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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로마서 7장 7~12절에 “그러면 무엇을 우리가 말할 것이냐, 그 율법이 죄냐, 그것은 되지 아니하노라(God forbid), 그러나 만일 율법을 통하지 않으면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탐내지 말 것이라’라고 하지 않으면 내가 그 욕구를 알지 못하였음이나. 그 계명을 통해 기회를 취한 그 죄가 내 안에 모든 욕구를 수행하였으니, 이는 율법의 없이 죄가 죽은 까닭이나. 전에 율법의 없이 내가 살았으나 그 계명이 온 때에 그 죄는 다시 살았으나(revive) 나는 죽었고. 생명 안으로 그 계명이 이것이 나에게 사망 안으로 발견함을 받았으니. 그 계명을 통해 기회를 취한 죄가 나를 속였고 그것을 통해 죽였음이라. 그래서 그 율법이 신성하고 그 계명도 신성하고 올바르고 선하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로마서 7장 7~12절은 율법에 대한 옹호입니다.1)
하나님께 열매를 만들지 못하는데 율법에 책임이 있지 아니합니다. 열매가 없음은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것입니다.2)
로마서 7장 7절은 “그러면 무엇을 우리가 말할 것이냐”로 시작됩니다. “무엇을 우리가 말할 것이냐”라는 질문은 앞에 3:5, 4:1, 6:1에도 나왔고 뒤에 8:31, 9:14, 9:30에도 나오는 질문입니다(롬 7:7).
“그 율법이 죄냐”는 질문은 파울의 복음에 대한 비평을 반영합니다.3) 파울이 5절에 “그 율법을 통하는 그 죄들의 정욕들이 활동하였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파울의 주장에 “그 율법이 죄냐”라는 질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그것이 되지 아니하노라”라고 대답합니다. 영어로 “하나님께서 금하신다”, “당치 않다”(God forbid)로 번역됩니다. 그럴 리 없으며, 그것은 결코 되지 아니할 일입니다(May it never be!). 어림도 없습니다(Certainly not!). 그 율법이 죄일 리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 율법이 죄는 아니지만 나에게 그 죄를 알게 하는 수단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아니면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습니다(not have known).
파울은 율법을 통하여 죄의 본질과 성격과 의미를 이해하였습니다.4) 율법은 죄에 대한 “지식”을 가져옵니다.5)
죄의 특징과 본질에 바른 개념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율법입니다. 불신자들의 문제는 죄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구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6)
이유는 만일 그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 것이라’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내가 그 욕구를 알지 못하고서 죄를 범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어떤 것을 바라고 갈망하는 것이 욕구입니다. 만일 율법이 없으면 욕구 자체가 죄인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욕구가 행위만큼 저주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율법으로 알게 됩니다.7)
율법은 인생에 있어서 욕구의 놀랄 만한 능력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사람들은 악한 욕구를 행동하지 않으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파울에게 구세주가 필요한 것을 알게 한 것은 욕구의 문제입니다.8)
1. 그 계명을 통해 기회를 취한 죄가 모든 욕구를 이룹니다.
로마서 7장 8절에 “그 계명을 통해 기회를 취한 죄가 욕구를 수행하니 이는 율법의 없이 죄가 죽은 까닭이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죄”는 타락한 사람 본성 안에 일하는 하나의 원리이고 세력입니다. “기회를 취하다”라는 표현은 “출발점으로 하다”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죄가 계명을 출발점으로 하였고 계명을 작전 본영으로 만들었습니다. 죄는 그 계명을 도구로 삼아 사람 안에 모든 욕구를 이루게 됩니다. 율법이 금지하는 것들이 죄에 하고 싶은 기회들을 세공하였습니다.9)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죄의 특성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잘못된 사례들을 소개함으로 모방 범죄가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죄의 본성이 사람을 죄를 범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잘못된 것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더라면 안 저질렀을 텐데 몰랐던 사람들도 호기심과 관심을 두게 되고서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율법이 ‘탐내지 말라’라고 금하니, 더 “욕구”가 일어납니다(롬 7:7). 사람들은 태어나는 때부터 내면에 하나님께 대한 반감을 품고 있습니다.
