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고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다가
그 동안 애청한 사극 선덕여왕이 교차적으로 묵상되었습니다.
사극 선덕여왕 5회를 시청하던 중.......
창세기를 통한 말씀묵상의 일주천이라는 제목의 카페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극 선덕여왕을 로드킬하였습니다.
로드킬의 교차사고는
결과적으로 말씀 묵상의 교차적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창세기를 통한 말씀 묵상의 일주천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타락과 그 회복,
그리고 아벨의 제사로 바라본 족장을 비롯한 엘리야의 갈멜산 제단까지 묵상하고
아담의 에덴 추방과 노아 홍수 심판, 그리고 소돔 고모라의 심판과 애굽의 심판과
가나안의 심판을 언급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노아 시대 네피림과 아브라함 시대 멜기세덱의 문제를 다루고
언약의 표징인 아브라함의 할례와 율법의 그늘마저 벗어난 마음의 할례를 통전적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이렇게 많은 글을 쓰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극 선덕 여왕의 재미는 한순간의 로드킬이 되었습니다,
사극 선덕여왕을 방영할 2009년도는
사진과 영상과 사역을 접목한 스튜디오의 일로 사극을 시청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극 선덕여왕은 진흥왕의 죽음에서 선덕여왕의 죽음으로 끝을 맺고
그 과정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삶의 귀납법적 스토리는 사극의 지존에 등극하였습니다.
진평왕의 버려진 공주 덕만의 여왕이 되는 과정은
구사일생의 역주가 삶의 대장정으로 전개되는 도망자와 추격자의 역동적인 서스펜스였습니다.
버려진 아이 덕만 공주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주변 사람들의 삶이 역동적으로 펼쳐졌습니다.
사극 선덕여왕은 큰 산맥의 능선과 그 모든 줄기를 섬세한 동선으로 그려낸
대하사극의 대장정, 그 장엄한 오케스트라였습니다.
궁에서 태어나면서 버려진 덕만 공주를 품에 안고
미실의 사냥개 칠숙의 칼을 피해 필사의 도망자로 살아가는 소화의 일생은
덕만 공주의 한평생 눈물이 되었습니다.
두 번의 죽음으로 그려진 소화의 일생은 칠숙과 죽방의 애틋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오직 덕만 공주를 위해 두 번이나 구사일생의 목숨을 희생하였습니다.
덕만공주의 팔색조, 그 무궁한 변화는
사극 선덕여왕의 생명력이 되었고 대하드라마의 변화무상한 선율이 되었습니다.
미실의 사냥개가 된 칠숙의 충정은
국선 문노와 앙숙 관계의 긴장감으로 흐르고 화랑의 최고 무사, 그 용호쌍박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문노와 칠숙을 따르는 화랑과 낭도는
미실을 중심으로 끝없이 대립하며 갈등하는 구도로 서로 반목하였습니다.
진흥대제의 화랑도를 완성시킨 미실은 그 눈부신 할약으로 화랑의 수장이 되었으며
또한 진흥왕의 애첩으로 진지왕의 왕후가 되었고 진평왕 말년에
미실의 난으로 왕이 되려다가 실패하였습니다.
미실의 역을 맡은 고현정은 탁월한 미모와 표정 연기로 카리스마 넘치는 사극의 꽃이 되었고
말 말 말 많은 연말의 연기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한편 김유신은 화랑의 집단 가운데 용화향도의 수장으로
기존의 서라벌 화랑인 비천지도의 알천랑과 일월성도의 보종랑과 대립하고
갈등하는 가운데 성장하였습니다.
특히 화랑의 수장 풍월주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화랑의 비무 비제대회는
화랑도의 정신을 높이고 수련과 전쟁의 사이의 실전을 방불하였습니다.
또한 가야 출신의 김유신과 복야회의 동상이몽은
신라의 가야, 그 대립과 갈등의 심화였습니다.
