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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청와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시절 좋았던 옛날에 업무로 가 보았으나 초청방문으로는 못 가 보았다.
대구의 관광 여행사를 통해서 지인 1명과 함께 청와대를 관광으로 관람하게 되었다.
대구에서 06시에 출발하여 오후 4시에 복귀 출발했고, 정문에서 본관까지 줄을 서서 한 시간, 오후는 비가 와서 비를 피해 쉬었으니,
통제하고, 예매 해야하고, 시간 없고 해서 봐야할 북악산, 청와대 사랑채, 칠궁, 박물관 등을 구경하지 못했다.
사람마다 청와대를 관람한 느낌이 다르겠지만, 나의 생각은 집은 화려하고 웅장한데 5년마다 주인이 바뀌니 전셋집 살다가
나간 집 처럼 보였고, 건물 안에서는 부러울 것이 없이 좋겠지만, 건물 밖은 내집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밈이 없어 보였고,
날으는 새도 오금이 저릴 청와대는 대통령기가 안 달려 있으니 쓸쓸하고, 쥐도 마음대로 못 다니는 곳이 구경거리가 되었으니
청와대의 권부 기운이 빠져 처랑해 보였다.
민속촌에 갔을 때 고택 가옥에 대문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담 넘으로 보듯한 수박 겉핧기식 대충 관람,
문은 닫혀 있고 찰창문을 통해 내부를 빼꼼히 봐야하는 곳, 통행을 막은 줄 등.... 못 보여 줄 곳이 많겠지만 언젠가는
눈으로 볼 곳이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1000년의 정치 역사가 고소란히 묻어 있는 청와대 터는 파괴를 피하는 보호를 받아 왔다.
벽돌 한 장, 풀 한 포기도 정치 역사일진데 들어가지 마라면, 만지지 마라면, 하지 마라면,
안해야 할 것을, 국민에게 돌려 준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건만, 관람 자격이 없는 개 보다 못한 사람들이 눈에 띄였다.
국민과의 약속 이행은 좋지만 정치적 약속은 문제를 낳는다. 충분히 검토하여 준비하고 대책을 세워서 개방해야 했을 것이다.
준비 없는 개방은 정치적 홍보 였나 싶고, 몇 곳 안내판은 문구는 살고 나간 전 주인과 비교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청와대 안에는 먹을거리 판매대가 없다. 화요일은 쉬는 날이니 가는 날이 장날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안내도를 참고하여
볼 곳을 빠트리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다음에 다시 가면 청와대는 건너뛰고 북악산, 칠궁, 박물관, 사랑채 등을 구경해야겠다.
사진은 누가 찍어도 같은 사진일 것이다. 아직 안 가 본 사람을 위하여 많이 올렸으니 사진으로 구경해 보자.
사진이 좀 많지만 읽어보고 청와대 관람을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청와대 관람 안내도
청와대 정문
5년 전 청와대 관람은 건물 내에는 들어갈 수 없고, 지정된 외관만 볼 수 있었다는데,
이젠 청와대 전면 개방으로 건물 내부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5월 10일을 기점으로 전(前)에는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정을 살폈으나, 후(後)에는 대통령이 청와대를 벗어나 용산 집무실에서 국정을 보게 된 것이다.
TV로 수없이 본 익숙한 본관을, 잔듸밭에 들어 갈 수 없어 중앙에서 찍지 못했다.
청와대(靑瓦臺)는 서울의 중심부이자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로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1번지로 경복궁 북쪽에 위치해 있다.
고려시대(918~1392)부터 궁궐로 사용되었고, 조선시대(1392~1910)에는 경복궁의 후원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총독관저가 들어 섰고, 해방후에는 미군정 사령관이 머물기도 하였다.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부터 1960년 8월까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경무대(景武臺)’라 명명했다.(제1공화국)
1960년 8월 13일 윤보선(尹潽善) 대통령이 청와대로 개명하였다(제2공화국),
이 명칭은 대리석으로 된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푸른 기와집이라는 데에서 연유한 것이다.