타락한 사람들은 율법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더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사람들은 금지 조항이 많은 “율법”에 대해 분개를 하고 또 그런 “율법”을 주신 하나님께 대해서도 노염을 품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라고 주장하려고 갖가지의 논리들을 펼칩니다. 또는 자기들의 욕구에 부합하는 거짓된 신(神)들과 종교들을 만든 후에, 그것들을 믿고 섬깁니다.
죄는 그 계명을 지렛대로 써서 사람 안에 욕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죄는 너무 강력한 까닭에, 그것은 사람들을 들어 던질 수 있습니다.10)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안에 하나님께 대한 반감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근본적인 공리(公理)입니다.11)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시대의 특징은 질서와 규제를 싫어합니다. 죄가 율법을 지렛목으로 쓰고 율법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죄는 전에 없던 사념들을 집어넣음을 통하여 욕구들을 수행합니다. 죄는 율법을 지렛대로 사용하여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12)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율법을 통하여 신성하게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성하게 될 수 있기 위해 율법에 죽고 다른 이와 결혼하여야 합니다.13)
많이 배웠다는 도덕적인 자들의 말이 쓸데없는 소리에 불과할 뿐인데, 그들은 죄에 대하여는 조금도 모르고 죄의 권능에 대하여도 그렇습니다. 크리스트교 교리 없는 크리스트교 윤리는 아무짝에 쓸모가 없습니다.14)
7장 8절은 왜 성범죄와 폭력이 늘게 되는지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15)
계명을 통하여 기회를 취한 “죄”가 내 안에 모든 욕구를 수행하였으니 왜냐하면 율법의 없이(apart from) 죄가 죽기 때문입니다.
죄가 죽는다는 것은 활동적이지 않고 강하지 않다는 뜻입니다.16) 율법이 없던 때에 죄는 죽은 것과 같이 사람 안에 조용히 있었습니다. 죄의 다스림을 받고 있으면서도 내 마음대로 산다고 착각하고 살았으며, 죄를 죄인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강력한 엔진을 가진 자동차가 조용하게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이전에는 죄의 엄청난 세력을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17)
악마가 무장하고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런 전쟁도 없이 평화 안에 있습니다(룩 11:21~22). 그런데 악마의 것이었던 사람이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는 때에, 악마는 그의 것이었던 사람을 빼앗기지 아니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리하여 고요하던 마음속에 치열한 전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엔 죄가 죽은 것처럼 조용하게 사람을 다스려 죄라는 것도 몰랐지만 율법에 따라 죄를 죄인 줄 알게 된 때에 죄를 범하지 아니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죄를 죄인 줄 알게 된 후에야 비로소 죄의 강력함을 알게 됩니다. 죄인 줄 알면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그 자신의 무력함을 알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의인으로 착각하였으며 죄의 본질을 몰랐는데 죄는 겉으로 드러나는 금식이나 십일조 생활이 아닌 본질의 문제입니다.
“죄”는 너무나도 크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오히려 죄의 힘을 감지하지 못하고 죄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율법이 없었던 때에는 내가 내 마음대로 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계명이 온 때에 그 죄는 다시 살았으나 나는 죽었습니다(롬 7:9).
그는 자신이 율법을 지키고 있었던 놀라운 방식을 자찬하였습니다. 그는 살았다는 생각과 열정과 확신과 자신감으로써 가득 찼습니다. 그는 안식일의 두 번 금식하며, 십일조를 모두 바칩니다(룩 18:12), 그는 자기만족에 빠진 사람이요 자기 자신으로 충분한 사람입니다.18)
그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의 참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19) 마음은 상관없이 율법의 행위만으로 의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계명이 온 때에 그 죄의 정체를 드러냄으로 그 죄는 다시 살았습니다. 죄가 소생하였으나, 죄의 가공할만한 힘 앞에 나는 죽었습니다.
