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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감사의 능력/ 데살로니가전서 5:18
(설교자: 마경훈목사)
https://www.youtube.com/watch?v=k0NScI3X6iA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가장 성공적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사람입니다.
흑인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찰리 스미스로 그의 나이 130세인 1831년에 플로리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보낸 130년의 세월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노예로 태어나 갓난아이 때부터 학대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남부와 서부를 헤매며 매를 맞고 모욕을 당하며 굶주리기도 했습니다. 죽을 고비도 무려 20번 이상 넘겼습니다. 그렇게 130년간 고생스러운 삶을 살아온 스미스 씨는 임종하기 며칠 전 자신을 방문한 목사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흑인으로 태어나게 하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고통스러운 노동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130년간 언제나 제 옆에 계셔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신앙고백입니다.
제 장모님이신 이막동권사님의 임종도 아름다웠습니다. 임종직전에 자녀들과 손주들이 다 모여서 장모님 생일 축하를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가족별로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장모님이 임종을 앞두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셨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어머니 하실 말씀 있으세요?” 장모님이 대답하셨습니다. “감사해. 감사해!” 그리고 “하나님이 9시에 데리러 오신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그 말을 듣고 그 날 밤 9시인지 알았는데, 다음 날 아침 9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저는 그때 장모님이 하신 “감사해. 감사해!”라는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제 장모님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보내시고, 딸 여섯을 키우시느라 엄청나게 고생을 하셨지만 인생 마무리는 최고로 잘하신 분입니다. 자식들에게 마지막 남기신 말씀이 “감사해. 감사해!”였으니 최고의 죽음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복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감사하는 인생이 복된 인생이라는 직접적인 말씀은 없지만 성경 전체의 흐름을 보면 감사하며 사는 인생이 복된 인생이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잘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만드셔서 1주일에 한 번씩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1년에 몇 차례의 절기를 정하셔서 1년에 몇 차례 하나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남자들은 1년에 3차에 걸쳐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빈손으로 여호와께 나아가면 안 되고 반드시 힘대로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 세 절기는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지켰던 삼대절기는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먼저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을 포함하며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나온 날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거듭남을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그 다음은 칠칠절입니다. 이 날은 유월절 후 오십일 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도 부르며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손으로 수고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신 것에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으로 말하면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세 번째는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수장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하는데 밭에서 거둔 곡식을 저장함을 감사하는 절기며,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간 광야생활을 할 때를 기억하면서 오늘의 안정된 생활이 하나님의 축복임을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으로 말하면 주님의 재림과 재림 후에 천국 곳간에 들어감을 보여주는 절기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구약의 절기 가운데 칠칠절, 오순절, 맥추절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7월 첫째 주일은 맥추감사절로 지키며 1년 중 절반인 6개월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설교를 통해서 감사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본문에서 그렇게 말씀합니다. 여기서 범사는 ‘모든 상황과 환경에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난 상황과 환경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한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동해안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앞자리에 앉으신 할머니가 운전기사에게 아몬드 한 움큼을 줍니다. 기사는 감사하다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참을 달리는데 다시 할머니가 아몬드를 줍니다. 기사가 감사를 표하면서 그만 주셔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얼마가지 않아서 또 아몬드를 한 움큼 줍니다. 왜 자꾸 주느냐고 물으니 할머니가 말합니다. “우리는 이가 약해서 아몬드는 못 씹어.”, “그러면 왜 그 딱딱한 아몬드를 사셨어요?”, “응! 실은 우리가 아몬드 초콜릿을 샀어요. 우리는 이가 약해서 못 씹으니 겉에 있는 초콜릿만 빨아먹고, 아몬드는 기사양반 주는 거야!” 기가 막힌 일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입니다.
몇 년 전에 파키스탄에서 차량 폭탄테러로 70명이 죽었습니다. 테러범들이 교회 안에서 예배 중인 사람들을 죽이려고 차량에 폭탄을 싣고 교회 안에서 폭발하게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가운 일입니다. 이렇게 폭탄 테러를 당해서 죽은 사람들도 있었고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한 분들이 범사에 감사하기는 쉽지 않은 것입니다.
