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여자
‘꿈을 이룬 여자’는 고교 동창인 절친이 제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 빨리 나이 먹는 것이 제 꿈이었다는 고백을 듣고 나서요. 꿈이랄 것도 없는 것을 꿈이랍시고 간직해왔던 저 자신이 참으로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하기야, 저는 이 대학 저 대학 다니며 시간강사를 하던 시절에도 은퇴 후의 꿈을 장황하게 늘어놓곤 했었답니다. 은퇴하면 시냇물에 발 담그고 세계 명작 소설을 읽겠노라, 박경리의 「토지」와 최명희의 「혼불」도 읽어야지, 토니 모리슨의 소설도 빼놓지 않을테야 손꼽으면서 말입니다. 덕분에 친구들로부터 "정식 교수되려면 아직도 요원한데 은퇴 후 꿈이 웬 말이냐?"는 야유를 받곤 했답니다.
나이를 먹고 싶다는 제 꿈은 열 살 즈음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당시 제 마음속 모델은 마흔 살의 엄마였지요. 1929년생 뱀 띠 엄마가 서른 살 되던 해에 낳은 딸이 바로 접니다. 마흔 살 엄마 모습이 열 살짜리 딸 눈엔 마냥 부럽기만 해서, 어서 엄마처럼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평생토록, 이북에서 홀로 내려와 일가붙이 하나 없는 아버지를 무척이나 위해주셨습니다. 두 분은 봉래초등학교 선생을 하던 중 눈이 맞아 결혼하셨다는데, 아버지가 엄마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은 “도장 청소나 제대로 하시오.” 였다네요. 연애 시절 엄마가 먼저 용기를 내어 “단성사에서 재미난 영화를 한다니 함께 보러 가요.” 데이트 신청을 하면, “그 영화 난 며칠 전에 보았으니 당신 혼자 가구려.” 했답니다. 그런 아버지 어디가 좋아 결혼하셨느냐고 입을 삐죽이며 물으면, 엄마는 “젊은 시절 늬 아버지는 영화배우 안성기보다 더욱 멋있었다.”며 호호호 웃곤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아버지를 가여워하신 것 같습니다. 엄마는 명절이면 우리 5남매 손을 잡고 먼 친척뻘 된다는 아버지 형님댁에 인사를 다니셨습니다. 당시 그 형님댁에 가면 솥뚜껑만 한 이북식 빈대떡과 어른주먹만 한 이북식 만두를 먹을 수 있었는데요, 엄마는 그 형수님께 이북 음식 만드는 법을 하나하나 배워 아버지께 해드리곤 했었지요. 고향 떠나온 아버지 마음속 허기를 조금이라도 달래드릴 요량으로 그리하시지 않았을까요?
엄마는 해가 바뀔 때 즈음이면 두터운 겨울양말, 장갑, 목도리 등을 한 아름 사들고 오셨습니다. 하나하나 예쁘게 포장해서 우리 집 신문 배달하는 고학생에게 안겨주고, 연탄배달부 아저씨에게 주셨지요. 시장 입구에 자리한 단골 노점상 할머니에게도 목도리를 씌워드렸고, 앞집 단칸방에 세 들어 사는 모자가족에게도 선물을 건넸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집 형편이 아주 풍족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가끔은 식구들 먹을 봉지 쌀을 사러 가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엄마는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했습니다. 저희 세 자매는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발을 묻은 채, 외할머니가 감내해야 했던 지독한 시집살이 이야기, 덕분에 외할머니는 이북출신 사위를 두 손들어 환영했다는 웃픈 사연, 엄마의 큰 고모님은 딸 하나 낳곤 남편이 무서워 얼씬도 못 하게 하고 남편에게 여자를 붙여주었다는 거짓말 같은 실화, 6·25 전쟁 중 큰남동생은 행방불명되고 작은남동생은 학도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설 같은 스토리 등에 귀를 쫑긋하곤 했습니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흥미진진한 줄거리도 엄마를 통해 전해들었는데요, 그때 들었던 레토 바토라 선장과 아쉬레란 이름이 지금도 입에 맴도네요. 일본 잡지를 즐겨 읽던 엄마는 일본에선 아들딸 쌍둥이가 태어나면 딸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풍습이 있었노라는 기사도 들려주었고, 황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민 출신인 쇼다 미치코와 결혼에 골인한 아키히토 황태자의 동화 같은 연애담도 실감나게 들려주었지요.
엄마는 칠순 잔치 해 잡숫고 우리 나이로 일흔둘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10점 만점에 10점짜리 아내였던 엄마 덕분에 외로움 모른 채 살았노라고, 그래서 참으로 고마웠노라고, 엄마 마지막 가는 길에 귓속말을 해주었다고 하셨습니다. 평생을 사이좋게 살아오신 두 분의 모습이야말로 자식들이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지요.
나이 먹는 것이 꿈이었던 딸이 어느덧 환갑을 훌쩍 지났으니 꿈을 이루긴 이룬 것 같습니다. 한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네요. 나이 들면 저절로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되고, 나이 들면 자연스레 ‘범사에 감사한 삶’을 누릴 줄 알았으니 말입니다. 새해엔 나이를 한 살 더 안 먹어도 된다 하니, 막간(?)을 이용해 엄마처럼 여유롭고 멋지게 나이 드는 연습을 해야 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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