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로 인해 북왕국 이스라엘을 치려는 아람의 전략이 계속 무산(霧散)되자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 엘리사가 머물고 있는 도단(Dothan)을 에워쌉니다(14절). 그리고 엘리사의 사환은 이러한 상황을 보고 엘리사에게 와서 어찌하면 좋겠냐고 한탄합니다(15절). 이 사환은 게하시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것이 확실합니다. 선지자의 제자들 중에 한 명이 엘리사를 돕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탄식하는 사환에게 엘리사는 뜬금없는 말을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라는 말입니다(16절). 엘리사의 사환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엘리사는 하나님께 그 사환(청년)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자 불말과 불병거가 온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17절). 엘리사가 머물고 있는 도단이 아람 군대의 포위로 큰 위기에 처했지만, 아람 군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가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뜨이니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영안(靈眼)이 뜨이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큰 위기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 엘리사는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셨습니다(18절). 여기서 눈을 어둡게 해달라는 말은 눈이 안 보이게 해달라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분별력을 흐리게 하여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게 해달라는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아람 군대에게 가서 “이 길은 당신들이 가려는 길이 아니며, 이 성읍은 당신들이 찾는 성읍이 아니니 나를 따라오면 내가 당신들이 찾는 사람에게 데려다 주겠다”라고 말하자 아람 군대는 엘리사를 따라 나섭니다. 분명히 그들은 도단을 향해 왔고, 그들이 찾는 엘리사가 그들 앞에 찾아왔는데도 못 알아본 것입니다. 아람 군대의 눈이 어두워져서 그들은 엘리사를 따라 약 19km나 되는 도단에서 사마리아까지 가게 됩니다(19절). 그리고 엘리사가 다시 그들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그들의 눈이 열려 사마리아 가운데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20절).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람(요람)은 엘리사가 아람 군대를 사마리아 성으로 이끌고 온 것을 보고 이들을 쳐도 되겠냐고 엘리사에게 묻습니다(21절). 저절로 굴러들어 온 적군이었으니 이스라엘 왕에게는 아람 군대를 꺾을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칼과 활로 사로잡았더라도 죽이지 않는 것인데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다시 돌아가게 하라고 권면합닏가(22절). 엘리사의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의 말대로 행하였고, 아람 군대는 다시 돌아갔는데, 이로부터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땅에 다시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23절). 물론 24절 이후에 보면 다시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침공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의 사건 이후에 시간이 꽤 흐른 후의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 기록한 상황의 사건에서는 아람의 이스라엘 침공이 일단락되었다는 표현입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보는 것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하여 하나님을 주목하면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렵고 힘든 상황이든, 혹은 너무 잘 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상황이든, 그러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는다면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볼 수 있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아 순종하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