가야를 신라의 백성으로 품어내는 선덕 여왕의 지력과 용단은 김유신이라는 거목을 반목의 죽음에서 구해내고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복귀시켜 백제의 무풍지대에 놓인 신라를 위기에서 구출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김유신과 계백의 만남, 그 전략전술의 대결은
사극 선덕여왕의 무협도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극 선덕여왕의 비밀병기 비담의 역활은
비담의 스승 문노의 예측대로 손잡이 없는 칼의 무풍지대를 만들었습니다.
진지왕과 미실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떄 버려진 비담은 문노의 제자로 그 절대 무술을 익혀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 웃는 살성이 되어 비담의 난을 일으키고
마지막까지 살육의 피바람을 일으키고 죽었습니다.
궁에서 버려진 덕만 공주가 자기 정체서을 찾아 가는 과정은
수 많은 사람의 죽음, 그 진혹곡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선덕 여왕의 곁을 지킨 김유신은 선덕여왕의 큰 믿음이 되었고
삼한 통일의 꿈을 진덕여왕과 무열왕과 문무왕을 거쳐 완성하였습니다.
진평왕 17년에 태어난 김유신은 79년의 생애를 살면서
진평왕 37년 선덕여왕 16년과 진덕여왕 8년 무열왕 7년과 문무왕 11년 동안 살면서
삼한통일의 위대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사극 선덕여왕은 삼한 통일의 전야제였고
선덕여왕은 그 불꽃이 되었습니다.
사극 선덕여왕을 묵상하면서
사극의 대장정, 그 끝없는 투어의 소중한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또 다시 사극 대조영을 시청하고 있는데
전설이 된 요동 전투와 안시성 전투, 그리고 고구려의 멸망과 발해왕국의 건국을 견식하고 있습니다.
문득 우리 시대 손잡이 없는 칼은 무엇인가? 생각하며
그 생각의 칼날은 권모술수, 침소붕대, 위록지마, 교언영색을 일삼는 안티를 비롯한
비판을 위한 비판자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선덕여왕을 배경으로 하는 실제 역사는
신라 24대 진흥왕은 7세에 왕이 되어 재위기간 34년이었으며 42세에 죽었습니다.
진흥왕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진흥왕의 순수비가 창녕과 북한산과 마운령과 황초령에 세워질 정도로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25대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 사륜으로
장남 동륜이 진흥왕 33년에 죽었으므로 왕위에 올랐으나 화백회의에서 4년만에 폐위하였습니다.
26대 진평왕은 진흥왕의 장남 동륜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재위기간 54년이었으며
사극 선덕여왕에서는 천명공주와 선덕여왕이 된 덕만공주 외에 아들은 낳고 죽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미실의 난으로 덕만공주는 위기를 맞았으나
김유신과 비담과 알천 등 화랑의 도움으로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신라 27대 왕으로 등극하였습니다.
27대 선덕여왕은 재위 16년이었으며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사촌동생인 진덕여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28대 진덕여왕은 진평왕의 동생 진안갈문왕의 맏딸인 승만 공주로
선덕여왕의 뒤를 이었으며 재위기간 8년이었습니다.
29대 김춘추는 천명공주의 아들로 5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7년만에 59세에 죽고 삼국통일의 관문인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30대 문무왕은 무열왕 김춘추의 장남으로 김유신의 누이 문희의 아들이며
34세 왕이 되어 재위 기간 20년 동안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습니다.
한편 비담은 진지왕과 미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며
무열왕 김춘추는 진지왕의 손자로 진지왕의 다른 아들 용춘과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 사이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비담과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은
진지왕의 배다른 형제입니다.
이렇게 보면 비담은 진평왕 17년에 태어난 김유신보다 적어도 20년 정도 나이가 더 많았으며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진평왕보다 약간 아래며 훗날 결혼하여 낳은 덕만 공주보다는
훨씬더 나이가 많습니다.
사극 선덕여왕에서는 이러한 연대기적 사실을 외면하고
사극 시나리오의 짜임새 있는 공상에만 치우쳐 스토리를 엮었습니다.
사극은 드라일 뿐 픽션이며
픽션 뜻은 실제로 없는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하여 낸 이야기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