계명이 온 때에 그는 죄의 살아 있는 참된 능력을 알게 되었습니다.20) 살인을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알았을 때 살인에 대해 떳떳하였습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죄”가 밝게 드러납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면 “죄”가 밝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전에는 “죄”를 죄로 알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죄”를 죄인 줄 알게 되고 마치 죽어 있던 “죄”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계명”에 의해 “죄”를 발견하고 그것과 싸우나, 죄가 너무 강력합니다. 버티는 힘이 클수록 “죄”는 더 세게 누르고 그는 죽은 자 같이 느낍니다.
2. 그 계명을 통해 기회를 취한 죄가 나를 속였고 죽입니다.
로마서 7장 10~12절에 “그 계명이 나에게 사망 안으로 발견되었으니. 그 계명을 통해 기회를 취한 죄가 나를 속였고 그것을 통해 죽였음이라. 그래서 그 율법이 신성하고 그 계명도 신성하고 올바르고 선하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계명을 지켰다면, “생명” 안으로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롬 7:10). 계명과 율법을 행하면 살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생명을 주기는커녕 그 정반대인 죽음을 주었습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죄와 사망의 계명과 율법이 되었습니다.21)
생명으로 그 계명이 이것이 나에게 사망으로 발견함을 받게 되었는데, 그 계명을 통하여 기회를 취한 죄가 나를 속였으며 죽였습니다(롬 7:11).
본문에서는 죄의 “기만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2)
죄가 기회를 취합니다. 영어 성경에 “잡다”(seize)라고도 번역됩니다. 죄가 계명을 통하여(by) 기회를 손에 잡았습니다. 그러한 죄가 나를 속였으며 그것을 통하여서 죽였습니다.
파울은 죄가 속였다고 합니다. 죄는 사람을 속여 죄를 범하게 합니다. 악마와 죄는 속임을 통해 사람을 유혹하고 죄를 범하게 합니다(롬 7:11).
창세기 3장 13절에 “그 뱀이 나를 속였으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죄는 속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와와 아담의 죄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죄는 사람을 속입니다. 그 죄의 속임에 굳어지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죄는 결국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고 기쁨과 평화를 앗아 갑니다. 죄로 인한 고통을 믿음 때문에 당하는 십자가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하며 죄의 속임에 기만당하지 않은 분별력을 가지기 바랍니다!
“죄”가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뱀이 여자를 속인 까닭입니다(창 3:13). “속이는” 것은 사탄의 특성입니다.
선악과를 먹을지라도 결코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속였습니다(창 3:4).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된다고 속였습니다(창 3:5).
너희가 결단코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속였습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듣기 좋은 말로 속이니, 그 이후 모든 인류에게는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일 뿐입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였습니다. 그는 거짓말로 죽게 만듭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하나님이 좋은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죄는 사람들을 속입니다. 매우 좋고 탐나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고 금지하셨다고 속입니다.
“죄”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지 정신건강에 좋다고 속입니다. TV에 나오는 술 광고를 살펴보십시오! 즐겁게 웃으며 떠들지 않습니까?
구토하거나 노상방뇨를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예쁘고 매력적인 소주 광고 모델을 통하여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줍니다.
죄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실 리 없다고 속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사람들을 속입니다.
그 율법은 신성하고 그 계명도 신성하고 올바르고 선합니다(롬 7:12). 율법에 문제가 있지 아니하고 죄가 율법조차 이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율법은 신성한데 그 이유는 율법이 하나님 성품의 표현인 까닭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하고 그의 존재와 성품을 계시합니다.23)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요구에 있어서 진실로 의로우며 정당합니다. 율법이 그것의 형별을 부과할 때 불평이나 핑계를 하면 안 됩니다. 그 계명도 선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일치하여 영위되는 삶만큼 훌륭한 삶은 없습니다.24)
3. 선한 율법이 죽음이 되지 않았고 죄가 죽음을 만듭니다.
