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
적과 흑
정리 김광한
책소개
스탕달은 특정한 1830년대 프랑스의 격변기를 비판했지만 특수하고 특정한 두려움과 공포, 현실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현대인과 현대 청년들에게 남다른 공감을 줄 것이다.
《적과 흑》은 정치소설, 사회소설, 연애소설로도 읽을 수 있지만 단순한 흥미 위주의 연애소설은 아니다.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군인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에 여전히 나폴레옹을 숭배하는 야심 찬 청년 줄리앙 소렐이 뛰어난 지성과 타고난 미모, 섬세한 감수성 때문에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여인들과 연애 사건에 말려들다가 끝내 사형에 처해진다는 이야기지만, 스탕달은 이 장편소설을 통해 19세기 초 격변기였던 1830년대 프랑스 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하며 그 시대의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을 직접적인 제재로 취급하고 있다.
귀족과 성직자, 돈 있는 자들만이 권세를 누리던 사회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청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작중 인물들의 복합적인 심리와 성격 또한 시대의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줄리앙의 복잡한 연애심리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사회 구조적 변화와 그로부터 연유되는 청년층의 사회심리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줄리앙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며 늘 정치적인 기회주의와 감수성, 정직함과 기만한 행동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치밀한 계산으로 끌고 온 상황에서도 무력하게 감정에 호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합성은 《적과 흑》을 읽는 독자들에게 오직 이 작품을 통해서 전이되는 소렐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사회적 모순과 심리적 갈등 사이의 한 청년의 고뇌는 결코 1830년대 프랑스 사회에서 끝이 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은 특정 시대에 다채로웠던 인물의 성격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매 순간 새롭게 달라지는 사회에서 특수하고 특정한 두려움과 공포, 현실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현대인과 현대 청년들에게 남다른 공감을 주고 스탕달 문학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
스탕달 작가
본명은 마리앙리 벨.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신과는 성향이 매우 달랐던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00년 용기병 소위로 임관 이탈리아로 떠난 후 스탕달은 나폴레옹 제정의 관료로서 몇 차례의 승진과 함께 출세 길에 오르지만,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실직했다. 그 후로 칠 년간 밀라노에 머물면서 음악, 그림, 연극을 즐기고 글을 써서 발표하시 시작했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회화사』, 『연애론』, 『아르망스』 등을 집필했고 1830년에는 대표작 『적과 흑』을 발표했다. 그해 7월 혁명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스탕달은 이탈리아 주재 프랑스 영사에 임명되었다. 말단 외교관이었지만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으며 그 기간에도 정력적으로 글을 썼다.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를 집필하고 1839년에는 그의 양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파르마의 수도원』을 오십여 일 만에 구술로 완성했다. 1842년 파리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유해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되었다.
책 속으로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스탕달(Stendal)은 1783년에 프랑스 동남부의 산간 도시 그르노블에서 태어났다. 스탕달이라는 이름은 필명이고 그의 본명은 앙리 베일이다.
그의 대표작인 《적과 흑》은 1830년, 그의 나이 47세에 발표했지만 메리메나 발자크와 같은 탁월한 작가들의 찬탄과 소수의 애독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스탕달은 《적과 흑》 《파르므의 승원》이라는 단 두 편의 소설로써 백 편 이상을 쓴 발자크와 비견할 만한 자리를 문학사에서 차지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오히려 위고나 발자크보다도 더 많은 독자를 가지게 되었고, 좀더 현대인에 가까운 선구적인 천재로서 각별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적과 흑》이 구상되고 쓰인 시기는 1829년에서 1830년 사이로, 이 작품 속엔 1830년에 발발한 7월 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의 모든 풍조와 음모와 예징(象徵)이 역력히 드러나 있다.
1814년 나폴레옹이 실각한 후 왕정복고를 틈타서 다시 권력을 잡은 귀족들의 꿈 같은 15년간의 영화, 또한 다시 무궁한 번영을 누릴 듯이 태연하고 우매한 왕당파 상류 인사들, 혹은 악몽 같은 몰락의 추억과 다가오는 전락의 예감에 몸서리치는 민감한 귀족, 사회의 대변동에 따르는 가치의 전도와 정신적 혼란 속에 고개를 드는 신흥 계급, 젊은 세대의 야심만만한 꿈과 공리주의와 그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온갖 굴욕, 급진주의를 내걸고 좌우익을 넘나들며 자신들의 이익을 노리는 자유주의자들, 거룩한 제의를 걸치고 정치적 음모에 휩쓸리는 성직자들 등, 두 혁명 사이에 끼인 긴박한 15년간의 온갖 비극적이고 우열(愚)하고 가소로운 사회상이 이 한 편에 여지없이 드러나 있다.
스탕달은 이 책에서 발자크가 한 권의 소설로 늘어놓을 것을 단 한 토막의 삽화로, 때로는 몇 줄의 묘사로 처리해 내는 비상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의 성격묘사나 심리분석은 발자크에서 졸라에 이르는 몇 세대를 뛰어넘어 도스토옙스키 이후의 현대 작가들의 그것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낭만주의 · 사실주의 · 심리주의 등등 어떤 유파에도 예속하지 않는다. 개인 심리와 사회상, 그 어느 편도 주종(主從)이 될 수 없다. 그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이며 현대의 선구자일 뿐이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의 움직임을 구두쇠·호색 · 질투·천사 · 악마 등의 편집과 고정관념으로 미리 규정하고 들어가는 문학상의 불문율을 도스토옙스키 이전에 그는 이미 타파해 버렸던 것이다. 줄리앙 소렐이라는 한 인간 속에는 그 모든 성격이, 천사에서 악마에 이르는 모든 요소가 공존·혼합되어 있다. 너무나 다감할 정도로 꿈 많은 줄리앙과 악착스러운 자의식과 반항심에 사로잡힌 하층계급 출신 인텔리 줄리앙과의 내적 갈등, 그리고 결국은 그 모든 것을 지배하고 마는 공리주의, 이것이 줄리앙 소렐의 복잡한 인격과 심리의 움직임이며 거기서 반사되는 그의 일거일동이 곧 줄리앙 소렐이란 인물의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