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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누리라 하십니다.
240811(주일오전)
눅 8:4-15
할렐루야!!! 오늘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주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모든 삶에 구체적으로 관여해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8장에 소개되는 우리의 하나님은,
바다의 광풍을 잔잔케 하시는, 자연의 현상들까지도 지배하시는 분이십니다.(v22-25)
사람을 괴롭히는 악령과 귀신의 세력을 멸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악령 귀신들이 군대로 몰려와도 말씀 한 마디로 제압해 버리시는 온 우주의 위대한 왕이십니다.(v26-39)
의학적 불치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치유하시는 만병의 의사이십니다.(v42-48)
죽음까지도 지배하시는 생명의 주인이십니다.(v49-56)
그와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각 사람과 환경 위에 임하여 모든 어두움이 떠나가는 상태를 가리켜, 성경은 (헬. he basileia tou Theou, the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들입니다.
≡(눅 9: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후 8일쯤 되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셨는데, 그때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나타나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던 것입니다.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려 말 못하는 사람에게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그에게서 귀신이 나가고 그가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더러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고, 예수님은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눅 11:19),
≡(눅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 17:20-21)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이 모든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정해진 기간, 정해진 때에 한 번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늘 있는 우리의 평범한 삶의 현장 속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생활 중에 나타나면 생활천국, 심령천국입니다(22-25절).
≡(눅 8:1-2)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 2절에 나오는 귀신 들렸던 여자들처럼, 26-39절에 나오는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던 남자처럼, 악한 귀신들에 사로잡힌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자유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생활천국, 심령천국이라 하는 것입니다.
(눅 8:22-25)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 하나님의 권능으로 삶의 현장에서 귀신이 떠나가고, 광풍으로 인한 큰 파도와 같은 심각한 문제가 그 앞에서 제거되며 평안하여지는 것을 생활천국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기울어진 경제위에 임하면 경제천국입니다(1-3절).
≡(눅 8:1-3)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헤롯의 청지기(헬. ἐπίτροπος ;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 구약의 사렙다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함으로 경제적인 기적을 맛보았던 것처럼,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들이 경제적인 면에서 선지자로 사역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경제천국을 맛보았기에 그들의 흘러넘치는 소유(재정으)로 주님과 복음사역을 섬기는 자리에 서게 되었된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에 이어지는 누가복음 9:10-17에 무리들이 벳세다까지 예수님을 따라와 하나님 나라의 말씀들을 듣고 치유를 받는 과정에 날이 저물었고 무리들이 배고파할 때, 그들에게 줄 것이 없어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셨는데, 제자들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밖에 없다며 그것들을 주님 손에 올려드렸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떼를 지어 한 50명씩 앉히라.”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그 말씀대로 순종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주게 하셨는데 남자의 숫자로만 한 오천명 되는 그 모두가 다 배불리 먹고도 남아 12바구니를 거두는 경제기적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병든 육체 위에 나타나면 건강천국입니다(40-56절).
≡(눅 8:1-2)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눅 8:40-56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을 병에 걸렸고, 실제로 죽었으나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났고,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깨끗하게 치유되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할 때, 세상 의학으로는 불치의 병일지라도 치유되고, 죽음으로부터라도 다시 일으키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천국, 하나님의 나라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큰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사람들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임하는 것입니까?
오늘의 본문 눅 8:8,15에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 하는 자에게 백 배의 결실로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하는가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도 하고 임하지 않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것이지만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 하는 자는 체험하고 알게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냥 쉽게 지나치는 자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비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파종의 시즌인 봄에 밭에 어떤 씨앗도 심지 않거나, 추수의 시즌인 가을이 되어서야 뒤늦게 밭에 씨앗을 심는 어리석은 사람은 추수의 시즌인 가을을 맞이해도, 밭에서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심어야 거두고, 심을 때와 거둘 때가 따로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이 법칙은 영적인 원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의 씨를 한 번도 심지 않거나, 또 심더라도 파종의 시즌이 아닌 추수의 시즌에 심기에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는 현실을 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밭에 소산이 없다고 놀라면서 실망을 합니다.
