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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two former central bankers are talking about trust
Two books by Mark Carney and Minouche Shafik consider its importance for economies and societies
After the global financial crisis, people asked whether economists had not misunderstood something important about markets. The trying experience of recent years has some figures broadening the question, to ask whether economists have not failed to grasp something crucial about people. In a new book, “Value(s)”, Mark Carney, governor of the Bank of England from 2013 to 2020, argues that within profit-obsessed market economies self-interest crowds out other motivations, making the world a more selfish place—and potentially a less resilient and prosperous one, too. The notion is disconcerting, not least because the dominance of orthodox economic thinking leaves leaders poorly equipped to assess and respond to such claims.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이 시장에 대하여 어떤 중요한 것을 잘 못 이해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경제학자들이 사람들에 대해 중요한 어떤것을 파악하는 것에 실패하지 않았는지 묻기 위해 최근 몇년간 시도한 경험이 그 질문을 다소 확장하였다. 새로운 책 “가치(들)”에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잉글랜드은행의 총재였던 Mark Carney는 자신의 수익에 집착한 시장 경제가 다른 동기를 밀어내므로서 세계를 더 이기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잠재적으로 회복과 번영을 줄어들게 한다고 한다. 그 주장은 특히, 전통적인 경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그러한 주장에 대응하고 평가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므로 매우 당황스러운 것이다.
Parts of Mr Carney’s argument are echoed in another new book, b y Minouche Shafik, director of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who served as one of Mr Carney’s deputies at the Bank of England. Baroness Shafik’s book, “What We Owe Each Other”, examines the role of the social contract and considers how changes in the global economy have undermined the function of the institutions societies rely on to keep the world a reasonably just place. Fixing up and modernising the social contract is necessary, she writes, “if we are not to witness a destructive fracturing of the mutual trust on which citizenship and society is based.” People have become too disinterested in their obligations to other people and to society as a whole, Baroness Shafik says; they owe each other more.
카니 주장의 일부분들은 런던 경제대학의 이사이며, 카니의 영국은행 수석 대리인이었던 Minouche Shafik의 새로운 책에 똑같이 반영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도덕적 의무가 있는가?” 라는 제목의 Baroness Shafik 책은 사회적 약속의 역할을 살펴보고, 글로벌 경제의 변화들이 어떻게 세상을 합리적인 곳으로 유지하기 위해 의지해 온 제도적으로 협력하는 사회의 기능을 훼손해왔는지 살펴본다. “만약 우리가 시민의식과 사회가 바탕이 된 상호 신뢰의 파괴적 몰락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사회적 약속을 개선하고 현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기술하였다. Baroness Shafik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사회 전체에 대한 의무에 너무나 무관심 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즉,그들은 서로에 대해 더 많은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Such notions would not have been out of place in the work of the classical economists. Indeed, both Mr Carney and Baroness Shafik cite Adam Smith’s work,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which investigated how people come by their values, beliefs and preferences. They do so, Smith argued, through “mutual sympathy”—by imagining how others feel, essentially. This informs the public’s sense of right and wrong and establishes a social foundation for other institutions, including markets. Smith saw markets as “living institutions, embedded in the culture, practice, traditions and trust of their day”, writes Mr Carney. Modern economists rarely write about markets in such terms. The innovations of the neoclassical economists of the late 19th century shaped the profession into one in which utility, value and market prices are all treated as more or less the same thing. In an effort to become more rigorous or scientific, economists stripped from their analysis the difficult moral questions that interested Smith. Economics “simply doesn’t traffic in morality”, writes Mr Carney, quoting “Freakonomics”, a popular economics book.
그러한 사고는 전통적인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카니와 Baroness Shafik은 아담 스미스의 어떻게 사람들이 그들의 가치와 믿음 그리고 취향을 가지게 되는지 조사한 “도덕적 감정 이론”을 인용한다. 스미스는 “상호 동정심”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느끼는지 상상함으로서 그렇게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알리고 시장을 포함한 다른 제도권에 대한 사회적 기반을 수립한다. 스미스는 시장을 살아있는 유기체, 그들 일상에 박힌 문화, 관습, 전통과 신뢰로서 시장을 인식하였다고 카니는 묘사한다. 근대 경제학자들이 그러한 측면으로 시장을 묘사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19세기 후반의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혁신을 실용성과 가치와 시장 가격들은 모두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는 하나의 전문적인 영역으로 형성하였다. 보다 엄격하거나 과학적인 것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경제학자들은 스미스가 관심 있었던 어려운 도덕적 질문을 그들의 분석으로부터 제외하였다. 카니는 경제학 “단순하게 도덕성을 불법적으로 거래하지 않는다.” 인기 있는 경제학책을 괴짜경제학를 인용하여 쓴다.
But if economists have lost interest in questions of morality, and prefer instead to model worlds in which people act strictly in their own self-interest, moral forces still matter for economics. Baroness Shafik reckons that the solidarity that underpins social stability has a moral rationale—that it is wrong to deny people the ability to meet their basic needs—as well as political and economic ones. If the social contract breaks down, and people do not adequately look after each other, then crises (of finance, public health or the environment, for example) will threaten prosperity.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도덕성에 대한 질문에 흥미를 잃었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이기심으로 완고하게 행동하는 형태의 세상을 오히려 선호한다면, 도덕적 힘은 경제학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Baroness Shafik은 사회적 안정을 뒷받침하는 결속은 도덕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능력과 정치적, 경제적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약속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서로를 적절하게 돌보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재정, 공중 보건 또는 환경과 같은) 위기가 번영을 위협 할 것입니다.