1991년 지금의 본관이 들어 섰으며 지금의 모습인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이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하여 회의실, 접견실,
주거실 등이 있는 2층 본관과 경호실, 비서실, 영빈관 등 부속건물이 있고, 정원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후원 및 연못 등의 미관을 갖추고 있다.
1963∼1979년(5∼9대) 박정희(朴正熙), 1979∼1980년(10대) 최규하(崔圭夏), 1980∼1988년(11∼12대) 전두환(全斗煥),
1988∼1993년(13대) 노태우(盧泰愚), 1993∼1998년(제14대) 김영삼(金泳三), 1998∼2003년(제15대) 김대중(金大中),
2003∼2008년(제16대) 노무현(盧武鉉), 2008∼2013년(제17대) 이명박(李明博), 2013~2017년(제18대) 박근혜
(朴槿惠) 대통령이 거쳐 갔다. 2017년(제19대)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이 입주하였다.
청와대는 1948년부터 2022년까지 12명(1∼19대)의 대통령이 사용했고,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20대)이 취임하면서
"정오에 청와대 전면 개방"을 한다고 선포했다.
대선공약대로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 되돌려 줌으로써 74년의 역사로 종지부를 찍고, 날으는 새도 두려워할
청와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국민의 놀이터가 되었다.
며칠전에는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다 한다.
정문에서 본관 입구까지 줄을 서서 입장하기까지 40 여분 소요됐으나 오후가 되니 줄이 짧아졌다.
모든 관광지가 처음 개장 때는 그렇듯이 언젠가는 줄을 서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 머릿돌
충무실
대규모 인원의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회의를 하는 공간이었다. 외빈이 왔을 때 만찬과 공연을 하는 등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대통령 집무실
인왕실
간담회나 오찬, 만찬이 열리는 소규묘 연회장, 외국 정상 방한 때 공동 기지회견을 하는 장소로도 활용한 공간이다.
창문을 통해 밖의 중정 뜰을 볼 수 있다 한다.
인왕실의 그림은 전혁림화백의 "통영항" 이라는 작품이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당시 전혁림 화백에 부탁해 4개월에 걸쳐 완성한 그림이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때 인왕실에 걸었다가
이명박 대통령 이후 정부 수장고에 보관돼 오다가 문재인 대통령 때 다시 걸렸다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1층 중앙홀
현 정부도 모사꾼과 아부꾼 잡배들로 대통령을 욕 먹이고 있다.
누가 이렇게 쓰라고 했을까? .....별도의 영부인 관련 전용공간은 없다 마음 아프고 걱정되게 하지 말고 안내판을
속히 교체했으면 싶건만 언제까지 걸려 있을 것인가?
무궁화실 (영부인 집무실)
외빈을 만나는 접견실과 집무실로 쓰였으며, 역대 영부인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역대 영부인 초상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명당중의 명당임을 알려주는 「천하제일복지」라고 새겨진 석판이 89년3월 새 청와대 부지조성과정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동네 이장을 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명당은 있는가?
요즘 명당은 승용차 가는 곳이 명당이다.
늙지 않는다는 "불노문" 여기를 지나면 늙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은 철조망 처진 감옥 아닌 감옥에 살은 것이리라?
이러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로 된 산책로와 세면트 계단으로 된 계단의 용도는? 이제 경계초소는 비어 있다.
인왕산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 좌상(보물 1977호)
일명 "미남불"로도 불리는 석조여래좌상은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하여 9세기
(신라 때) 조성된 불상으로 본래는 경주에 있었으나 1913년 일제에 의해
남산 총독관저에 옮겨져 놓였다가 1930년대 다시 이곳 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관저 뒷산에서 본 남산쪽
북악산을 오르면서 서울 시내와 청와대를 볼 수 있을 기대를 했는데 못 올라갔다.
오운정(五雲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2호
경복궁 후원에 휴식을 위해 지은 정자로, 자연의 풍광이 신선세계와 같다고 하여 오색구름을 뜻하는 오운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원래는 아래에 있었으나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청와대 뒤에 있는 숲
그 누구도 청와대 뒷산에서 벌목이나 식물 채취를 하지 않았을 텐데 오래된 숲이 아니었다
청와대 관저 정문(인수문)으로 대통령 살림집이다.