로마서 7장 13~20절에 “그럼 선한 것이 나에게 죽음이 되었습니까, 그 죄가, 죄가 나타났기 위해, 선한 것을 통해 나에게 죽음을 만드나니, 죄가 계명을 통하여 초월에 따라서(utterly) 죄 있게 되었기 위하여서니. 율법이 영적인 것을 아나 나는 육체적이며 그 죄 아래에 팖을 받은 자니. 내가 원하는 이것을 실행하지 아니하나 내가 미워하는 이것을 행함이나.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이것을 행한다면 율법에 좋은 것이라고 동의하나. 이제 내가 그것을 수행하지 아니하나, 내 안에 거하는 죄가 그러하나니. 내가 내 안에 나의 육체 안에 선한 것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것을 앎이니, 원하기가 나에게 가까이에 놓여 있으나 선한 것을 수행하기는 없음이니. 원하는 선(善)을 행하지 않으나 원하지 아니하는 나쁜 일을 실행함이라. 그러나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바의 이것을 내가 행하면, 내가 그것을 수행하지 않으나 내 안에 거주하는 죄가 그러한지라”라고 하였습니다.
7장 13~25절은 실제적이고 체험적인 방식으로 상술하는 것입니다.25)
파울은 “선한 율법이 나에게 죽음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 7절처럼 “그것은 되지 아니하노라”라고 대답합니다(롬 7:13).
그는 “그러나 죄가”라고 말하는데 이 문장은 주부의 동사가 없습니다. 아마도 뒤에 나오는 “만들다”라는 동사가 생략되었을 것입니다.26)
“죄가 선한 것을 통하여 나에게 죽음을 만드노라”로 번역 가능합니다. 죄가 선한 것을 통하여 나에게 죽음을 생산하고 초래합니다.
죄가 그 계명을 통하여 완전히 죄 있게 되었기 위한 것입니다. 계명을 통하여 죄가 완전히 죄 있는 것으로 됩니다.
그 죄가, 죄가 나타났기 위해, 선한 것을 통하여 그에 죽음을 만드니, 죄가 계명을 통하여 초월에 따라(utterly) 죄 있게 되었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파울은 이 대목에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의 조건을 묘사하고 있고, 이 사람은 육신 안에 있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묘사되는 체험은 파울의 회심하기 전에 있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27)
파울이 다메섹으로 떠나기 이전에 자신의 죄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파울이 3일 동안 볼 수 없었고 먹을 수 없었을 때일 수도 있습니다.28)
파울은 죽은 자처럼 완전히 절망하고 무기력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파울은 이것을 7장의 나머지 구절들에서 밝혀 나가게 될 것입니다.29)
율법이 영적이나 그는 육체적이며 죄 아래에 팔린 자입니다(롬 7:14). 크리스천은 죄의 노예가 아니기에, “그”는 아직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실행하지 않으나 미워하는 것을 행합니다(롬 7:15). 그는 율법의 영적인 성격을 아나, 율법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압니다. 그는 율법을 실행하기를 원하나 실행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율법에 좋다고 동의합니다(롬 7:16). 그는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는 자고 율법에 좋다고 동의하는 자입니다.
그가 그것을 수행하지 아니하나 그의 안에 죄가 그러합니다(롬 7:17). 그는 미워하는 것을 행합니다.
그는 그 안에 선한 것이 그의 육체 안에 거주하지 아니하는 것을 아니 원하기가 가까이에 놓였음에도 그것을 수행하기는 없음입니다(롬 7:18).