‘왜 나는 치유가 안 되는 거야? 왜 나는 형통하지 않나? 하나님은 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나? 내 인간관계는 왜 다 이 모양이지? 나는 왜 한 직장에서 오래 못 있는 건가? 왜 내 인생은 되는 일이 없는 거야?’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취해 그들의 삶에 그 진리를 심거나 가꾸지 않는 삶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취해서 그 마음에 심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은 심더라도 파종의 시즌을 놓치고 추수의 시즌에 가서야 뒤늦게 심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하고 원하고 간구하고 떼를 써도 승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씨이다.’라는 진리로부터 역사합니다. 자연적 영역과 마찬가지로 열매를 맺으려면 씨를 심되 제때에 심어야 합니다. 씨를 심지 않으면 숲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지 않는다면 당신의 삶에서 승리를 얻지 못합니다. 씨를 뿌리되 뿌려야 할 때에 뿌려야 하고 성장하고 자랄 시간을 주어야 하고 거두어야 할 때에 거두어야 합니다. 위기의 상황에 처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위기에 빠지면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건져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만약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그 결과를 얻지 못하면 상처받고, 삐치고, 불신에 빠집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엄격하지만 당연합니다. 간단하지만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역사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10절에는 “the secrets of the kingdom of God,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는 말씀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더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마음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를 4가지의 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심각한 사람의 마음으로 길 가와 같은 첫 번째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눅 8:5,12) 『[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이 구절들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길 가와 같은 단단하고도 강퍅한 마음의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미혹의 영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마귀가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고 마귀의 세력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 받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의 삶은 늘 메마른 삶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매우 심~~~각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 유형의 안타까운 사람으로 흙이 앝은 바위 위와 같은 마음의 사람입니다.
≡(눅 8:6,13) 『[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이 구절들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기쁨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마다 맨 앞자리에서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아멘! 아멘! 할렐루야!”를 외쳐댑니다. 두 눈에서는 왕방울만한 눈물이 뚝 뚝 쏟아져 내립니다. 그 모습만 바라봐도 감동이 일어납니다. 굉장히 쎈 믿음의 사람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막상 그의 삶의 현장에 조금만 어려운 시험이 닥쳐와도 내가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더냐? 그것은 성경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이런 상황 속에서 그런 말씀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제 멋대로 행동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냄비신앙의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을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어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생활은 잘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신앙생활은 잘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 가운데 있다면 이 또한 심~~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신앙을 배반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스스로는 자기가 신앙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신앙이 없는 것이고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길 날이 온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고,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18절의 말씀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눅 8: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¹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¹. So pay attention to how you hear _NLT.
“스스로 삼가라.”로 번역된 헬라어는 “Blepo”로 “보라”(see)는 의미입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해서 보고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정신없이 듣지 말고 정신을 번쩍 차리고 집중해서 보고 심각하게 듣고 결단하여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올바로 들을 수 있을까?”
이 주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딤전 6:3-5)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비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바른 말로 듣는 귀가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헬. eusebeia ; 하나님을 경외함)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선포하신 말씀과 하나님을 대하신 태도가 진리의 척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 부분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10: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마 4:23-24)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그 통치하심의 복음( 헬. to euaggelion te-s basileias)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마 12: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마 14:13-21)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 예수님의 말씀과 경건은 모든 병든 자들과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선포하시는 것이었고, 그 결과 병이 치료되고 약함이 강함으로 바뀌고 가난이 풍성함으로 바꾸어지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경건의 사역은 전인치유사역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올바로 듣고 깨달아 끝까지 순종함으로 전인치유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정쩡한 마음의 가시떨기와 같은 세 번째 유형의 사람도 있습니다.
≡(눅 8:7,14) 『[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나무가 무성한 잡목 밭과 같은 복잡한 마음의 어정쩡한 사람입니다.