▶고난도 감사해야 합니다.
고통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작은 고난이 남이 당하는 큰 고난보다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합니다. 사람을 제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화상이라고 합니다. 온 몸에 화상을 입으면 그 고통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전신 화상 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내 손톱 밑에 가시로 인한 고통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고통을 다른 사람이 당해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하지만 성경은 개인적인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전에 불렀던 헌금송 중에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 찬송의 가사를 보면 좋고 긍정적인 일들로 인한 감사도 있지만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환경과 상황에 대해서도 감사를 합니다. 응답하신 기도로 인하여 감사를 하지만 거절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기쁨도 감사하지만 아픔과 슬픔도 감사합니다. 길가에 장미꽃으로 인하여 감사하지만 꽃의 가시로도 감사합니다.
독일에서 혀 암에 걸려 혀를 잘라야만 하는 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혀가 잘리기 전에 최후로 한마디를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그 환자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주위에 둘러 있던 사람들도 과연 마지막 한마디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주목했습니다. 그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감사입니다. 그는 혀가 잘리면 평생 말을 못할 텐데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시각이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짚신 장사를 하는 아들과 우산 장사를 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어머니는 언제나 근심이 떠날 날이 없었고 가정의 분위기는 늘 우울했습니다. 그 이유는 비가 오는 날이 되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이 돈을 못 벌게 되므로 근심이 되고, 반대로 날이 맑으면 우산 장사를 하는 아들이 돈을 못 벌게 되므로 근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사람이 그 어머니에게 충고를 했습니다. “걱정 근심하지 말고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날이 맑으면 짚신 장사하는 아들이 장사가 잘 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 장사하는 아들이 돈 잘 벌 것이니 감사하면 되지 않겠소?” 이 말을 들은 후부터 그 어머니는 마음과 생각을 고쳐서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시각이 이렇게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당나귀가 우물에 빠졌습니다. 주인은 당나귀를 우물에서 꺼내려고 힘을 썼지만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당나귀 주인은 앞으로는 이런 사고가 나지 않게 우물을 막아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물에 흙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나귀는 자기를 묻어버리려고 주인이 쏟아 붓는 흙을 밝고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일어나는 고난은 그리스도인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을 더 성장시키고 더 복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원리를 알기 때문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천국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받을 상급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딤후 3장에 보면 말세는 고통하는 때입니다. 말세의 고통의 원인 중에 하나는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하지 않는 것이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감사를 잘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은 다 감사를 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왕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시 9:1입니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다윗은 평범하게 감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심으로 감사했던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감사의 제사를 서원했습니다. 바울도 감사를 잘 했습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그는 서신서 앞부분에 항상 감사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사람들은 감사에 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1번은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입니까?”입니다.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답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 50:23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생활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감사는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강력한 성벽이 됩니다.
경상도 영주의 영주 중고등학교 교장과 이사장을 지내신 강경훈 장로님의 젊은 시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강장로님이 일제 말엽, 보급대로 끌려가 채석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강장로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바위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마다 다이너마이트를 집어넣는 작업을 점심시간 이전까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점심시간 바로 직전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놓고 돌을 부순 후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돌을 날랐습니다. 어느 날 이었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오전 일을 마치고 일하던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강 장로님은 식사 전에 하나님 앞에 간절함 마음으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와서 기도하는 장로님의 도시락을 물고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장로님을 조롱했습니다. “배고픈데 빨리 먹지 무슨 기도를 하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 도시락도 안 지키시고 어디 계신거냐!” 강장로님은 그 개를 쫓아갔습니다. 장로님이 개를 쫓아가다보니 어느새 백여 m를 넘어 이 백여 m 가깝게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개가 도시락을 놓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도시락을 주어 돌아서는 순간 다이너마이트가 “꽝” 터지는 것이었습니다. 오전에 바위구멍에 넣어 두었던 다이너마이트가 다 터진 줄 알았는데 그중 불발탄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곳에 모여 점심을 먹던 사람들이 다 죽고 개에게 도시락을 빼앗겨 멀리 간 강장로님만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강제노동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감사하며 기도하던 강장로님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도 지켜주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잠 4:23을 보겠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사람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 13:2입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넣었습니다. 예수님을 팔아야 겠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 이때 가룟 유다가 자기의 마음을 지켰다면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의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예수님을 팔아버린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자기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기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는 스스로 자기 마음을 지켜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실까요? 감사기도입니다. 빌 4:6-7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저와 여러분은 염려와 근심이 찾아올 때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합시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감사가 기적을 만듭니다.