그는 그 육체 안에 선한 것이 거주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30)
원하는 선(善)을 행하지 않으나 원하지 않는 나쁜 일을 실행함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원하지(want) 아니하는 바의 이것을 그가 행하면(do), 그가 수행하지 않으나 그 안에 거주하는 죄가 그러합니다(롬 7:19~20).
파울은 이 구절에 행하다, 실행하다, 수행한다는 말로 변화를 줍니다. 선(善)을 행하지 아니하나 나쁜 일을 실행하나 죄가 그것을 수행합니다.
파울은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의 “분열상”을 드러내고자 합니다.31)
우리는 죄가 사람의 밖에 있는 무엇이라고만 생각하여서는 안 됩니다. 죄는 각 사람의 본성 속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 안에 거주합니다. 그가 원하지 않는 나쁜 일을 그 안에 거주하는 죄가 수행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1~25절에 “그러므로 좋은 것을 행하기에 원하는 나에게 그 나쁜 것이 나에게 옆에 놓여 있는 그 법을 내가 발견하니. 이는 내가 그 안에 사람을 따라 그 하나님의 율법과 함께 기뻐하나. 나의 정신 법에 대해 싸우고 나의 지체 안에 죄의 법 가운데 포로로 하는 나의 지체들 안에 다른 법을 내가 봄이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 누가 나를 이 죽음의 몸에서부터 구해 낼 것이냐?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를 통해 하나님께 은혜(Thanks)가, 그러므로 바로 내가 확실히 그 정신에 하나님의 율법에 종이 되나, 그 육체에 죄의 법에 그러한지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파울은 그 법을 발견하는데 좋은 것을 행하기 원하는 그에게 그 나쁜 것이 그에게 옆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롬 7:21).
21절의 “법”에 “원리”의 의미를 주는 것이 더 좋은 뜻을 만듭니다.32) 그는 그 원리를 발견합니다.
그는 좋은 것을 행하기 원하는 그에 나쁜 것이 놓인 법을 발견합니다. 그가 발견한 그 원리는 나쁜 것이 그 안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행하기에 원하는 그에게 그러합니다.
그는 안에 사람을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과 함께 기뻐합니다(롬 7:22). “안에 사람”은 “정신” 또는 “이성”을 뜻합니다.
“나”가 율법과 함께 기뻐한다고 “나”를 믿는 자라고 주장할 수 없으니,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율법과 함께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크리스천 유대인이 크리스천이 되기 전의 삶을 묘사합니다.33)
유대인은 안에(inner) 사람을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과 함께 기뻐하나, 그는 자기 지체들 안에 그 정신의 법에 반대해 싸우는 다른 법을 봅니다. 그를 그의 지체들 안에 죄의 법 속에 포로로 만드는 법입니다(롬 7:23).
“속 사람”은 분명히 ‘마음’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지체들”은 몸의 기관들이고, 사람의 일부분을 뜻합니다.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 순간, 다른 법이 있어서 투쟁하고 싸웁니다. 그는 그 속 사람을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과 함께 기뻐합니다.34)
~에 반대하여 싸운다는 단어(wage war against)는 “전쟁하다”라는 뜻의 단어(스트라튜오마이)에서 나왔습니다. “~에 반대하여 싸우다”나 “~에 반대하여 전쟁을 수행하다”를 뜻합니다.
파울은 그의 정신(mind)의 법에 반대하여 전쟁하는 법을 보았습니다. 다른 법과 그의 정신의 법이 서로에게 반대하여 전쟁하고 있다는 것인데 다른 법이 승리하여 그의 정신의 법을 포로로 사로잡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로로 하다(lead captive)”(아이크말로티조)는 “포로”라는 명사(아이크말로토스)로부터 나온 동사입니다.
이 “다른 법”은 “나의 마음의 법”에 대항하여 싸울 전략을 쓰고 있는데 이 “다른 법”은 나를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는 군대입니다. 이 “다른 법”이 나를 사로잡아 “죄의 법”이라는 감옥에 감금한 것입니다.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 누가 나를 이 죽음의 몸에서 구해 낼 것입니까? 죄의 법 속에 사로잡힌 자신을 바라보고 비참하다고 느낍니다(롬 7:24).