7절과 14절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방금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굉장한 반응을 보이는 동시에 삶의 현장에서도 그 말씀을 어느 정도까지는 순종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이따금씩 조금씩 조금씩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보다는 이 세상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쏟기에 더 큰 하나님의 복을 받지는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보다는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더 사랑하고 더 사모하고 투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곡식으로 말하자면 쭉정이는 아니지만 꽉 찬 알곡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들입니다. 결실을 하기는 하나 온전한 결실은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심각한 고민을 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장애물을 잘 통과하신 케리 커크우드 목사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케리 커크우드 목사님의 교회에서 헌금을 엄청나게 많이 하는 성도들이 있었답니다.
그 성도들이 자신들의 요구대로 어떤 일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 성도들이 그 교회를 떠나겠다고 했답니다.
그 순간 성령님께서 케리 커크우드 목사님께 말씀하시더랍니다.
“헌금을 많이 하는 저들이 너의 근원이냐? 내가 너의 근원이냐?”
‘오~ 흥미로운데요! 주님!’ 그 순간 잠깐 고민이 되었지만, 즉시 그들에게 말했답니다. “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나가면서 저주의 말을 하더랍니다.
“야~ 우리의 헌금이 없이는 이 교회 못 버텨~. 당신의 사역은 이제 몰락이야!”
그 저주의 말을 듣는 케리 커크우드 목사님이 말했답니다.
“난 사역 없어. 단지 예수님을 사랑할 뿐이야!
난 원래 어떤 직함도 없어! 사람들이 나에게 직함을 준 것이지 내가 직함을 달라고 한 것 없거든! ...”
그들이 그렇게 떠났답니다.
그리고 그해 말에 교회의 재정이 몇 백만원이 마이너스였답니다.
그때 케리 커크우드 목사님은 주님께 말씀드렸답니다.
“주님, 이 교회는 제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저는 죽지도 않았습니다. 제 피를 여기에 흘린 것 없습니다. 주님. 이 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세웠다면 내가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나 주님의 것이니까 계속 세우시던가 몰락시키던가 마음대로 하십시오...”
재정적인 부분과 교회의 염려되는 모든 부분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염려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틀 뒤 카센타의 엔지니어인 어떤 남자 성도로부터 전화가 왔답니다.
“목사님, 저와 만나주시죠.”
그 남자는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목사님이 시간이 없다고 말했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정색하며 말하더랍니다.
“안돼요. 목사님, 꼭 오셔야 됩니다.”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서 찾아갔더니,
그가 어느 연세 드신 숙녀 앞에서 말하더랍니다.
“여기 이 연세 드신 여자분이 새 차가 있는데,
차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어 달라고 3번을 찾아왔었습니다.”
-그 연세 드신 숙녀는 침례교인이었답니다.-
그날 아침 그 여인이 그 남자에게 와서 말했답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 깼는데 주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너 그 엔지니어를 찾아가라. 이 수표를 주고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 내라고 전해줘라.’고 하셨는데 당신 교회에 다니는 것 맞죠?”
그래서 목사님을 부른 것이었답니다.
그리고 그 수표는 정확하게 그 교회에 필요한 그 액수였답니다.
3년 연속으로 그런 일이 있었답니다.
3년 후에는 재정의 돌파가 일어났고,
그런 재정의 만나가 더 이상은 필요 없는 상황이 되었답니다.
그 후로 더 이상 그 여인에게서도 전화가 오지 않았답니다.
케리 커크우드 목사님은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이라는 장애물이 그 목사님의 마음에 뿌려져 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그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일에 성공한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교회에 임하여 재정과 사역의 돌파를 맛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케리 커크우드 목사님이 이 부분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들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하는 힘든 목회를 하게 되고, 그 사람들도 교만에 빠져 주님의 교회를 자신들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저주의 길을 가게 되었을 것이고, 교회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돌파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참고로 이 케리 커크우드 목사님께서 2019년 5월 25일(토) 오후 안산제자교회에서 저에게 다가와 저를 지목하시더니 “아들아, 너는 좋은 선택을 했다... 너는 무엇에도 뒤쳐진 상태가 아니다... 내가 너를 앞으로 전진하도록 이끈다... 주님, 제가 주님의 임재가 더 머무시도록 풀어놓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형제님께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예언적인 선포를 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과 같은 마지막 네 번째 유형의 확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씨앗이 잘 자라기에 가장 알맞은 기름진 옥토와 같은 착하고 좋은 마음의 사람입니다.