인수문 앞에 있는 소나무 세 그루 중 두 그루는 노태우 , 노무현 대통령 기념 식수다.
가장 굵은 소나무는 표지석이 없다.
누구 또는 누구의 기념 식수 같은데 표지석을 없애 버렸나 보다. 이는 내 생각이다.
역사는 역사로 두어야 하는데 사라진 것 같은 표직석의 역사도 역사다.
청와대를 관람하면서 본 상데리아는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없는 모두 고급품이었다.
대통령 살림집으로 규모가 너무 크다. 대통령부터 근검절약으로 솔선해야지?
대통령 봉급으로 살림을 살았을까?
이러니 대통령을 서로 하려는 것이다.
청와대 안에 꽃밭을 이곳에서 처음 보았는데 영부인 야생화 꽃밭일 것이다.
드레스룸, 식당, 가족침실, 주방, 메이크업실, 등 집 뒤로 가면서 창문으로 쪼끔 볼 수 있다.
모두 가져 가고 집기류는 탁자, 의자 뿐이다.
뒤안에 있는 장독대는영부인들이 보지도 않았는지 이상하다.
청와대 안의 유일한 굴뚝으로 연기가 다시 피어오를 수 있을까?
저 문은 무슨 용도일까? 설명문이 없다.
군대 막사 냄새가 났다. 경호인원, 대통령 살림집에 사는 일꾼들 거주하는 집일거다.
청와대 뒷산은 북악산(342m)으로 백악산(白岳山)으로 불린다. 상춘재 주변에 조성한 공원 개울에는 사계절 맑은물이 흘러 내리고, 초가 정자와 백악교를 설치하였다.
상춘재 주변의 수석, 나무, 조형물 등 사진만 해도 수십장은 되지만 생략 하였다.
침류각(枕流閣)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3호,
침류각은 경복궁 후원에 연회를 베풀기 위해 지은 건물로 '흐르는 물로 베개로 삼는다'는 뜻에서 침류라 했다.
조거만 연못이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한데 물고기는 없는 것 같다.
술은 먹었을 테고 밥 가져가서 저 초가 정자에서 놀면 좋았으련만 대통령은 그 행복을 누려 보았을까?
상춘재(常春齋)는 항상 봄이 머무는 집이란 뜻이다. 청와대 안에서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전통적인 한옥 건물이다.
비공식회의 장소로 이용되는 상춘재는 청와대 경내에 최초로 건립된 전통 한옥으로서, 기둥은 200년 이상 된 춘양목(홍송)을 사용했다.
외국 손님이 왔을 때 한옥을 소개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녹지원(綠地園)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120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원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농사를 장려하는 채소밭이 있었고 일제 총독관저가 들어서면서 가축사육장과 온실 등이
조성되었는데 1968년에 약 1,000여 평의 평지에 잔디를 심어 야외 행사장으로 이용했다.
청와대 내 산책로
춘추관(春秋館)은 1990년에 완공되었으며,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을 살린
건물이다. 현재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기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 나라 언론사 기자 78명이 상주하는
청와대 프레스센터로서 1층은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자실과 담화발표 등을 하는 소회견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에는 대통령
기자회견과 각종 문화행사 등을 하는 다목적실이 있다.
청와대 사랑채(사진 퍼옴)
역대 대통령의 발자취와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해 할수 있는 홍보관.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데 여기를 못 갔다 . 화요일은 쉬는 날, 예매하여 입장한다.
녹지원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다.여기는 꽃이 좀 심어져 있는데 다년생 꽃나무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청와대는 유흥지나 공원이 아니니 도시락 가져 가서 놀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 안 보이니 다행이었다.
영빈관
청와대를 관람한 후에 제 2 장소로 부근의 여러곳을 선정할 수 있을 것이며, 청와대 관람시에는 경복궁은 신무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신무문은 궁궐의 북쪽문이다.
경복궁 입장료는 3,000원이며 한복을 입거나 나이가 많으면 공짜다. 월요일이 아니고 화요일이 휴장이다.