“비참한(wretched)”이라고 번역한 단어(탈라이포로스)는 “가엾은”, “불쌍한”, “비참한”, “불행한”, “초라한”, “곤란한”을 뜻합니다.
비참하다는 것은 절망과 낙담에 빠진 절규입니다. 이 말 속에는 절망의 기미가 있습니다.35)
그는 주 예수 크리스트 안에 있는 구원의 진리를 모르는 자입니다.36) 비참한 그는 “누가 죽음의 몸에서부터 구해 내겠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무능하고 비참한 그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누가 그를 죽음의 몸에서 구해 낼 수 있을지 몰라 찾고 있습니다.
파울에게 있어서 “몸”은 “구체화”(embodiment)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은 사람의 구체적(具體的)인 구현이며 체현입니다.37)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를 통해 하나님께 은혜(Thanks)가 있습니다. 파울은 잠시 문맥에서 벗어나 구원자를 알기에 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그는 문맥으로 돌아옵니다(롬 7:25).
그런 까닭에 바로 내가 확실히 그 정신에 하나님의 법에 노예가 되나, 그 육체에 죄의 법에 그러합니다.
“노예가 되다”는 노예가 되어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도 두 주인에게 노예가 되어 섬길 수 없습니다(마 6:24, 룩 16:13).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결코 노예가 된 적이 없다고 말하였지만(요 8:33), 그들은 400여 년간 이집트에 노예가 되었습니다(행 7:7).
정신에는 하나님의 법에 동의하나 육체에는 죄의 법에 노예가 됩니다. 그는 죄의 법에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옛날 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폐지되었으며 죄에 예속되지 아니하기 위해서입니다(롬 6:6). 지금 붙들려 있던 것 안에 죽은 신자들은 율법에서 풀어놓음을 받았기에 성령(Spirit)의 새로움 안에 노예가 되어 섬깁니다.
지금 붙들려 있던 것 안에 죽은 우리가 율법에서 풀어놓음을 받았기에 문서의 낡은 것에 아니라 영(Spirit)의 새로움 안에 예속됩니다(롬 7:6). 신자들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 노예가 되었으나. 그것들에 다시 노예가 되어 섬기기에 원하지 않아야 합니다(갈 4:8~9). 우리는 사랑을 통하여 서로에게 노예가 되어서 섬겨야 합니다(갈 5:13). 그 죄에 노예에서 벗어났으나 하나님과 서로에게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1)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2), 18.
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9.
3)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W. B. Eerdmans, 1996), 432.
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53.
5)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32.
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54.
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55-157.
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58-160.
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61-164.
1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65-166.
1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67.
1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68-171.
1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72.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73.
1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74.
16)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37.
1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79-180.
1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81.
1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82.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83.
2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94-197.
2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201.
2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212.
2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213.
2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19.
26)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52, n. 29.
2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222-223.
2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225-225.
2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226.
30) Douglas J. Moo, 『NICNT 로마서』, NICNT 성경주석, 손주철 옮김 (서울: 솔로몬, 2012), 628.
31) Moo, 『NICNT 로마서』, 629.
32)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60.
33) 홍인규, 『바울 신학 사색』 (용인: 킹덤북스, 2010), 114-115.
3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277-280.
3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285.
3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327.
37) James D. G. Dunn, 『바울 신학』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3), 111.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일등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
나름의 보람을 가지고, 삶의 경주에서 완주할 때,
세상은 당신을 주목하지는 않더라도, 당신은 충분히 행복하기에
그 꿈을 위해 완주하는 멋진 사람이 되십시오.💖
의인에게는 어떤 재앙도 임하지 아니하려니와 악인에게는 앙화가 가득하리라(잠 12:21).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