김용국목사님은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이것저것 다 따지시지만 무조건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더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감사와 더 큰 감사 제목을 주십니다.
세계 2차 대전 후에 독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독일은 패전국이라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학교에서 점심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어느 시골 작은 학교에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그 학교에 점심을 못 먹는 아이들이 20명가량 되었습니다. 그 마을에 살고 있는 한 부자가 점심때면 빵 20개 정도를 싸들고 학교로 가서 아이들에게 주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서로 큰 것을 차지하려고 아우성 쳤습니다. 아이들은 재빨리 와서 큰 것을 요령껏 집어 들고 자기만의 공간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달랐습니다. 그레첸이라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서로 큰 빵을 차지하려고 할 때면 항상 조용히 뒤에서 기다리다가 남아 있는 가장 작은 빵을 집었습니다. 그리고 부자 할아버지에게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그레첸은 다른 아이들이 작다고 집어가지 않은 가장 작은 빵을 들었습니다. 빵을 고른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빵을 집은 것입니다. 그 아이는 그 빵을 들고 부자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 엄마와 함께 먹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레첸이 집으로 가서 빵을 먹으려고 잘랐을 때, 엄마와 아이는 놀랐습니다. 빵 속에서 비싼 은화 6개가 나온 것입니다. 엄마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돈은 우리 것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빵을 만들다가 잊어버린 은화일 거야. 이렇게 비싼 것이 여기에 들어 있을 리가 없어. 빨리 할아버지에게 돌려드려라.” 아이는 은화를 들고 부자 할아버지에게 달려갔습니다.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은화를 돌려주려고 하자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이 은화는 네 것이란다. 내가 20명 아이들 중에 감사할 줄 아는 네게 은화를 선물로 주려고 빵 속에 일부러 넣은 거란다. 이것은 하나님이 감사할 줄 아는 네게 주시는 보상이야!” 그레첸은 감사를 잘하다가 큰 돈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때 주님이 하신 특이한 행동이 있었는데 그것은 오병이어를 손에 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감사의 특징 네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①믿음의 감사였습니다. 비록 가진 것은 적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②부족한 가운데 드린 감사였습니다. 오병이어는 한 사람의 도시락 정도였고, 식사를 해야 할 사람들은 장정만 5천 명이었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합치면 족히 2~3만 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③보잘 것 없는 가운데서 드린 감사였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쿠OOO라는 뷔페식당에 잘 갑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OOO라는 식당도 잘 갑니다. 이유는 맛있는 갈비가 무한 리필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는 너무나 보잘 것 없습니다. 찰떡도 아니고 맛있는 크림이 발라진 빵도 아닙니다. 퍽퍽한 보리떡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는 싱싱한 회가 아니라 소금에 조린 멸치 같이 작은 물고기입니다. 보잘 것 없는 보리떡과 물고기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 보잘 것 없는 것을 잡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④불가능한 가운데서 드린 감사였습니다. 먹을 사람은 수만 명인데, 인간적인 생각으로 보면 그것으로 그 많은 사람을 먹이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감사기도 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요즘 제 큰 아들 모세가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모세가 40일 금식을 하게 될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게는 기적 같은 일입니다. 오늘은 23일째입니다. 오늘은 주일이라 모세가 운영하는 카페가 쉽니다. 어제까지 모세는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 물만 먹고 금식을 했습니다. 아빠가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또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40일 금식했던 것처럼 자기도 일하면서 금식하겠다고 하더니, 23일을 일하면서 금식하고 있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물론 이것은 모세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모세의 그동안의 심리 상태나 모세의 상황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고, 오늘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 부분을 간략하게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먼저 이것은 제 아내의 금식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제 아내가 5월 초에 3일 금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6월 초에는 저와 함께 3일 금식을 했습니다. 7월에는 현재 3일째 금식 중입니다. 제 아내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모세의 마음에 감동을 주신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감사의 결과입니다. 제가 최근에 하루에 1천 번 감사를 하는 것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1천 번 감사하는 이유는 입으로 감사를 시작하지만 그 감사가 곧 마음의 감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리처드 백스터는 “입술로 감사하면 마음에서 감사가 일어난다”라고 하였습니다. 입술로 하는 감사의 행위는 마음의 감사를 이끌어 냅니다. 입술로 많이 감사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다 보면 정말 마음으로 감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물이 됩니다.