Mr Carney, for his part, worries that market activity and market incentives crowd out important social norms. Private vices like greed or ambition, which can help raise social welfare when exercised within a perfectly competitive market, are often socially destructive in other, less ideal circumstances. As money becomes the primary or sole measure of value, society loses the ability to distinguish between acts of wealth creation that deserve to be heralded and those that do not. People who pass up the opportunity to make money for other more selfless activities come to look more like suckers than model citizens. The loss of interest in doing good for its own sake leaves society less able to meet serious crises like climate change. (Mr Carney himself worked at Goldman Sachs, a bank, early in his career, and recently drew criticism for using dodgy methods to claim that the portfolio of the asset manager for which he now works emits net-zero carbon.)
카니는 시장활동과 시장 인센티브는 중요한 사회적 규범을 밀어 낸다고 걱정한다. 탐욕과 욕망과 같은 사적인 부도덕함은 완벽히 경쟁적인 시장내에서 행사될 때 사회 복지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며, 종종 다른이에게 사회적으로 파괴적이고, 이상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만든다. 돈이 유일하고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짐으로써 사회는 예견 될만한 가치있는 부의 창출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잃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 좀 더 이타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돈을 벌수 있는 기회를 지나친 사람들은 일반적인 시민들보다 더 멍청한 사람으로 보여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좋은 일을 행하는 것에 대한 흥미를 상실하는 것은 기후 변화와 같은 심각한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이 약한 사회를 만든다. (카니는 경력 초기에 Goldman Sachs 은행에서 근무했으며 최근에 그가 일하고있는 자산 관리자의 포트폴리오가 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정직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Mr Carney provides some support for his argument. Studies show that monetary incentives can crowd out pro-social motivations in ways that prove counterproductive. (In experiments, for instance, student groups paid to do charitable work contribute less to the community than those given only a motivational talk about serving a good cause.) But the events of the past year provide lots of corroborating detail, in the struggles governments have faced persuading citizens to wear masks or be vaccinated, and the human and economic costs that have followed.
카니는 그의 주장에 대해 몇가지 근거를 제공한다. 연구에 따르면 금전적 인센티브는 비생산적인 것으로 증명하는 방식으로 친사회적인 동기를 밀어낼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예를들면, 실험에서 자선사업을 위해 돈을 지불한 학생 그룹은 단지 좋은 명분으로 봉사하는 것에 대해 동기부여적인 말을 들은 사람들보다 공동체 사회에 더 적게 기여한다.) 그러나, 정부가 마스크 착용과 백신 접종을 위해 국민들 설득에 어려움을 겪고 인적, 경제적 비용이 수반된 지난해의 사건은 많은 확실한 증거를 자세하게 제공한다.
Maximised futility
극대화된 공허함.
It may seem strange that central bankers—who can be a dispassionate and humourless bunch, even for economists—should be among those to raise the alarm about the fraying of the social fabric. But it makes a certain kind of sense. As Mr Carney writes, trust is central to maintaining the stability of a currency or a financial system. Humourlessness itself can be a signal to the public, a mark of seriousness meant to provide assurance that the money and the bank accounts in which people hold their savings can be relied upon. Few public officials will be more aware of the risks from a breakdown in mutual trust and regard for others than those charged with fending off runs on the financial system.
경제학자들에게 조차 냉정하고 유머가 없는 단체인 중앙은행가가 사회 연결망이 끊어지는 것에 대한 경고를 제기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 카니가 쓴 것처럼, 신뢰는 통화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이다. 웃음기 없는 그 자체는 대중에게 신호가 될수 있다. 즉, 진지함의 표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행의 계좌와 돈에 대해 신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는 것을 뜻한다. 금융시스템의 운영을 방해하는 사람들보다 다른사람에 대한 고려와 상호 신뢰의 붕괴로부터 오는 위험을 더 잘 인지하고 있는 공무원은 드물것이다.
Yet their writing illustrates just how difficult change will be. Their solutions—to make capitalism more inclusive and shore up safety-nets—are built around technocratic tweaks to policy, not a moral awakening, and understandably so. The analytical tools relied upon by top economic policymakers do not include mechanisms for quantifying the importance of social norms or cultivating ethical behaviour across the population. Indeed, Mr Carney’s argument poses a fundamental dilemma: today’s powerful figures are those that thrived within the current system. If society needs new moral leadership, it may need to look somewhere else.
여전히 그들의 글은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더욱 포용 적으로 만들고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한 그들의 해결책은 도덕적 각성이 아닌 정책에 대한 기술적 인 조정으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그렇게 한다. 최고 경제 정책 입안자가 의지하는 분석 도구는 사회적규범의 중요성을 정량화하거나 인구 전반에 대한 윤리적 행동을 육성하기 위한 메커니즘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실, 카니의 주장은 근본적인 딜레마를 제기한다: 오늘날의 강력한 인물들은 현재의 시스템내에서 번성한 사람들이다. 만약 사회가 새로운 도덕적 리더쉽을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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