≡(눅 8:8,15)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8절과 15절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씨앗이 자라서 백배의 결실을 하듯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떨어지기만 하면 아멘으로 받고 그 말씀을 삶의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마음에 일어나는 길 가와 같은 단단한 마음을 스스로 기경하여 부드럽게 만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어떤 시련이 다가올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위에 굳게 서기를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이생의 염려거리가 생겨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그 염려를 떨쳐버리는 사람입니다. 재물의 유혹이 몰려와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재물의 유혹을 물리치는 사람입니다. 향락, 즉 세상의 그 어떤 욕심이 들어와도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단호히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말씀의 언약이 100배로 온전히 성취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의 결국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란 어떤 나라입니까?
요한계시록 21:1-4에 보시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는 나라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출 23:25-26)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신 15:4-5)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사 33:24) 『그 거주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에 사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저 천국이 이 땅에 임하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안에 거하는 동안에는 그 어떤 질병도 없었고, 재정적 빈곤도 없었고, 전쟁에서 단 한명도 죽지 않았으며, 다윗의 용사 한 사람이 단 번에 800명의 적군을 무찌르고(삼하23:8), 한 천사의 개입으로 예루살렘 성을 함락하려던 앗수르 군사 185,000명이 단 하룻밤 사이에 다 송장이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왕하19:35). 바로 그와 같은 사건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결과물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할 때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권능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땅과 같은 아름답고 복된 삶의 결실을 맛보려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려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다면 잘 지켜야 합니다.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행하며 순종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있다면 이번에는 인내해야 합니다.
≡(눅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롬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히 6: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 6: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믿음을 갖고 인내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반드시 그 열매를 맺습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Gl 6:9, NIV) 『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특히 인내의 시간 속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입술의 권세(말)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언어, 말(言)이 갖는 위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말은 영적 계약서의 날인과 같은 것입니다.
≡(막 11:23-24)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가 말을 조심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생각의 악을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고후 10:5-6)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생각의 악을 제거하지 않고 말로 토해내면 그 악한 말이 삶을 파괴하는 멸망과 저주의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잠 13:3)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잠 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의 시간에 악한 생각, 악한 언어를 버리고 좋은 생각, 좋은 말, 믿음의 말을 선포해야 합니다.
≡(잠 11:11)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잠 13:2)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잠 18:20-21) 『[20]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벧전 3:9-12)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재정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멕시코 살틸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과농장을 경영하던 농부가 있었습니다. 거듭되는 흉작으로 모든 것이 어렵고 절박하게 된 어느 날, 경제적으로 부유케 되는 약속의 말씀인 고린도후서 9장 6절의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는 말씀을 붙잡고 거액의 헌금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듭되는 흉작으로 극도로 쪼들린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액의 돈이 필요했기에 거액을 거두기 위해 거액의 헌금을 한 것입니다. 힘에 겨울 정도의 거액의 헌금을 하고 살틸로의 집으로 돌아온 그들에게는 최악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헌금을 한 바로 그날 밤, 때 아닌 추위가 몰아닥친 것입니다. 이로써 사과농장의 사과꽃들이 모조리 얼어붙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태를 맞이하자 의심이 먹구름처럼 피어올랐습니다. 결핍의 공포로 인해 하나님이 그의 헌물을 열납하지 않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아내에게 지혜롭게 다짐했습니다.
