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보수와 진보의 한판 승부 -
제목을 잡고 보니 너무 거창합니다. 조선 시대에 무슨 보수와 진보의 한판 승부가 있었냐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왕조 교체 역시 진보와 보수의 승부로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국가의 교체가 아닌, 조선이라는 틀 안에서 일어난 한판 승부에 관한 내용입니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 이후 왕권이 교체된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온갖 패륜을 저지르고 국정을 혼란에 빠뜨린 암군이요 혼군인 연산군을 반정으로 몰아낸 중종은, 반정공신들의 부패를 바로잡고 무너진 국가 기강을 세우기 위해 신진사류라 불리는 조광조 일파를 등용하여 개혁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당시 반정공신 세력인 훈구파는 부정과 부패, 그리고 부와 권력을 향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혁하고자 중종은 조광조와 김정 등 신진 관료들을 발탁했습니다. 조광조와 김정 등은 안당 등의 후원을 받으며 정국공신의 위훈 삭탈, 향약 실시, 소격서 철폐, 조세제도 개혁을 위한 방납의 폐해 시정, 노비종모법 개선, 토지 겸병 방지를 위한 한전제 실시, 소학 및 사서 간행 보급, 형조의 감옥시설 개선 등 주목할 만한 성과를 여럿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과거제를 보완해 인재를 뽑는 '현량과'라는 새로운 제도는 기존 관료와 훈구세력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방관이나 사림의 천거로 인재를 등용하는 제도로 정국공신의 위훈 삭탈과 함께 기존 권력 체제를 뿌리째 바꾸려는 급진적인 시도였기에 많은 반발을 샀습니다. 당시 영의정 정광필 등도 개혁이 너무 급하다며 만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왕인 중종에게 성리학적 군자상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여진족의 침략마저 성리학적 인의(仁義)로 대응하려 하는 등 현실과 동 떨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중종의 마음도 돌아서게 되었고, 훈구대신들의 거센 반격이 더해지며 사림은 정권을 잃고 목숨까지 빼앗기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묘사화입니다.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 하여 나뭇잎에 꿀을 발라 벌레가 파먹게 만들었다는 유명한 전설은 하나의 가설로 보이지만, '조(趙)씨가 왕이 된다'는 소문을 만들어 역모로 몰아갈 명분을 세워 준 것은 분명합니다.
이 구도를 이용해 남곤, 심정, 홍경주 등은 중종을 은밀히 만나 사림세력의 개혁을 역모로 조작했습니다.
이 기묘사화는 일종의 '보수반동'이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혁과 진보를 꿈꾸던 세력이 수구·보수 세력인 훈구파에게 완전히 패배한 일대 사건이었던 셈입니다.
실패의 원인은 세상 경험이 많지 않은 신진 사류(조광조, 김정, 김식, 기준, 김구, 김안국 형제, 박훈 등)가 성리학적 이상주의와 원리주의적 사고방식에 갇혀 지나치게 급하게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특히 사숙벌인 남곤을 소인배라 무시하고, 영의정 정광필 등의 현실적인 만류조차 개혁을 막으려는 시도로 비판했습니다. 정국공신의 위훈 삭탈 역시 재심사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추진했어야 함에도 일거에 밀어붙이다가, 왕의 변심과 훈구 세력의 반격을 받아 개혁도 실패하고 목숨을 잃거나 귀양을 가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개혁의 기회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척족 세력이 등장하면서 조선은 서서히 기울어가기 시작했고, 부정부패가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사림의 대부 김종직의 제자인 남곤, 사림의 후원자인 안당, 그리고 영의정 정광필과 같은 중도 개혁 세력과 연대하여 개혁을 추진할 수도 있었음에도, 급진적인 진보 세력이 완전히 몰락해 버린 점은 너무나 아쉬운 대목입니다.
남곤이 기묘 사화 후 뒷말 본인의 문장 등을 모두 없앤 것을 보면 한참 후배인 조광조, 김정, 김식 등 기묘명현을 죽이뉴것에 대한 반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만약 조광조나 김정 등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조선 건국 이후 성공적인 변혁을 이루어, 다음 세대에 닥쳐올 외세의 침략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비약도 해보게 됩니다.
아울러 훗날 일어난 사림 세력의 분열 또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지 았을까 하는 복잡한 마음도 일어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