청와대에서 출발 했으니 경복궁을 뒤에서 부터 관람하게 되었다.
경복궁은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공간이 조성돼 있다.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만 남았고,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자체를 가려 버렸다.
1990년 부터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옛 궁궐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TV 사극드라마를 통해 수 없이 봐 온 경복궁에서는 비가 와서 관람을 포기하고 대충이지만 몇 곳 궁궐 보면서
경복궁의 옛 모습을 그려 보았다.
경복궁 이름은 정도전이 지어 주었으며 "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번창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청와대 분수대
이런 길이면 서울에 갈 때 승용차로 가겠는데 과거에 일방 통행로진입으로 혼이 나서 지금도 승용차를 운전해서 가지 않는다.
신무문쪽으로 가면서 로터리에 백합 꽃밭이 있었다. 몇 시간 머물면서 모두를 알려고 하면 서울 사람들 한테 욕하는 것이리라.
열심히 메모를 했지만 사진을 보면서 설명이 부족해서 분에 차지 않을 것이다.
경복궁에서는 메모를 하지 못했다.
경복궁 뒷쪽 담장으로 가을엔 단풍길을 , 야간에 돌담길을 걷고 싶다.
향원정
'향원(香遠)' 뜻은 '향기(香)가 멀리(遠) 간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때에 파괴되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다.
사계절 멋진 반영을 담을 수 있는 향원정과 경회루에 비가 내렸다.
곤녕합(坤寧閤)
명성황후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1895년 10월8일 일본의 자객에 의해 시해된 곳이다.
경회루(慶會樓)
왕실의 큰 연회를 베풀거나 사신을 접대하던 곳으로 1867년에 재건되었다.
중건 당시에 경회루 연못에 2마리 청동 용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1997년 준설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멀리 보이는 산이 북악산
멀리 보이는 산이 인왕산
메모를 하지 않아 어디인지 모르겠다.
근정전 안으로 왕이 앉아 있던 곳
여기가 어떤 곳인지 사극 드라마에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중국 자금성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에도 경복궁이 있다.
동십자각(東十字閣)
경복궁 주차장으로 가면서 본 건물로 궁금해서 여러 사람한테 물었는데 답변을 못 듣고 가이드도 모른다 했는데 젊은 사람이 설명해 주었다.
궁성의 동쪽 모서리에 서 있는 망루이다.
궁궐 담장이 흘리면서 현재와 같이 길 한 가운데 있으면서 차들을 지켜 보고 있다.
광화문
설명이 필요한가?
사연 많은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1395년에 처음으로 지어졌으며, 불타고, 일제 때는 강제 이전되고, 복원을 거쳐 현재에 이러렀고, 월대가 복원되면 100여년 만에 온전한 조선시대 광화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4월에 발굴작업에 착수하여 2023년 완공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여년 간 경복궁 1차 복원사업을 시행해 89동을 복원했다. 이어 2011년부터 2045년까지 80동을 추가 복원하는 2차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수문장 교대식만 못 봐서 아쉽겠는가?
경복궁아 말 않는 너의 의미를 못 알아 차리고 구석구석 보며 흘러간 세월을 못 만나서 미안하다. 다음에 다시 보자.
월대(月臺) 복원 모습(사진 퍼 옴)
경북궁 건국 초에는 해태상이 없었지만 불 먹는 상상의 동물 해태는 불기운을 막고 궁궐을 지키라는 의미에서 경복궁 대문인 광화문 앞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니기에 복원시에 다시 제자리로 이동 한다고 한다.
서울 구경이 청와대, 경복궁 뿐이겠는가?
TV에 나오는 시설들을 보고 싶었는데 또 일지 장담할 수 없으나 아쉬움은 다음 기회에 풀자.
경복궁만 둘러 보아도 몇 시간일듯 한데 서울까지 가서 그냥 걸어 나왔으니 아쉽다.
제주도 한달 살이도 좋지만 서울 한달살이를 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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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첫댓글 비공개 스크랩이라 이름이 안 딸려 왔네요
김성묵 선생님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