제가 어느 날 아들 모세에게 “너도 매일 1천 번 감사를 해봐라. 그리고 ‘하나님 도와주세요’를 해봐”라고 말했는데, 모세가 제 말을 듣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중에 하나님이 마음에 불을 붙여주셨습니다. 입술의 감사가 마음의 감사를 이끌어내었고, 모세는 은혜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감동을 받아서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감사로 시작된 금식입니다. 이제 후반부로 들어갑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많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힘이 있습니다.
모든 고난을 뛰어 넘게 하는 힘은 감사입니다. 미국의 TV와 라디오 진행자로 유명한 드보라 노빌이란 분이 쓴 [감사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이 인생 전체를 바꿀만한 강력한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비밀 열쇠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건강을 삶을 살게 하고, 면역력을 길러 줍니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줍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데 단 1초도 정도 걸립니다. 이 1초의 감사의 습관이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평균 10년 이상 장수하게 한답니다.
감사는 행복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에 한 유대인재벌이 있었습니다. 그의 집은 방이 14칸이나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스라엘에서 사는 가난한 동생이 그의 집을 다니러 왔습니다. “아우, 우리 집에는 방이 열네 개야. 음악 감상실, 악기 연습실, 리빙룸, 다 갖추어져 있어. 좋지?”, “우리 집에도 다 있어.”, “아니, 아우 네도 이런 큰 집을 샀어?”, “아니, 우리는 한 방에서 음악 감상도 하고, 악기 연습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다 해.” 열네 칸 방 있는 집을 지어놓고 살아야만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셋방에서 살아도 화목하면 행복하고, 감사하면 행복합니다. 한 달 수입이 10억 원이 된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한 달 수입이 100만 원이라도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감사하면 행복한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시 100:4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기서 말하는 궁정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므로 그 문에 들어가고 찬송하므로 그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헨리 프로스트는 미국인 선교사로 중국에서 오랫동안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는 선교사역을 하다가 고통스러웠던 때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중국에서 열심히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향에서 슬픈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내 영혼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아무리 기도해도 그 흑암의 그림자는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슬프고, 좌절되고, 우울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프로스트 목사는 선교본부에 갔다가 본부 벽에 쓰여 있는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는 “감사를 해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당시 그는 그 체험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그 시각부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흑암은 물러가고 내 영혼에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리해도 물러가지 않던 흑암이 갑자기 사라지고 마음은 가벼워지고 치료받습니다. 왜 그가 감사하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가 감사할 때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선택입니다.
식당에 가서 메뉴를 선택하듯이 인생도 선택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선택하면 인생이 어두워지고 슬픔과 탄식뿐입니다. 감사와 찬송을 선택하면 기쁨과 기적과 축복이 충만해집니다.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부디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감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과 축복과 기적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