“추수를 위해 믿음으로 씨를 뿌렸으니, 이제 우리는 기도할 도리밖에 없소. 자연의 결과는 좋지 못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자연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그 부부는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그들은 두려움을 떨쳐버렸습니다. 소문이 나돌면서 그로부터 보름 동안 그들은 심한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누구나 “올해 사과 농사는 끝장”이라고 했습니다. 이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은 이웃 농부들의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우리는 사과를 수확할 겁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예요. 우리는 믿음으로 씨를 뿌렸으니, 믿음으로 거둘 겁니다.”
보름 만에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얼어붙은 꽃들이 매달려 있던 나무마다 아주 작은 사과 알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해서 보일 듯 말듯했지만 어쨌든 살아있었고 상태도 양호했습니다. 사과는 날마다 알이 굵어져 마침내 탐스럽게 익었습니다. 그 해 마을에서 사과를 수확한 집은 이 신실한 농부네 집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확은 그 어느 해보다도 풍성했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 이것입니다. 그 해 다른 농장이 다 흉작이어서 이 농부의 사과는 전에 없이 비싼 가격에 팔렸습니다.
[존 아반지니, 30배 60배 백배 축복받는 원리, 나침반, pp138-140에서 인용함]
케네스 E. 해긴이 소개한 질병치유로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한 자매의 간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치료제임을 가르칠 때마다, 나는 뉴멕시코주의 엘버커키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들은 간증을 기억합니다. 예배가 끝난 후, 한 여자가 나와 내 아내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이 여자는 자기 발을 가리키면서 불쑥 말했습니다.
“나는 마흔일곱 살이고, 이건 내 평생 처음 신어 본 신발이에요!”
나와 내 아내는 둘 다 그녀가 새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한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마흔일곱 살이 되어서야 새 신발을 살만한 돈이 생겼다고 말한 것일까요? 그 여자가 설명했습니다.
“나는 절름발이로 태어나서, 평생 한 번도 온전한 짝의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어요. 한쪽 발은 정상이라 신발을 신을 수 있었지만, 반대쪽 발은 언제나 특수 제작된 신발을 신어야만 했어요. 또한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짧아서 나는 언제나 이런 나의 상태를 숨기려고 했고,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어요. 그러다 누군가 나에게 해긴 형제님, 당신이 믿음에 대해 다룬 테이프 세트를 주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거기에서 도무지 아무 것도 얻지 못했어요. 그래도 그냥 계속 듣고 또 들었지요. 나는 여러 번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받았어요. 우리 교회에 온 모든 복음전도자들이 내게 기름을 바르고 안수하고 기도해 주었지요. 하지만 그 때는 아무도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고, 아무도 내게 손을 얹지 않았어요. 누구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지 않았어요. 사실 나조차도 기도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테이프를 거의 끊이지 않고 6개월 정도 들은 후에, 내 발과 다리가 그냥 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완전히 정상이 되었어요!”
그녀가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발에 새끼발가락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발가락까지 자라나게 하셨어요!”>>
[Kenneth E. Hagin. <하나님의 말씀>. 김진호 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2008). pp.53-55.]
나병환자 나아만 장군이 하나님의 사람의 설교 말씀에 순종하여 더러운 요단강 물 속에 들어가되 인내를 가지고 일곱 번까지 들어갔다가 나왔을 바로 그 때에 그의 나병이 깨끗이 되었듯이... 온 밤을 다 새가면서도, 고기 잡기에 실패한 어부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릴 때에 물고기가 두 배 가득하게 잡혔듯이... 죽어가던 나병환자 10명이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며 인내를 가지고 제사장들에게 가다가 가는 도중에 그들의 나병이 깨끗이 치유되었듯이...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며, 순종해 나갈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강력하게 임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때때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할지라도 인내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생활 천국, 건강천국, 경제천국, 심령천국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 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잘 들읍시다.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지키십시다.
지키되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결실의 때를 기다립시다.
반드시 결실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 속에 임할 것입니다.
자연을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악한 귀신의 세력을 멸하는 권세를 덧입게 될 것입니다.
육신의 불치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죽음까지도 정복하는 권능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이것은 비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