.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